Hero Wants to Become the Demon King RAW novel - Chapter 4
제4화. 검 좀 구하러 가자
마족은 기본적으로 인간보다 신체 능력이 월등히 좋다.
날개를 이용해 하늘을 날고, 긴 손톱과 꼬리로 공격을 하며, 마법 운용 능력도 비교할 수 없을 만큼 뛰어나다.
그냥 그들의 몸 자체가 힘이고 무기인 것이다.
그래서 이 마족들은 소위 ‘무기’라고 하는 가공된 물리적 도구를 사용하지 않는다.
검, 창, 활 등 인간에겐 없어선 안 될 주 무기들이 이들에겐 애들 장난감이나 집안 장식품에 지나지 않는다.
아 참고로 스태프나 로드 같은 마법 무기는 쓴다.
마족도 마법은 간편하게 써야 하니까.
“이건 어디서 구해 온 거야?”
“정문에 달려 있던 장식용 검을 급하게 떼온 겁니다. 저택을 다 뒤져봤지만, 그거만 한 것이 없던지라…….”
브릴리스는 송구하다며 거듭 고개를 숙였다.
이건 당연하지만 그녀의 잘못이 아니다.
이 세계에서 잘 쓰지도 않는 물건을 갑자기 구해달라고 한 내 잘못이지.
나는 한숨을 내쉬며, 그녀에게서 받은 검을 뽑아 보았다.
-스릉
검이라기보단 철로 만든 장식품에 가까운 것 같다.
“그나마 플라스틱은 아니라서 다행이네.”
“예?”
“아니야. 구해다 줘서 고마워. 필요한 게 있으면 또 부를게.”
브릴리스는 마지막으로 몸을 꾸벅 숙인 뒤, 빠르게 내 시야에서 사라졌다.
나는 곧 넓은 연무장에 홀로 고독히 남게 되었다.
슬그머니 눈을 감으며 처량하게 부는 바람을 온몸으로 받아들였다.
3일간 많은 생각을 해봤다.
몰락한 용사였지만, 원인도 모른 채, 갑자기 내가 죽인 마왕의 후손이 되어버린 나.
그것도 모자라 마계에서 내로라하는 일곱 마족과 마왕의 권좌를 두고 경쟁하는 난처한 처지가 되어버렸다.
여기서 묻겠다.
난 이 경쟁에 참여해야 하는 걸까?
아니 참여를 떠나서 애초에 낄 자격은 있는 것인가?
난 전대 마왕을 죽이고, 그들이 말하는 마계에 수치의 역사를 안겨준 장본인이다.
그런 내가 마왕이 된다고?
이게 과연 맞는 일일까 싶어 3일 밤낮을 심히 고민했다.
뭐 결국 결론은 냈다.
그 회담장에서 사회자 마족이 했던 말이 크게 작용했지.
‘힘이 곧 권력이자 모든 것인 이 마계에서 마왕의 부재를 더는 용납할 수 없습니다. 해서, 지금의 여러분이 모인 것이죠.’
마계엔 마왕이 필요하다.
그래서 여덟 명의 후보가 모였다.
내가 전생에 뭐였건, 무슨 일을 했건 상관없이, 이 마계라는 세계가 나를 필요로 해서 부른 거라면,
나는 따르지 않을 이유가 없다.
적재적소(適材適所).
알맞은 인재를 알맞은 자리에 쓴다.
인계 레지에타에선 용사인 내가 필요했고, 마계 디아펠리스에선 마왕인 내가 필요한 거라면,
나는 기꺼이 따라줄 용의가 있다.
그래서 브릴리스에게 검을 구해달라고 한 것이다.
내가 과거에 용사 외에도 또 뭐라고 불렸는지 아는가?
바로 ‘검성(劍聖)’이다.
말 그대로 검의 달인.
한 분야에서 극의 경지를 이루었던 내가 그걸 버리고 굳이 다른 힘을 키울 필요는 없지.
검은 마계에서도 나의 든든한 버팀목이자, 성장 수단이 되어줄 것이다.
물론 이 검 같지도 않은 장식품으로 나를 지킬 생각은 없다.
일단 아쉬운 대로 이 검을 통해 과거 용사의 감각을 되짚어 보려 한다.
-후욱!
마음을 다잡은 난 일단 흘러가는 대로 편안하게 검을 휘둘러보았다.
삼보, 오보, 십보를 내디디며 물 흐르듯 자연스럽게 이어진 동작들은 설사 몸이 바뀌었다고 해도, 감각은 남아 있음을 증명했다.
내가 과거에 용사이긴 했나 보네.
없는 기억을 가진 미친 마족이 아니어서 한편으론 다행이었다.
기본적인 감각은 이 정도면 된 것 같고.
나는 검을 고쳐잡은 동시에 이번엔 본격적으로 검술 자세를 취해보았다.
-쐐액!
검을 머리 위로 들어 올려 수직으로 상대의 머리를 찍어 내리는 ‘머리 베기’.
레지에타 부르크 왕국 기사단에서 통용되는 롱소드 검술의 동작 중 하나다.
내가 용사가 되고, 검의 기본을 다지면서 처음으로 익힌 검술이다.
훗날엔 내가 직접 이 검술의 마스터가 되면서 후계자들을 양성하기도 했다.
그 후계자 중 상당수가 처형장에서 내게 돌을 던졌었지 아마?
-휙! 훅! 홰액!
연이어 시전한 ‘가로 베기’, ‘꺾어 베기’. ‘분노 베기’ 또한 전혀 어색함 없이 이어나갔다.
롱소드 검술의 감각이 살아있음을 확인한 난 이번엔 검을 한 손으로 가볍게 쥐었다.
-슥! 사악! 슈우욱!
묵직한 느낌의 롱소드 검술과 다르게, 마치 검이 아닌 가벼운 막대기를 휘두르는 듯한 움직임.
성인 남성의 한쪽 팔만한 가벼운 도검을 가지고 적을 빠르게 베어 가르는 도검술(刀劍術)이다.
이건 마왕과의 1차 혈전 이후 부족한 내 검술을 더 보완하기 위해 새로 익힌 검술이다.
싸움 좀 한다는 일명 무인(武人)들이 모인 땅으로 찾아가, 검사들과 대련하며 스스로 터득했었지.
“움직임이 예전 같지 않네.”
아무래도 정상적인 검이 아니다 보니 동작이 부자연스럽다는 느낌이 들었다.
기본적인 검술을 어느 정도 되새긴 후, 이번엔 조금 특별한 자세를 취해보았다.
앞서 내가 행한 검술은 특별한 힘이 없어도 인간이면 누구나 구사할 수 있는 검술이다.
허나 내가 과거 마족과 마왕을 상대하면서 주로 사용했던 검술은 바로 레지에타 성교회의 성력을 바탕으로 적을 멸했던 성검술(聖劍術)이다.
성력(聖力)은 빛에 취약한 마족들이 태생적으로 거부감을 느끼는 기운이다.
여기에 내가 보유한 검술이 더해지면서 강인한 신체를 가진 마족들을 상대로 밀리지 않고 대적할 수 있었다.
솔직히 마족의 몸으로 성력을 부린다는 게 말이 안 되긴 한데…….
뭐, 한 번 정도 실험해볼 가치는 있지 않겠는가?
두 손으로 검을 꽉 움켜쥔 나는 혹여나 몸속에 있을지 모를 성력을 끌어올려 보았다.
“라이트로드 슬래쉬(Light Lord Slash)!”
검에 성력을 담아 전방에 강렬한 빛과 함께 커다란 검기를 날리는 기술 ‘라이트로드 슬래쉬’.
한 번의 휘두름으로 군단 하나는 날려버릴 수 있는 매우 강력한 비기다.
-휘이잉
허나 검이 휘둘러진 전방엔 먼지만 휘날렸다.
잠시나마 경건했던 마음이 머쓱해진 순간이었다.
“에라이!”
역시 마족으로 환생하면서 기존에 가지고 있던 성력은 모두 사라진 듯했다.
어느 정도 예상은 했다지만 좀 아쉬운데?
나는 입맛을 다시며 잠시 생각의 시간을 가졌다.
용사에게 성력(聖力)이 있다면, 마왕에겐 마력(魔力)이 있다.
거기에 이 몸은 지금 어엿한 마왕의 피가 흐르는 후손의 몸이 아니던가?
내가 가진 검술에 이 마력을 접목해보면 어쩔까?
나는 바로 행동으로 옮겼다.
“스으읍!”
심호흡과 함께 방금 전 구사한 성검술의 자세와 동일한 자세를 취했다.
그러면서 이번엔 성력이 아닌, 내 안에 있을지 모를 마력을 있는 힘껏 끌어냈다.
-피이잉
그러자 가슴에 달려 있던 브로치에서 붉은빛이 일었다.
정확히는 브로치 안에 박힌 마혈석에서 일어난 빛이었다.
머지않아 몸에서 알 수 없는 힘이 솟는단 느낌이 들었다.
이거, 뭔가 아직 익숙하지 않은 나로선 제어하지 못할 것 같은 기분인데?
알 게 뭐야.
설마 큰일이라도 벌어지겠어?
그래도 혹시나 하는 마음에 저택이 아닌 뒤쪽의 빈 공터 쪽으로 몸을 전환했다.
그러곤 기합을 내지르는 타이밍에 맞춰 전방으로 검을 휘둘렀다.
“다크 로드 슬래쉬(Dark Lord Slash)!”
즉석에서 이름만 바꾼, 동작 자체는 라이트 로드 슬래쉬와 동일한 기술…….
응?
-콰콰콰쾅!
천재지변을 연상시키는 엄청난 굉음에 내 놀라는 탄식마저 묻혀버렸다.
검의 파장은 연무장만이 아닌 저택 전체로 퍼져 나갔으며, 수십 초 정도 여진으로 주변이 들썩였다.
“무, 무슨 일입니까 벨져 님!?”
난데없는 깜짝 쇼에 브릴리스가 헐레벌떡 달려왔다.
무슨 일이냐고 묻는 그녀의 말에 나는 아무런 대답도 할 수 없었다.
대신 손에 들고 있던 검…… 이었던 무언가를 멍한 시선으로 바라봤다.
“저기, 브릴리스?”
“예 벨져 님!”
“우리 검 좀 구하러 가자.”
브릴리스는 이번에도 마찬가지로 두 눈을 끔뻑였다.
* * *
“뭘 찾는다고요?”
“검이요 검! 이만한 손잡이에 이만한 쇠붙이가 붙은 검이요!”
“혹시 장식용 공예품을 말하는 거요?”
“장식용 말고 실전에서 쓸 수 있는 검이라니까요!!”
옆에서 브릴리스가 진정하라며 만류했지만, 내 속은 지금 까맣게 타다 못해 문드러질 지경이었다.
“여기 대장간 아니에요?”
“맞소이다.”
“근데 왜 검이 없어요?”
“거 젊은 친구가 멀쩡한 눈을 갖고선 왜 이상한 말을 하고 있소? 검을 왜 대장간에서 찾소?”
그럼 뭐 검을 꽃집 가서 찾으리?
저택엔 더 이상 검으로 쓸만한 게 없다고 해서 브릴리스와 함께 인근 마을로 향했다.
마을에 들어서자마자 대장간이 보이길래 옳다고나 하고 딱 들어갔더니, 이게 웬걸?
글쎄 대장간에 검이 없단다.
“아니 농기구들은 있는데, 검이 없다는 게 말이 돼요?”
“저 농기구들이야 다 쓰는 마족이 있으니까 그렇다지만, 이 마계에서 검을 쓰는 마족이 있으면 얼마나 있겠소?”
마족이 검을 안 쓴다는 건 원래부터 알았기에 그러려니 칠 수 있다.
아 근데 농기구는 왜 있냐고?
낫, 호미, 넉가래, 삽 같은 농기구들을 비롯해 심지어 나무를 벨 때 쓰는 도끼까지 대장간에 버젓이 자리하고 있었다.
진정하자.
어차피 쉽게 구할 수 있을 거라 생각하고 온 것도 아니잖아.
심호흡을 통해 흥분을 가라앉힌 후, 대장장이에게 정중히 물었다.
“그럼 오더 메이드로 검을 주문하는 건 가능하겠죠?”
허나 돌아온 것은 대장장이의 비웃음이었다.
“푸하하! 오더 메이드로 뭘 하겠다고? 거 굉장히 웃긴 손님이로구먼!”
“뭐가 웃깁니까?”
“그럼 웃기지 안 웃기오? 내 대장장이 인생 40년 동안 오더 메이드로 검을 주문하는 마족은 처음 봤소. 보시오! 오죽 어이가 없으면 같이 온 아가씨도 곤란해하고 있지 않소?”
나는 바로 브릴리스에게 눈을 돌렸다.
“화, 확실히 무리한 주문이신 게…….”
그녀는 안 될 거라며 고개를 도리도리 저었다.
“무엇에 쓰려고 검을 구하는진 모르겠지만, 안타깝게도 난 검을 만들지 못하오.”
대장장이는 한 번도 제작해보지 못한 물건을 만들어 줄 순 없다면서 내 주문을 거절했다.
그 길로 대장간을 나온 나는 급히 다른 대장간도 방문해 봤지만 상황은 다르지 않았다.
살 수 없는 걸 떠나서, 만들지도 못하는 상황이라니.
이쯤 되면 진짜로 내가 만들어야 하는 거 아니야?
“저 벨져 님?”
“응?”
“관심도 없던 검에 왜 갑자기 집착하시는지, 이유를 여쭤봐도 될까요?”
그래, 이쯤이면 그녀도 궁금할 만하지.
나는 주저할 것 없이 브릴리스의 눈을 똑바로 마주하며 말했다.
“아까 일로 확신이 섰거든.”
“예?”
“검이야말로 나를 지킬 수 있는 최고의 수단이라는 걸!”
내 말을 이해하지 못했는지 브릴리스는 고개를 갸웃했다.
조금 전 검술 단련을 통해 확실히 안 사실이 있다.
비록 겉은 초라해 보일지 몰라도, 지금 이 몸엔 상상할 수 없을 정도의 엄청난 마력이 내재해 있다.
아까 그 일격을 보지 않았는가?
하늘의 구름이 갈라지고, 100미터 앞까지 땅에 균열이 났다.
고작 베기 한 번에 말이다.
이 힘을 제대로 제어하고 다룰 수만 있다면, 내 전성기 못지않은 힘을 되찾을 수 있다.
어쩌면 그 이상도 가능하겠지.
망나니 후손이라 해도 혈통은 어쩔 수 없다 이건가?
이 벨져란 놈 알면 알수록 신기한 놈이네?
이런 무지막지한 힘을 갖고 있으면서 대체 그동안 뭐 하고 산 거야?
“아야!”
정신없이 걷다 보니, 그만 앞을 보지 못하고 누군가와 부딪혀버렸다.
“미, 미안! 내가 앞을 못 봤네?”
나는 일으켜주기 위해 바로 손을 내밀었다.
부딪힌 이는 나보다 한참 어려 보이는 소녀 마족이었다.
“아니요. 괜찮……!”
내 손을 잡으려던 소녀의 얼굴이 순간 얼음처럼 차갑게 굳어버렸다.
“베, 벨…….”
굳은 것에 이어 갑자기 몸을 심히 떨기 시작했다.
뭐야? 얘 왜 이래?
얼굴마저 점점 일그러지기 시작했는데, 마치 무서운 괴물이나 흉악한 범죄자를 마주한 듯한 표정이었다.
“죄, 죄송해요 벨져 님!!”
응? 뭐지? 날 아는 마족인가?
아니, 잠깐만!
얘 지금 뭐 하는 거야?
그녀는 대뜸 죄송하다는 말과 함께 내 앞에 머리를 조아렸다.
일단 말할 게 하나 있는데, 나와 브릴리스는 지금 후드와 마스크로 얼굴을 가리고 있는 상태다.
외출 전, 브릴리스가 밖에선 신분을 감추는 게 좋을 거라며 권유했고,
난 그것이 마왕 후보의 신변 보호 때문이겠지 하며 대수롭지 않게 받아들였다.
그래서 아까 대장간에서도 평범한 마인족 행세를 했던 건데…….
이 마족 소녀는 지금 내 눈만 보고서 내 정체를 바로 파악했다.
그냥 알아채기만 한 거면 내가 말을 안 하지!
다짜고짜 머리는 왜 박는 거야?
“뭐야? 무슨 일이야?”
“저 아이 얼굴 좀 봐! 완전 겁에 질려 있어!”
내 주변은 어느새 약장수가 온 것마냥 마족들로 북적대고 있었다.
(다음 편에서 계속)