Hero Wants to Become the Demon King RAW novel - Chapter 77
제77화. 탈주민
한 시간 전.
마족들이 사라졌다는 급보를 받은 벨져는 아침 단련도 때려치우고, 부리나케 거주지로 향했다.
허겁지겁 찾아온 벨져를 반겨준 건 공허한 바람뿐.
마족들의 모습은 어디에도 보이지 않았다.
일단 마수나 다른 무언가가 급습한 흔적은 보이지 않았다.
그럼 생각해볼 가능성은 하나뿐이었다.
“떠난 건가?”
기껏 살아온 기존의 보금자리를 미련 없이 버린 채, 새로운 보금자리를 찾아 떠난 것.
벨져로선 이것 말곤 당장 떠오르는 게 없었다.
“이쯤 되니, 나도 궁금해지네요. 대체 얼마나 대단한 비밀을 가지고 있길래, 하루 만에 도망칠 결단을 내린 건지…….”
이사벨은 밖에 널브러진 숟가락을 들어 보이며, 흥미롭단 표정을 지었다.
“좋게 생각해요, 벨져. 우리로선 신경 쓸 거리가 줄어든 것 아니겠어요? 나쁠 건 없다고 봐요.”
“하지만, 여기에 먼저 산 건 그들이지 않습니까? 이래서야, 저희가 거주지를 뺏은 것밖에 안 됩니다.”
“먼저 살았다고 해서, 소유권이 있는 것도 아니잖아요? 어차피 마왕이 되면 여기뿐만 아니라, 마계의 모든 땅이 다 당신 소유가 될 텐데, 뭐가 문제겠어요?”
그건 어디까지나 마왕이 됐을 때의 일이지 않은가?
지금의 벨져는 엄연히 마왕이 아니었다.
“그들은 우리가 싫어서 떠난 거예요.”
이사벨은 한술 더 떠 아예 쐐기를 박았다.
확실한 건 없다.
하지만 상황이 말해주고 있다.
마족들은 자신들 때문에 떠난 것이라고.
마음이 매우 불편해진 벨져는 말없이 이마를 부여잡았다.
“갈 데는 있는 건가?”
차라리 목적지라도 있으면 다행이다.
허나 냉정하게 봤을 때, 그 마족들에게 갈 곳은 없어 보였다.
애초에 의지할 존재라는 것 자체가 없는 난민 같던 이들 아니던가?
눈앞에선 자꾸만 클로이의 웃는 모습이 아른거렸다.
그러면서도 아빠와 동생 손을 붙잡으며 힘겹게 움직이고 있을 생각을 하자니, 마음이 매우 불편했다.
“이사벨 님.”
“왜요?”
“이사벨 님께선 예전에 저란 놈의 속은 훤히 보인다고 하셨었죠?”
뜬금없는 질문에 이사벨은 미간을 좁혔다.
“그러긴 했죠?”
“지금도 보이십니까? 제가 무슨 생각을 하는지?”
그 말에 이사벨은 가만히 벨져의 얼굴을 쳐다보았다.
“네 보이네요. 그들이 어디로 갔을지 알고 싶다는 생각을 하는 게……”
“그렇군요. 확실히 그런 것 같습니다.”
벨져는 알았다는 듯 고개를 끄덕였다.
어이가 없어진 이사벨은 헛웃음을 지었다.
“아니, 자기 속내를 남에게 물어보고 판단하는 마족이 어딨어요?”
“원래 자신의 모습은 자신과 가장 가까이 있는 이가 제일 잘 봐준다고 했습니다.”
“뭐, 뭐에요? 그 근거 없는 논리는?”
벨져는 아랑곳하지 않고, 사라진 마족들의 흔적을 찾기 위한 수색을 시작했다.
그 모습을 본 이사벨은 한숨을 내쉬었다.
“그런 식으로 찾아서 언제 찾으려고요? 따라와요. 그들이 간 곳으로 안내해 줄 테니까.”
벨져는 벌떡 일어섰다.
“그들이 어디로 갔는지 아시는 겁니까?”
이사벨은 말없이 손가락으로 어느 한 방향을 가리켰다.
곧 가리킨 방향으로부터 시원한 바람이 불어와 둘의 콧잔등을 스쳤다.
“조금 빨리 가야 할 것 같은데요?”
이사벨은 어떤 냄새를 맡은 듯, 조금 다급해진 목소리로 말했다.
“하필이면, 여기보다 마수들이 더 득실거리는 곳으로 갔어요.”
그 말에 벨져의 눈동자가 크게 흔들렸다.
* * *
아슬아슬했던 상황.
1분 아니, 30초만 늦었어도 지금 여기 있는 마족 중 절반은 못 봤을 것이다.
일단 처리한 포르기네이에 이어, 다른 마수가 있는지 살피고자 주변을 주시했다.
없는 걸 확인하고선, 검을 집어넣었다.
“벨 오빠!”
그러자 기다렸다는 듯 클로이가 달려와 품에 안겼다.
전력으로 달려온 보람이 있네.
나는 말없이 클로이의 등을 토닥이며, 마수를 보고 놀란 마음을 다독여 주었다.
그러다 공중에서 날 보고 있는 어느 익숙한 녹색 머리의 소녀와 마주쳤다.
소녀는 날 보고서 반갑게 손을 흔들었다.
바람의 정령 실프.
이 사태를 예측한 이사벨이 어제 거주지를 떠나기 전, 소환한 정령이다.
“늦지는 않은 모양이네요….”
뒤쫓아온 이사벨이 실프와 마족들의 모습을 보며 안도의 숨을 내쉬었다.
그녀가 아니었다면, 지금 내 품에 안긴 클로이의 온기를 느낄 수 없었겠지.
하여튼 대단한 여자다.
실프는 이사벨의 곁으로 날아가더니, 대뜸 그녀의 귀에 뭔가를 속삭였다.
이에 이사벨의 표정이 크게 변했다.
“어쩐지. 좀 익숙하다 싶더니만…….”
이사벨은 알 수 없는 혼잣말을 하며 어리둥절한 마족들 사이로 터벅터벅 걸어 나갔다.
그러곤 그들의 얼굴을 쭉 훑어보며 말했다.
“당신들, 나 본 적 있죠? 멀리서든, 가까이서든.”
마족들은 대답하지 않았다.
다만 적잖이 눈치를 보는 걸로 봐선, 뭔가 찔리는 구석은 있어 보였다.
“본인들 입으로 말할 생각은 없어 보이니, 그냥 내가 말해야겠네요.”
이사벨은 팔짱을 낀 도도한 자세로 다시 나를 보았다.
“이 마족들, 이라 가문의 영지민들이에요.”
“이라 가문이요? 그렇다면…….”
“분노의 종주, 베누스 후보의 땅에 살던 마족들이란 뜻이죠. 예전에 나와 함께 그자의 영지를 돌아봤던 실프의 기억이니, 확실할 거예요.”
그 말을 듣자마자, 내 시선은 마족들에게 향했다.
클로이 같은 어린아이들은 그게 왜 문제인지 몰라 어리둥절한 것에 반해,
어른들은 자포자기라도 한 것마냥 죄다 고개를 푹 떨구고 있었다.
흠, 이 복잡 미묘한 기분을 뭐라 설명해야 할까?
다른 후보의 영지민. 그래 뭐 좋다 이거야.
그래서 그게 나를 경계한 것과 무슨 관계가 있다는 건데?
이들의 정체를 알았다곤 하나, 내 의문은 여전히 해소되지 않았다.
“대, 대체 저희에게 왜 이렇게까지 해주시는 겁니까?”
가장 먼저 입을 연 클리프가 내게 무릎을 꿇으며 따지듯 물었다.
나도 좀 묻고 싶다.
당신들은 대체 왜 이리 날 경계하는 거냐고.
서로의 의문을 해소하기 위한 방법은 진중한 대화밖에 없기에,
나는 곧바로 대화의 자리를 만들었다.
대표로 나선 클리프가 이야기를 시작했다.
“그동안 숨겨서 죄송합니다. 말씀하신 것처럼, 저희는 마계 북서쪽, 적림(赤林)지대에서 넘어온 마족들입니다. 지금은 베누스 후보님께서 영지로 관리하고 계신 곳이죠…….”
당연하지만, 나한테 사과할 일은 아니다.
일단은 이야기를 계속 들어보기로 했다.
“저, 정말 염치없지만 하나만 묻겠습니다. 저희에게 이리 호의를 베풀어주시는 이유가 뭡니까?”
“큰 이유는 없어.”
“그럼 저희를 그냥 보내주시면 안 되겠습니까? 아예 처음부터 못 봤던 것처럼, 저희를 잊어주십시오. 저희도 당신과 관련된 기억을 머릿속에서 완전히 지우겠습니다!”
“보내주면, 갈 곳은 있고?”
클리프는 대답하지 못했다.
있을 리가 없겠지.
알면서도 물어봤다.
“내가 마왕 후보이기 때문이야? 그게 날 경계하는 이유야?”
“예…….”
“당신들이 다른 영지의 출신이라는 것과, 내가 마왕 후보인 게 무슨 관계가 있다는 거지?”
클리프는 이번에도 대답하지 못했다.
이쯤 오니 하나 느낀 게 있다.
이 마족들에겐 지금, 일종의 트라우마 같은 게 있다고.
영지, 혹은 마왕 후보와 관련해서 절대 다시 겪고 싶지 않을 끔찍한 경험이 이들의 몸에 각인되어 있다.
어쩌면 둘 다일 수도 있겠지.
나는 질문을 이어 나갔다.
“혹시 그 베누스란 자의 영지에 살면서, 안 좋은 일이라도 겪은 거야?”
그 말 한 번에 이사벨과 아이들을 제외한 마족들의 표정이 싹 변했다.
갑자기 단체로 감기라도 걸린 걸까?
죄다 양팔을 잡으며 벌벌 떨다 못해 일부는 구토까지 하며 바닥에 엎어졌다.
안쓰럽다 못해 불쌍할 지경이다.
“아빠 괜찮아?”
오죽하면 클로이가 다가와 그의 상태를 살폈다.
딸의 얼굴을 본 클리프는 급기야 날 향해 머리를 조아린 것도 모자라, 손까지 모으며 간절히 호소했다.
“제, 제발! 제발! 이렇게 부탁드리겠습니다! 저희를 그냥 모른 척해주십시오! 저희가 살아있단 사실이 베누스 님의 귀에 들어가기라도 한다면……!”
클리프는 뒷말을 잇지 못해 다시 한번 고개를 떨궜다.
“저희를 지켜주실 게 아니라면, 제발…….”
“지켜줄게.”
모든 마족의 시선이 내게 향했다.
“바, 방금 뭐라고?”
“지켜준다고 했어. 단, 조건이 하나 있어.”
“조건이요?”
“여기 있는 모두가 내 영지민이 되어야 해.”
영지민이란 말에 마족들의 표정이 또 한 번 뒤 바뀌었다.
신뢰 없는 관계는 언제 터질지 모를 시한폭탄과도 같다.
내가 조건 없는 순수한 호의로 이들을 지키려고 한들, 정작 나에 대한 믿음이 이들에게 없다면 그게 무슨 의미가 있겠는가?
이들도 나를 믿어야 한다.
그래야 나도 이들을 지켜줄 수 있다.
“여, 영지민이 되면…. 그다음엔, 어떻게 되는 겁니까?”
“살아.”
나는 단호하게 대답했다.
“그냥 눈치 보지 말고 살면 돼. 지금보다 훨씬 더 좋은 환경에서.”
아무 조건 없이, 그냥 예전보다 훨씬 더 좋게 살아라.
더 볼 것도 없는 간단하면서도 쉬운 제안이다.
허나 이런 간단한 제안을 했음에도 어느 마족 하나 미소를 보이는 이 없었다.
딱 한 명,
“그럼 벨 오빠의 땅에서 사는 거야, 우리?”
클로이만이 나를 보며 환하게 웃고 있었다.
* * *
어느 세계든 있다.
소위 ‘탈주’라고 하지?
소속되어 있는 영지 혹은 국가의 구속에서 벗어나 자유롭게 살고자 하는 행위.
내가 원래 살던 나라로부터 조금 더 위에 있는 나라에선, 비일비재하게 일어났던 일이다.
분노의 종주, 베누스 이라의 영지.
이전에 그곳을 방문했던 이사벨은 그의 영지를 한 문장으로 평가했다.
‘좋아 보인다.’
‘좋다’가 아닌, 좋아 ‘보인다’
겉으로 보이는 게 다가 아니란 뜻이다.
이사벨이 본 대로 정말 베누스 후보의 영지가 역병의 근원지라는 생각이 전혀 안들만큼 평화롭고, 영지민들도 매우 행복하게 살고 있다면,
왜 저런 탈주민들이 생겨났겠는가?
분명 어떤 문제가 있기 때문에 저렇게 단체로 도망을 나온 것이다.
그 문제가 무엇인지에 관해서도 추가로 묻고 싶었지만, 거기까진 알지 못했다.
물어보려 해도, 베누스란 이름만 언급하면 병에 걸린 것마냥 벌벌 떨어버리니, 도무지 답을 들을 수가 없었다.
일단 마족들은 다시 원래 살던 거주지로 돌려보냈다.
그들이 있다는 사실을 어느 누구에게도 말하지 않는단 약속도 확실히 해줬다.
나를 믿어서 그랬다기보단, 달리 선택지가 없기에 어쩔 수 없이 돌아간 거라 본다.
자 이 상황에 내가 해야 할 일은 뭘까?
하루가 멀다고 거주지로 찾아가 그들을 지키는 것?
아님, 아무 일 없었다는 듯 영지 개발 작업을 계속하는 것?
둘 다 아니다.
내가 할 건 정보 구하기다.
저런 마족들을 이 마계에 돌아다니게 만든 원흉에 관한,
정보 구하기…….
분노의 종주, 베누스 이라.
그 마족에 관한 모든 것을 알아야 한다.
“벨져 님.”
독방에 갇힌 죄수처럼 홀로 있는 내 방으로 브릴리스가 찾아왔다.
“전에 알아보라 하셨던, 마족에 관해 드릴 말씀이 있습니다만…….”
다일 후보의 영지를 다녀왔던 그날 밤,
나는 브릴리스에게 온건파 단원 중 베누스 후보 영지 출신의 마족이 없는지 알아봐 달라고 했다.
그 답을 하기 위해 온 것으로 보였다.
“송구하게도, 저희 단원 중에 그런 마족은 없었습니다.”
“그래? 아쉽네.”
혹시 그 마족들처럼 밝히기를 꺼리는 건 아닐까 하는 생각도 들었다.
근거 없는 추측이기에 바로 생각을 접었다.
흠, 어쩔 수 없나?
한가지 생각이 떠오른 나는 그대로 자리에서 일어났다.
“외출 준비 좀 해줘. 브릴리스.”
“예. 알겠습니다. 한데, 어디로 가시려는 겁니까?”
“암시장.”
브릴리스는 눈을 끔뻑였다.
“암시장이라 하시면, 전에 사이클롭스의 안액을 얻기 위해 다녀오셨던 그 암시장 말씀이십니까?”
“어. 맞아.”
“뭔가 필요하신 물건이라도 생기신 거지?”
“물건보단, 마족이 필요하다고 해야겠지?”
마족이 가지고 있는 정보를 얻기 위해 찾아가는 거다.
이 마계에서 가장 식견이 높다는 그녀라면 적잖게 알고 있을 테지.
“마르샤 해멀린…….”
지난 100년간 마계에서 일어난 모든 일에 관해.
(다음 편에서 계속)