Hero Wants to Become the Demon King RAW novel - Chapter 76
제76화. 경계하는 이유
전대 마왕의 후손이자 현 마왕 후보인 벨져와 그 일행이 클로이의 집에서 밥을 먹는 사이,
거주지의 마족들은 집 주변을 서성거리며, 그들의 움직임을 주시했다.
“마, 마왕 후보씩이나 되는 마족이 여긴 뭐 하러 온 거지?”
“듣자 하니 여기 서식하는 마수들을 죽이러 왔다던데, 혹시 우릴 위해서?”
“그럴 리가 있겠냐? 뭔가 다른 목적이 있는 거겠지! 우린 그냥 재수 없게 걸린 것뿐이라고!”
대체로 긍정적인 얘기는 오가지 않았다.
마족들의 얼굴엔 하나같이 불안 혹은 초조함으로 가득했다.
“어쩌지? 우리 도망가야 하나?”
“이런 데서도 살지 못하면 대체 어디로 가야 한단 거야?”
“이참에 그냥 돌아가는 건 어때?”
“너 미쳤어? 다시 돌아가면 그자가 우릴 어서 와라 하고 받아줄 것 같아?”
한 마족은 급기야 돌아가자는 말을 뱉은 마족의 멱살을 붙잡기에 이르렀다.
다른 마족들의 만류에 겨우 손을 놓았다.
“돌아갈 바엔 차라리 마수에게 먹히고 말지! 돌아가면 죽는 것보다 더 끔찍한 일이 기다리고 있을 거라고!”
마족들은 그 말에 어느 정도 동의하는 눈치였다.
그때 클로이의 집에서 브릴리스가 나왔다.
“나, 나온다!”
마족들은 아무 일 없었다는 듯 애써 외면했지만,
“뭐야? 왜 여기로 오는 거야?”
브릴리스는 어째서인지 그런 마족들의 곁으로 서서히 다가오고 있었다.
“잠시, 실례해도 되겠습니까?”
그녀는 다가온 것도 모자라, 정중히 고개를 숙이며 인사까지 건넸다.
당황한 마족들은 어찌 받아들여야 할지 몰라 서로 눈치만 보았다.
“우선 저희의 방문으로 예기치 못한 혼란을 드린 점에 대해 먼저 사과드리겠습니다.”
“사, 사과요?”
“예.”
진심이 담긴 단호한 대답에 한 마족이 손을 들며 물었다.
“우리에게 뭘 원하는 겁니까?”
“원하는 거라니요?”
“저 벨져라는 마왕 후보가 괜히 마수들을 잡으러 오진 않았을 거 아니오? 분명 여기에 어떤 목적이 있어서 왔을 텐데…, 우리가 여기서 나가주길 원하는 겁니까?”
“전혀 아닙니다. 어찌 그런 말씀을 하시는지요?”
브릴리스는 손사래를 치며 강하게 부정했다.
예상이 벗어난 것에 놀랐는지 일부 마족들의 눈이 휘둥그레 뜨였다.
“저희는 여러분이 이곳에서 계속 살기를 바라고 있습니다. 지금보다 훨씬 더 좋은 환경에서 말입니다.”
“좋은 환경? 그게 무슨 말입니까?”
“저희는 여기에 영지를 만들 생각입니다.”
짜기라도 한 듯 순간 마족들의 몸이 크게 들썩였다.
“여, 영지요? 여기에 벨져 후보의 영지를 만들겠다는 겁니까?”
“예. 거기에 여러분을 가장 먼저 모시고자, 제안을 드리러 온 것입니다만…….”
예상치 못한 반응에 당황한 건 브릴리스도 마찬가지였다.
낯선 이의 제안을 경계하는 것이 당연하다곤 해도, 이들의 반응은 뭔가 선을 넘은 느낌이었다.
마치 영지라는 것 자체에 매우 반감을 느끼는 듯한 눈치랄까?
그때 잠자코 있던 한 마족이 정색한 표정으로며 물었다.
“안 따르면 어떤 일이 생기는 겁니까?”
그 물음에 브릴리스가 할 수 있는 대답은,
아무 일도 생기지 않는다였다.
허나 브릴리스가 입 밖에 내민 대답은,
“왜 안 따르시겠다는 거죠?”
그들의 반응을 이해할 수 없다는 속뜻이 고스란히 담긴 역질문이었다.
* * *
다섯 살 때였나?
김치찌개에 있는 고기 찾겠다고 숟가락으로 찌개 그릇을 뒤적거리다가, 할아버지에게 크게 혼난 적이 있다.
버르장머리 없다면서.
그래서 그때 이후로 여럿이 먹는 음식을 뒤적거리는 짓은 하지 않았다.
“뭐해요? 뜰 거면 뜨던가, 왜 수프를 뒤적거리고 있어요?”
이사벨은 그 버르장머리 없는 짓을 해대고 있는 나를 보며 물었다.
“좀 이해가 안 돼서 말입니다.”
식사 예의가 아닌 줄은 알지만, 이럴 수밖에 없었다.
아니, 든 거라곤 체르타 열매뿐인데, 어떻게 이런 맛이 나는 거야?
결국, 수프의 비밀(?) 찾기를 포기한 나는 한 국자를 떠서 그릇에 담았다.
벌써 네 그릇째다.
“수프 맛있어 벨 오빠?”
나는 대답 대신 엄지를 척 들었다.
클로이는 함박웃음을 지었다.
“벨이 아니라니까요. 이 남자 이름은 벨져에요, 벨져. 마왕 후보 벨져. 아시겠어요?”
그 와중에 이사벨이 내 이름을 지적하고 나서니, 클로이는 시무룩한 채 입을 틀어막았다.
“아니야. 괜찮으니까 너 편한 대로 불러.”
이름을 멋대로 알려준 내 탓이지 뭐.
그래도 내가 마왕 후보라는 걸 알았음에도 날 대하는 클로이의 태도는 달라지진 않았다.
클로이를 제외한 나머지 모두가 달라져서 문제지.
클리프는 집의 기둥이라도 된 것처럼 바짝 긴장한 얼굴로 구석에서 멀뚱히 서 있었다.
“좀 앉지? 내가 부담돼서 그러는데?”
“아, 예!”
이리저리 눈치를 보던 클리프는 딸의 옆에 간신히 앉았다.
집주인이 자기 집에서 눈치를 보는 요상한 상황.
사실 저 태도가 이해 안 되는 건 아니다.
자기 집에 미래 마왕이 될지도 모르는 마족이 떡하니 앉아있는데, 긴장을 안 할 수가 없겠지.
집 밖에 있는 다른 마족들도 마찬가지일 것이다.
“벨져 님?”
때마침, 거주민들과 대화를 위해 잠시 나갔던 브릴리스가 돌아왔다.
그녀는 나와 대화를 원한다는 무언의 의사를 눈빛으로 전했다.
이에 몸을 일으켜 나가려고 하니,
“저, 저희가 나가겠습니다!”
대뜸 벌떡 일어선 클리프가 아이들을 데리고선 홀라당 나가버렸다.
차마 말릴 여지조차 없었다.
빨리 끝내고 다시 부르자는 마음에 일단 브릴리스를 보며 물었다.
“어때? 얘기해봤어?”
“예. 한데, 저희가 생각했던 것 이상으로 저희를 많이 경계하는 듯 보였습니다. 자꾸 자신들에게 뭘 원하냐고 묻는 것에 이어, 안 따르면 어떻게 되는지도 거듭 물어봤었습니다.”
어떻게 되긴, 뭘 어떻게 돼?
아무 일도 안 일어나지.
“벨져 님께선 저들의 비밀을 굳이 캐물을 필요가 있냐고 하셨지만, 아무래도 뭔가 있긴 있는 것 같습니다. 제 느낌이긴 합니다만, 뭔가 벨져 님을 외부인이라서 경계하는 게 아닌, 마왕 후보이기에 경계하는 듯한 그런 기분이 들었습니다.”
“거봐요. 저 마족들 뭔가 숨기는 게 있다니까요? 떳떳하지 않은 게 있으니, 우리의 호의를 저리 부정적으로 받아들이는 게 아니겠어요?”
이사벨 또한 그럴 줄 알았다며 맞장구쳤다.
떳떳하지 않은 것이라.
낯선 외부인이 주는 호의를 경계하는 거야 당연한 일이다.
단 그 경계의 이유가 나라고 하면 그건 좀 문제가 되겠지.
내가 그들이 지닌 비밀을 알 필요는 없지만,
혹시라도 나를 경계할 수밖에 없는 이유가 있다면, 그건 알아야 한다고 본다.
“일단 여기 주거지가 있단 사실은 우리만 아는 걸로 알자. 다른 온건파 단원들에겐 숨겨줘.”
“그렇게 하겠습니다.”
마수도 토벌했고, 수프도 먹었겠다, 이제 이곳에 볼일은 없다.
더 있어 봐야 여기 마족들만 불편해지겠지.
먹은 그릇을 가지런히 정리한 후, 집에서 나왔다.
“벨 오빠 가는 거야?”
집 앞에서 쭉 기다리고 있던 클로이가 서운한 표정을 보였다.
“응. 수프 잘 먹었어. 진짜 맛있더라.”
“먹고 싶으면 나중에 또 와! 언제든지 또 만들어 줄 수 있으니까!”
오기만 하면 맛난 음식을 대접해준다는데, 싫어할 바보는 없다.
그래, 나야 뭐 나쁘지 않은 일이긴 한데,
아마 그녀의 아빠를 비롯한 다른 마족들은 내가 오는 걸 썩 좋아하지 않을 것 같다.
중간중간 숨어서 나를 보는 얼굴들이 아주 가관이다.
“그래 나중에 시간 되면 또 올게.”
“꼭 와야 해! 자 약속!”
클로이는 아예 새끼손가락까지 내밀며 약속을 요구했다.
나는 부드럽게 손가락을 걸어 고리를 만들어 주었다.
그 약속을 끝으로 우리는 거주지에서 나왔다.
나오자마자 메이가 물었다.
“벨져 님. 이 거주지에 다시 오실 생각이신가요?”
“응. 그래야지.”
“언제 오시려고요?”
“내일.”
세 여인은 짜기라도 한 듯 제자리에 멈춰 서서 나를 봤다.
“저분들이 부담스러워하지 않겠습니까?”
“그럼 부담스러워하지 않을 때까지 와야지. 원래 원수도 자주 보면 친근감이 생기는 법이야.”
나를 경계해서 문제라면, 나를 경계하지 않게 만들어 주면 된다.
저런 환경에 사는 마족들의 신뢰를 못 얻는다면, 설사 영지를 만든다고 한들, 능력 있는 마족들의 신뢰 어찌 얻을 수 있겠는가?
그렇게 작지만 위대한 계획의 첫걸음이 시작되는가 했지만,
다음 날 아침,
브릴리스가 내게 급보를 전했다.
“벨져 님. 거주지에 있던 마족들이 전부 사라졌습니다!”
첫걸음을 내딛긴커녕, 열 걸음 후퇴했다.
* * *
졸졸 흐르는 계곡물을 따라 정처 없는 길을 이어 나가는 마족들.
새벽부터 출발한 탓에 저마다 얼굴엔 피곤함이 가득했다.
“아빠 우리 어디로 가는 거야?”
“더 안전한 곳으로…….”
“거기가 어딘데?”
딸의 순수한 질문에 클리프는 대답할 말이 없었다.
클리프만이 아닌 여기 있는 마족 중 그 누구도 대답할 수 없었다.
자신들은 지금, 어디로 가고 있는지.
“우리 이렇게 말없이 가도 되는 거야? 혹시 벨 오빠가 다시 올지 모르잖아.”
그 말에 클리프는 가던 발걸음을 멈췄다.
그러곤 클로이의 어깨를 붙잡으며, 눈을 똑바로 마주했다.
“잘 들으렴 클로이. 우리는 그 벨져라고 하는 마족과 가까이 지내면 안 돼.”
“왜?”
“그는 마왕 후보야. 우리에게 있어 마왕 후보는 그러니까…. 매우 위험한 마족인 거야. 알겠니?”
“아니, 모르겠어.”
클로이는 이해할 수 없다며 고개를 저었다.
“벨 오빠는 우릴 위해 마수도 잡아주고, 클로이랑 같이 열매도 따줬잖아? 그런데 왜 위험하다는 거야?”
딸의 당찬 반문에 클리프는 고개를 푹 떨궜다.
긴 한숨을 쉰 후 다시 고개를 든 그의 얼굴엔 약간의 눈물이 맺혀 있었다.
“클로이. 아빠는 말이야. 너와 레오의 웃음을 지켜주고 싶단다. 너희만큼은 꼭 그렇게 해주고 싶어. 그러니, 지금은 아빠 말을 따라주렴. 알겠니?”
클로이는 끝내 고개를 끄덕였지만, 얼굴엔 여전히 혼란이 가득했다.
일단 동생의 손을 잡으며 아빠의 뒤를 졸졸 따르고 있긴 하지만, 떠나온 집이 자꾸만 신경 쓰이는지 자꾸만 뒤를 돌아보았다.
-스슥
그때 앞서가던 행렬의 앞 수풀 사이로 소리가 들렸다.
소리에 이어 수풀 사이로 익숙한 마수의 얼굴이 드러났다.
데빌 울프였다.
“데빌 울프?”
“고작 한 마리뿐이잖아? 저 정도면 해치울 수 있어!”
일부 힘을 쓸 수 있는 마족들이 앞으로 나섰다.
마수긴 해도, 데빌 울프 하나면 성인 마족 몇이면 충분히 상대할 수 있다고 본 것이다.
하지만,
-툭
수풀 속에서 나타난 데빌 울프의 목이 대뜸 땅으로 힘없이 곤두박질쳤다.
그와 함께 마족들의 전의도 함께 곤두박질쳤다.
이윽고 수풀 속에선 괴상한 식물의 줄기 수십 개의 꾸물꾸물 흘러나왔다.
마족들 앞에 나타난 마수는 데빌 울프가 아니었다.
“포르기네이?”
식물형 마수 포르기네이.
거주지 주변에 있던 포르기네이는 벨져가 대부분 처리했지만, 현재 마족들이 있는 곳은 거주지를 한참 벗어난 장소였다.
즉, 새로운 포르기네이를 마주친다 해도 전혀 이상하지 않았을 상황이었다.
마족들은 전부 빙결 마법이라도 걸린 듯 몸이 얼어붙고 말았다.
“도, 도망쳐야 해!”
즉각 몸을 돌리고 달아나야 한단 걸 알지만, 마음과 다르게 좀처럼 몸이 움직여주지 않았다.
포르기네이는 그런 겁에 질린 마족들을 보는 걸 즐기려는 듯,
빠르지 않게, 천천히 양쪽의 거리를 좁혀 나갔다.
모두가 절체절명에 상황에 직면한 그때,
-쐐액!
마족들의 머리 위로 낯선 마력의 검기가 지나갔다.
검기는 앞을 가로막은 포르기네이의 머리를 정통으로 갈랐다.
-화륵!
검기가 베인 자리엔 검은 불꽃이 피어올랐으며, 순식간에 포르기네이의 전신을 뒤덮였다.
불길에 휩싸인 포르기네이는 이렇다 할 저항도 못 해본 채, 신음을 내며 힘없이 쓰러졌다.
모두가 무슨 상황인지 못해 얼떨떨해하는 사이,
익숙한 인기척을 느낀 클로이가 뒤를 돌아보며 외쳤다.
“벨 오빠!”
그는 전력으로 달려온 듯, 얼굴에서 땀이 줄줄 흐르고 있었다.
(다음 편에서 계속)