Hero Wants to Become the Demon King RAW novel - Chapter 52
제52화. 힘없는 존재의 설움
사람은 살려면 밥을 먹어야 한다.
당연한 말이지.
마족도 살려면 밥을 먹어야 한다.
이 역시 당연한 말이다.
그럼 마수도 살려면 밥을 먹어야겠지?
먹지 않고서 살 수 있는 생명체는 어느 세계를 가도 없을 테니까.
자 그럼 여기서 질문.
이 마계의 포식자를 자처하는 흉악한 마수들은 살기 위해 뭘 먹을까?
일단 내가 아는 답은 ‘뭐든 다 먹는다’ 이다.
살아있는 생물의 고기라면 육해공을 가리지 않고 다 먹어 치우며, 종에 따라선 초식 동물처럼 풀떼기를 먹는 마수들도 있다.
대체적으로 인간과 마족이 먹을 수 있는 음식이면 그들도 먹는다고 보면 된다.
거기에 문제가 하나 있다면,
바로 인간과 마족이 먹을 수 없는 것까지도, 마수는 음식으로 본다는 것이다.
과거 용사 시절, 마수의 출몰로 괴멸된 한 마을을 구하기 위해 토벌대에 참여한 적이 있었다.
당시 마왕 군단과 함께 넘어온 마수들이 레지에타에서 난동을 부리는 일이 굉장히 잦았었다.
이성은 없고 괴팍한 파괴의 본성만이 있는 마수 놈들 특성상, 인간은 무참히 죽여야 할 존재로만 인식되었다.
문제는 그들이 시간이 지남에 따라 인간에게 식욕을 느끼면서 발생했다.
마을을 공격한 일부 굶주린 마수들이 인간을 음식으로 인지하고 섭취한 것이다.
그때 토벌군과 함께 봤던 식인 마수의 눈을 또렷이 기억한다.
이유 없는 살육을 위한 위협이 아닌,
사냥할 먹이를 발견했다는 희열의 눈빛.
지금 저 여자의 손에 꼭 붙들린 채, 나를 보고 있는 마수의 눈이 딱 그렇다.
“물어!”
그녀의 본색이 드러난 순간, 마수는 기다렸다는 듯 내게 달려들었다.
나는 당황하지 않고, 망토 속에 숨겨뒀던 아크베리아를 뽑았다.
-깡!
녀석은 개뼈다귀 물듯 마검의 칼날을 덥석 물었다.
마수의 나약한 이빨이 흑광석의 단단함을 넘어설 순 없을 것이다.
허나 녀석은 아랑곳하는 기색 없이, 나를 향해 계속 시뻘건 눈을 들이밀었다.
이 자식 봐라?
-쐐액!
마검에게 밀리지 않는 단단한 이빨에 잠시 감탄하는 사이, 녀석의 뱀 같은 꼬리가 내 목으로 파고들었다.
-서걱!
나는 이빨 사이에 파고든 검을 재빨리 뽑은 것과 동시에 꼬리를 베었다.
고통의 비명을 지른 마수는 일단 뒤로 물러섰다.
“키기긱!”
뭔가 보지 말아야 할 것을 봐버린 나는 눈살을 찌푸렸다.
마수의 잘린 꼬리 속에서 뭔가 꿈틀하고 일어나더니, 곧 새로운 꼬리가 보란 듯이 솟아올랐다.
이건 뭐 도마뱀도 아니고, 마수 주제에 재생능력도 있네?
합성 마수 아니랄까 봐, 좋은 건 다 때려 박았군.
자, 그럼 여기서 드는 또 하나의 의문.
저 마수는 왜 사라를 먹이로 인식하지 않을까?
앞서 말했듯, 저 마수가 힘없는 마족들에게 해를 가하지 않았다는 사라의 말은 거짓이다.
식인 마수를 토벌한 경험이 있는 전직 용사의 명예를 걸고 장담한다.
저 마수, 못해도 열 명 이상의 마족을 먹은 경험이 있다.
나를 보는 눈빛이 이미 먹이로 보는 경지를 넘어, 완전 주식(主食)수준으로 보고 있다.
그렇다면 정작 바로 옆에 있는 그녀도 충분히 먹이로 인식할 수 있을 텐데…….
그녀만큼은 특별하다 이건가?
“왜? 대체 왜 그러는 거야?”
사라는 급기야 울분에 찬 목소리로 소리쳤다.
“아이는 그저 날 지켜주려는 것뿐이야! 아이가 있었기에 내가 지금까지 살 수 있었던 거라고! 네가 날 지켜줄 거 아니면 신경 끄란 말이야!”
그 와중에 마수 이름은 또 애처럼 지어놨다.
마수로부터 보호를 받는 마족이라.
뭐 잘못된 상황은 아니라고 본다.
스스로를 지키기 위해 힘 있는 존재에게 의지하는 건 인간과 마족을 망라하는 공통된 본능이니까.
“넌 좋겠지. 마왕 후보가 돼서 예전과는 비교된 안 된 호화스러운 삶을 살고 있을 테니까! 그러니 나 같은 건 일찌감치 잊어버린 거야!”
잊은 게 아니라, 그냥 애초부터 기억에 없었다니까 그러네.
“부탁이야. 우리를 제발 놔줘…….”
나한테 괜한 억지를 부리려나 싶다가 사라는 털썩 무릎을 꿇었다.
“아이가 마을에 해를 가할까 봐 그런 거지? 그럼 우리가 떠날게. 다른 마족은 필요 없어, 난 이 아이만 있으면 되니까…….”
사라의 눈에서 왈칵 눈물이 쏟아졌다.
마수는 그 모습이 안쓰러운 듯 혀로 눈물을 닦아 주었다.
그 광경을 잠시 홀린 것 마냥 바라보고 있으니, 내 곁으로 메이가 다가왔다.
“어떡할까요, 벨져 님?”
나는 대답하지 않았다.
정확힌 대답하지 못했다.
정말 뭘 어떻게 해야 할지 모르겠거든.
저 광경에 딱히 측은함을 느낀 건 아니다.
차라리 측은함을 느꼈다면 다행이지.
마냥 혼란스러울 뿐이다.
그런 상황에 할 수 있는 거라곤,
“가자.”
돌아서는 것뿐이었다.
메이는 아무 말 없이 내 뒤를 따랐으며, 그렇게 우리는 소녀와 마수를 숲에 남겨둔 채, 다시 마을로 돌아갔다.
* * *
꿈을 꾸었다.
“이 자식들! 너희 얼굴 다 기억했어!”
“이 망나니 새끼가 아직도 정신을 못 차렸네?”
네 명의 마족들에게 둘러싸인 채 구타를 당하고 있는 어린 시절의 벨져의 꿈.
꿈속에서 무기력하게 당하는 상황임에도 벨져의 독기 어린 눈빛은 사그라지지 않았다.
“두고 봐 너네들! 내가 나중에 열 배로 되갚아 줄 테니까!”
차라리 입을 다물고 있으면 덜 맞을지도 모르거늘.
그야말로 괜한 입방정이 매를 더 벌고 있었다.
못내 안쓰럽기까지 한 그 광경을 사라는 한쪽에서 멍하니 지켜봤다.
처절한 구타 시간이 지난 후, 마족들이 모두 떠난 후에야 사라는 벨져에게 다가갔다.
“괜찮아, 사라야?”
보통은 맞은 쪽이 먼저 들어야 할 말을 당시의 벨져는 아무것도 안 하고 지켜보기만 한 그녀에게 건넸다.
사라는 당연하다는 듯 고개를 끄덕였다.
“응 난 괜찮아. 벨져가 대신 맞아줬잖아.”
왠지 모르게 어감이 이상했다.
“저 자식들 운이 좋았어! 오늘은 내가 컨디션이 안 좋았거든! 힘만 나왔으면 이런 막대기 하나만 있어도…… 아얏!”
바닥에 있는 나무막대기를 주워 휘두르던 벨져는 갑자기 비명을 질렀다.
나무가 벗겨진 부분에 돋아난 가시에 손가락이 긁힌 것이다.
“아프겠다.”
보통 소꿉친구라면, 괜찮냐고 물으며 상처를 봐주는 것이 정상이거늘.
사라는 상처를 봐주기는커녕, 그냥 무심하게 한마디만 툭 던졌다.
저대로 두면 흉 질 텐데.
“이 정도는 별거 아니야! 말했잖아 사라! 내 안엔 엄청난 힘이 잠재되어 있다고! 그러니 앞으로도 나만 믿고 의지하면 돼!”
벨져는 그럼에도 좋다고 실실댔다.
그 자신만만한 모습에 사라도 활짝 웃었다.
“응 고마워 벨져! 앞으로도 날 계속 지켜줘야 해!”
언뜻 멀리서 보면 어린 남녀의 애틋한 교감처럼 보일 수 있으나, 가까이서 보면 뭐 저런 등신 같은 관계가 있나 싶어 혀를 찰 상황이었다.
당장 가서 꿀밤을 한 대 쥐어박고 싶은 순간,
“벨져 님!”
메이의 부름에 정신이 번쩍 들었다.
어, 이건 그러니까…….
“잠자리가 불편했나? 나름 우리 주점에서 제일 좋은 방을 준 건데……?”
바로 앞에는 음식을 든 마일로가 자리하고 있었다.
뭐야? 설마 아침 기다리는 사이에 잠든 거야 나?
“나 얼마나 잤니, 메이야?”
“5분 정도 주무셨던 것 같아요.”
쥐도 새도 모를 쪽잠이었네.
하기야 전날 술을 마신 것도 모자라, 그 여자를 기다리겠다며 밤을 꼴딱 새웠으니 피곤할 만도 하지.
그럼 방금 전 내가 본 광경은 꿈이었던 건가?
아무래도 이 몸에 남아있는 본주의 기억이 꿈으로 형상화된 모양인데…….
참으로 알찬 5분이었다.
“그나저나 아직도 믿기질 않는군. 사나 아니, 사라 양이라고 했지? 그녀가 그 정체 모를 마수를 데리고 다닌 장본인이었다니…….”
마일로는 혀를 내두르다가도 은근슬쩍 아쉬움을 드러냈다.
“일은 싹싹하게 잘했었는데 말이지. 아! 오해는 하지 말아주게! 그냥 그렇다는 거니…….”
누가 뭐라 했나?
뭐 어제 본 그녀의 눈빛으로 봐선 마을을 정말 떠났을 것 같긴 한데.
아직 멀리는 못 갔을 것 같고,
지금이라도 가서 족쳐 말어?
어휴, 이 우유부단한 마왕 후보 같으니.
이런 어쭙잖은 정신으로 무슨 마왕이 되겠…….
“실례합니다.”
표정을 구기며 한창 자책을 하는 와중, 한 손님이 주점에 들어왔다.
“어서 오시오. 식사하러 오셨수?”
“뭐 좀 물어보러 왔습니다.”
그는 다짜고짜 우리가 있는 바 테이블로 오더니, 그림이 그려진 종이를 펼쳤다.
“혹시 최근 마을 주변에 이렇게 생긴 마수를 본 적이 있으십니까?”
그림을 본 메이와 마일로, 그리고 나는 그대로 얼굴이 굳었다.
마일로가 먼저 입을 열었다.
“소, 손님은 이 마수를 쫓고 있는 것이오?”
“그렇습니다. 지금은 잠잠할지 몰라도, 언제 흉포하게 변할지 모를 위험한 마수이니, 아시는 게 있다면 숨김없이 말해주시지요.”
마일로는 뭐라 대답하지 못한 채, 내 눈치만 슬금슬금 보았다.
나는 그림을 보다가도, 그림을 들고 있는 낯선 마족을 쳐다보았다.
그 시선을 의식했는지, 그 또한 나를 보았다.
그리고는 입을 열었다.
“그쪽은 뭔가 아시는 게 있는 모양이군요?”
* * *
흑나무 마을을 떠나 정처 없이 숲길을 걷고 있는 사라와 마수.
낯선 위협을 느낀 마수가 걸음을 멈추니, 사라 또한 따라서 멈췄다.
곧 나무 사이로 둘을 기다리고 있던 마족 무리가 모습을 드러냈다.
“드디어 찾았다!”
사라는 당황한 기색 없이, 그들을 무심한 눈으로 마주했다.
“여태 살아있는 게 신기하군. 얼마 못 버티고 잡아 먹힐 줄 알았더니…….”
선두에 있던 후드의 마족은 턱을 쓰다듬으며 흥미로운 반응을 드러냈다.
“그동안 키메라를 지켜준 노고를 봐서 자비를 베풀어주도록 하지. 얌전히 키메라를 넘겨라. 목숨 아까운 줄 알면…….”
“제가 할 말을 왜 그쪽이 하시나요? 당신들이야말로 목숨 아까운 줄 알면 얌전히 물러나세요. 이 아이의 무서움은 당신들이 더 잘 알지 않나요?”
사라는 조소를 지으며 마족의 협박을 받아쳤다.
그러곤 살포시 앉아 마수의 목을 쓰다듬으며 나직이 속삭였다.
“아이야……. 먹어!”
지시를 받은 마수는 바로 마족들을 향해 달려들었다.
정확히 3분의 시간이 지나고,
사라와 마수를 둘러쌌던 열 명의 마족은 어느샌가 반으로 줄고 말았다.
마수의 입에는 피가 흥건하게 묻어 있었다.
“대체 그동안 마족을 얼마나 먹은 거지? 눈빛에 식욕이 그득하군!”
“나를 지키고자 하는 아이의 마음을 식욕이라 폄하하지 마세요.”
사라의 반박에 후드의 마족은 코웃음을 쳤다.
“어리석군. 정말로 그리 생각하나? 합성 마수라 해도 마수는 마수일 뿐이야. 이성은 없고, 본능만 있을 뿐이라고! 그 마수가 왜 네 말을 따르는지 생각은 해봤나?”
“물론이죠. 그건 내가 아이의 곁에 있기 때문이에요. 난 항상 누군가에게 보호받기 위해 존재했거든요.”
사라는 천천히 손을 들어 비소를 짓고 있는 마족을 가리켰다.
“당신도 날 지켜줄 게 아니면, 그만 아이의 먹이가 되세요…….”
날카롭게 벼려진 마수의 이빨이 그의 목을 물어뜯으려는 순간,
“옵시디오(obsídĭo)!”
후드의 마족이 손을 뻗으며 주문을 외쳤다.
그러자 마수의 머리 위로 그물처럼 생긴 투명한 막이 펼쳐졌다.
투명막은 그대로 마수의 몸을 덮쳤다.
“크아악!”
마수는 막을 끊기 위해 몸부림쳤지만, 그럴수록 막은 마수의 몸을 더 억세게 옥죄였다.
불과 몇 초도 안 돼, 손 하나 까딱할 수 없는 상황에 처하게 되니, 사라는 그제야 당황한 기색을 보였다.
“아, 아이야?”
사색에 질린 그녀를 보며 마족은 보기 좋게 비웃었다.
“방금 전까지 기세등등했던 모습은 어디 갔지? 이제 널 지켜줄 존재는 없다고 생각하니, 비로소 현실을 자각했나?”
“안 돼! 아이야! 움직여! 어서 날 지켜주란 말이야!”
사라는 울부짖을 기세로 소리쳤지만, 마수는 울음소리조차 내지 못했다.
후드의 마족은 그런 사라를 향해 서서히 다가갔다.
“오, 오지 마!”
사라는 뒤늦게 도망치려 했지만, 마족은 이를 허용하지 않았다.
순식간에 몸을 붙잡힌 사라는 나무에 몸이 처박혔다.
“너무 억울해하지 마라. 힘없는 존재의 설움이란 다 그런 것이니…….”
입가에 서린 미소가 점점 커지는 그와 다르게, 사라의 얼굴은 점점 일그러져갔다.
그렇게 욕망이 덕지덕지 묻은 마족의 손이 사라의 맨몸에 닿으려는 순간,
-턱
누군가가 그의 손을 붙잡았다.
사라와 마족의 시선은 바로 손을 잡은 당사자에게 향했다.
“다, 당신은?”
낯설지 않은 얼굴에 당혹스러운 표정을 지은 마족과 다르게,
“벨져?”
사라의 얼굴은 구세주라도 본 것처럼 희열로 물들었다.
(다음 편에서 계속)