Hero Wants to Become the Demon King RAW novel - Chapter 73
제73화. Another Dream
침대 위에서 벌떡 몸을 일으킨 루비아.
뭐에 이끌린 듯 멍한 표정으로 있는 그녀를 보며 맞은 편에 있던 미켄이 물었다.
“벌써 일어나셨네요? 두 시간은 걸릴 거라면서요?”
루비아는 미켄을 스윽 쳐다만 볼 뿐, 어째서인지 입을 열진 않았다.
“벨져 후보님이 빨리 내보내 달라고 조르기라도 했나 보죠? 그게 아니면 벌써 질리기라도 한…….”
“벨져 후보가 꿈을 무너트렸어.”
그 말에 미켄은 2초 정도 멍을 때렸다.
“누가, 뭘 무너트렸다고요?”
“벨져 후보가 자기 마력으로 내 악몽의 세계를 잠식해서 소멸시켰어. 난 지금 자의로 나온 게 아니야…….”
“노, 농담하시는 거죠 누님?”
미켄은 자신이 묻고서도 아니라는 생각이 들었는지 헛웃음을 터트렸다.
방탕하기 그지없는 자신의 누이가 저런 진중한 표정을 짓는 경우는, 살면서 열 번도 채 보지 못했다.
“내가 뭘 봤었더라?”
루비아는 머리칼을 매만지며, 천천히 무너진 꿈속의 기억을 되짚어보았다.
“그래. 웬 낯선 늙은이들의 시체를 봤었어. 근데 왠지 모르게 마족은 아닌 것 같았단 말이지?”
“마, 마족이 아닌 늙은이들이요? 그럼 뭐 인간이었다는 겁니까?”
“잘 모르겠어. 자세히 보진 못했으니까. 벨져 후보에게 쟤들은 뭐냐고 물으니까, 갑자기 공간이 쩌적하고 갈라졌었어…….”
“아니! 아무리 벨져 후보의 마력이 엄청나다고 해도, 악몽의 세계는 누님의 또 다른 집이나 마찬가지잖아요! 악몽이 무너지는 걸 그렇게 쉽게 허락하셨단 겁니까?”
“어. 그러니까 나도 지금 이렇게 놀란 거잖아.”
루비아가 그렇게까지 말해버리니, 미켄으로선 더 이상 할 말이 없었다.
말없이 창가로 다가간 루비아는 창문을 활짝 열었다.
“짐 챙겨, 미켄.”
“예?”
“돌아가자. 지금은 여기 있으면 안 될 것 같아.”
루비아는 그 말과 함께 창문 밖으로 몸을 던졌다.
만개하는 꽃잎처럼 날개를 활짝 편 그녀는 마계의 보름달을 향해 부드러이 날아올랐다.
미켄은 그 모습을 얼떨떨한 눈으로 창가에서 우두커니 빤히 바라보았다.
“저희가 짐이 어딨습니까, 누님? 맨몸으로 왔는데…….”
짐 정리 대신 루비아가 누웠던 침구 정리를 한 후에야 비로소 주인을 따라나서는 미켄이었다.
* * *
새벽이 막 거친 이른 아침.
아침부터 걸음에 힘이 잔뜩 들어간 이사벨은 모두가 있는 부엌으로 향했다.
“안녕히 주무셨어요, 이사벨 님?”
“잘 잤어, 이사벨?”
식사 중이던 메이와 세나가 반갑게 인사를 건넸다.
이사벨은 인사를 받는 대신, 누군가를 찾는 듯 주변을 계속 두리번거렸다.
“다들, 루비아 못 봤어요?”
“오늘 새벽에 떠나셨습니다.”
대답은 옆에서 나온 브릴리스가 해주었다.
“떠났다고요? 갑자기?”
“예. 갑자기 급한 일이 생겼다는 내용의 서신만 남기시고선, 그렇게 떠나신 듯합니다. 무슨 용무라도 있으셨는지요?”
“아니요. 그런 건 아닌데…….”
굳이 있다고 하면 감시였다.
머리에 든 거라곤 음욕밖에 없는 서큐버스가 벨져에게 또 어떤 수상한 접근을 할지 몰라 아침부터 감시하려고 했었다.
근데 난데없이 새벽에 떠나버렸다니.
이사벨로선 조금 어이가 없었다.
“그러고 보니, 벨져는 어딨나요?”
거기다 부엌엔 벨져도 보이지 않았다.
“밥 생각이 없으시다면서, 검을 들고 연무장으로 가셨습니다.”
그 말에 이사벨은 바로 연무장으로 향했다.
브릴리스 말대로 벨져는 연무장에 홀로 남아, 늘 그래 왔듯 단련에 전념 중이었다.
곧 이사벨이 온 것을 인지하고선 바로 그녀를 돌아보았다.
“무슨 일이십니까?”
“루비아가 새벽에 떠났대요. 들었어요?”
“예. 일어나자마자, 브릴리스에게 들었습니다.”
내심 좋아할 거란 예상과는 다르게, 벨져의 반응은 매우 무심했다.
“자는 사이에 그녀랑 뭐 다른 일 있었던 건 아니죠?”
“잠을 자는 동안 루비아 후보가 만든 악몽의 세계에 잠시 다녀오긴 했습니다.”
깜짝 놀란 이사벨의 눈이 휘둥그레 뜨였다.
“아, 악몽의 세계요? 괜찮은 거예요? 가서 무슨 일 당한 건 아니죠?”
“보시다시피 괜찮습니다.”
벨져는 멀쩡하다며 단칼에 일축했지만, 이사벨의 눈엔 왠지 그래 보이지 않았다.
딱히 문제가 있어 보이는 것도 아니었다.
다만, 왠지 평소의 벨져 모습답지 않게 굉장히 어색했다.
“다른 용무가 없으시다면, 전 이만 단련에 집중하고 싶습니다만…….”
“아, 그래요. 방해해서 미안해요.”
이사벨이 사과와 함께 물러나니, 벨져는 다시 아무 일 없었다는 듯 단련을 재개했다.
왠지 모를 불안한 마음에 이사벨은 연무장을 떠나지 못했다.
이내 자신이 있는 것이 방해가 될지 모른단 생각에 몸을 돌리려는 찰나,
저택 쪽에서 나오던 브릴리스를 발견했다.
브릴리스는 급한 일이라도 생긴 듯, 연무장 쪽으로 헐레벌떡 달려오고 있었다.
“무슨 일이에요 브릴리스?”
“그것이, 영지와 관련해서 조금 문제가 생긴 것 같습니다.”
이사벨은 자신에게 먼저 말하라며 브릴리스를 재촉했다.
영지 구축을 위해 자금을 조달한 후원자이기도 한 만큼, 들을 자격은 충분히 있었다.
조금 망설이던 브릴리스는 결국 입을 열었다.
“영지를 만들고자 했던 황무지에, 이전에 없던 마수가 발견되었다고 합니다!”
“마수요? 어떤 마수인데요?”
“발견자들 말에 따르면, 식물형 마수라고 합니다! 나무 같은 커다란 몸통에 수십 개에 촉수 같은 줄기가 흐물거린다고 하는데, 아무래도 ‘포르기네이’가 아닐까 싶습니다!”
포르기네이라는 말에 이사벨은 눈살을 찌푸렸다.
“정말 포르기네이라면 심각한 상황이잖아요? 마수를 물리칠 대책은 있어요?”
“일단 전투가 가능한 온건파 소속의 단원들을 모으는 중입니다.”
“히블즈도 없는 마당에 당신들로 뭘 할 수 있다는 거예요? 현장에 있는 단원들에게 전하세요. 내가 직접 갈 테니, 도착하기 전까지 마수랑 눈도 마주치지 말라고.”
“이사벨 님께서, 직접 퇴치하러 가시겠단 겁니까?”
이사벨은 당연하지 않냐며 어깨를 으쓱였다.
“그럼 내가 가지, 벨져를 보내야겠어요? 이런 일에는 후보가 아닌…….”
“마수가 나타났다고?”
어느샌가 다가온 벨져가 그녀들을 향해 물었다.
예기치 못한 인기척에 놀란 둘은 흠칫 몸을 떨었다.
“거기가 어딘데?”
벨져의 눈에선 이미 자신이 가겠다는 독한 의지가 굳게 서려 있었다.
* * *
좌우 양쪽으로 키만 한 나무와 수풀들이 무성한 이곳.
땅에는 축축한 물기마저 느껴지기에 황무지라기보단 습지에 좀 더 가깝지 않나 싶다.
뭐 그게 중요한 건 아니지.
지금 내가 있는 이곳은 브릴리스의 계획에 따라 마족을 위한 새로운 영지가 세워질 바로 그 장소다.
더불어 정체 모를 괴상한 마수가 출현한 곳이기도 하지.
난 지금 그 마수를 토벌하러 왔다.
마수 토벌을 위해 급히 소집된 온건파 단원들은 물론, 이사벨과 브릴리스, 그리고 메이조차 동행하지 않았으며,
내가 나오기 전까진 그 누구도 들어오지 말라며 극구 당부까지 했다.
그야말로 나 혼자 들어온 것이다.
이유가 있냐고?
글쎄? 그냥 그러고 싶으니까, 그랬다는 것밖엔 할 말이 없다.
이어진 숲길을 쭉 걸은 지도 벌서 10분째.
패기롭게 들어온 것까진 좋았지만, 어째 나타날 기미가 안 보인다.
‘마수 나와!’ 하고 소리라도 질어야 하나 싶던 순간,
“마, 마족 살려!!”
저 앞에서 낯선 구호의 외침이 들려왔다.
그럴 필요 없겠네.
나는 바로 소리가 들린 곳으로 달려갔다.
-쑤욱!
시야를 가린 수풀을 헤친 순간, 칼날 같은 줄기가 앞을 덮쳤다.
이에 재빨리 검을 뽑아 줄기를 반으로 갈랐다.
잘린 줄기 안에선 질척한 액체가 흘러나와 바닥을 뒤덮었다.
“으아아악!”
또 한 번 울리는 비명.
소리가 들린 곳으로 고개를 돌렸다.
스무 걸음 정도 앞으로 몸에 줄기가 감싸진 채 공중에 매달린 어느 마족의 모습이 보였다.
줄기 끝엔 산성 액 같은 침을 뚝뚝 흘리고 있는 거대한 마수가 입을 크게 벌리고 있었다.
주저할 것 없이 바로 검기를 날렸다.
-서걱!
날아간 검기는 정확히 마족의 몸을 감은 줄기만 베었다.
마족은 그대로 바닥에 굴렀지만, 줄기가 완충재 역할을 해준 덕에 큰 충격은 받지 않았다.
“흐에엑…….”
식사를 방해한 것에 화가 난 마수의 몸이 비로소 내 쪽으로 향했다.
지체하지 말고 오란 의미로 손가락을 까딱였다.
도발에 걸린 마수는 바로 달려들었다.
기다란 몸통에 연결된 수십 개의 나무줄기,
입으로 추정되는 몸통 구멍엔 혓바닥으로 보이는 커다란 줄기가 흐물거렸다.
어째 마수라기보단 괴식물에 가까운 모습이다.
근데 식물도 혀가 있던가?
별로 중요한 건 아니라는 생각에 바로 머리에서 지웠다.
요리 보고 조리 봐도, 이 녀석이 포르기네이란 마수인 것 같은데…….
브릴리스에게 듣기론 마계에 몇 없는 식물형 마수로 살아있는 생물이면 마족, 마수 할 것 없이 닥치는 대로 먹어 치워 몸집을 불린다고 했다.
탐사를 위해 돌아다니던 마족들에게 갑자기 나타나 공격했다지?
이 마수가 어디서, 어떻게 나타났건,
그것도 지금의 내겐 중요한 게 아니다.
그저 내 몸에 퇴적층처럼 쌓인 이 불편한 감각을 풀어줄 신선한 존재가 나타났다는 거.
그게 중요한 거다.
아크베리아의 검 끝을 그대로 포르기네이를 향해 겨눴다.
“퉤엑!”
나를 사냥감으로 인식한 포르기네이는 입속에서 낯선 액체를 뱉었다.
나는 피하지 않는 대신, 몸에서 발현한 마력을 그대로 검에 전승했다.
“마검술…….”
나무를 없애는 데엔 불만큼 좋은 것도 없다.
마력을 받아들인 칼날은 불꽃이 일 듯 검은 오라가 뜨겁게 번졌다.
그 열기를 그대로 포르기네이에게 날렸다.
“번지는 불길.”
위협을 감지한 포르기네이는 거구의 몸을 움직여 내 검기를 잽싸게 회피하려 했다.
하지만 완전히 피하진 못해 몸통 부분이 살짝 스쳤다.
그거면 충분했다.
이 이상 내가 할 일은 없을 것이다.
“키에엑!”
스친 지점에서 나타난 불길이 3초도 안 돼서 포르기네이의 몸 전체로 번졌다.
몸통, 줄기 할 것 없이 마력이 발산한 검은 불꽃에 전부 휩싸였다.
일부 지점에서 재생의 조짐이 잠깐 보이긴 했으나, 그럴수록 불길이 더 크게 솟구치면서 작은 여지까지 모두 태워버렸다.
-쿵!
놈의 육중한 덩치가 비로소 의식을 잃고 쓰러졌다.
위험성을 경고한 것 치곤, 손쉬운 토벌이었다.
나는 한 줌의 재가 될 때까지 불타는 포르기네이의 모습을 잠자코 지켜보았다.
목을 답답하게 했던 갈증이 조금은 해소된 기분이다.
하지만 어디까지나, ‘조금’이지 ‘완전히’ 해소된 건 아니다.
이 갈증은 어젯밤까지만 해도 없던 갈증으로, 오늘 아침 일어나자마자 갑자기 생겼다.
원인을 따지자면 아무리 봐도,
루비아 보여준 그 꿈 때문이겠지.
그녀가 보았다던 낯선 인간 늙은이들.
그들이 언급된 순간, 내면에 잠자고 있던 또 하나의 감정이 폭발하듯 터져 나왔다.
루비아가 보여준 나의 꿈은 모두가 웃을 수 있는 평화로운 마계를 내 손으로 직접 이루는 것이었지.
이걸 부정할 생각은 없다.
그건 두말할 것 없이 지금의 내가 품고 있는 소망이 맞다.
그거 외에 다른 꿈이 더 있어서 문제인 거다.
마왕이 아닌, 아직 소멸하지 않은 용사 차시혁으로서의 꿈.
그건 나를 능멸한 현자들에 대한 복수다.
지금의 레지에타는 용사 차시혁이 죽고 무려 80년이 흘렀다.
당시에도 이미 망백(望百)에 가까운 나이였던 현자들이, 지금까지 살아 있을 확률은 사실상 희박하다.
혹시 모르지?
만수무강 하라는 내 유언을 너무 잘 받아들인 나머지, 아직 잘살고 있을 수도 있다.
그래, 인정하겠다.
지금 내 안엔 그 복수를 이루고 싶다는 열망이 분명하게 존재하고 있다.
그래서 뭐? 혼란스럽냐고?
글쎄?
난 이전에도 말했듯, 내가 해야 하고, 할 수 있는 일이라면 마다치 않고 하는 놈이다.
그렇기에 난 마왕이 될 거다.
마왕이 되어서 모두가 평화로운 마계를 만들 거다.
그다음엔 레지에타로 가서,
가서…….
“구, 구해주셔서 감사합니다!”
아이 깜짝이야.
혼자만의 상념에 너무 몰두한 나머지, 나도 모르게 몸을 들썩였다.
“누구신진 모르지만, 덕분에 목숨을 구했습니다. 이 은혜를 어찌 갚아야 할지…….”
보상받자고 한 일은 아니니, 상관은 없다만,
근데 이 남자, 차림을 보니 떠돌이 같진 않아 보이는데?
그럼 설마?
“당신 이 근처에 살아?”
답하기를 잠시 꺼려하던 그는 이내 조심스럽게 입을 열었다.
“예. 그렇습니다…….”
제대로 듣고서도, 제대로 들은 건가 싶은 생각이 드는 대답이었다.
(다음 편에서 계속)