Hero Wants to Become the Demon King RAW novel - Chapter 70
제70화. 둘이 뭐해?
대련을 마치고 나니, 어느덧 해가 서쪽으로 기울었다.
다일은 잘 곳을 마련해주겠다고 했지만, 나는 단호하게 거절했다.
“무리한 부탁일 수도 있으셨을 텐데, 흔쾌히 응해주셔서 감사합니다.”
페르와의 검술 대련을 받아준 것에 대해 다일은 다시 한번 감사를 표했다.
“방금 돌아와서 피곤할 퍼밀리어를 괜히 혹사시킨 건 아닌지 모르겠습니다.”
“전혀 아니니, 걱정 안 하셔도 됩니다. 페르 본인도 좋은 경험으로 여기고 있을 겁니다.”
그런 말은 적어도 둘이 같이 나와서 하는 게 어떨까?
현재 날 배웅해주겠답시고 나온 이는 집주인인 다일과 몇몇 수하들뿐.
정작 대련을 했던 페르는 보이지 않았다.
다일은 피로가 누적된 터라, 휴식을 취하는 중이라 했지만, 그거 말고도 다른 이유가 있음을 내가 정녕 모르겠는가?
그냥 적당히 넘어가잔 마음에 딱히 지적하진 않았다.
떠나기 전, 다일이 준 일기를 한 번 더 꺼내 보았다.
“이 일기, 정말 저에게 주셔도 괜찮으십니까?”
“어차피 지금의 제겐, 쓸모가 전혀 없는 물건입니다. 조금이라도 도움이 될 분께서 가지고 계시는 게, 이 일기를 위해서도 좋지 않겠습니까? 부디 마족들을 위한 좋은 영지를 만들어주시지요.”
그 말에 잠시 잊고 있었던 본 목적이 떠올랐다.
“그러고 보니 말씀드리는 게 늦었군요. 다일 후보께선 정말 훌륭한 영지를 가지고 계신 것 같습니다. 영지에 사는 마족들 모두가 행복해 보이더군요.”
“부끄러운 과찬이시군요. 좋게 봐주셔서 감사합니다.”
“그래서 더 궁금해졌습니다.”
나는 그를 향해 한 걸음 더 다가갔다.
“다일 후보께선 왜 마왕이 되려 하십니까?”
“저만의 마계를 만들기 위해섭니다.”
좀 뜸 들일 거라 생각한 것과 다르게, 다일은 기다렸다는 듯 바로 답했다.
“마왕이란 곧 마계에 대적할 수 없는 절대적 존재를 의미하지요. 절대자는 무엇이든 할 수 있습니다. 하물며 자신이 사는 세계를 새롭게 바꾸는 것도 가능하겠지요. 제가 마왕이 된다면, 저를 위한 새로운 마계를 만들 겁니다.”
“새로운 마계라 하면, 정확히 뭘 의미하는 겁니까?”
“아직은 정확히 말씀드릴 수 없습니다. 다만, 지금의 마계보다 훨씬 더 좋은 마계일 것임은 확실히 단언할 수 있을 것 같군요.”
새로운 마계.
언뜻 들으면 굉장히 낭만적인 꿈으로 해석될 수 있다.
허나 저 말은 좀 더 자세히 들여다볼 필요가 있다고 본다.
지금의 마계보다 훨씬 더 좋은 마계라고 한다면,
그 좋다는 말은 과연 누구를 위해 적용되는 것인가?
나를 비롯한 이 땅에 사는 모든 마족들?
아님, 그 세계에 절대자로 군림하는 본인 혼자?
호기심이 들긴 했지만, 구태여 거기까진 묻지 않았다.
“영지의 형태가 어느 정도 갖춰지면, 그땐 정식으로 다일 후보를 초대하겠습니다.”
“그날이 빨리 오기를 기다리겠습니다.”
기약 없는 다음 만남을 약속하며 나와 이사벨은 마차에 올랐다.
“어땠나요?”
마차가 정확히 영지를 벗어난 순간, 이사벨이 침묵을 깨고 물었다.
“뭘 말입니까?”
“다일 후보를 만난 감흥 말이에요. 영지 운영에 관한 정보를 얻는 것도 목적이었지만, 마지막에 한 그 질문의 답을 듣는 게 진짜 목적이었잖아요.”
“확실히, 이사벨 님께서 하신 말대로였습니다.”
이사벨은 무슨 말이냐며 고개를 갸웃했다.
“목적과 신념이 확고하고, 상황을 감정적으로 보지 않으며, 적을 만들지 않으려는 처세술만 봐도, 그가 왜 마왕에 가장 가까운 마족으로 불리는지. 충분히 알 수 있었습니다.”
후한 평가를 한 것이 의외라고 생각했는지, 이사벨은 돌연 내 앞으로 얼굴을 들이밀었다.
“제 얼굴에 뭐 묻었습니까?”
“말은 그렇게 하는데, 눈빛은 왜 살벌한 걸까요?”
그녀는 무의식적으로 돋아난 내 눈을 가리키며 미소를 지었다.
“마왕의 권좌를 차지하기 위해선 반드시 꺾어야 할 경쟁자라고 생각하니, 경계심이 돋기라도 했나요?”
“그런 거라면 차라리 다행이겠죠.”
솔직히 말하자면, 그를 향한 경계심은 회담장에서 처음 대면을 했을 때부터 있었다.
그리고 그때부터 지금까지, 다일 후보를 향한 내 인식은 조금도 변하지 않았다.
목적이 뭐든, 얼마나 강한 힘을 갖고 있건 상관없이,
다일 수페르비아. 그는 그냥 위험한 존재라고.
몸이 바뀌어도 영혼에 각인된 용사의 감각이 말해주고 있다.
그 말인즉슨,
저 가면이 언제 벗겨져도 이상하지 않다는 거겠지.
* * *
벨져의 마차가 시야에서 완전히 사라지기까지 자리를 지킨 다일.
그는 본가로 귀환하자마자, 페르의 방으로 향했다.
방의 주인은 한창 검을 손질 중이었다.
“벨져 후보는 돌아갔습니까?”
“그래. 조금 전 영지를 완전히 벗어났단 보고가 들어왔다.”
주인이 왔음에도 페르는 그를 맞이하긴커녕, 시선을 맞출 기미조차 보이지 않았다.
마치 더럽혀진 그의 자존심을 지우려는 듯, 묵묵히 검만 닦고 있었다.
“용사의 검술을 직접 경험해본 소감이 어떻더냐?”
“솔직히 말씀드리자면, 잘 모르겠습니다…….”
손질을 멈춘 페르는 헝겊을 꽉 움켜쥐었다.
“전 벨져 후보가 언제부터 검을 잡았는지, 또 얼마나 오랫동안 검을 수련했는지 전혀 모릅니다. 한 가지 확실한 점은 그가 체득한 검술 중 일부가 저와 같다는 것입니다.”
“같은 검술을 익혔다?”
“예. 청해에서 벨져 후보에게 함정이 있다는 정보를 알리려 했을 때, 그가 가지고 있는 검술서를 보았습니다. 나약했던 과거의 제가 처음으로 검술을 익혔던 바로 그 검술서였습니다. 한데, 어째서인지 지금은 벨져 후보의 손에 있었습니다.”
이야기를 곰곰이 듣던 다일은 입을 가린 손 사이로 묘한 미소를 지었다.
“네가 가지고 있었다던 그 검술서. 분명 마르샤 님으로부터 받은 거라 했지?”
“예. 그렇습니다만…….”
“사실 네가 복귀하기 전에 마르샤 님께서 찾아오셨다.”
깜짝 놀란 페르가 자리에서 벌떡 일어났다.
“그분께서 왜?”
“방문 목적은 나도 모른다. 갑자기 오셔서는 여러 이야기를 해주시더구나. 그 이야기 중 절반이 벨져 후보와 관련된 것이었다.”
다일은 마르샤가 했던 모든 말을 글자 하나하나까지 전부 기억하고 있었다.
“하나 묻겠다 페르. 그 검술서는 아직도 벨져 후보가 가지고 있는 것이냐?”
“이젠 아닙니다. 그날 제 앞에서 보란 듯이 태워버렸습니다. 복사본이라도 있지 않은 한, 그 검술서는 이제 세상에 없습니다.”
“네가 보았다던 그 검술서……. 디렘에서 벨져 후보를 만난 마르샤 님이 그에게 준 것이라고 하더구나.”
“디렘에서 말입니까?”
“그래. 불과 보름 전에…….”
페르는 믿을 수 없다며 고개를 절레절레 저었다.
“마, 말도 안 됩니다! 그럼 벨져 후보는, 보름도 안 되는 그 짧은 시간에 그 검술을 익혔다는 겁니까? 그런 게 가능할 리가…….”
“그걸 판단할 수 있는 건 내가 아니다. 검사인 너지.”
다일의 단호한 대답에 페르의 얼굴은 더욱 굳어졌다.
“벨져 후보의 검술은 분명 제가 배운 검술과 일치했습니다. 허나 그의 경지는 이미 저를 훨씬 넘어섰습니다. 문제는 그 경지의 끝이 어디에 있는지, 가늠조차 할 수 없었다는 겁니다!”
‘거기까지구나.’
그 한마디에 대련에 집중하던 페르의 전의는 완전히 꺾여버렸다.
상대는 이미 나의 전부를 보았지만, 자신은 상대에 아무것도 보지 못한 것으로부터 비롯된 무력감.
페르는 그런 상황이 어쩌다 발생한 것인지, 도통 이해할 수 없었다.
“벨져 후보가 그 검술을 단기간에 체득한 게 아니라면, 가능성은 하나밖에 없겠구나.”
“그게 무엇입니까?”
“이미 전부터, 그 검술을 익혔다는 거겠지.”
그런 일은 있을 수가 없다는 듯 페르는 머리를 강하게 저었다.
“10년입니다! 겨우 책 하나에 의지해서 지금의 제 경지를 이루기까지 무려 10년이 걸렸단 말입니다! 설사 벨져 후보가 저보다 훨씬 이전부터 검술을 익혔다고 한들, 그의 나이는 이제 겨우…….”
“열여덟에 불과하지. 상식적으로 불가능한 상황이라는 거, 나도 안다.”
다일은 눈 하나 깜짝하지 않는 담대한 표정으로 말을 이었다.
“누구에게든 비밀은 존재한다. 그 비밀은 상황에 따라 날 지켜주는 무기가 되어 주기도 하지. 벨져 후보에겐 지금, 그 무기가 되는 비밀이 있는 것이다. 다른 마왕 후보들은 물론, 그의 주변인들도 모르는, 그만의 비밀이…….”
그 비밀이 무엇인지는 아직 모른다.
허나 그 비밀을 밝히지 않고선 절대 마왕의 권좌를 차지할 수 없을 것임을, 다일은 굳게 확신했다.
‘교만하지 마십시오. 벨져 후보…….’
창문 밖에 드리워진 검붉은 마계 하늘을 보며 다일은 속으로 벨져를 향한 충고를 전했다.
‘당신을 지켜줄 그 무기 같은 비밀이, 언제 당신을 위협할 독으로 바뀔지 모르는 것이니.’
그 순간이 빨리 오기를 내심 바라는 듯,
다일의 입꼬리는 양쪽으로 조금씩 올라가고 있었다.
* * *
“벨져 님. 본가에 도착했습니다.”
도착을 알리는 마부의 보고에 눈이 깜박 떠졌다.
긴장이 풀린 순간, 피로가 확 몰려왔는지 가는 중에 잠이 든 모양이다.
하늘은 두말할 것도 없는 까만색.
이미 저택의 모두가 잠들어 있을 시간이다.
나 기다린다고 다들 안 자는 건 아닌지 모르겠네.
“이사벨 님. 그만 내리…….”
하품을 하며 마주 앉은 이사벨과 내리려다 말고, 말을 급히 멈췄다.
호?
이런 광경은 처음 보네?
지금 내 앞엔 누가 업어가도 모자랄 만큼 아주 깊은 잠에 빠지신 질투의 종주께서 자리하고 계신다.
그녀도 나 못지않게 피로가 엄청 몰려든 모양이다.
하기야, 영지를 만들겠다는 날 지원하겠답시고, 이뉘디아 본가에서 그만한 자금을 끌고 온 것도 모자라, 쉬는 시간 없이 나와 다일 후보의 영지를 다녀왔으니, 피곤할 만도 했겠지.
말은 별거 아니라고 했지만, 아마 본가의 장로들과 승강이를 제대로 벌였을 거라 본다.
그래도 그렇지, 너무 무방비하게 자는 거 아니야?
깨우기가 민망할 정도다.
“이사벨 님?”
혹시 몰라 조심스레 불러봤지만, 반응이 없다.
어쩔 수 없나?
나는 그녀에게 다가가 한쪽 손을 허벅지 밑으로 집어넣었다.
이리된 거 그냥 조용히 방으로 데려가 눕히도록 하자.
설마 다음 날 자기한테 무슨 짓을 한 거냐고 도리어 화내진 않겠지. (그랬다간 전쟁이다.)
이내 나머지 한 손으로 어깨를 잡고 살포시 안았다.
이래 봬도 내가 여자를 한두 번 안아본 게 아닌….
“이 검밖에 모르는 멍청한 남자 같으니…….”
-털썩
어라?
바, 방금 뭐가 들린 거지?
잘못 들은 게 아니라면, 이건 분명 이사벨의 입에서 나온 목소리다.
서, 설마 깬 건가?
나는 요동치는 눈동자를 간신히 제어하며 아래를 내려다보았다.
다행히 이사벨의 눈은 여전히 감겨있었다.
그렇다면 방금 한 말은 잠꼬대란 거겠지.
누가 봐도 오해할 여지가 다분한 지금 자세를 그녀가 봤다면, 아마 상상도 못 할 큰일이 일어났을 것이다.
후.
십 년 감수했네…… 라고 안심할 상황이 아니야!
방금 전 잠꼬대와 함께 그녀가 몸을 뒤척이면서 본의 아니게 자세가 바뀌어버렸다.
이사벨의 가녀린 두 팔은 내 등을 제대로 감싸 안았으며, 얼굴은 내 어깨에 다소곳이 얹혀있다.
이 여자 자는 거 맞아?
대체 정신이 있는 거야 없는 거야?
외간 남자가 자기 몸을 안았는데, 저항하긴커녕 더 끌어안는 여자가 어디 있어?
진정하자.
흥분할 때가 아니다.
진정하고 상황을 어찌 타개해야 할지 생각해야 해.
그냥 처음 의도했던 대로 그녀를 안고 방에 데려갈까?
안 돼!
지금 이 자세를 다른 마족들이 보기라도 한다면, 필시 100% 오해하게 돼.
안 그래도 요즘 저택 시녀들 사이에서 나와 이사벨과 관련된 이상한 소문이 돈다던데, 그 소문을 증폭시킬 수는…….
“둘이 뭐해?”
마차 창문 쪽에서 들려온 어느 익숙한 목소리에 신경과 사고가 뚝 멈췄다.
일단 여기는 내 집 앞이다.
내 집의 구성원 중 내게 반말을 하는 마족은 딱 한 명, 세나뿐이다.
근데 지금 들린 이 목소리는 절대 세나가 아니다.
훨씬 더 요망하고, 오감을 자극하는 야릇한 목소리.
내가 아는 마족 중 이 목소리를 가진 마족은 분명……,
“어머? 내가 혹시 방해한 건가?”
슬며시 창문 쪽으로 눈동자를 돌리니,
음욕에 찬 눈을 번들거리는 그녀의 모습이 보였다.
색욕의 종주, 루비아 룩스리아가!
“이 X년이…….”
설상가상 내 몸을 안고 있던 이사벨도 눈을 떴다.
이에 나는 속으로 생각했다.
마족 환생 이후 최악의 위기 상황이 도래했다고.
(다음 편에서 계속)