Hero Wants to Become the Demon King RAW novel - Chapter 42
제42화. 보여줘야 하는 것
아 부담스럽다.
분명 결투에 나서는 건 내가 아닌데, 어째 하나같이 다 나만 쳐다보고 있다.
하기야 나 같아도 안 볼 수가 없겠지.
이사벨을 대신해 싸우겠다고 나선 마족이 바로 내 퍼밀리어이니.
아 참고로 이건 이사벨의 뜻이 아니다.
전적으로 내가 제안한 내 뜻이다.
그렇다고 강제로 내보낸 것도 아니다.
엄연히 메이의 자의적인 동의(오히려 적극 환영했다)까지 받고서 내보낸 거다.
“멀뚱히 있지 말고 입이 있으면 설명 좀 하시죠?”
앞쪽에서 못마땅한 얼굴로 앉아있던 비만 마족이 나를 보며 물었다.
“이 상황을 나보고 어떻게 이해하라는 겁니까?”
“이해라고 할 게 있습니까? 애초에 본인의 퍼밀리어가 아니더라도, 후보를 대신할 수 있는 마족이 있으면 누구라도 상관없는 거 아니었던가?”
분명 시작 전에 네놈 입으로 말했잖아?
이 놀이의 본질은 어디까지나 후보가 아닌 대리인이 싸운다는 것에 있다고.
“그걸 누가 몰라서 그럽니까? 난 전혀 관계도 없는 그쪽의 퍼밀리어가 왜 이사벨 후보의 대리인으로 나왔는지를 묻고 있는 겁니다.”
“관계없지 않아요.”
이에 이사벨이 나섰다.
“나와 벨져 후보는 이미 여기 오기 전에 후보 단일화를 이뤘거든요.”
차라리 오자마자 밝혔으면 어땠을까 했던, 그 중대한 사실이 비로소 후보들 앞에서 정식으로 발표되었다.
술렁임이 일 거란 예상과 다르게, 장내는 쥐 죽은 듯 고요했다.
아마 최근 우리의 행보를 보고 다들 어느 정도 예상은 한 것이 아닐까 싶다.
하지만,
“벨져 후보를 대표로 해서 말이죠.”
이것까지는 예상을 못 했을 거다.
반쯤 감겨있던 눈이 번쩍 뜨인다거나, 입을 떡 벌린 채 못 다문다거나, 턱을 문지르며 흥미롭다는 표정을 짓는 등,
연이은 폭탄선언에 후보들은 다양한 반응을 보였다.
“저와 벨져 후보는 이제 하나의 목적을 위해 모든 걸 공유하는 사이가 됐어요. 힘, 가문, 하수인 그리고 퍼밀리어까지 전부 다요. 메이 양은 분명 벨져 후보의 퍼밀리어지만, 동시에 저와 협력해서 벨져 후보를 함께 마왕으로 만들 메이트이기도 해요.”
어……, 이거 어감이 좀 이상한데?
모든 걸 공유하는 사이라니?
난 그렇게 생각한 적 없어!
뭔가 다른 후보들에게 오해의 여지를 주는 것 같아 살짝 만류해보려 했지만, 이사벨은 내가 끼어들 틈 자체를 주지 않았다.
“이 정도면 설명이 됐겠죠?”
네로는 어이가 없다는 듯 쓴웃음을 짓다가도 이내 천천히 고개를 끄덕였다.
“뭐 좋을 대로 하십시오. 한편으론 좀 안타깝군요. 오죽 급하셨으면 이렇게까지 하실까…….”
그래. 급하긴 했지.
나도 원했던 방향은 아니다.
물론 그렇다고 불확실한 방향이란 것도 아니지.
나는 긴장한 상태로 대기 중인 메이에게 다가가 어깨를 다독여 주었다.
“저, 잘하고 올게요 벨져 님!”
잘하고 오겠다고?
솔직히 말해서 난 메이가 잘하고 오길 원하지 않는다.
내가 원하는 건,
“잘할 필요도 없어. 그냥 네가 보여주고 싶은 거 다 보여주고 와.”
선을 넘지 않되, 그 넘지 않는 영역에서 모든 것을 보여주는 것.
내가 메이에게 바라는 건 그거 하나다.
“보여주고 싶은 거요?”
메이는 그런 내 의도를 이해하지 못한 듯, 고개를 갸웃거리다가도,
“네 벨져 님!”
머지않아 목을 힘차게 끄덕였다.
* * *
마계의 금빛 밤하늘 아래로 펼쳐진 세상에서 가장 재밌는 구경도 어느덧 막바지에 이르렀다.
이노투스는 상대가 누구였든 애초에 상관하지 않은 것 마냥, 초연한 모습으로 마력의 흐름을 점검하고 있었다.
그의 곁으로 주인인 네로가 다가왔다.
“이노투스.”
“예. 네로 님.”
“밟아버려라.”
네로는 그 한마디를 끝으로 무심히 지나쳤다.
이노투스는 주인의 의도를 충분히 알아챈 듯 붕대 속에서 빙긋 미소를 지었다.
“좋은 꼴 못 볼 거란 말과 다르게, 오늘 재밌는 일이 여러 번 생기네? 근데 저 아이가 아까 같은 그 무시무시한 마수들을 감당할 수 있을까?”
한편 관중석에서 있던 루비아는 결투장에 나선 메이를 보며 안쓰럽다는 듯 말했다.
“훗. 누님. 저 레이디 앞에 서면 그런 말 못하실걸요?”
이에 미켄이 웃으며 반박했다.
그는 단순히 신사도를 지키고자 메이에게 기권한 것이 아니었었다.
메이가 싸움에 진심으로 임하면 정말로 못 이길 것 같단 예감이 들었기에 포기한 것이었다.
“대체 어디서 저런 아름다운 꽃을 구한 건지…….”
새삼 벨져를 향해 부러운 감정을 표하기까지 했다.
그렇게 준비를 마친 두 퍼밀리어가 결투장 중앙에 들어서고,
시작을 알리는 깃발이 올라가면서 마침내 마지막 결투가 시작되었다.
“계약 소환…….”
이노투스는 앞선 두 대결과 마찬가지로 시작하자마자 계약 마수를 소환했다.
허나 그 규모와 위력은 앞선 때와 달랐다.
“쿠워어어!”
소환된 마수들은 메이를 향해 살벌한 포효를 내질렀다.
“나를 농락했군.”
“내 저럴 줄 알았지.”
관중석에서 결투를 관전하던 드라칸과 미켄은 저마다 불쾌한 감정을 드러냈다.
이노투스가 소환한 마수의 수는 언뜻 봐도 스물 이상.
그들을 상대했을 때보다 두 배가 넘는 수를 한꺼번에 소환한 것이다.
마수 소환은 거기에 끝나지 않았다.
-쿠구궁!
우레와 같은 소리와 함께 이노투스의 머리 위로 거대한 마법진이 생성되었다.
마법진에선 이전 결투에서 용기사를 상대했던 사이클롭스가 다시 한번 그 거대한 모습을 드러냈다.
“사이클롭스…….”
지팡이를 잡은 메이의 손이 살짝 떨렸다.
첫 조우에서 느낀 공포와 두려움을 아직 해결하지 못한 듯했지만, 그래도 물러서지 않고 똑바로 마주했다.
문제는 거기서 끝이 아니라는 것.
사이클롭스까지 소환되었음에도 이노투스의 위에 생성된 마법진은 여전히 남아있었다.
이노투스는 그 마법진을 향해 또 다른 주문을 읊었다.
-푸스스
이윽고 마법진에서 먼지 연기가 새어 나오더니, 곧 주변의 시야를 가려버렸다.
“콜록콜록!”
졸지에 먼지를 들이마신 메이는 기침을 토했다.
허나 그러면서도 앞을 향한 시선을 거두진 않았다.
그녀는 본능적으로 느꼈다.
지금 먼지로 가려진 자신의 앞엔,
사이클롭스보다 더 위험한 존재가 자리하고 있다는걸.
곧 먼지가 걷히며 그 정체가 모습을 드러냈다.
“뭐, 뭐야?”
관중석의 마족들은 일제히 경악을 금치 못했다.
가장 놀란 이는 식탐의 종주 그룸과 그의 퍼밀리어인 드라칸이었다.
“이, 이게 대체 어떻게 된 것이냐? 이것도 계약 소환인 것이냐?”
그룸은 드라칸을 추궁하며 현 상황에 대해 물었지만, 드라칸은 대답하지 않았다.
그저 분노어린 눈으로 결투장의 이노투스를 노려만 볼 뿐.
메이 또한 놀라 벌어진 입을 다물지 못해 멍한 표정을 짓고 있었다.
사이클롭스에 이어 그가 소환한 존재는 무려…….
“요, 용기사?”
영락없는 용마족이었다. 그것도 용기사 형태의.
“대단하시네요…….”
메이는 자신도 모르게 감탄을 뱉고 말았다.
예상치 못한 광경에 조금 당황했다곤 하나, 용기사를 보는 그녀의 눈엔 경외심과 더불어 흥미가 서려 있었다.
이에 이노투스가 물었다.
“뭐가 대단하다는 것이냐?”
“설마 그 짧은 시간에 이리도 정교한 용기사를 구현하실 줄은 몰랐어요. 이거 모방 마법으로 만드신 거잖아요.”
붕대 속 이노투스의 얼굴이 순간 미세하게 일그러졌다.
“아까 사이클롭스를 소환하셨을 때부터 이상하단 생각은 들었어요. 소환 마수라고 하기엔 뭔가 어색한 느낌이 들어서 혹시나 했었는데, 역시 모방 마법으로 가짜를 구현하신 거였네요.”
그렇다.
다른 마수들은 몰라도, 지금 눈앞에 있는 사이클롭스와 용마족은 계약 소환을 통해 소환된 마수가 아니었다.
마법을 통해 모습을 흉내 낸 모방체.
즉 가짜였다.
정교하게 만들어진 가품은 웬만한 전문가가 아니고서야, 그 진위를 구별하기 힘들다.
그걸 메이가 구분한 것이다.
이 연회장에 있는 마족 중에서 유일하게.
“내 모방체를 바로 눈치채다니, 생각보다 보는 눈이 있구나. 그래서 넌 이제부터 뭘 보여줄 것이냐?”
이노투스의 물음에 메이는 살며시 눈을 감았다.
그녀는 결투장에 나서기 전, 고민하고 또 고민했다.
‘어떻게 싸워야 할까?’
어떤 방식으로 싸워야지, 벨져의 위세를 드높여 줄 수 있을까?
이 싸움이 무엇을 의미하는지, 메이는 모르지 않았다.
퍼밀리어로서 주인 마족의 명예를 드높이기 위한 싸움.
메이로선 자신을 알아봐 주고 거두어준 벨져를 위해서라도, 절대 물러서선 안 될 싸움이었다.
거기에 벨져는 말했다.
잘할 필요는 없다, 대신 보여줄 수 있는 걸 다 보여줘라.
그 말을 들은 순간엔 자신이 보여줘야 하는 게 무엇일지 의문이 들었지만,
그 의문이 해소되는 데엔 오래 걸리지 않았다.
마음의 준비를 마친 메이는 무시무시한 살기를 뿜는 마수들을 향해 손을 들었다.
“이미타티오(Imitátĭo)!”
주문을 읊자, 그녀가 있는 위치에서 세 발자국 앞으로 검은 광채가 나타났다.
메이가 시전한 마법은 다름 아닌 모방 마법.
이노투스가 사이클롭스와 용기사를 구현하기 위해 구사한 마법과 동일했다.
그 기운을 감지한 이노투스는 코웃음을 쳤다.
“너도 뭐 마수라도 모방하겠다는 것이냐?”
“아니요. 제가 모방할 건 마수가 아니에요.”
메이는 고개를 저으며 부정했다.
그러면서 속으로 다짐했다.
여기 있는 모두에게 똑똑히 보여주어야 한다고.
“저의 우상이자, 제 모든 것을 걸어서라도 반드시 지켜야 할 소중한 분. 그러면서도…….”
비록 이전엔 과거의 영광만 남은 마족이라며 모욕을 당했을지언정,
그럼에도 항상 굴하지 않고 자신을 단련하며, 자신을 믿어주는 모두에게 항상 다정한 마음으로 대해주는,
그의 진면을 말이다.
“장차 이 마계의 주인이 되실 분입니다!”
광채를 향해 뻗은 손을 힘차게 움켜쥐니, 광채는 어느 익숙한 마족의 모습으로 모방 되었다.
한쪽 눈을 덮은 짙은 흑발에 선명한 붉은 눈동자.
마족이면서 허리춤에 검을 차고 다니는 괴짜 마인족.
그 모습은 영락없는.
“베, 벨져 후보?”
벨져의 모습이었다.
이노투스는 믿을 수 없다는 눈으로 메이와 모방된 벨져를 번갈아 보며 물었다.
“무, 무슨 짓을 한 거지?”
“저의 주인이신 벨져 님을 마법으로 모방한 거예요.”
그걸 몰라서 물은 게 아니었다.
뭔가 질문을 이으려던 이노투스는 이를 아득 갈더니, 곧 의미 모를 미소를 지었다.
“그래. 함께 짓밟아주마. 너도, 네 주인도…!”
이노투스는 그 즉시 마수들에게 공격 지시를 내렸다.
용기사와 사이크롭스를 포함한 스무 마리가 넘는 마수들이 일제히 모방된 벨져를 향해 달려들었다.
-스릉
모방된 벨져는 다가오는 마수들을 맞이하고자 망설임 없이 질주했다.
손에는 흑빛 검신이 반짝이는 아크베리아까지 완벽하게 구현되어 있었다.
-쾅!
운석처럼 내려쳐진 사이클롭스의 주먹을 발판 삼아, 벨져는 마수의 머리 위로 날아올랐다.
마력에 반응한 아크베리아에서 빛이 일었다.
마수들은 일제히 공중에 오른 벨져를 향해 얼굴을 들었으며, 그 타이밍에 맞춰 벨져는 마력을 검기로 전환해 휘둘렀다.
“다크 로드 슬래쉬(Dark Lord Slash)!”
정령이 침투한 사이클롭스의 목을 벨 때 벨져가 구사한 것과 유사한 비기가 펼쳐졌다.
비록 모방된 힘이기에 그 위력은 진짜엔 못 미치겠지만,
-콰콰쾅!
그거면 충분했다.
검기에 베인 마수와 모방체들은 전부 형체도 없이 소멸했으며, 마력이 발산되고 남은 빛의 가루가 주변에 은연히 퍼져나갔다.
모방된 벨져 역시 목적을 완수하자, 다시 광채로 변하면서 흩어져 사라졌다.
마수들을 전부 잃고 망연자실로 남은 이노투스,
그런 이노투스를 보며 메이는 순수한 눈빛으로 물었다.
“더 하시겠어요?”
(다음 편에서 계속)