Hero Wants to Become the Demon King RAW novel - Chapter 88
제88화. 예고
벨져와 베누스. 두 후보의 진실 게임과 뒤처리가 이어지는 사이,
메이 쪽과 합류한 도로시, 코흐는 벨져의 지시대로 이라 가문의 본가를 벗어나기 위해 복도를 달렸다.
마침내 도착한 현관 정문 앞.
“멈추십시오.”
다급히 나가려는 그들의 앞을 저택의 시종들이 가로막았다.
선두에 있던 시녀장이 메이 일행을 향해 이를 갈며 물었다.
“다들, 죽고 싶은 겁니까?”
베누스와 있을 때 지었던 미소는 이미 사라진 지 오래.
웃음이 아닌 공포와 두려움이 어린 표정을 짓고 있었다.
“부탁입니다, 시녀장님! 제발 길을 내어주세요!”
슈아가 나서서 호소했지만, 시녀장은 어림도 없다는 듯 눈을 치켜떴다.
“베누스 님께서 나가라고 지시하셨나요?”
“그, 그건 아니지만…….”
“이리도 뻔뻔할 수가! 당신들을 보내면 우리가 어떤 불행을 겪을지 알면서도 길을 내어달란 말을 하는 겁니까? 당신들을 대신해서 우리보고 죽으라는 건가요?”
슈아는 대답하지 못했다.
“죽으려면 당신들끼리 죽으십시오! 저희까지 휘말리게 하지 말고!”
시녀장은 말을 하면서도 떨림을 주체하지 못했다.
그 모습을 물끄러미 지켜보던 메이는 갑자기 손가락을 올리더니, 정문을 막은 시종들의 수를 세기 시작했다.
수를 확인하고선, 뭔가 난해함을 느낀 듯 입술을 깨물었다.
“오십 명이 조금 넘으려나요…….”
주저하던 것도 잠시,
메이는 매고 있던 가방에서 마력 증강제를 여러 병 꺼냈다.
깜짝 놀란 도로시가 물었다.
“뭘 하시려는 겁니까?”
“저분들의 몸에도 역병의 균이 있는 거죠? 슈아 씨처럼 전부 정화해 드리려고요.”
“예?!”
슈아와 코흐는 물론, 덩달아 그 말을 들은 시종들의 몸이 크게 들썩였다.
“한두 명도 아니고, 무려 오십 명이 넘습니다! 저 많은 마족의 병을 전부 고쳐주시겠다는 겁니까?”
“솔직히 다 될지는 모르겠어요. 하지만 할 수 있을 때까진 해봐야죠.”
메이는 아랑곳하지 않고, 마력 증강제를 계속 들이켰다.
“먼저 오시는 분부터 정화해 드릴게요. 제가 언제 쓰러질지 모르니, 되도록 빨리 받으시는 게 좋을 거예요.”
하지만 시종들은 다가오긴커녕, 어안이 벙벙한 얼굴로 서로를 바라보았다.
이에 도로시가 또 한 번 말렸다.
“벨져 후보님께선 저희보고 빨리 여길 나가라고 하지 않았습니까? 치유도 좋지만 일단 여길 빠져나간 뒤에…….”
“그건 벨져 님께서 원하시는 일이 아니에요.”
잠시 정적이 흘렀다.
“저분들 말대로예요. 저희가 무책임하게 가버리면, 저분들은 저희로 인해 불행을 겪게 될 거예요. 그걸 아는데 어떻게 그냥 가겠어요? 제가 아닌 벨져 님이 계셨어도 똑같이 행동하셨을 거예요.”
초연하게 웃는 메이의 모습에 도로시는 아무런 반박도 할 수 없었다.
그런 도로시를 뒤로한 채, 메이는 시종들의 앞으로 다가갔다.
“먼저 하실 분 없으신가요? 그럼 제가 임의로…….”
-쿠궁!
그때 저택 밖에서 알 수 없는 굉음이 들려왔다.
메이에게 향했던 모두의 시선이 순식간에 밖으로 이동했다.
그리고는 누가 먼저랄 것도 없이 문을 열고 밖으로 나갔다.
“콜록! 콜록!”
문을 열자마자 몰아닥친 흙먼지에 일부가 마른기침을 토했다.
“크흐흐흐!”
잠시 후, 흙먼지 너머에서 들려온 익숙한 웃음소리에 시종들의 몸이 다시 한번 들썩였다.
시종들은 흙먼지가 개일 때까지 제자리에 멈춘 채, 아무것도 하지 못했다.
“베, 베누스 님?”
이윽고 흙먼지 사이로 모습을 드러낸 웃음소리의 주인.
허나 정상적인 상태는 아니었다.
무언가에 의해 당한 듯, 바닥에 팔과 다리를 쫙 편 채로 뻗어 있었다.
이게 어찌 된 일인지 알 수 없어 모두가 혼란스러워하는 사이,
-휙!
옥상 테라스 쪽에서 누군가가 튀어 올라 땅으로 안착했다.
달려 나온 마족들을 등진 채, 쓰러진 베누스를 바라보고 있는 흑발의 마족.
“벨져 님!”
바로 벨져였다.
메이의 반가운 부름에 벨져는 뒤를 돌아봤다.
“뭐야? 너희 아직 안 나갔어?”
벨져의 손에선 누구의 것인지 모를 핏방울이 뚝뚝 흘러내렸다.
“크크큭! 이렇게 속수무책으로 맞는 것도 참 오랜만이군요! 이렇게 맞는 게 일상이었던 시절도 있었지요.”
비틀거리며 몸을 일으키는 베누스를 향해 시안은 또다시 달려들었다.
-퍽!
감정이 실린 주먹에 힘없이 날아가는 베누스.
그 모습을 본 저택의 시종들은 경악을 금치 못했다.
눈, 코, 입, 귀.
베누스의 얼굴에선 피가 안 나오는 곳이 없었다.
백장미처럼 희고 고왔던 그의 피부는 어느새 피에 범벅된 붉은 장미처럼 되고 말았다.
그럼에도 베누스는 얼굴에 못처럼 박은 미소를 거두지 않았다.
눈을 가린 피를 겨우 닦아낸 그는 밖으로 나온 자신의 시종들 보고선 물었다.
“왜들 그런 눈으로 절 보고 있죠?”
그 말에 자동으로 반응하듯, 일부 시종들의 입꼬리가 들썩였다.
“웃으세요. 난 당신들에게 그런 표정을 허용하지 않았습니다.”
자기 얼굴이 피 칠갑이 된 상태에서 웃음을 강요하는 주인이라니.
그의 끝이 안 보이는 광기에 시종들은 몸서리를 치면서도, 입꼬리는 자연스레 양쪽으로 올라가고 있었다.
“나도 너보고 웃으라고 한 적 없어.”
벨져는 가당치도 않다는 듯 그런 베누스의 얼굴을 발로 걷어찼다.
허나 벨져가 찬 것은 그의 머리가 아닌 빈 허공이었다.
어느샌가 뒤로 멀찍이 이동한 베누스는 옷으로 얼굴에 묻은 피를 닦아내었다.
“호? 이건 또 뭘까요?”
피를 닦던 그는 문득, 마족들 사이에서 자리한 슈아를 발견하고선 눈을 번뜩였다.
“그대에게선 역병의 기운이 느껴지지 않는군요? 설마 정화한 겁니까?”
도로시는 그런 슈아를 자신의 뒤로 보내며 가려주었다.
그 앞을 또 코흐가 가로막더니, 갑자기 베누스에게 삿대질하며 소리쳤다.
“분노의 종주여! 당신이 역병을 퍼트렸다는 게 사실입니까!”
난데없는 돌발 행동에 도로시와 슈아는 물론, 벨져도 살짝 당황했다.
“대답하십시오! 당신이 역병을 내세워 적림의 마족들을 유린한 게 사실이냔 말입니다!!”
“유린?”
베누스는 가당치도 않다는 듯 특유의 웃음으로 답을 대신했다.
그러면서 손가락으로 코흐와 벨져 그리고 도로시 뒤에 숨은 슈아를 가리키며 말했다.
“당신들이야 외부인이니 그렇다 쳐도, 왜 내 땅의 영지민인 그대에게선 역병의 기운이 안 느껴지는 거죠?”
“제가 정화했으니까요!”
메이는 당당히 나서며 자신이 한 일임을 밝혔다.
“재밌군요! 역병의 균을 없애면 나한테서 벗어날 수 있을 거라 봤나요?”
“적어도 널 보며 굽실댈 이유는 없어지겠지.”
대답은 벨져가 대신했다.
“하하하! 끝을 맺을 수 없는 일은 시작하지도 말라고 했습니다! 저 여인을 시작으로 적림에 사는 모든 마족의 몸을 정화해주기라도 하실 겁니까?”
벨져는 대답할 가치도 없다는 듯 코웃음을 치며 고개를 저었다.
베누스는 아랑곳하지 않고, 자신의 시종들을 보며 물었다.
“그대들이 한번 말해 보시지요! 정녕 역병에서 해방되어, 내게서 벗어나고 싶으십니까?”
시종들은 바로 답하지 못했다.
그저 서로를 보며 눈치만 볼 뿐.
시종이자 영지민으로서 그들의 주인이 어떤 대답을 원하는지 모르진 않았지만, 어째서인지 그들은 전부 입을 다물었다.
“왜 답들이 없으십니까?”
베누스는 정색한 표정으로 되물었지만, 시종들의 입은 열리지 않았다.
아예 그를 보면서 웃지 않는 이들도 여럿 있었다.
“나한테 벗어난다고 그대들이 잘살 수 있을 것 같습니까? 참 슬프군요. 내가 그대들에게 보호를 대가로 그리 많은 것을 바란 것도 아닌데……. 내 앞에서 항상 웃는 얼굴을 유지하라고 했던 게, 그리도 어려운 일이었나요?”
영지민들이 자신을 배신했다는 것에 적잖은 충격을 받은 걸까?
베누스는 넋 나간 얼굴로 그들을 쳐다봤지만, 어느 누구도 그와 눈을 마주쳐주지 않았다.
그런 베누스의 눈앞으로 벨져의 주먹이 다시 날아들었다.
-콱!
허나 이번엔 그 묵직한 손맛이 벨져에게 전해지지 않았다.
베누스가 손을 들어 막은 것이다.
이에 시종들을 보던 그의 눈이 천천히 벨져에게 옮겨갔다.
“아무래도 당신 때문인 것 같군요.”
“뭐?”
“피떡이 된 나를 보고서 저들이 희망을 얻은 것 같습니다. 자신들을 구해줄 새로운 구원자가 나타났다고 믿는 것 같군요…….”
베누스의 목소리에는 더 이상 웃음기가 담기지 않았다.
“내 영지에서 도망친 탈주민들을 당신이 지켜준다고 했던가요?”
“그래서 내가 온 거라고 하지 않았던가?”
“그럼 다시 묻겠습니다. 탈주민들에 이어서, 나에게 경멸의 시선을 보내는 저 하찮은 마족들까지 당신은 지켜줄 생각입니까?”
“못할 것도 없지.”
“진심으로요?”
“거짓말할 이유도 없어.”
벨져의 목소리엔 그 어느 때보다 진중함이 담겨있었다.
잠시 일직선을 그리던 베누스의 입꼬리가 다시 양쪽으로 승천했다.
“이번엔 제 쪽에서 진실 게임을 제안해야겠군요.”
“아직도 더 물어볼 게 남았냐?”
“물어보려는 게 아니라 확인해보려는 겁니다. 저들을 지켜주겠다는 벨져 후보의 그 말이……. 정말로 진심인지를!”
말을 멈춘 베누스는 벨져의 주먹을 잡지 않은 다른 손으로 자신의 피를 닦아냈다.
이내 손은 피로 물들었다. 베누스는 그 손을 아래로 내려뜨리고는 손가락을 튕겼다.
-따악!
선명한 울림에 이어 잠시 고요한 정적이 감돌았다.
이게 무슨 꼴같잖은 일인가 싶어 헛웃음을 터트리던 벨져는,
“아아아악!!”
갑자기 울려 퍼진 처절한 비명에 바로 고개를 돌렸다.
“사, 살려줘! 아파! 몸이 너무 아파!”
“내 피부가 썩고 있어! 안 돼!!”
“제가 잘못했습니다, 베누스 님! 제발 한 번 더 기회를……!”
검게 썩어가는 몸을 더듬으며 고통을 호소하는 마족들.
일부는 아픔을 견디지 못해 기절까지 했다.
“이, 이게 대체?”
“설마 역병이?”
느닷없는 돌발 상황에 메이와 코흐는 당황을 금치 못했다.
“아아악!!”
“도로시 언니!!”
고통을 호소하는 마족 중엔 도로시도 포함되어 있었다.
외부인인 벨져 일행과 메이 덕분에 병이 치유된 슈아를 제외하고선, 모두가 고통을 호소했다.
감정이 치솟은 벨져는 혹한보다 더 차가운 목소리로 다시 베누스를 보며 물었다.
“뭐 하자는 장난질이야?”
“세 시간입니다.”
베누스는 미소와 함께 손가락 세 개를 보란 듯이 치켜세웠다.
“한 시간이 지나면 머리부터 발끝까지 전신에 걸쳐 출혈이 일어날 것이고, 두 시간이 지나면 출혈 부위가 전부 검게 변할 겁니다. 그렇게 세 시간이 지나면 저들의 피부와 근육은 완전히 괴사할 것이며, 더는 예전의 상태로 돌아오지 못할 겁니다!”
돌아오지 못한다.
그건 다시 말해, 저들의 앞날 자체가 사라진다는 의미였다.
“계속 절 붙들고 있을 시간은 없으실 텐데요? 저들을 지켜준다고 하지 않으셨나요? 저대로 그냥 놔두실 생각인가요? 참고로 이 자리에서 절 죽인다고 한들, 저들의 고통이 멈추진 않을 겁니다.”
참을 수 없는 분노에 벨져는 다시 주먹을 들어 올렸다.
허나 내지르진 않은 채, 살기 어린 눈으로 베누스를 노려만 보았다.
“뭘 해야 할지 모르시겠나요? 어쩔 수 없군요. 그렇다면 제가 답을 알려 드리는 수밖에…….”
벨져의 손을 뿌리친 베누스는 옷매무새를 정돈했다.
그러곤 손가락을 들어 아래를 가리켰다.
“저한테 무릎을 꿇고 빌어보시지요. 부디 저 가여운 마족들의 아픔을 거두어 달라고…….”
그 말을 들은 벨져는 이를 아득 갈았다.
“간절히 빌다 보면 제 마음이 변할 수도 있지 않겠습니까? 저들의 아픔은 누구도 보듬어 줄 수 없어요! 이 마계에서 오직 나를 제외하고선!”
베누스는 더욱 과장된 몸짓으로 두 손을 들어 올렸다.
“빌면서 제게 바치는 겁니다. 당신의 그 무한한 마력이 담긴 마혈석을!! 그렇게 한다면 제가 저들의 아픔을 거두어드리지요!”
마혈석.
힘이 전부인 세계에서 마족의 전부라고 할 수 있는 재산.
정말로 마족들을 지키고 싶다면 본인의 전부를 바쳐서 증명해보라는 추악하고도 잔인한 제안.
어떤 선택을 하던 자신은 아무 상관이 없다는 듯 평온하게 미소 짓는 베누스를 향해,
벨져는 보란 듯이 마혈석을 떼어 냈다.
-뚜둑
“세 시간이라고 했냐?”
허나 그 마혈석을 베누스에게 건네진 않았다.
하물며 무릎을 꿇지도 않았다.
오히려 베누스보다 훨씬 더 비열한 미소를 지으며, 그를 마주할 뿐.
“나도 예고하지. 한 시간이 지나면 저 마족 중 반이 치유될 거고, 두 시간이 지나면 마족들 전부가 치유될 거야. 그리고 마지막 세 시간이 지나면…….”
-휘익!
벨져는 오른손에 쥔 마혈석을 보지 않고 어디론가 던져버렸다.
날아간 마혈석은 마족들을 구하기 위해 급하게 치유마법을 펼치고 있는 메이의 손으로 쏙 들어갔다.
“넌 내 손에 갈기갈기 찢겨 형체도 없이 사라질 거다!”
벨져의 손엔 어느샌가 다시 아크베리아가 쥐어져 있었다.
(다음 편에서 계속)