Hero Wants to Become the Demon King RAW novel - Chapter 67
제67화. 나랑 가요
영지를 세우겠다고 마음은 먹었지만, 그 구축 계획에 내가 적극적으로 관여할 필요는 없을 것이다.
해서, 오래전부터 계획을 세우고 구상한 브릴리스에게 필요한 모든 권한을 전부 위임했다.
“여러 장소를 분석, 종합해본 결과, 벨져 님의 저택과 가장 가까운 거리에 있는 황무지대로 결정했습니다. 비록 오랫동안 방치된 땅이라곤 하나, 약간의 녹음과 하천까지 흐르고 있어, 생명이 살기에 충분한 환경이 조성되어 있습니다. 그중 주거 공간으로 활용 가능한 땅을 계산해보면…….”
뭐라, 뭐라 열심히 설명하고 있긴 한데, 어째 귀에 하나도 안 들어온다.
아 글쎄, 총책임자는 너라니까 그러네?
나한테 이렇게 보고할 필요가 없어요.
“알겠으니까. 네가 구상한 대로 쭉 추진해 봐. 필요한 자금은 일단 피그리티아 가에서 전폭적으로 지원해줄 거야.”
“알겠습니다. 벨져 님.”
브릴리스는 그 보고 내용마저도 서류에 꼼꼼히 기록했다.
여태 내가 봐왔던 브릴리스의 모습 중 가장 열정적인 모습이 아닌가 싶다.
뒤늦게 내 시선을 의식한 그녀의 얼굴이 살짝 붉어졌다.
“말씀하실 거라도 있으신지?”
“아니 그냥. 왠지 모르게 즐거워 보여서.”
“예?”
본인은 인지하고 있었는지 모르겠지만, 브릴리스는 보고를 하는 내내 미소를 쭉 머금고 있었다.
바보가 아니고서야, 누가 봐도 들뜬 것을 알 정도로.
“죄, 죄송합니다. 저도 모르게 좀 들떠있던 모양입니다. 하마터면 이 중요한 일을 감정적으로 임할 뻔했습니다. 반성하겠습니다.”
브릴리스는 얼굴을 주무르며 정신을 바로 잡았다.
반성하라고 한 말은 아니었는데?
“그럼 전 잠시 온건파 지부에 다녀오도록 하겠습니다. 영지 구축에 필요한 인력과 자금 운용을 어떻게 할 것인지, 간부들과 논의가 필요할 것 같습니다.”
“그래, 조심히 다녀와. 너무 무리하진 말고…….”
“예. 감사합니다 벨져 님.”
낯간지러운 인사를 끝으로 브릴리스는 온건파 지부로 향했다.
그녀가 떠나자마자, 잠시 이뉘디아 본가에 다녀온 이사벨이 복귀했다.
이사벨은 내 얼굴을 보자마자 미간을 찌푸렸다.
“무슨 먹이 주길 기다리는 가축 같은 눈을 하고 있어요?”
“좀 더 좋은 표현은 없으십니까?”
“평소에도 그런 표정을 좀 지어보라는 의미에서 한 말이에요. 항상 그런 눈으로 반겨주면 얼마나 좋아…….”
뒷말은 아예 속삭이는 수준으로 한지라, 거의 듣질 못했다.
소파에 앉은 이사벨은 내게 서류 하나를 건넸다.
“일단 내 선에서 끌어올 수 있는 자금은 전부 가지고 왔어요. 더 당겨올 수 있지만, 그 이상은 시간이 좀 필요해요. 알다시피, 난 종주라고 해서 모든 걸 다 할 수 있는 건 아니거든요. 별 쓸모도 없는 원로들 때문에…….”
말은 그렇게 하면서도, 서류에 적힌 자금 내역은 또 그렇지 않았다.
이거, 내가 예상한 범위를 훨씬 넘어서는 금액인데?
대놓고 놀란 내 반응에 이사벨은 어깨를 으쓱였다.
“아직 놀라긴 일러요. 원로들의 반발을 누르고 추가로 끌어올 자금은 못 해도 그거에 배 이상은 될 테니까.”
“예…. 아무튼 감사합니다.”
이사벨은 급 고개를 돌리다가도, 잠시 목을 가다듬었다.
“그렇게 헤벌쭉 있을 때가 아니에요. 영지를 구축하고 운영한다는 게 얼마나 어려운지 당신은 모른다고요!”
“뭐 미래에 마계를 운영하기 전에 하는 예행연습이라 생각하면 되지 않겠습니까?”
“하여간, 말은 잘한다니까…….”
“이사벨 님께서도 영지를 운영해본 경험이 있으십니까?”
이사벨은 고개를 저었다.
“이뉘디아 가 소유의 땅이 있긴 하지만 영지라고 부를 만큼 특별히 관리하진 않았어요. 우리 집 분위기 알잖아요? 서로 물고 뜯고 죽이는 데에 혈안인 와중에 영지 같은 걸 운영할 시간이 어딨겠어요?”
“아, 예…….”
더 물어볼 필요가 없는 시원한 대답이었다.
“그럼, 영지를 운영하는 다른 후보는 없는 겁니까?”
“왜 없겠어요? 이 마계에서 가장 많은 땅을 보유하고 있는 후보가 버젓이 있는데?”
굳이 이름을 들을 필요는 없을 것 같다.
보나 마나 그 비만 마족이겠지.
“다만 네로 후보는 정작 땅만 많지, 본인이 신경 써서 관리하진 않는다고 들었어요. 애초에 마계 전체를 자기 거라고 여기는 작자이니, 본인 거의 소중함을 전혀 모르는 거겠죠.”
나도 모르게 고개가 끄덕여졌다.
그놈이라면 충분히 그러고도 남을 거다.
“그룸 후보야 영지라기보단, 용마족이 모여 사는 영역에 가까울 테고. 머리에 음욕만 가득한 루비아 그 X년은 뭐 말할 것도 없겠죠.”
이젠 그냥 대놓고 말하네.
“실질적으로 영지다운 영지를 운영하는 후보는 다일 후보와 베누스 후보, 이 둘이라고 봐야겠네요.”
한 명은 어느 정도 예상을 했다 치면, 다른 한 명은 좀 의외였다.
“다일 후보의 경우는 어떻습니까?”
우선 예상한 후보부터 먼저 물었다.
“교만을 상징하는 수페르비아 가문의 영지는 예전부터 마계에서 제일 살기 좋은 곳을 꼽을 때 항상 빼먹지 않고 나오던 곳이에요. 지금도 길가에 아무 마족이나 붙잡고 거기서 살게 해준다고 하면, 아마 좋다고 따라갈걸요?”
“뭐 때문에 살기 좋다는 겁니까?”
“일단 첫째는 안전이겠죠? 마왕 후보가 영주로 군림하는 땅이니, 외부적인 위협 자체가 없어요. 혹여 길 잃은 마수가 영지에 출몰하기라도 한다면, 다일 후보 본인이 직접 가서 토벌한다고 해요.”
영지의 안전을 위해 영주가 힘을 쓰는 거야 당연한 일이지.
그래도 본인이 직접 가서 토벌한다는 건 좀 멋있네.
적이지만 충분히 배울 점이라고 생각한다.
“또 세금도 과하지 않게 걷는 데다가, 그마저도 본가를 위해 사용하기보다는 영지의 발전을 위해 사용한다고 들었어요. ”
흠. 가만 듣고 보니 그리 대단한 건 아니네?
저런 건 원래 영주라면 당연히 해야 할 일들이잖아?
아 물론, 인계에 저런 영주들이 흔하다는 건 또 아니다.
저거와 반대되는 세금 왕창 떼고 자기들 배만 불리는 인간 영주들이 흔하지.
“그럼 베누스 후보는 어떻습니까?”
“베누스 후보의 경우는…… 좋아 보여요.”
좋아 보아요란 말을 끝으로 이사벨은 입을 다물었다.
“그게 끝입니까?”
“네. 겉으로 보기엔 말이죠…….”
마치 이전에 직접 본 경험이 있어 보이는 듯한 대답이었다.
“베누스 후보의 본가가 어디에 있는지는 알죠?”
“예. 마계 대륙 북동쪽에 있는 역병의 근원지로 알고 있습니다만…….”
전에 마왕 후보들 만나겠답시고 마계 지도를 분석하면서, 각 후보의 본가 위치를 파악했었다.
분노를 상징하는 ‘이라’ 가문의 마왕 후보, ‘베누스 이라’는 지금으로부터 약 60년 전에 발생한 역병의 근원지 안에서 산다고 했다.
말이 역병의 근원지지 지금이야 대부분이 정화돼서, 마족이 살 수 있는 땅으로 복구됐다곤 들었는데…….
“그런 곳에다가 영지를 만든 겁니까? 그 베누스 후보란 자는?”
이사벨은 그렇다며 고개를 끄덕였다.
“사실 예전에 베누스 후보의 영지를 다녀온 적이 있어요. 마왕 후보 경합이 본격적으로 시작되기 전에 그의 기세를 가늠해보고자 하는 마음으로 갔었죠.”
“어땠습니까?”
“말했잖아요. 좋아 보인다고. 역병의 근원지였다는 생각이 전혀 안 들 만큼 평화로웠어요. 영지민들도 사는 게 매우 행복한지, 다들 웃고 있었고요.”
웃고 있어?
그 말에 기분이 묘해졌다.
후보 회담과 연회를 통해 그 베누스 후보란 자를 두 번 정도 보긴 했다.
다른 건 몰라도 이거 하나만큼은 제대로 각인된 후보였었지.
미소가 소름 끼칠 정도로 어색하다는 것.
웃는 얼굴에 침 못 뱉는다란 말도 아마 그 마족 앞에선 안 통할 거다.
뭔가 기쁨이나, 행복에서 비롯된 웃음이 아닌, 억지로 짓는 웃음 같았던 느낌.
더 기억에 남는 건 베누스 후보만이 아닌, 그의 퍼밀리어와 같이 온 시종들 역시 똑같은 미소를 연회 내내 쭉 유지했었단 점이다.
다시 생각해보면 그건 미소가 아니었을지도.
누군가의 명령에 의해 강제적으로 지은 하나의 표정이라고 보는 게 맞을듯싶었다.
아무튼, 영지 운영에 관한 경험과 식견은 그 두 후보가 가장 뛰어나다는 건데…….
“그 후보들을 만나고 싶단 마음이 아주 대놓고 보이네요.”
턱을 붙잡으며 고민하는 나를 보며 이사벨이 말했다.
“티 났습니까?”
“아주 많이요. 오해하진 말아요. 나쁘다는 건 아니니까. 오히려 적의 장점을 배워서 그걸 내 장점으로 만들 수 있다면, 그거보다 좋은 일도 없겠죠. 대신…….”
이사벨은 대뜸 자리에서 일어나더니, 내 앞으로 얼굴을 들이밀었다.
“나랑 같이 가요.”
예?
“어, 어딜 말입니까?”
“어디긴요. 당연히 다른 후보들 만나러죠. 이미 머릿속에 다일 후보와 베누스 후보를 만나러 가야겠단 생각을 하고 있던 거 아니에요?”
“그렇긴 합니다만…….”
이 여자 독심술이 날로 늘어나네?
“저와 같이 가서 뭘 하시겠다는 겁니까?”
“뭐긴 뭐겠어요? 당연히 경고지.”
경고는 뭔 놈의 경고!?
물어볼 필요가 있냐는 듯 그녀의 특유의 살벌한 눈웃음을 지었다.
“벨져 후보를 건들면 아주 아주 큰일이 날 거라는 경고 말이에요. 바로 나한테서…….”
그 큰일이 대체 뭐냐는 질문을 던지려다 말았다.
굳이 설명을 듣지 않아도 알 것 같거든.
같이 안 가겠다고 하면 그 큰일이 나한테도 생길 것 같은 건 기분 탓일까?
* * *
쇠뿔도 단김에 빼랬다고,
나와 이사벨은 바로 집을 나와 다일 후보의 본가가 있는 그의 영지로 향했다.
메이나 다른 수행인 없이, 오직 그녀와 나 단둘이서.
그나마 마부까지 껴서 셋이다.
아무튼, 등잔 밑이 어둡다고, 다일 후보의 본가는 지도에서 본 것 이상으로 가까운 곳에 있었다.
마차를 타고 남쪽으로 이동한 지 3시간.
창문 밖으로 황금빛의 넓게 펼쳐진 밀밭이 모습을 드러냈다.
“평화로워 보이네요.”
“말했잖아요. 여긴 마계에서 가장 살기 좋은 곳 중 하나라고.”
살기 좋은 곳이란 뭘까?
굶을 걱정 없이 식량이 충족하게 쌓인 곳?
천적들의 위험을 받지 않는 곳?
뭐라 딱 잘라 정의할 순 없을 것이다.
개인마다 기준이 다를 테니.
다만 여기 사는 마족들의 경우엔 아마 전부 같은 생각을 하고 있지 않을까 싶다.
적어도 이 영지에 사는 자신들은 매우 행복하다는 생각을 말이다.
꾸밈과 가식이 전혀 없는 행복에서 비롯된 본연의 미소가 확연히 드러나 있다.
나는 마부석 창문으로 가서 마차를 멈춰줄 것을 요청했다.
“갑자기 왜요? 다일 후보의 본가까지 아직 좀 더 가야 해요.”
“압니다. 다만 좀 걷고 싶어졌습니다…….”
두 발로 직접 걸으며 느끼고 싶어졌다.
모두가 살기 좋다고 생각하는 분위기가 무엇인지를.
이사벨은 내 뜻을 눈치챘는지 함께 마차에서 내렸다.
이에 밭일 중이던 몇몇 마족들의 시선이 우리 쪽으로 향했다.
보통 낯선 외부인이 오면 영지민으로선 경계하기 마련인데, 어째 그런 시선들이 전혀 안 느껴졌다.
그저 한두 번 휙 보다가 말뿐.
다시 자신들의 일에 집중했다.
우리 그렇게 넓은 밀밭을 10분 정도를 걸으며 둘러보았다.
“감흥이 어떤가요?”
말없이 쭉 걷기만 하는 나를 보며 이사벨이 물었다.
“그냥…….”
익숙하다.
다른 의미가 있어서 한 말이 아니다.
진짜로 내게 익숙한 광경이다.
그냥 변방의 평화로운 시골 영지를 보는 느낌과 다를 바 없다.
“낯섭니다.”
허나 입 밖으론 전혀 다른 대답이 나왔다.
거짓말은 아니었다.
익숙하긴 하지만, 분명 낯선 느낌도 있으니까.
아마 인간의 시선으로 봤을 땐 너무나도 익숙한 이 광경을 마계에서 본 것에서 온 거부감이 아닐지 싶었다.
그런 생각으로 계속 걷던 와중,
“호, 이런 곳에서 반가운 얼굴을 보게 될 줄이야.”
앞에서 나를 부르는 목소리와 함께 익숙한 마족의 모습이 보였다.
“다일 후보를 만나러 온 것인가, 벨져 후보?”
반가움보다는 놀라움이 앞섰다.
“할머니 여기 사세요?”
디렘에서 만났던 수상한 마족 상인, 마르샤였다.
(다음 편에서 계속)