Hero Wants to Become the Demon King RAW novel - Chapter 41
제41화. 이렇게 하죠
상황을 1분 정도 지켜본 결과, 대충 답이 나왔다.
알다시피 이사벨은 현재 영혼을 공유한 직속 퍼밀리어가 없다.
그래서 퍼밀리어를 대신할 마족을 본가에 요청하였고, 1차전을 기권하면서까지 그가 오기를 기다렸지만,
아무래도 제시간에 못 오는 상황이 된 듯하다.
들어보니, 오는 도중 미지의 집단으로부터 불의의 습격을 받았다고 하는데…….
“어떤 정신 나간 마족이 우리 이뉘디아 소속 마족을 습격했다는 거예요?”
그러게 말이다.
저 종주님 귀에 들어간 이상, 그 마족들은 이제 시한부 선고를 받았다고 봐야겠지.
“현재로선 정확히 알 길이 없습니다. 일단 로베르토 님께선 최대한 빨리 해결한 후, 급히 오겠다고 하셨지만…….”
“어쨌든 제시간엔 못 온다는 거잖아요!”
“예…….”
이사벨은 한 손으로 얼굴을 가리며 긴 숨을 내쉬었다.
일부 하수인 중엔 자기가 대신 나가겠다며 나서는 이도 있었지만, 이사벨은 가문에 먹칠할 일 있냐며 고함을 질렀다.
식식 분을 식히던 그녀는 이내 나와 눈을 마주쳤다.
“다 물러나요.”
하수인들은 일사불란한 움직임으로 이사벨의 곁을 떠났다.
나는 조용히 그녀에게 다가갔다.
“상황 대충 봤죠?”
“네. 뭐. 오기로 한 하수인이 못 오게 된 상황이라고…….”
“누구 소행일 것 같나요?”
“일단 저는 아닙니다.”
아직 추측에 불과하지만, 이 연회장에 있는 마족 중 한 명일 가능성이 높다고 본다.
당장 생각나는 마족이 있긴 하지만, 아직은 이유와 근거가 부족하다.
“근데, 본가에선 어떤 마족을 부르셨던 겁니까?”
“그야 당연히 본가에서 정령 마법에 가장 능한 자를 불렀죠.”
“가, 가장 능한 자요? 이사벨 님보다 더 뛰어나다는 겁니까?”
“뭐 아직까진 그렇다고 봐야죠. 그것도 얼마 안 남긴 했지만…….”
얼마 안 남았다라.
시간이 지나면 본인이 넘어설 수 있는 수준이다 이건가?
그래도 그녀가 직접 인정을 했을 만큼 위세는 확실하게 잡을 수 있는 마족을 부르긴 한 것 같다만,
그래봐야 오지 않으면 아무 의미가 없겠지.
“정 오기가 힘든 상황이라면, 차라리 사정을 말하는 게 낫지 않겠습니까?”
이사벨은 그마저도 고개를 저으며 부정했다.
“이미 이 놀이에서 승리와 패배는 의미가 없어졌어요. 다른 퍼밀리어들은 적절한 싸움과 처세를 보여주면서, 그 위세를 어느 정도 지켰다지만, 당신과 나는 아직 아무것도 보여주지 못했어요. 그게 뭘 의미할 것 같나요?”
애초에 우리가 이 연회에서 이루고자 한 목적은 처음부터 한결같았다.
분위기를 잡자.
우리의 단일화 사실을 정식으로 알리면서, 경쟁의 주도권을 휘어잡는 걸 목표로 하고 왔다.
하지만 간과해선 안 될 사실이 있다.
마왕은 어떤 평화를 지향하는 지도자 따위가 아니다.
힘이 전부인 세계에서 힘으로 거스를 자가 없는 절대적 존재다.
여기 모인 여덟 마족은 그 절대적 존재가 되기를 원하는 이들인 거고.
그런 마족들 앞에서 분위기를 잡을 수 있는 가장 좋은 방법이 뭐겠는가?
두말할 것도 없이 힘이다.
사실 그 미켄이란 마족이 메이와의 결투에서 기권한 것도 따져보면 그리 좋은 일은 아니었다.
메이로선 위험한 싸움을 더 할 필요가 없어졌다곤 하나, 이는 반대로 말하면 뭔가를 보여줄 기회도 없어졌다는 뜻이 된다.
즉 우리는 아무런 존재감도 보여주지 못하고, 그냥 묻힌 셈이 된 거지.
하다못해 검을 다루는 마족이란 점도 그 페르라는 놈에게 거의 뺏겼다시피 한…….
“미안해요.”
잘못 들었나 하는 생각에 눈이 번쩍 뜨였다.
“바, 방금 뭐라고?”
“미안하다고요. 일을 꼬이게 해서…….”
그래 뭐 지금이 꼬인 상황인 건 맞겠지.
하지만, 그렇다고 내가 사과를 받을 상황까진 아니라고 보는데?
“이사벨 님께서 사과하실 일이 아닙니다.”
“내가 짠 판이라고 떵떵거려 놓고선, 정작 아무것도 못 보여주고 있잖아요. 굉장히 부끄러워요. 당신에게도, 그리고 나에게도…….”
자존감이 높은 게 꼭 좋은 것만은 아니다.
스스로가 정한 목표를 달성하지 못하면, 하늘을 찌를 것 같던 자존감은 그 즉시 땅속으로 깊숙이 파고드는 좌절감으로 변모하고 만다.
지금 이사벨의 모습이 딱 그렇다.
좌절, 수치, 억울, 분노.
손으로 얼굴을 가리고 있긴 하나 손 너머에 덕지덕지 묻은 온갖 부정적인 감정이 내겐 여지없이 다 보였다.
이를 보는 내 마음은 당연히 편치 않았다.
음, 어쩔 수 없나?
“그럼 이렇게 하죠.”
사실 아까부터 생각해둔 방도는 하나 있었다.
썩 내키지 않아서 말을 안 했을 뿐.
슬며시 손을 내린 이사벨은 반쯤 어리둥절한 표정을 짓고 있었다.
나는 주저할 것 없이 바로 내 생각을 말해주었다.
“지, 진심이에요?”
내 말을 들은 그녀는 전혀 예상치 못했다는 듯 휘둥그레진 눈으로 나를 바라봤다.
* * *
20분의 짧은 휴식 시간을 끝으로 퍼밀리어 간에 2차전이 시작되었다.
첫 대결은 색욕과 탐욕.
결투장으로 나서는 자신의 퍼밀리어를 향해 루비아는 크게 소리쳤다.
“미켄, 너 이번에도 기권하면 나한테 죽을 줄 알아!”
미켄은 걱정하지 말라며 활짝 웃은 얼굴로 손을 저었다.
주인과 퍼밀리어보단, 전형적인 사이 좋은 남매의 모습이었다.
다른 후보와 퍼밀리어들 또한 아직 보지 못한 몽마족의 힘을 지켜보고자 결투장 곳곳에 자리하고 있었다.
단 한 명, 이사벨을 제외하고선.
-휘이잉
그녀는 연회장 밖에서 홀로 쓸쓸한 바람을 맞으며 먼 하늘을 바라보고 있었다.
“누굴 그리 간절히 기다리십니까?”
고독한 기다림을 방해하는 목소리에 이사벨은 미간을 찌푸렸다.
그녀로선 현재 얼굴조차 보고 싶지 않은 당사자가 찾아온 것이다.
“본인 퍼밀리어가 싸우는 건 왜 안 보시고, 저를 찾아오셨을까요?”
“제 퍼밀리어야 뭐 알아서 잘할 겁니다. 적당히 지고 오라고 했거든요.”
그 말에 이사벨은 헛웃음을 뱉었다.
“그렇게도 저랑 붙고 싶으셨나요? 그럴 거면 그냥 우리끼리 끝장을 보죠? 난 그게 더 좋을 것 같은데요?”
“끝장이라뇨? 전 이사벨 후보와 그럴 생각이 없습니다.”
네로는 뒷짐을 지고 턱을 치켜든 음흉한 얼굴로 이사벨에게 다가갔다.
“어머? 내 주위에 그림자까지 붙여서, 날 죽이려 하신 분께서 그럴 생각이 없다고 하니까, 기분이 몹시 불쾌하네요?”
“아, 거기엔 오해가 좀 있습니다. 제가 그림자를 붙인 건 맞는데, 그걸 통해 이사벨 후보를 죽일 생각은 없었어요. 그냥 만신창이 상태 정도를 원했다고 할까요? 그런 상태에서 가져야지, 좀 더 만족감을 느낄 것 같았거든요…….”
이사벨은 순간적으로 손을 움찔했다.
당장이라도 정령을 소환해 그를 태워버리고픈 욕구가 샘솟았지만 이를 필사적으로 억눌렀다.
“아~ 정말 왜 이러실까? 제가 반환품에다가 친절하게 써드리기까지 했잖아요. 한 번만 더 이딴 짓거리 하면, 네로 후보가 가진 거 다 뺏어버리는 수가 있다고…….”
“뺏어요? 내 걸?”
네로는 이마를 짚으며 크게 웃었다.
“다시 들어도 정말 재밌네요. 내가 가진 걸 뺏어버린다라. 저한테 대놓고 그런 말을 할 수 있는 마족은 아마 이사벨 후보 말곤 없을 겁니다. 아, 한 명 더 있네요. 그 망나니 후보까지…….”
그 망나니는 당연히 벨져를 의미했다.
걸음을 멈추지 않던 네로는 마침내 이사벨과 코앞의 거리까지 가까워졌다.
“이봐, 이사벨.”
보는 눈이 없는 곳에서 굳이 격식을 챙길 이유는 없었다.
가면을 벗어던진 네로는 비로소 그녀를 향한 본색을 드러냈다.
“네가 그 망나니 새끼와 뭐가 있든 상관없어. 어차피 내가 널 가지게 되면, 그 자식도 내게 되는 거니까.”
“정신 나간 소리도 정도껏 하지? 네까짓 게 날 소유할 그릇이 되는 줄 알아?”
이사벨 또한 굴하지 않고 고개를 빳빳이 세우며 대응했다.
“네가 뛰어난 여자인 건 알아. 하지만 딱 거기까지야. 넌 마왕이 될 수 없어. 적어도 내가 있는 한. 그 망나니 새끼도 마찬가지고…….”
본인의 큼지막한 손을 쫙 펼친 네로는 이사벨에게 보란 듯이 내밀었다.
“너희 둘은 결국 내 손안에 들어오게 돼 있어. 너희뿐만이 아니야. 나머지 후보들도 마찬가지지. 난 장차 이 마계의 모든 걸 소유하게 될 거라고. 그런 내가 곧 마계의 주인이고, 그게 바로 마왕이야…….”
네로는 펼친 손을 다시 꽉 움켜쥐며 마왕의 권좌를 향한 자신의 포부를 밝혔다.
탐욕의 종주다운 기세가 느껴지는 포부였지만,
“풉!”
이사벨은 이를 보기 좋게 비웃었다.
“내가 재밌는 사실 하나 알려줄까요, 네로 후보? 난 이미 마왕이 되고 싶은 마음이 없어요.”
미소가 만연해있던 네로의 얼굴이 바로 굳어버렸다.
“마왕으로 만들어주고 싶은 남자만 있을 뿐이지.”
슬그머니 손가락을 들어 올린 이사벨은 네로의 이마를 꾹 찔렀다.
네로의 얼굴은 종이 구겨지듯 삽시간에 일그러졌다.
“그게 너는 아니야…….”
* * *
“졌습니다.”
결투가 시작된 지 겨우 5분.
이제 좀 제대로 붙어보려 하는 순간에 이노투스는 패배를 선언했다.
“진작 좀 이렇게 하던가!”
루비아는 승리하고 돌아온 미켄을 등짝을 찰지게 후려쳤다.
정작 미켄의 표정은 그리 밝지 않았다.
“넌 이겨놓고 표정이 왜 그래?”
“저 자식 힘 다 안 썼어요. 애초에 제대로 싸울 마음이 없었던 것 같아요.”
미켄은 미간을 잔뜩 찌푸린 얼굴로 이노투스를 노려봤지만, 그는 시선조차 주지 않았다.
뭔가 처음부터 짜놓은 수에 말린 것 같아 기분이 무척 더러웠다.
이어지는 다음 대결은 분노와 질투의 결투.
먼저 준비를 마친 분노 쪽의 라비에가 결투장으로 들어섰다.
“제 상대는 어디 있는 겁니까?”
허나 질투 쪽에선 이번에도 퍼밀리어 대신 종주인 이사벨이 들어섰다.
“제안 하나만 해도 될까요?”
뜬금없는 제안 여부에 라비에는 물론 주인인 베누스도 의문을 표했다.
“무슨 제안 말입니까?”
“이번 결투는 베누스 후보님께서 승리하신 걸로 하고. 그냥 넘겼으면 해요.”
즉 이번 결투에서도 기권 선언을 하겠다는 의미였다.
“아직 준비가 안 된 겁니까?”
“준비는 됐어요. 단지 차례를 좀 앞당기자는 거예요. 어차피 이 놀이의 마지막은 저와 네로 후보의 싸움이 될 것 같으니까.”
표정이 일그러진 라비에와 다르게, 베누스는 오히려 흥미롭다는 반응을 보였다.
“뭐 이사벨 후보님의 뜻이 정 그러시다면, 받아들이겠습니다.”
“고마워요.”
베누스는 큰 무리 없이 그녀의 뜻을 받아주었다.
라비에는 불만이 있는 보였지만, 차마 반박을 할 순 없었는지 순순히 결투장에서 물러났다.
이에 기다렸다는 듯 이노투스가 결투장으로 들어섰다.
“쉬는 시간 없어도 되겠어요?”
“상관없습니다. 제가 싸워야 할 상대나 얼른 내보내 주시죠.”
“그러죠 뭐.”
이사벨은 토라지듯 몸을 돌리며 그대로 결투장을 나갔다.
그녀가 나간 것에 이어 마침내 준비를 마친 그녀의 대리인이 이노투스 앞에 모습을 드러냈다.
“이게 무슨 뜻입니까?”
상대를 마주한 이노투스는 이사벨을 향해 물었다.
“그 마족이 제 퍼밀리어를 대신해서 당신과 싸워줄 거예요.”
이노투스는 이해할 수 없다는 듯 얼굴을 잔뜩 구겼다.
다른 후보의 반응도 크게 다르진 않았다.
“뭐야? 왜 쟤가 나와? 쟤 이사벨의 퍼밀리어도 아니잖아?”
“뭐, 애초에 퍼밀리어가 아닌 다른 하수인을 내보내도 된다곤 했다지만…….”
루비아와 미켄은 어리둥절한 표정을 지으면서, 스리슬쩍 눈을 다른 곳으로 돌렸다.
그들의 눈이 향한 곳은 바로 벨져.
한껏 당황한 그들과 달리, 벨져는 의연한 눈빛으로 묵묵히 결투장 쪽을 바라보고 있었다.
그도 그럴 것이, 이사벨의 하수인으로 결투에 나선 마족은 다름 아닌…….
“이사벨 님을 대신해서 나온 메이입니다!”
벨져의 퍼밀리어 메이였다.
(다음 편에서 계속)