Hero, What's logout? RAW novel - chapter (1)
1화 : 제 이름은 NPC가 아니에요!
평소처럼 순찰 겸 산책으로 마을을 돌아다니던 날이었다.
익숙한 길을 걷던 아인의 귀로 도무지 뜻을 종잡을 수 없는 말을 주고받는 낯선 목소리가 들려왔다.
“스탯창! 스킬창!”
“와 이 겜 그래픽 끝내준다.”
“그런데 스타팅 장소 랜덤픽 했더니 구린 곳으로 온 것 같은데. 리세마라 해서 지정 왕국 바꿀까?”
“…?”
스탯창, 스킬창, 그래픽, 랜덤픽, 리세마라 등등. 문장의 문법이라든지 구성은 공용어가 틀림없는데, 중간중간 섞여 있는 단어들의 의미를 도저히 알 수가 없었다.
‘다른 지방의 사투리인가?’
먼 곳에서 왔다면 이해 못할 것도 없었다. 이런 시골은 외지인이 오는 것도 드문 일이니까.
오랜만에 본 타 지역 사람들에게 호기심이 일어 귀를 쫑긋이는 찰나, 용병 길드의 꼭대기에서 커다란 고함이 울려 퍼졌다.
“아인! 1층 대기실에 신참 왔다니까 네가 받아.”
“아! 아 네! 곧 갈게요!”
신참!
그 단어 하나에 아인이 방금까지 품고 있던 의문이 씻겨 내려가고, 그 빈자리는 기대감이 대신했다.
길드로 향하는 아인의 표정은 잔뜩 상기되어 있었다.
이곳은 아주 강한 몬스터가 대거 서식하거나 효율 좋은 던전이 있는 곳이 아니다.
그 외 지형이나 접근성 같은 조건들로 봐도, 이곳은 모험가나 용병을 생각하는 이들에게 좋은 곳은 아니었다.
때문에 이곳의 용병 길드에 오는 경우는 보통 두 가지.
마을 출신이거나, 방랑 및 죄를 지어 도망치던 중 이곳까지 흘러들어와 직업을 찾는 경우!
하지만 마을 출신이라면 아인이 모를 리가 없었다. 이곳은 무기상점 아들이 사흘 뒤 잡화점 딸과 약속이 있다는 시시콜콜한 일상조차 소문이 나는 변방의 시골.
고로 이곳에 온 사람들은 떠돌이라는 건데, 도망자면 말할 것도 없고 방랑자 중에서도 성격이 괴팍한 이들이 많다는 것은 이미 유명한 얘기였다.
어지간하면 문제가 생겨도 부길드장이 처리해주곤 했지만, 지금은 출장 중인데다 모든 것을 떠넘길 수도 없는 노릇.
“음음, 큼큼, 흠흠.”
아인은 두근거리는 마음을 진정시키며 제 가느다란 목소리를 깔아보기도 하고, 나름 위엄 있는 표정을 지어보기도 했다.
E등급의 신참을 받는 것은 D등급인 자신의 임무 중 하나.
마지막으로 아인은 자신의 옷매무새를 다듬으며 신참을 기다렸다.
마지막으로 벨트를 꽉 조이고 기름을 먹인 가죽갑옷의 매무새를 갖춘 후, 아인은 길드 대기실의 문을 열었다. 허리에 손을 올리는 건 괜히 했나 싶지만 이미 늦었다.
“신입인가요! 용병 길드에 잘 오셨, 엑… 뭐 하시나요?”
호기롭게 문을 열며 말을 이어가려던 아인은, 생각지도 못한 광경이 눈앞에서 펼쳐지자 자신도 모르게 혀를 깨물 뻔했다.
신입으로 추정되는 이가 물구나무를 서다가, 바닥에 엎드리기도 하다가, 몸을 회전시키며 대기실을 빙글빙글 돌고 있었으니까.
심지어 그런 자신이 신기한 건지 연신 혼잣말까지 중얼거리는 중이었다.
“오… 자세 바꾸니까 시점도 같이 변경되는구나. 3D게임 싫어하는 사람들은 멀미 나겠네. 아닌가? 현실 감각이라 상관없나?”
물론 물구나무를 서고, 바닥에 엎드리고, 대기실을 도는 것이 죄악이거나 사회적 약속에 어긋나는 행위는 아니었다. 법적으로도 전혀 문제가 없었다.
‘…저게 최신 유행인가?’
시골 용병인 자신이 미처 알지 못한 최신 유행일 수도 있겠지만, 아무리 생각해도 이런 상황에 물구나무로 상대방을 맞이하는 건 뭔가 아닌 것 같았다.
자신도 해야 하는 걸까. 그런데 아인이 생각하기에 진짜 좀 아니었다. 쪽팔리고 하기 싫었다.
그의 상식으로는 물구나무를 면접에 사용하는 것은 어떤 역사를 돌이켜봐도 유행한 적이 없다. 몸을 회전시키며 대기실을 빙글빙글 도는 것 역시.
‘당황하지 않았어! 당황하지 않았다고! 절대로! 기대와는 약간, 조금, 많이, 어쩌면 상당히, 아마 꽤나 다르지만! 그래도 나쁜 분은 아닌 것 같으니까!’
아인이 혼란에서 빠져나오는 사이, 신입은 이제야 좀 진정이 되었는지 올바른 자세를 취하곤 아인을 기다렸다.
그가 몸을 똑바로 세우자, 허리까지 내려오는 은청색의 머리카락이 자세에 따라 부드럽게 흩날렸다. 방금까지 보였던 모습만 아니었다면 어딘가의 귀족 자제라고 생각했을 정도로 멀끔한 모습이었다.
이런 시골에는 어울리지 않는 분위기.
아인은 그 사람이 이제 막 만들어진 사람이라는 감상마저 들었다. 마차가 들어왔다는 소식도 없었는데, 옷에는 주름이나 먼지 하나 눈에 띄지 않았으니까.
그는 차갑게 가라앉은 벽안의 눈동자를 두 번 깜빡인 뒤, 아인을 보고 천천히 입을 열었다. 미미하게 찌푸려진 눈썹과 날카로운 눈매는 보는 사람을 절로 움찔하게 만들 정도였다.
“와씨… 다시 일어났을 때 머리 띵한 것도 구현해놨네. NPC 그래픽도 되게 자연스럽고. 어, 내 목소리도 변했나?”
뭔 소린가 싶었지만, 지금 그걸 물을 때는 아니었다.
“저, 혹시. 신입 용병 분… 맞으시죠?”
“말풍선이나 스크립트가 안 보이니까 좀 불편한데… 설정. 환경설정. 자막. 아… 아직 적용 안 되네. 이것들 급하게 오픈베타부터 시작했구만.”
엔피시? 그래픽? 말풍선? 스크립트? 아인의 뇌는 이해를 포기하기 시작했다. 개중 일부는 아까 전에 들어본 것 같았지만.
아인은 이 말이 통하지 않는 상대방이 마법사라는 가능성을 점쳐보기 시작했다. 마법사들은 어려운 마법 영창을 줄줄 외우는데다, 종종 괴짜 같은 구석이 있다고 들었으니까.
하지만 정말 마법사라면 그거대로 문제가 된다. 마법사는 영입 상위권이기 때문에 좋은 관계를 유지해야 하는데, 지금까지 아인과 신입이 나눈 교류라고는 ‘서로 얼굴을 보았다’이 이상 이하도 아니었기에.
그 순간이었다.
이후에도 한참 의미 모를 말을 중얼거리던 신입이 아인의 눈을 똑바로 바라보았다.
“네. 저는 신캐… 신입. 신참? 이렇게 말하면 되나? 선택지가 없으니 반응 키워드를 모르겠네.”
감동적인 첫 교류의 성공.
드디어 시작된 정상적인 대화에 아인이 속으로 환호를 내질렀다.
신입은 가까이 다가와 한쪽 손을 내밀었다.
키는 조금 더 작았지만, 오히려 상대방을 내려다본다는 느낌이 있었다.
일단은 아인도 마주 손을 내밀며, 한참 늦었지만 위엄 있는 말투로 인사했다.
“용병 아인입니다. 이곳에 계시는 동안은 제가 여러 안내를 해 드릴게요.”
“아, 그럼 네가 튜토리얼 NPC구나.”
“네?”
“응?”
“엔피시?”
“엔피시.”
“전 엔피시가 아닌데요.”
“아 플레이어예요?”
플레이어는 또 무슨 소리지.
다시 미궁으로 빠지기 시작하는 대화에 아인이 간신히 정신을 붙잡고 자신을 소개했다.
“…? 아뇨. 전 아인인데요.”
“엔피시가 엔피시지 뭔… 이 게임은 캐릭터에 이입해야 돼? 진짜 별론데.”
“저기요?”
아인은 저도 모르게 말투가 뾰족해졌다.
신입의 태도가 마이페이스인건 그렇다 쳐도, 이렇게 대놓고 무시하는 발언은 참기 힘들었다.
신입에 대한 점수는 극단적인 하향곡선을 그렸다. 아예 받아주지 말자고 단장님에게 건의할 생각이 그의 마음에서 피어나는 찰나, 마주 잡은 손에 힘이 들어가며 위아래로 움직였다.
“음… 미안해요. 제가 있던 곳에서 NPC라는 건, 안내자…? 도움을 주는 그 지역 사람…? 을 가리키는 말이었어요. 사과할게요.”
자기 말만 하던 모습은 어디 가고, 단어를 고르며 더듬더듬 사과까지 하는 모습에 아인의 마음이 풀려버렸다. 아인은 생각보다 너그러운 편이었다.
마음을 강하게 먹으라고 내내 잔소리를 들어왔지만, 천성이란 것은 쉽게 변하질 않는 모양이었다.
“알겠어요. 하지만 전 아인이라는 어엿한 이름이 있으니, 앞으론 엔피시라는 단어 말고 그걸로 불러주세요.”
오히려 아인의 대답에 놀란 것은 신입이었다.
“바로 이름으로? 호감퀘도 안 했는데? 튜토리얼이라 그런가? 이 장르, 아니 시대상에선 성도 중요하지 않나요.”
“진짜 뭐라고 하시는지 하나도 모르겠고 저 엔피시 아니라고요!! 그리고… 저는 하층민이라 성이 없거든요.”
“아하.”
보통 하층민이라는 신분을 밝히면, 실수했다는 듯이 움츠러들거나 자신이 우위에 있다는 우월의식이 한순간이라도 드러나기 마련이었다.
그런데 신입은 그냥 고개만 끄덕이고 말 뿐이었다. 정말 하나의 정보를 들었을 뿐이라는 느낌으로.
생소하고 어이없는 반응이긴 했지만, 아인에겐 차라리 이쪽이 나았다.
“아무튼 제가 이름 알려줬으니 그쪽도 알려주세요.”
이 말에 신입은 눈을 크게 떴다가 당혹감으로 물들었다. 그 담담하던 얼굴이 이런 표정도 지을 수 있구나 싶을 정도로.
사실 왕국의 대귀족이 모험가 놀이라도 하러 온 것이라면 이래저래 입장이 보통 난처해지는 것이 아니었다.
끝없는 상상의 나래를 펼치기 시작하던 찰나, 신입의 입이 조심스레 열렸다.
“…모하지.”
“네?”
“제 이름이에요. 닉 모하지.”
Nick Mohaji. 적어도 아인이 알고 있기엔, 근방 왕국에서 사용하는 성씨와는 느낌이 달랐다. 정말로 다른 지방에서 왔을 가능성에 확신을 품은 채, 아인은 ‘모하지’가 성씨일 거라고 판단하고 고개를 꾸벅였다.
“알겠습니다, 모하지 님.”
“후회된다… 이걸로 하지 말걸. 편하게 닉 이라고 불러줘요.”
“어… 닉 모하지 님, 바로 이름을 불러도 되나요?”
“풀 네임 말고요!!”
반사적으로 튀어 나간 대답에 아인이 눈을 동그랗게 뜨고 자신을 바라보자, 닉 모하지는 빨갛게 달아오른 얼굴로 손을 내저으며 말을 이었다.
“아니에요. 이건 제 잘못이에요. 하아… 시작하자마자 닉네임 변경권 사야 돼? 캐시가 필요한지도 모르는데.”
“캐, 캐시요? 잡화점 딸 이름이 캐시….”
“미치겠네, 아뇨 저는 걔가 필요 없어요. 부탁이니까 이상한 오해하지 마세요.”
닉 변경권.
아인은 변경권이라는 단어를 듣고는 어쩌면 저게 스스로의 무언가를 바꾸는 아티팩트가 아닐까 하는 추측을 했다.
생각이 그렇게 닿으니, 이자에게 무슨 사연이 있는지도 모르는데 아인이 자신이 너무 성급하게 물어보았다는 생각이 들었다.
‘가명일지도 모르겠네. 그래도 가명 사용이 용병 입단에 큰 지장을 주는 건 아니니까.’
아인은 남은 시간에 용병 길드와 마을의 구조를 알려준 뒤, 본격적인 의뢰 시작은 닉이 휴식을 취한 뒤에 시작하기로 했다. 그가 여독을 풀 시간도 챙겨주어야 했기에.
“튜토리얼은 진짜 귀찮은데…. 알았어요. 그럼 다 둘러보고 제가 다시 이쪽으로 올게요. 오래 안 걸려요.”
닉은 그 말을 하곤 대기실을 나갔고, 아인은 진이 쭉 빠져 의자에 풀썩 주저앉았다.
생각보다도 더 독특한 사람이 들어온 것 같다는 직감이 느껴졌다.
그래도 세상엔 다양한 존재가 있으니, 고작 이런 걸로 이상한 인간 취급을 해선 안 됐다.
애초에 닉이 인간인지도 확실하지 않았다. 이 세계엔 수백의 이종족이 있고, 밝혀지지 않은 종족도 그만큼 많았다.
인간이나 엘프, 수인같은 흔한 종족부터 시작해서 드라이어드나 골렘처럼 반 정령에 가까운 이들. 지성을 가진 곤충이라고도 불리는 버그족, 어떤 모습으로든 변할 수 있지만 본모습은 자신들끼리만 알고 있는 수수께끼의 종족, 흑마술이 아니라 자연적으로 발생한 언데드, 그 외 등등….
‘…그래도 특이하다는 건 변함이 없는 것 같은데.’
아인은 길드 내에 있는 자신의 방으로 들어가, 침대에 누워 눈을 느릿하게 깜빡였다.
닉 모하지가 오기 전까지 그에게 알려줄 것들을 몇 개 꼽아보던 중, 바깥에서 소란이 일기 시작했다.
“신탁이야! 신탁! 전 대륙의 신전에 똑같은 신탁이 내려왔어! 종교 불문 없이! 오픈베타가 시작됐대!!”
귀가 밝아서 안 좋은 점 중 하나였다. 좀 쉬려고 해도 세상이 그를 내버려 두지 않는다는 것. 이후로도 소란이 가라앉을 기색이 없어, 아인은 아예 베개로 귀를 감싸듯 얼굴을 덮어버렸다.
오픈베타고 뭐고, 신탁에서 내려오는 정보들은 시골에선 크게 신경 쓸 바가 아니었다.
그런 중요한 것은 영웅이나 용사가 처리할 것이고, 이곳에서는 술집의 마커스 씨가 외상을 아직도 갚지 못했다는 것 정도가 가장 심각한 문제였다.
‘그러고 보니 아까 신입 분이 오픈베타 뭐라고 한 것 같았는데… 아 모르겠다. 일단 조금 자야지.’