Hero Wants to Become the Demon King RAW novel - Chapter 51
제51화. 소녀와 마수
“사나 양! 여기 맥주 한 잔 더!”
“네! 금방 갈게요!”
“오늘따라 얼굴이 더 밝아 보이네? 뭐 기분 좋은 일이라도 있었어?”
“저야 여기서 일하는 것 자체가 기분 좋은 일이죠!”
보는 마족도 절로 웃음 짓게 하는 활기 넘치는 에너지.
주점에 있는 모든 마족이 그녀를 보며 웃고 있었다.
물론 나는 빼고.
“낮에 만났던 소녀가 누군가 했더니, 바로 사나 양이었구먼! 이름을 똑바로 말했어야지! 난 사라라고 하길래 누군가 했네!”
난 똑바로 말했었다.
단지 저 수상한 여자가 여기선 가명을 쓰고 있었을 뿐.
“여기서 일 한진 얼마나 됐답니까?”
“한 3개월쯤 됐지? 웬 처음 보는 소녀가 아침 댓바람부터 찾아와서 대뜸 일을 시켜달라 하길래, 서빙 일이라도 괜찮겠냐고 하니까, 흔쾌히 받더군.”
“아무리 그래도 성인도 안 된 여자한테 술 서빙을 시켜요?”
“나도 내키진 않았어! 근데 꼭 일하고 싶다며 사정사정하는데, 난들 어쩌겠는가? 일도 저리 잘하는데?”
“집은요? 마을 구성원도 아니라면서 잠은 어디서 잔답니까?”
“따로 거처가 있다곤 하는데, 어디인진 나도 모르네. 퇴근 시간만 되면 항상 쌩하고 사라져버려서 말이지.”
흑나무 마을에서 사는 것도 아니란 건가?
거처나 보호자도 없이 홀로 다닌다라.
이렇게 대놓고 ‘나 수상한 마족이에요’라며 티 내고 다니는 것도 쉽지 않은데?
이거 여차하면 메이한테 진짜 정신 조작 마법이라도…….
-짝!
뜬금없이 내 손으로 내 얼굴을 후려치자, 당황한 마일로가 물었다.
“갑자기 자네 뺨은 왜 때리는가?”
“술기운이 올라온 것 같아서 말입니다.”
이래서 술은 적당히 마셔야 한다고,
간만에 술 좀 들이켰다고 별 미친 생각이 다 떠오르네.
“한 잔 더 줄까?”
금세 서빙을 마치고 돌아온 사라가 내 옆에 다가왔다.
“잔이 빈 것 같아서…….”
술기운 운운할 땐 언제고, 어느새 내 잔은 맥주는 온 데 간 데 사라진 빈 잔이 되어 있었다.
나는 말없이 빈 잔만 내밀었다.
“잠시만 기다려줘!”
사라는 후다닥 주방으로 달려가 새 맥주를 담아왔다.
“여깄어!”
처음 받은 맥주보다 훨씬 더 시원한 맥주였다.
잔을 받은 나는 역시 아무런 말도 하지 않은 채, 시선을 돌렸다.
“그, 걱정 안 해도 돼…….”
“걱정?”
“네 정체 말이야. 다른 마족들에겐 숨기고 있는 거지? 네가 누구인지는 아무한테도 말 안 할 테니까, 걱정하지 않아도 된다고…….”
난 또 뭐라고.
솔직히 들켜도 별로 상관은 없다.
내가 뭐 죄인인 것도 아니잖아?
그냥 좀 귀찮아지는 것뿐이지.
때마침 마일로와 데릭도 다른 데로 가버리고, 메이는 주점 2층 여관방에서 쉬고 있는지라, 내 옆에는 사라만이 남게 되었다.
“조금 실망했지? 내가 이런 데서 일하고 있어서…….”
어색함을 벗어나고자 사라는 자신의 변변찮은 처지를 들먹이며 말을 건넸다.
내 입장에서야 그녀가 뭘 하든 알 바는 아닌지라, 실망이고 말고 할 것도 없지만,
“여긴 어쩌다 온 거야?”
이거 하나 정돈 물어볼 수 있겠지.
술에 취한 척하며 은근슬쩍 말도 놔보았다.
그녀는 우물쭈물하다가도 작은 목소리로 대답했다.
“우리 같은 마인족들의 삶이 다 그렇잖아? 살기 위해 이리저리 다니다 보니 여기까지 온 거지…….”
“혼자?”
“응…….”
대답이 살짝 늦었다.
“그, 그나저나 너 정말 멋있어졌다, 벨져!”
뭔가 더 캐묻기 애매해진 상황에 사라는 급히 화제를 돌렸다.
“기억나? 너 예전에 날 괴롭히던 불량배들한테 그랬잖아. 넌 사실 엄청난 힘을 가진 마족이라고…….”
틀린 말은 아니지.
적어도 이 몸에 내재된 마력의 경우엔 내가 환생하면서 가져온 게 아니니까.
본주가 활용을 못 했을 뿐, 엄청난 힘을 가지고 있던 건 맞다.
“지금 비웃는 너희들의 콧대를 나중에 죄다 부러트려 주겠다면서, 그땐 모두가 내 앞에 머리를 조아릴 거라고 했었잖아.”
허풍…… 이라곤 할 수 없나?
내가 마왕이 되는 것도 결국 돌려 말하면 저 말과 다를 건 없을 테니.
“그러곤 내 손을 잡으며 말했었지. 그때 날 네 옆에 세워서 자기를 우러러보게 하겠다고. 가장 가까운 자리에서…….”
이거야 원.
내가 들은 적이 없으니 진짜인지, 거짓말인지 알 수가 없네.
이거 말로 보나, 상황으로 보나 완전 프러포즈 아니야?
본주 녀석이 싼 똥을 이런 데까지 와서 치워야 해?
살짝 짜증이 치솟으려는 마음에 다시금 맥주잔을 든 순간, 내 오른 검지에 새겨진 작은 흉터에 눈길이 갔다.
나는 흉터에 시선을 꽂은 채 물었다.
“그때의 나란 놈은, 소꿉친구라는 널 지켜주기 위해 있었던 건가?”
당황한 사라는 말을 주저했다.
나로선 있었는지도 모를 이 상처를 보고, 그녀는 내가 벨져임을 확신했었다.
내 예측이 맞다면, 이 상처 또한 이 몸의 본주가 그녀를 지키겠답시고 움직이다 입은 상처일 것이다.
“난 그랬었다고 믿어…….”
사라는 부끄러운 듯 시선을 회피하며 대답했다.
“그럼 지금은?”
“응?”
“지금은 누가 널 지켜주는 건데?”
이번엔 사라의 눈을 똑바로 마주하며 물었다.
그녀는 방금 전 질문과 다르게 당황이 아닌, 당혹에 가까운 반응을 보였다.
“누, 누가 있겠어? 지금은 난 혼자인데…….”
석연치 않은 대답을 들은 난, 그 자리에서 맥주를 단숨에 비웠다.
비우자마자 바로 일어섰다.
“어, 어디 가려고?”
“방.”
“취, 취했나 보구나? 내가 부축해줄까?”
“아니 됐어.”
부축해주려는 손길을 뿌리쳤음에도, 그녀는 2층으로 가는 날 졸졸 따라왔다.
이에 난 계단 중턱에서 멈췄다.
“일 끝나면 내 방으로 와줄 수 있어?”
“네, 네 방에? 조금 걸릴 텐데?”
“기다릴게.”
그녀는 딱 3초 후에 고개를 끄덕였다.
“응 알았어!”
대답을 들은 난 더 볼 것도 없이 매정하게 돌아섰다.
이후 그녀가 내 방문을 두드리기까진 약 4시간 정도 흘렀다.
* * *
마지막까지 남은 손님을 보내고 어느덧 마감 시간에 이른 주점.
오늘은 평소보다 손님이 더 많았던 탓에 마감이 훨씬 늦어버렸다.
“벌써 잠에 든 건 아니겠지?”
사라는 헐레벌떡 벨져가 있는 2층 방으로 향했다.
방문을 두드리기 전, 잠시 한 발짝 물러서서 얼굴과 옷매무새를 다듬었다.
-똑똑
안에선 반응이 없었다.
혹시 잠에 들었나 싶어 다시 한번 두드리자,
“들어와.”
이번엔 벨져의 목소리가 분명하게 들렸다.
사라는 숨을 한 번 고른 후 차분한 마음으로 문을 열었다.
-끼익
불을 켜놓지 않은 탓에 방은 깜깜한 암흑으로 가득했으며, 침대엔 앉아 있는 벨져의 실루엣이 보였다.
“미안! 내가 늦었지?”
벨져는 말이 없었다.
그저 어둠 속에서 그윽한 눈으로 그녀를 볼 뿐.
이에 사라는 조용히 문을 닫았다.
“나한테서 뭐 필요한 거라도…….”
그러곤 벨져에게 슬그머니 다가가려는 순간,
-퍽!
둔탁한 나무 지팡이가 그녀의 뒷목을 가격했다.
불의의 습격에 당한 사라는 그대로 침대에 고꾸라졌다.
습격을 가한 당사자는 손가락을 그녀의 맥박에 대며 상태를 확인했다.
“제대로 기절했어요 벨져 님!”
“어 그래. 잘했다…….”
벨져는 칭찬을 하면서도 뭔가 멋쩍었는지 얼굴을 긁적였다.
“근데 메이야.”
“네?”
“꼭 그런 식으로 기절시켰어야 했던 거야? 수면 마법 같은 거 쓸 수 있지 않아?”
“아, 재웠어야 했던 건가요? 전 벨져 님이 기절시키라고 하셔서, 이렇게 직접 때리는 게 더 확실하다고 판단했던 건데…….”
급기야 실수했다고 생각했는지, 메이의 얼굴이 하얗게 질려갔다.
그 모습에 벨져는 바로 손을 저었다.
“아, 아니야. 잘했어.”
단지 예상을 좀 벗어났을 뿐.
설마 사라가 방에 들어오면 기절시키라는 지시를 마법이 아닌, 무력으로 행할 줄은 몰랐다.
벨져는 기절한 사라를 어깨에 들쳐메고선 창문을 열었다.
“이제 어디로 가실 건가요?”
“흑나무 숲. 낮에 마수의 발자국을 발견했던 곳으로 가자.”
“거기 가면 뭐가 있나요?”
“아마, 우릴 반겨줄 존재가 있을 거야.”
벨져는 스리슬쩍 기절한 사라를 향해 시선을 돌렸다.
“이 마족을 기다리는 존재일 수도 있고…….”
* * *
“으음….”
새벽의 차가운 공기에 눈을 뜬 사라.
급히 정신을 차린 사라는 바로 주변을 둘러봤다.
“여, 여기는?”
벨져의 방에 들어서 그와 대화를 나누려 한 것까진 기억이 있으나, 그 후론 떠오르지 않았다.
사라는 곧 자신이 여관방이 아닌, 어둡고 칙칙한 흑나무 숲속에 있음을 인지했다.
“내가 왜 여기 있는 거지? 저기, 아무도 없나요?”
상황 파악에 이어 도움을 요청하려는 순간,
-스슥
뒤쪽 수풀에서 기척과 함께 소리가 들렸다.
사라는 본능적으로 어깨를 움츠렸으며 두어 발짝 움츠렸다.
“크르르…….”
암흑의 수풀 속에서 모습을 드러낸 사족의 마수.
마수는 사라가 있는 곳을 향해 위협을 울음을 뱉었지만, 사라는 두려워하긴커녕 오히려 입가에 미소를 띄우며 다가갔다.
“괜찮아! 나 여기 있어! 안심해도 돼!”
사라는 마수를 안심시켜주기 위해 목을 쓰다듬었지만, 마수는 울음소리를 멈추지 않았다.
“왜 그래? 무슨 문제라도 있……!”
일련의 시선을 느낀 사라는 그제야 마수가 보고 있는 방향으로 시선을 돌렸다.
그곳엔 그녀를 이곳으로 데려온 당사자들이 자리하고 있었다.
“벨져?”
상황을 이해한 사라는 바로 눈빛을 굳혔다.
“날 이용했구나. 이 아이를 찾기 위해…….”
벨져는 대답하지 않았다.
그저 다수의 의문과 약간의 흥미가 담은 눈으로 마수의 전신을 쭉 훑어볼 뿐.
“언제부터 알았던 거야?”
“수상한 행동을 대놓고 하고 다니는데, 의심하지 않으면 그게 이상하지 않을까?”
대답을 하면서도 벨져의 눈은 여전히 마수를 향해 있었다.
충혈된 붉은 눈을 가진 사자의 얼굴과 그 위로 자라난 염소의 뿔,
하반신엔 뱀의 꼬리를 연상케 하는 채찍 같은 꼬리가 붙어있었다.
거기에 등에는 작은 박쥐의 날개 같은 것도 달려 있으니, 뭔가 기존에 알던 짐승의 신체들을 하나씩 붙여서 만든 인위적인 생물 같았다.
“설마 키메라?”
함께 마수를 관찰하던 메이가 고개를 갸웃하며 말했다.
“아는 마수니?”
“어 저도 들어보기만 한 거라 확실하진 않지만, 마수 중엔 자연에서 태어난 개체만이 아닌, 마력에 의해 창조된 인위적인 마수도 있다고 들었어요. 보통 두 개 이상의 생물이 합쳐진 괴수의 모습을 하고 있다고…….”
대체 어떤 정신 나간 놈들이 저런 혼종을 만든 건지, 벨져로선 이해할 수 없었다.
“그냥, 모른 척 넘어가 줄 순 없을까?”
사라는 두 손을 모으며 간절한 눈빛으로 호소했다.
“이 아이는 다른 마수들이랑 달라. 우리 같은 힘없는 마족들에게 해를 가하지 않으니까! 위험하지 않아!”
허나 벨져는 표정 하나 변하지 않은 얼굴로 무심히 물었다.
“그걸 어떻게 장담하지?”
“내가 그 증거니까! 이 아이는 지금껏 내 말을 따르며, 날 숱한 위협으로부터 지켜줬어!”
사라는 마수의 몸을 더욱 강하게 껴안았다.
흡사 아이를 보호하는 어미의 모습을 보는 듯했다.
“해를 가하지 않았다고?”
이에 벨져는 발걸음을 떼고 서서히 그녀를 향해 걸어갔다.
사라와 마수는 도망치지 않았다.
대신 경계 어린 눈빛으로 벨져를 묵묵히 지켜봤다.
벨져는 물으면 목을 뜯길 만큼 가까운 거리까지 온 후에야 걸음을 멈췄다.
그러곤 사라와 마수의 눈을 번갈아 쳐다봤다.
“아닌 것 같은데?”
사라의 동공이 얕게 흔들렸다.
이것은 추측이 아닌 확신.
언뜻 그녀의 제지로 움직임을 자제하는 것처럼 보이겠지만, 벨져의 눈엔 그렇게 보이지 않았다.
오히려 참고 있는 것처럼 보였다.
맛있는 먹잇감을 눈앞에 뒀지만, 주인의 조련으로 겨우 참고 있는,
사냥개처럼 말이다.
“아이야…….”
잠시 고개를 푹 숙이고 있던 사라는 이내 가까이에 있는 벨져조차 간신히 들릴 목소리로 옅게 속삭였다.
“물어!”
(다음 편에서 계속)