Hero Wants to Become the Demon King RAW novel - Chapter 7
제7화. 너 내 퍼밀리어가 돼라
퍼밀리어(Familiar).
마왕 혹은 그에 견주는 소수의 고위 마족이 계약을 통해 주종 관계를 맺는 마족을 의미한다.
레지에타에선 ‘사역마(使役魔)’라고도 불렸다.
즉 이름 그대로 풀이하면, 주인 마족에게 절대적으로 충성하는 심부름꾼 마족 정도로 생각할 수 있다.
허나 내가 생각하는 퍼밀리어는 그런 단순한 존재가 아니다.
다른 수식어 필요 없이 딱 이 말 하나로 정의할 수 있다.
영혼의 전투 파트너.
이거보다 확실한 말은 없다고 감히 단언할 수 있다.
영혼을 매개로 계약을 맺어 서로의 힘과 정신을 공유할 수 있는 유일무이한 관계이자, 서로의 부족한 점을 서로의 장점으로 감싸줄 수 있는 이론상 최강의 관계.
그 관계의 핵심이 바로 퍼밀리어다.
이걸 왜 알고 있냐고?
왜긴 왜겠냐?
불같은 성격 파탄자 마왕과 그걸 제어하는 냉철한 퍼밀리어의 환상적인 조합을 내가 지랄 맞도록 겪어서지!
“퍼밀리어라고 하셨습니까?”
브릴리스는 내 제안에 다소 난색을 보였다.
나름 예상한 반응이었다.
“혹시나 해서 여쭙는 거지만, 벨져 님께선 퍼밀리어란 존재가 정확히 뭘 뜻하는지 알고 계십니까?”
“뭐 어느 정도는?”
혹여 내가 몰랐던 부분이 있을 수도 있기에, 나는 브릴리스에게 퍼밀리어에 관한 정확한 설명을 부탁했다.
“퍼밀리어는 마력을 이용한 영혼 계약을 통해 만들어지는 일종의 종자입니다. 서로 합만 잘 맞으면, 서로의 부족한 단점을 보완해 장점으로 바꿔줄 수 있는 좋은 공생관계이기에, 이미 벨져 님을 제외한 다른 일곱 명의 마왕 후보님들은 각자의 퍼밀리어를 보유하고 있습니다.”
에이 뭐야? 그럼 더더욱 삼아야겠네?
남들 다 있는데 나만 없을 순 없잖아?
“벨져 님께선 저 메이란 아이가 벨져 님의 부족한 부분을 채워줄 수 있을 거라 보십니까?”
브릴리스는 그 질문과 함께 내게 의심 어린 시선을 보냈다.
아무리 아만 크라우넬의 후손이라고 해도, 아직 아이 티도 벗어나지 않은 저 소녀를 데려다가 퍼밀리어로 삼겠다니.
정상적으로 보는 것이 오히려 이상할 따름이겠지.
“단점 보완을 넘어, 나를 몇 단계는 더 성장시켜줄 거라고 봐.”
이 말은 가식이 전혀 담겨있지 않은 나의 완전한 진심이다.
마왕 심판을 끝으로 용사의 의무를 완벽히 수행한 이후,
나는 레지에타의 평화 지속을 위한 후진 양성에 매진했다.
그 시간만 해도 무려 20년.
그 세월 동안 지도자로서 레지에타의 수많은 용사 유망주들을 봐왔다.
그렇게 다져온 식견이 지금 내게 확신을 주고 있다.
메이는 단순한 마족이 아니다.
단순한 걸 넘어, 과거 마계를 평정했던 마왕 퍼밀리어의 후손이라는 엄청난 혈통을 가지고 있다.
누군가가 애써 가르치지 않아도, 스스로 힘을 키우고 발전시킬 수 있는 전형적인 대기만성형 신동.
그게 바로 메이다.
좋은 환경에 알아서 잘 크게 놔두면, 그녀는 분명 머지않은 시간에 선조를 훌쩍 뛰어넘는 마법의 대가가 될 것이다.
그런 엄청난 인재가 지금 내 앞에 떡하니 있는데, 어찌 놓칠 수 있겠는가?
“벨져 님의 뜻이 정 그러시다면, 전 더 반문하지 않겠습니다.”
“받아주겠다는 거야?”
브릴리스는 고개를 작게 끄덕였다.
조금은 더 반대 의사를 표현할 거라고 생각했던 것과 다르게 그녀는 순순히 내 뜻을 받아주었다.
아무리 내 후견인이라지만 너무 순종적인 거 아니야?
“애초에 제가 받아주고 말고 할 사항이 아닙니다. 어디까지나 벨져 님, 그리고 저 아이의 의사가 중요하겠죠.”
맞는 말이다.
내가 아무리 퍼밀리어로 삼고 싶다 고집을 부려도, 정작 당사자가 받아주지 않으면 아무런 의미가 없지.
그럼 이번엔 당사자의 생각을 물어볼까?
“메이야 네 생각은 어……?”
어라?
무, 무슨 상황이지 이거?
당황한 나머지 머리에서 목 아래로 식은땀이 삐질 흘러내렸다.
메이의 의사를 묻기 위해 시선을 돌린 나.
그런 나와 눈을 마주친 메이는 지금……,
“흐극…!”
울기 일보 직전의 상태였다.
나 뭐 잘못한 건가?
“아, 아니에요! 이건 기쁨의 눈물이에요 벨져 님!”
메이는 급히 눈물을 닦으며 내 추측을 부정했다.
“설마 제게 이런 영광스러운 순간이 올 줄은 몰랐어요. 전대 마왕님의 후손님께서 저처럼 어리고 나약한 마족에게 퍼밀리어라니…….”
아니 뭐, 서로 좋자고 하는 건 맞지만, 그렇다고 영광스러울 것까진 없는데?
어느 정도 마음을 추스른 메이는 대뜸 속에 품고 있던 낡은 책 한 권을 꺼냈다.
“이건 저희 크라우넬 혈통 대대로 물려받은 ‘마도서’에요.”
“마도서?”
“네. 전대 마왕님의 퍼밀리어셨던 아만 님을 비롯해, 선조들께서 연구하고, 체득하신 여러 마법이 여기에 전부 담겨있어요.”
뭐야 그거?
마법사라면 눈에 불을 켜고 달려들 엄청난 물건이잖아?
“돌아가신 아버지께선 제게 이 책을 남겨주시면서 말씀하셨어요. ‘여기 적힌 마법들은 절대 너를 위해 사용하지 마라. 너의 가치를 알아보고, 진정으로 인정해주는 마족을 만났을 때, 비로소 이 책을 펼쳐라.’ 전 그 순간이 평생을 가도 오지 않을 거라고 생각했어요…….”
아니 그게 무슨 말 같지 않은 소리야?
마법을 익혀서 실력을 인정받아야 데려가는 거지, 무슨 쓰기도 전에 알아봐 주는 마족을 만나래?
순간 내가 잘못된 건가 싶어 뺨을 긁적였다.
“저 벨져 님의 퍼밀리어가 될게요! 마법도 오로지 벨져 님을 위해서만 쓸 거예요! 열심히 노력하고 성장해서 아만 크라우넬 님의 뒤를 잇는 마왕의 퍼밀리어가 될 거예요!”
메이는 주먹을 야무지게 다지며 나의 제안을 승낙해주었다.
그래 뭐 어렵지 않게 받아준다 하니, 나로선 고마운 일이긴 한데,
갑자기 궁금한 점이 하나 생겼다.
“혹시 실례가 안 된다면, 그 마도서 내가 잠깐 봐도 될까?”
“물론이에요! 제가 가장 먼저 습득해야 한다고 생각하시는 마법이 있다면 바로 말씀해주세요!”
메이는 흔쾌히 마도서를 건넸다.
나는 여러 감정이 뒤얽힌 눈으로 마도서의 적힌 마법들을 천천히 살펴봤다.
어…….
이 책 뭐지?
10분 정도 책을 훑은 뒤, 바로 그녀에게 돌려주었다.
마도서를 살펴본 결과, 딱 하나는 확신할 수 있었다.
이 마계에서 세상을 멸망시킬 수 있는 존재가,
비단 마왕 하나만 있는 건 아니라는 걸.
“어떠신가요 벨져 님?”
메이는 초롱초롱한 눈을 밝히며 내게 감상평을 요구했다.
나는 멋쩍게 웃는 거 말곤 할 수 있는 반응이 없었다.
* * *
퍼밀리어 계약에 필요한 준비는 브릴리스가 맡아주었다.
내 딴엔 어두운 공간의 거대한 마법진 위에서 긴 주문이라도 읊을 줄 알았건만, 그건 내 과도한 착각이었다.
실상은 차마 계약이라 부르기도 머쓱할 만큼 매우 간단했다.
내 마혈석을 메이의 손에 얹고 간단한 주문을 읊으니, 그녀의 손등에 작은 인장이 생기면서 그대로 끝나버렸다.
그렇게 메이는 내 퍼밀리어가 되었지만, 그 후로 난 그녀에게 딱히 뭘 요구하지 않았다.
대신 알아서 마법을 공부하고 익힐 수 있도록 시간과 장소를 아낌없이 지원해줬으며, 그 결과 메이는 하루에 절반을 방에 틀어박혀 마법만 연구했다.
이따금 마력 제어에 어려움이 있을 때마다, 그녀를 찾아가 도움을 구했다.
그 덕에 검을 통한 마력 운용 감각을 어느 정도 체득할 수 있었다.
그렇게 점차 마계 생활에 적응할 시점에 딱 울타비스로부터 편지가 왔다.
‘내 대장간으로 와라.’
군더더기 하나 없는 짤막한 한마디.
편지엔 대장간이 표시된 지도 또한 함께 첨부되어 있었다.
저택에서 북쪽으로 걸어서 약 이틀 정도 떨어진 곳에 위치한 화산지대였다.
나는 주저할 것 없이 바로 여정 준비에 나섰다.
브릴리스가 동행하려 한 것을 극구 말렸으며, 대신 메이를 데려가기로 했다.
“정말 제가 안 가도 되겠습니까?”
“딱히 위험한 장소를 가는 것도 아닌데 뭐. 너 할 일도 많잖아.”
“예?”
“아, 아니. 그러니까! 아무튼 올 필요 없어!”
나는 걱정 말고 어서 들어가라며 손짓했다.
최근에 안 사실이 하나 있는데, 브릴리스는 내가 저택에서 보는 것 이상으로 굉장히 바쁜 나날을 보내고 있다 한다.
하루에 잠을 자도 끽해야 네 시간이 끝이라고 하며, 저택에서 내 시중을 드는 것 외에도 대내외적으로 여러 업무 처리를 하느라 몸이 열 개라도 모자랄 지경이라고 했다.
대체 무슨 일을 하길래 그리 바쁜진 아직 모르지만,
굳이 꼬치꼬치 캐물을 생각은 없기에, 따로 묻진 않았다.
“예전 같았으면 절대 못 보냈겠지만…….”
브릴리스는 그런 나를 보며 걱정스러운 표정을 짓다가도,
“회담 이후 여러모로 바뀌신 벨져 님인 만큼, 지금이라면 무리 없이 보낼 수 있을 것 같습니다.”
슬그머니 미소를 지으며 진심이 담긴 말을 건네주었다.
왠지 모르게 양심이 찔린 나는 입꼬리가 멋쩍게 올라갔다.
더 있어 봐야 마음만 이상해질 것 같으니 얼른 떠나야겠다.
“그, 그럼 다녀올게!”
“다녀오겠습니다!”
메이는 여행을 앞두고 들뜬 아이마냥 환하게 웃으며 내 뒤를 따랐다.
브릴리스가 마차를 지원해주겠다고 했지만, 나는 걸어가는 게 편하다며 그마저도 거절했다.
용사일 때도 안 타던 거라 그런지, 영 멀미가 난단 말이지.
나는 그렇게 메이와 함께 울타비스의 대장간이 있는 북쪽으로 떠났다.
벨져와 메이가 저 지평선 넘어 그 모습이 완전히 사라질 때까지,
브릴리스는 저택 앞에 꿋꿋이 서서 그 자리를 지켰다.
본인 없이 둘만 보내는 것이 정말 맞는 걸까 하는 걱정이 아직 머릿속에 맴돌긴 했지만,
이미 떠난 이를 걱정하는 것만큼 미련한 일도 없기에, 브릴리스는 애써 마음을 단념했다.
오히려 벨져가 돌아왔을 때 편히 쉴 수 있게 준비하는 게 더 나을 것이다.
그런 마음으로 몸을 돌린 그때,
-두두두두
벨져가 떠난 방향의 반대로부터 낯선 발굽 소리가 들렸다.
이는 틀림없는 마차 소리였다.
브릴리스의 눈은 바로 소리가 들린 곳으로 향했다.
저 멀리 저택을 향해 달려오는 한 대의 마차.
브릴리스는 마차의 정체를 밝히기 위해 눈을 가늘게 좁히며 마차를 주시했다.
마차 위에는 어느 문장이 새겨진 깃발이 바람을 타며 힘차게 휘날리고 있었다.
“저건……?”
문장을 확인한 브릴리스의 얼굴은 삽시간에 굳어졌다.
그 문장은 그녀 같은 마왕을 모시는 하수인으로선 절대 몰라볼 수 없고, 몰라봐서도 안 되는 그런 문장이었다.
이윽고 달려오던 마차가 브릴리스 앞에 뚝 멈춰 서고,
-끼익
마차의 문이 열리며 그 안에서 검은 양복을 입은 장신의 남성 마족이 나타나 그녀에게 가벼운 눈인사를 했다.
“여, 여긴 어쩐 일로……?”
브릴리스는 떨리는 마음을 제어하며 간신히 물었지만, 마족은 대꾸 없이 마차 안으로 한쪽 손을 뻗었다.
이에 마차 안에선 어느 가녀린 여인의 손이 나타나 그의 손을 맞잡았다.
남성 마족은 그대로 마차에서 내리는 여인을 에스코트했다.
“생각보다 나쁘지 않게 살고 있었네요? 그래도 마왕 후보로서 어느 정도 구색은 맞췄나 봐요?”
여인은 작은 감탄사를 뱉으며 벨져의 저택을 바라보았다.
“우리 초면 아니죠? 회담장에서 한 번 봤으니까요. 이름이 브릴리스였던가요?”
브릴리스는 너무 놀란 나머지 대답을 하지 못했다.
“미안해요. 내가 기별도 없이 갑자기 찾아왔죠?”
여인은 손으로 입을 가리며 살짝 웃음을 흘렸다.
그 웃음에 정신이 든 브릴리스는 황급히 목을 숙였다.
“지, 질투의 종주이자, 마왕 후보이신 이사벨 님을 뵙습니다!”
마계의 절대자 마왕을 꿈꾸는 여덟 명의 마왕 후보 중 하나.
칠죄종 중 질투를 담당하는 이뉘디아 가문의 종주.
이사벨 이뉘디아.
마왕이 되기 위해선 반드시 넘어야 할 큰 산 중 하나인 그녀가 지금,
“벨져 후보. 안에 있나요?”
벨져를 찾고 있었다.
(다음 편에서 계속)