Hero Wants to Become the Demon King RAW novel - Chapter 6
제6화. 메이 크라우넬
로브로 몸을 감췄다고 해서, 그 외형까지 감춰지진 않는다.
그는 자리에 앉자마자 양팔을 테이블 위로 올렸다.
팔에는 우락부락한 근육과 열에 데인 상처 및 칼자국들이 듬성듬성 보였다.
전형적인 대장장이의 팔.
단순 검을 팔러온 장사치가 아님을 단번에 알 수 있었다.
“내 이름은 울타비스라네.”
대부분의 대장장이는 검을 만들 때, 본인이 만들었다는 흔적을 검 어딘가에 남긴다.
대개 칼날에 작게 이름을 새긴다거나, 아님 검자루 끝에 자신만의 인장을 새기곤 하지.
나 역시 식당에 오자마자 검 이곳저곳을 살피며 그 흔적이 있는지 찾아봤다.
그러면서 검신과 검자루가 맞닿은 부분에 새겨진 작은 이름을 발견했었다.
방금 이 노인이 말한 울타비스라는 이름을 말이다.
“당신이 이 검을 만든 대장장인가 보군.”
“벌써 알아봤나? 보기와 다르게 눈썰미가 좋은 마족이로군!”
그는 덩치에 안 울리는 음흉한 미소를 지었다.
“그 검은 내가 제값 주고 판 게 아니야. 잠깐 한눈판 사이에 그 쳐죽일 양아치들이 훔쳐 간 거지.”
그럴 거라고 생각은 했었다.
검 외형 자체는 근사하기에 아마도 장식품으로 어딘가에 팔 생각이었겠지.
“그래서 뭐. 나한테 제값이라도 받으러 오셨습니까?”
“아 처음엔 그럴 생각이었는데, 아까 상황을 보고서 마음이 바뀌었어. 그 양아치들을 제압할 때 보여줬던 움직임 말이야. 내 눈이 잘못된 게 아니라면 그건 틀림없는 검술이었어. 그렇지?”
나는 부정하지 않았다.
“무슨 검술 인지까진 내 묻지 않겠네. 내가 자네를 찾아온 이유는 말이지. 비로 자네를 위한 진정한 검을 만들어 주고 싶어서야!”
“나를 위한 검?”
“그래! 알다시피 이 마계는 검을 선호하지 않네. 그냥 장식품에 지나지 않아. 하지만 다들 잊고 있는 사실이 하나 있어. 그게 혹시 뭔지 알고 있나?”
모를 리가 있나.
“전대 마왕 벨시페르의 목숨을 끝장냈던 무기라는 거 말입니까?”
“바로 그걸세! 역시 그 후손이라 그런지 잊지 않고 잘 기억하는군!”
“말조심하십시오.”
옆에 있던 브릴리스가 눈초리를 세우며 불쾌감을 드러냈다.
“자네가 어쩌다 검을 잡게 됐는진 모르지만, 내가 볼 때 자넨 검사의 자격이 충분히 있어! 그래서 내가 자네를 위한 검을 만들어 주겠다는 거야! 진정한 마왕을 위한 검, 마검을 말이야! 어떤가?”
어떠냐고?
그걸 질문이라고 해 지금?
“거절할 이유가 없는데요?”
적극 환영이지.
“그래! 바로 그거야!”
울타비스는 급기야 양팔을 위로 올리며 환희에 젖은 광소를 남발했다.
흠.
이거, 맡겨도 되는 걸까?
“아, 참고로 검을 바로 만들진 않을 걸세. 나도 준비할 시간이 필요하거든!”
그는 준비가 끝나면, 내가 구해와야 할 재료를 알려주겠다며 다시 만날 시간과 장소를 알려주었다.
“검이란 그것을 다뤄줄 수 있는 완벽한 주인을 만났을 때 비로소 완성되는 법이지! 실로 오랜만에 진정한 검이 완성되는 순간을 보겠어!”
울타비스는 그 말을 끝으로 자리에서 일어나 식당을 나갔다.
실로 오랜만이라.
그 말을 들은 순간, 나는 바로 깨달았다.
이 마계에서 검을 다루는 마족이 나 한 명만 있는 건 아니라는 걸.
* * *
환한 보름달이 떠오른 마계의 밤.
난장판이었던 연무장은 외출을 다녀온 사이, 저택의 시종들이 원상태로 복구해주었다.
그 덕분에 낮에 얻은 검으로 야간 단련을 수행할 수 있었다.
-후욱! 홱!
확실히 장식용이 아닌 진짜 검으로 단련하니 손맛부터 다르다.
하지만 이 검 역시 마왕의 마력을 담아내기엔 역부족일 거라고 본다.
끽해야 두 번 휘두르면 더 버티지 못하고 가루로 흩날리겠지.
한 세계를 파괴할 수 있는 힘을 고작 금속 덩어리가 감당하는 건 애초부터 무리라고 봐야 한다.
그래서 나도 용사였을 땐, 성력과 성검술을 자유롭게 다룰 수 있는 특별한 검을 소유했었다.
이름하여 성검 아크베리아.
마왕 벨시페르의 목을 베었던 검이기도 하다.
이후 반란에 실패하고 현자들의 유희 거리로 전락했을 때 뺏겨버렸었지.
아직 레지에타에 남아 있을진 모르겠네.
뭐 있다고 해도, 이제 마족이 되어버린 내가 다룰 순 없을 것이다.
이제는 용사가 아닌 마왕을 위한 검이 필요하다.
그게 바로 마검이라는 건데…….
얻을 수 있다면 나야 좋지.
하지만 그걸 얻는 과정이 절대 순탄치 않을 것임을 안다.
그 음흉한 대장장이가 재료로 뭘 구해 오라 할진 모르겠지만, 어쨌든 놀지 말고 최대한 힘과 감각을 단련해야 한다.
이참에 마력을 다루는 거나 좀 연습해볼까?
혹시 모르잖아?
낮에는 힘을 제어하지 않고 무작정 휘둘러서 사태가 벌어졌다지만, 어느 정도 조절하는 법만 익힌다면 이 검으로도 마력을 다스릴 수 있을지?
나는 바로 실행에 옮겼다.
땀에 젖은 검을 땅에 꽂은 채 손을 떼고는 그대로 눈을 감았다.
일단 아까와 마찬가지로 몸 어딘가에 있을 마력을 상상해서 있는 힘껏 끌어 올렸다.
-피이잉
이에 반응한 마혈석에서 붉은빛이 일었다.
곧 몸 곳곳에 흐르는 힘의 기류가 서서히 한곳으로 모이는 기분을 느꼈다.
그 응집지는 다름 아닌 내 오른손이었다.
조금씩 모이는가 싶던 마력은 점차 그 세기가 불어나는가 싶더니, 멈추지 않고 계속 모여들었다.
뭔가 불안함을 느낀 나는 잽싸게 눈을 떴다.
“어, 어라?”
순간 얼굴에서 땀이 삐질 흘러내렸다.
이거 좀 많이 위험한 것 같은데?
내 손엔 어느샌가 걷잡을 수 없을 정도로 커진 마력 덩어리가 자리하고 있었다.
그 상태로 멈춘다면 또 모르겠지만, 덩어리는 팽창을 멈추지 않았다.
나는 이대로 가다간 버티지 못하고 풍선처럼 터질 것임을 직감적으로 깨달았다.
그렇게 되면 이 주변이 어떻게 될지 벌써부터 눈앞에 훤히 그려졌다. 뭐 이런 답도 없는 힘이 다 있어?
“조, 좀 더 감정을 자제하시고, 마음을 편히 가져보세요!”
다급하다 못해 절박한 와중, 뒤에서 가녀린 목소리가 들렸다.
“마력은 발현자의 감정이 격해지면 격해질수록 더 드세게 반응해요! 별거 아니다 생각하시고, 침착하게 다스리세요!”
그래?
나는 그 지시에 따라 마력이 아닌 똥강아지 다스리듯 마음을 편히 가져보았다.
-우우웅
그 마음을 어찌 인지했는지, 덩어리는 바로 팽창을 멈췄다.
멈춘 것에 이어 점점 수축하기 시작했고, 곧 손에 들기 적합한 눈덩이 크기까지 줄어들었다.
되, 된 건가?
위기(였을지 모르는) 상황을 어찌저찌 넘긴 나는 그제야 고개를 돌렸다.
자기 키만 한 지팡이를 붙들며 몸을 베베 꼬고 있는 소녀.
“그, 그게. 마력의 움직임이 심상치 않길래. 저도 모르게 그만…….”
메이였다.
아까 식당에서 밥을 먹인 후, 혼자 보내기 영 찝찝해서 저택으로 데려왔었다.
와.
저 꼬맹이 안 데려왔었으면 진짜 난리 날 뻔했네?
“너 마력 운용하는 법 아니?”
“어, 어느 정도는요…….”
나는 바로 그녀에게 달려가 마력 운용법을 물었다.
메이는 긴장한 탓인지 조금 더듬긴 했지만, 관련된 팁들을 내게 아낌없이 알려주었다.
“오? 확실히 아까보단 훨씬 안정적인데?”
처음부터 근원이 다른 힘이란 걸 인지 못 하고, 마력을 성력처럼 다루려고 했던 것이 문제였다.
성력의 경우엔 ‘제발 저에게 힘을 좀 주십쇼!’ 하며 필사적으로 호소해야지 힘을 다스릴 수 있던 반면,
마력은 ‘산은 산이요. 힘은 힘이로다’ 하고 무념 무상하게 생각했을 때 운용이 쉬워지는 힘이었다.
“메이 넌 나이도 어린데 이런 걸 어떻게 아는 거야? 누구한테 배웠어?”
“어. 배웠다기보단, 그냥 혼자서 터득했어요.”
혼자 터득했다고? 거의 신동 수준인데?
“그럼 마법도 쓸 수 있어?”
“어, 모방 마법 정도는 무리 없이 쓸 수 있어요.”
“모방 마법?”
“네. 예를 들어…….”
주변을 둘러보던 메이는 잠시 땅에 꽂아놨던 내 검에 시선을 보냈다.
“자, 잠시 손 좀…….”
나는 그녀의 요구에 따라 두 손을 스윽 내밀었다.
메이는 그 손에 가지고 있던 지팡이를 살짝 얹고선 주문을 읊었다.
“이미타티오(Imitátĭo)!”
곧 빛과 함께 눈앞에 벌어진 광경에 나는 눈을 의심했다.
쫙 펼쳐진 내 두 손위에 가지런히 얹혀진 또 하나의 검.
내가 가지고 있던 검과 똑같은 형태의 검을 메이가 마법으로 만든 것이다.
나는 바로 자리에서 일어나 시험해 보았다.
“제 부족한 마력으로 만든 거라서 오래는 못 가요. 아마 한두 번 휘두르면 바로 소멸할 거예요.”
그녀의 말대로 베기 동작 두 번 하고 나니, 검은 순식간에 빛의 가루가 되어 사방으로 흩어졌다.
비록 유지 시간이 짧긴 했어도, 진품과 비교했을 때 차이점을 전혀 못 느낄 정도의 완벽한 복제품이었다.
이거, 레지에타의 웬만한 숙련 마법사들도 구사하기 힘든 마법인데?
“이제 보니까 그 지팡이, 마법 스태프였구나?”
메이는 고개만 작게 끄덕였다.
와, 난 그럼 저 마법 무기를 갖다가 양아치들을 패는데 쓴 거네?
총알 가득한 총을 투척 무기로 쓴 꼴이었다.
“다른 것도 모방할 수 있어?”
“엄청나게 큰 게 아니면, 눈에 보이는 것들은 웬만해선 다 모방할 수 있어요. 대부분 오래 못 간다는 게 문제지만…….”
그거만으로도 엄청 대단한 거잖아?
이 아이가 레지에타에서 태어났으면 아마 마법 신동이라고 해서 다들 데려가려고 했을 것이다.
이렇게 대단한 힘을 가진 아이가 왜 이런 쓰레기 마족이랑 부딪혔을 땐 힘도 못 쓴 거지?
“너, 너무 대단하게 보실 필요 없어요! 아직 선조님에 비하면 한참 못 미칠 수준이라서…….”
메이가 선조를 언급한 순간, 내 눈은 그녀가 가지고 있던 지팡이에 향했다.
이제 보니 지팡이 겉면엔 작은 글씨가 새겨져 있었다.
메이의 이름은 아니었다.
뭔가 더 긴 이름이…….
“크라우넬?”
순간 사고가 정지했다.
갑작스러운 내 반응에 당황한 메이는 눈을 끔뻑였다.
“메이야.”
“네?”
“너희 조상님 중 가장 유명하신 분이 누구니?”
“가, 가장 유명하신 분이요?”
메이는 어째서인지 내 눈치를 심히 보고 있었다.
“이런걸, 제가 얘기해도 될지…….”
“괜찮아. 부끄러운 일 아니니까.”
“하, 하지만…….”
메이가 망설이는 이유를 나는 왠지 모르게 알 것 같았다.
한참을 고민하던 메이는 마침내 결심이 선 듯, 눈빛을 야무지게 세우며 입을 열었다.
“아만. 아만 크라우넬 님이세요…….”
아만 크라우넬.
나는 그 마족을 알고 있다.
앞뒤 안 가리는 불같은 성격의 전대 마왕을 제어하고 보좌했던 그의 부관이자,
마왕군의 마법 부대를 총지휘했던 마법의 대가.
그 엄청난 마족의 후손이 지금,
내 앞에서 순수한 눈을 밝히고 있었다.
* * *
“이, 이 아이가 아만 크라우넬 님의 후손이었단 말입니까?”
브릴리스 역시 놀라움을 감추지 못했다.
전대 마왕의 후손을 마왕으로 세우려는 그녀인 만큼, 그 이름을 모르진 않겠지.
“제, 제가 뭐 잘못한 건가요?”
메이는 죄인이라도 된 것 마냥 안절부절못하고 있었다.
“그럴 리가요. 단지 너무 놀라서 그렇습니다. 크라우넬의 혈통은 100년 전에 전부 끊긴 것으로 알려졌었는데, 이렇게 후손이 남아 있을 줄은 몰라서…….”
“혈통이 끊겨? 왜?”
“그, 그게 100년 전, 전대 마왕님이 인계 정벌에 실패하시고 전사하시면서, 그 부관이었던 아만 님이 패잔병을 이끌고 마계로 복귀하셨는데…….”
브릴리스는 살짝 주저하다가 말을 이었다.
“오시자마자 마계의 대역죄인으로 몰리시면서 그만 처형되셨었습니다. 그분의 일가도 함께…….”
“숙청? 어쩌다가?”
“마계의 수치를 안겨줬다는 것이 그 이유였습니다만, 아무래도 인계 정벌 실패의 책임을 그분께 물은 것이겠죠.”
책임 전가라.
당시 아만은 내가 마왕을 처단한 이후, 자신들의 패배를 인정하고선 순순히 마계로 물러났었다.
나름 서로 뒤끝 없는 깔끔한 마무리라고 생각했었는데, 아니었던 모양이다.
그 역시 나 못지않은 비참한 최후를 맞이했었네.
“자, 자세히는 모르지만, 전 세간에 알려지지 않은 그분의 사생아 핏줄이었다고 해요. 그래서 처형에서도 살아남을 수 있었다고…….”
메이는 어렵사리 말을 덧붙이며 자신의 사정을 설명했다.
“그럼 여태 신분을 숨기면서 살아온 거야?”
“네. 제 신분을 밝힌 것도, 벨져 님이 처음이에요. 아무래도 제 선조께서 모신 분의 후손이시다 보니, 거짓말을 할 순 없을 것 같아서…….”
그렇게 받들어 줄 필요는 없는데 말이지.
이 몸의 본주가 면박을 줬을 때도 왜 가만히 있었는지 새삼 알 것 같았다.
아마 전대 마왕을 향한 선조의 충성심이 그녀의 피에도 남아 있기 때문이겠지.
참 재밌는 일이다.
내가 마왕을 죽이면서 레지에타엔 평화가 되찾았지만, 마계는 혼돈에 휩싸였다.
그 아만이란 마족을 딱히 감싸고 싶은 생각은 없다.
하지만 이 아이는 다르지.
어른들이 선택을 잘못하면 그 피해를 보는 건 전적으로 이런 아이들이다.
나와 아주 관련이 없다고도 할 순 없을 것이다.
돌고 돌아 내가 마왕을 죽였기 때문에, 이 아이가 이런 불우한 삶을 살게 된 것이니.
이제 와 죄책감이라 할 건 없지만,
“브릴리스.”
“예. 벨져 님.”
그렇다고 챙겨주지 않을 이유도 없잖아?
“이 아이. 내가 ‘퍼밀리어’로 삼으면 어떨까?
(다음 편에서 계속)