Hero Wants to Become the Demon King RAW novel - Chapter 80
제80화. 떠돌이 의사
북쪽으로 가면 날씨가 추워지는 레지에타나 지구에 반해,
이 마계 대륙은 북쪽으로 갈수록 오히려 따뜻해지는 기이한 날씨 구조를 지니고 있다.
단순히 온도만 상승하는 거면 내가 말을 안 한다.
마른하늘에 날벼락이 치는 건 기본,
어쩔 땐 수해가 벌어져도 이상하지 않을 만큼 폭우가 쏟아지기도 하며,
눈을 뜨기 힘들 정도의 건조한 바람이 종일 불기도 한다.
진짜 욕을 뱉지 않고선 못 배길 지랄 맞은 날씨가 아닐 수 없다.
그 지랄 맞은 날씨를 뚫고 두 번째 여정을 이어 나간 지도 어느덧 이 주째.
나와 메이는 현재, 목적지로 삼았던 적림을 코앞에 두고 있다.
시간으로 따지면 약 두 시간 정도?
마음 같아선 주저할 것 없이, 이대로 이라 가문의 본가까지 쳐들어가고 싶지만,
-쏴아아아!
미친 듯이 퍼붓는 비 때문에 지금 잠시 멈춘 상태다.
“하늘에 구멍이라도 났나…….”
창문 너머로 들려오는 요란한 빗소리를 듣고 있자니, 혼잣말이 튀어나왔다.
이래서야 마치 가지 말라는 거 같지 않은가?
뭐 급할수록 쉬어가란 말도 있다고, 적림에 입성하기 전에 잠깐이나마 몸과 마음을 정리할 여유의 시간을 가진다고 보면 좋겠지만,
어째 몸이 계속 근질거린단 말이지?
청해 때와는 다르게 한시라도 빨리, 그 베누스란 놈과 만나고 싶단 생각이 머리에 가득하다.
“밥이나 먹으러 가자 메이야.”
“네.”
그치지 않는 비를 계속 봐야 짜증만 날 터.
허기라도 달래자는 마음에 메이를 데리고 여관 1층 식당으로 내려갔다.
그래도 오는 동안엔 별다른 이벤트는 발생하지 않았다.
비교적 평화로운 마을에서, 평화로운 마족들을 만나, 평화로운 여정이 계속 이어져 왔지만,
“도와주십시오!”
입이 방정이라고, 바로 이벤트가 발생하고 말았다.
1층 바닥에 딱 발을 대자마자, 여관 정문으로 한 마족이 도움을 요청했다.
“누, 누구 치유 마법 가능한 분 없으십니까? 여기 큰 상처를 입은 마족이 있습니다!”
앳된 얼굴의 남마족은 또래로 보이는 남마족을 부축한 채, 여관 내 마족들을 보며 호소했다.
부축을 받는 마족의 오른팔엔 커다란 상처가 보였으며, 안에선 피가 줄줄 흐르고 있었다.
치명적인 상처는 아니라곤 하나, 놔뒀다간 과다 출혈로 정신을 잃을 수도 있기에, 빠른 치료가 필요해 보였다.
물론 난 저 상처를 치료해 줄 수 있는 치유 마법을 구사하지 못한다.
주변에 다른 마족들을 봐도 마찬가지.
뭐 그래도 아예 없다는 건 아니다.
“제가 다녀올게요!”
일말의 주저함도 없이 메이가 앞으로 달려갔다.
장차 마법이란 마법은 모두 섭렵할 내 기특한 퍼밀리어라면, 저런 상처쯤이야 우습게 치료하겠지.
큰 문제는 없을 것 같아 얌전히 지켜보던 그때,
“팔을 드세요! 심장보다 위로!”
갑자기 정문에서 웬 안경을 쓴 남마족이 나타났다.
“조금 따끔하실 겁니다!”
“예? 아아악!”
환자가 경황을 차릴 겨를도 없이, 안경쟁이 마족은 가방에서 꺼낸 약병을 상처 위로 기울였다.
환자는 고통에 움찔거렸지만, 그는 아랑곳하지 않고 소독약처럼 보이는 약병을 세심하게 뿌려댔다.
소독을 마친 후엔 바로 또 다른 약병을 꺼냈다.
연고와 비슷한 바르는 약으로 보였다.
“어디서 이런 상처를 입으신 겁니까?”
“시, 식량을 구하기 위해 숲을 돌아다니다가, 웬 마수와 마주쳐서 그만…….”
치료하는 와중에도 다친 경위도 묻는 그였다.
소독과 약 바르기에 이어선, 붕대를 이용해 봉합까지 하니,
그야말로 오랜만에 보는 완벽한 지구식(?) 치료 과정이었다.
“어, 뭔가 제가 할 일은 없어 보이네요?”
“그런 것 같네. 다행이지 뭐. 우연찮게 의사가 나타나 줬으니.”
“신기해요. 저런 식으로도 상처를 치유할 수 있다니…….”
메이는 생소한 광경이라는 듯 흥미롭단 반응을 보였다.
무리는 아닐 것이다.
레지에타나 마계 같은 마법이 일상화가 된 세계에선 치유 마법을 통한 치료가 훨씬 더 효과적인 만큼, 저런 인위적인 치료는 무척 낯설게 보일 것이다.
당장 내가 봐도 어색할 정도면 말 다 했지.
“그 공격당했다던 마수의 생김새를 기억하십니까??”
치료를 끝낸 안경잡이 마족은 곧바로 마수에 대해 캐물었다.
연이은 추궁에 환자는 조금 더듬댔지만, 그래도 자신이 본 마수의 특징을 술술 설명했다.
대충 듣고 있자니, 어떤 놈인지 감이 왔다.
때마침 비도 누그러졌겠다, 지금 가서 처리해 버릴까?
“다녀오시려고요?”
그런 내 낌새를 벌써 눈치챘는지, 메이가 눈을 밝히며 물었다.
“응. 음식은 아무거나 시켜놔. 나올 때쯤 다시 돌아올게.”
찝찝한 상태로 밥을 욱여넣는 것보다야, 다녀와서 편하게 먹는 게 낫겠지.
그렇게 메이만 여관에 놔두고 다녀오기를 약 20분.
가벼운 산책을 끝내고 돌아오니, 음식이 준비되어 있었다.
그렇게 마수를 잡으면서 허기진 배를 채우고자 수저를 든 순간,
“시, 실례하겠습니다!”
웬 낯선 마족 한 명이 우리 테이블로 다가왔다.
아까 환자를 치유했던 그 안경쟁이 마족이었다.
아직 안 갔었나?
“식사 중에 죄송합니다만, 하나만 여쭙겠습니다. 혹시 지금 마수를 잡고 오시는 길입니까?”
나는 수저를 들고 입을 벌린 상태로 그를 가만히 바라보았다.
“아, 별다른 뜻은 없습니다! 좀 전에 여관을 나가실 때 눈이 심상치 않아 보이시길래, 게다가 피도 묻어있으셔서…….”
그는 말하면서 내 셔츠를 가리켰다.
자연스레 고개를 내려보니, 옷깃에 핏자국이 두 방울 정도 묻어있었다.
“알려지길 원치 않으신다면 말하지 않겠습니다! 전 그저 감사 인사를 전하고 싶어서 온 것입니다! 귀공 덕분에 마수로 인해 다른 마족들이 다칠 일은 없게 됐네요! 정말 감사합니다!”
마을 촌장한테나 들을 법한 감사를, 무슨 나랑 나이도 같아 보이는 안경쟁이에게 받고 앉아있다.
살짝 어이가 없는 마음에 수저를 놓고, 허리를 숙인 그를 응시했다.
“그쪽, 이 마을에 삽니까?”
“아, 사는 건 아닙니다! 그러고 보니 소개가 늦었군요! 전 ‘코흐’라고 합니다. 보시다시피 별 볼 일 없는 떠돌이 의사죠.”
그는 의약품이 들어있는 자신의 가방을 보이며 신분을 밝혔다.
“마계 곳곳을 돌아다니면서, 다치거나 병든 마족들을 치료하는 일을 하고 있습니다. 조금 전의 환자는 마수에게 당했다고 하길래, 그 마수로 인해 다른 피해자가 발생하진 않을까 걱정했었는데, 귀공께서 잡아주신 덕에 한시름 놨습니다.”
떠돌이 의사라.
레지에타에서도 흔히 보기 힘든 희귀 직종을 이런 데서 다 보네.
“확실히 목적지에 가까워질수록, 마수의 출현이 잦아지는 것 같군요. 이래서 적림에 가도 괜찮을지…….”
“적림?”
그냥 넘길 수 없는 말을 들어버렸다.
나를 대신해 메이가 물었다.
“코흐 씨는 적림으로 가시던 길이었나요?”
“아! 예 그렇습니다. 개인적으로 역병에 관해 조사할 게 좀 있어서 말입니다.”
나와 메이의 표정이 동시에 변했다.
우리가 역병에 관심이 있음을 눈치챈 듯, 코흐는 살짝 미소를 띠었다.
“귀공께서도 적림에서 퍼진 역병에 관심이 있으십니까?”
“그 역병이라면 이미 한참 전에 정화된 거 아니었습니까?”
“큰일 날 말씀을 하시는군요. 역병은 아직 정화되지 않았습니다.”
코흐는 단호한 표정으로 말했다.
“역병의 잔재는 아직 적림에 고스란히 남아있습니다. 남은 것만이 아닌, 이전보다 훨씬 더 치명적인 증상과 파급력을 지닌 새로운 단계로 진화하고 있죠.”
“근거라도 있는 건가요?”
메이의 물음에 코흐는 사뭇 비장한 표정으로 다시 가방을 뒤적거렸다.
곧 일반 약 병보다 좀 더 작은 크기의 병을 우리 앞에 꺼내 보였다.
병 속의 내용물을 본 순간, 미간이 찌푸려졌다.
“이게 그 증거입니다.”
병에 든 것은 재라도 묻은 듯 까맣게 변색된 어느 마족의 손가락이었다.
“이 손가락은 과거 역병의 걸려 사망했던 마족의 신체 일부입니다. 무려 수십 년이 지났음에도, 썩지 않고 당시의 상태를 그대로 유지하고 있습니다.”
“이게 왜 그쪽 손에?”
“이 손가락의 주인은 역병에 걸린 채로 적림을 나와 그 근교를 돌아다니다가 사망했었습니다. 썩지 않는 시체에 관심을 보였던 한 마족이 손가락을 도려서 가지고 있던 게, 지금의 저한테까지 온 것이죠.”
코흐의 침 넘기는 소리가 선명하게 울렸다.
“적림을 오염시켰던 역병의 기세는 누그러든 게 맞습니다. 하지만 지금 보시는 것처럼 그 잔재는 당시 감염된 마족들의 몸과 지물에 고스란히 남아있습니다. 이게 무얼 의미하겠습니까? 언제 그 기세가 다시 확산해도 전혀 이상하지 않다는 겁니다.”
“그래서 그 역병의 잔재를 조사하러 적림에 가는 중이셨다? 생명을 지키는 의사로서?”
코흐는 고개를 끄덕였다.
저 말이 진심인지, 거짓인진 아직 알 수 없지만,
내가 해야 할 일이 하나 정해졌다.
“당신. 나랑 좀 가지.”
“예?”
“우리도 적림으로 가던 중이야. 당신이 조사한다는 그 역병. 내가 조사할 수 있도록 도와줄게.”
“그, 그래 주신다면 저야 정말 감사하죠!”
코흐는 매우 반색하며 받아들였다.
때마침 밖을 보니 비도 그쳤다.
지체할 필요 없이 바로 가잔 마음에 몸을 일으켰다.
“그러고 보니, 아직 귀공분의 존함을…….”
“가자, 메이야.”
“네 ,벨져 님!”
메이의 호명에 코흐는 앉은 채로 고개를 갸웃했다.
“베, 벨져 님이요?”
다시 말하지만, 현재 이 마계에서 내 이름을 모르는 마족은 없다.
떠돌이 의사라고 하면 더더욱 잘 알겠지.
“그게 내 이름이야.”
코흐는 약 10초 정도 몸이 석상처럼 굳고 말았다.
* * *
비가 어느 정도 그치는가 싶더니만, 적림에 입성한 순간 거짓말처럼 다시 퍼붓기 시작했다.
무리하게 갈 이유는 없기에, 일단 큰 나무 밑동에서 비를 피하기로 했다.
적림이란 이름에 걸맞게 주변은 빨간색으로 가득했다.
어째 썩 보기 좋단 느낌은 들지 않았다.
“코흐 님께선 치유 마법 같은 건 전혀 안 쓰시는 건가요?”
적적해지는 분위기 속에서 메이가 코흐에게 말을 걸었다.
“예 그렇습니다. 애석하게도 제 몸은 마력이란 게 전혀 발현되지 않는 구제 불능의 몸이라서 말이죠.”
“구제 불능이라니요! 마법이 아닌 다른 방식으로 마족을 살릴 수 있는 능력을 갖추신 거잖아요? 전 정말로 대단하다고 생각해요!”
“좋게 봐주셔서 감사합니다.”
마력이 발현되지 않는 몸이라고?
마족으로 태어났으면 손톱만 한 크기라도 마력을 발현할 수 있어야 정상 아닌가?
살짝 이상하단 생각이 든 순간,
“우흐우우우…….”
숲 어딘가에서 괴상한 소리가 울렸다.
웃음인지 울음인지 구분하기 힘든 오싹한 소리.
얼굴이 찌푸려짐과 더불어 뒷목에 소름이 돋았다.
이에 코흐가 벌떡 일어나며 말했다.
“설마… 밴시?”
“밴시?”
“예! 적림에 돌아다닌다고 알려진, 여인의 목소리를 내는 마수입니다. 주로 숲을 돌아다니며 구슬픈 울음소리를 낸다고 들었습니다!”
이사벨에게도 얼핏 들은 것 같다.
숲을 거닐다 보면 이따금 괴상한 소리가 들리는데, 직접적인 해를 가하지 않으니, 그리 경계할 필요는 없다고 했었지.
하지만,
-찰랑
우리가 머물고 있는 나무 밑동으로부터 바로 뒤.
젖은 바닥을 밟는 발소리가 들렸다.
나는 바로 검 자루를 잡았다.
“히히히…….”
발소리는 점점 더 가까워졌으며, 거기에 기분 나쁜 웃음소리까지 연이어 들려왔다.
목적이 뭐든 간에 우리를 향해 오는 건 확실한 상황.
슬그머니 밑동에 몸을 기대며, 목소리의 주인이 오기를 차분히 기다렸다.
마침내 나와 그녀의 거리가 코앞까지 가까워진 순간,
-스릉
바로 검을 뽑아 얼굴에 겨눴다.
-후두두두
거칠게 쏟아지는 빗소리가 고막을 울렸다.
울음소리를 내는 마수라길래, 투명한 형태의 유령을 닮은 마수라고 생각했지만,
아니었다.
“벨져 후보님이십니까?”
애초에 마수도 아니었다.
목 끝에 검이 겨눠진 상황에도 당황하지 않고 내게 말을 건네기까지 한 그녀는,
“베누스 님의 명을 받고 모시러 왔습니다.”
영락없는 마족이었다.
(다음 편에서 계속)