Hero, What's logout? RAW novel - chapter (100)
100화 : 로그아웃3
“…갑자기 그게 무슨 소리예요?”
“아마 닉 모하지 님은 핵은 쓰지 않는 걸로 알고 있어요. 문제라면 데리고 다니는 그 하프엘프? 정령? 아무튼 그 NPC인 거죠. 정보원에게도 대강 들으셨을 텐데.”
“증거도 없는 걸로 무작정 몰고 가니까 좋아요? 그리고 정말 문제가 있거나 오류 데이터라면 이미 운영진 측에서 손을 썼겠죠.”
방금까지만 해도 꽤 풀어져 있던 닉의 얼굴이 구겨지며 특유의 날카로운 눈이 우라노스를 노려보았다. 하지만 그는 여전히 느긋한 웃음을 거두지 않은 채 뒷골목에서 큰 도로로 이어지는 곳을 쳐다보았다.
“저도 처음에는 그렇게 생각했어요.”
그곳엔 플레이어뿐만 아니라 수많은 NPC들이 지나가고 있었다. 자신들과 비슷하게 북쪽에 무언가 있다고 들어 찾아온 용병 NPC나, 애초에 노타나 영지에서 살아가던 주민들.
우라노스는 용병 NPC와 노타나 주민 NPC를 각각 가리켰다.
“저 용병은 중앙에서 꽤 이름 날리던 사람이에요. 용병단을 가지진 않았지만 여러 용병단장을 움직일 만한 영향력을 가지고 있죠. 저 주민은 누군지 몰라요. 기껏해야 사냥꾼 정도겠죠. 운영진 입장에서 저 둘의 대표적인 차이점이 뭔지 말할 수 있어요?”
“…퀘스트 같이할 만한 NPC랑 호위 퀘스트 대강 되는 NPC?”
“좋은 시선이네요. 저는 이렇게 말해 볼게요. 다소의 오류가 일어나도 삭제가 불가능한 NPC와, 곧바로 삭제가 가능한 NPC.”
닉은 이해가 안 된다는 듯 한쪽 눈썹을 치켜올렸다. 우라노스는 그게 당연하다는 듯 고개를 끄덕이며 말을 이었다.
“운영진인데 그거 하나 마음대로 못 하냐 싶겠지만. 카오스의 총괄은 인공지능이 도맡고 있어요. 운영진은 그 인공지능을 돕는 보조일 뿐이고. 대륙 내의 영향력이 크면 어지간한 오류가 나도 삭제가 불가능해요.”
“당신은 그걸 어떻게 알았는데요?”
“그걸 물어보길 기다렸어요. 꽤 참신한 경험이었거든.”
우라노스는 가볍게 손을 튕긴 뒤 환경 설정에서 영상 하나를 떠올렸다. 모든 이들에게 공유하게끔 만들어 닉도 그것을 볼 수 있었는데, 영상에서는 귀족으로 보이는 이가 우라노스 앞에서 고개를 숙이고 ‘정말 미안하지만 줄 수 없다.’라고 계속해서 말하고 있었다. 우라노스는 그때를 회상하듯 웃는 것인지 한탄하는 것인지 모를 숨을 뱉었다.
“이 귀족의 양아들이 범죄를 저질렀는데 귀족의 집에 숨어 있었거든요. 그런데 범죄를 입증할 수 있는 증거들을 가져오면 아들을 내어주겠다는 퀘스트를 줬어요. 퀘스트창에 확실하게 보상도 아들의 신변 양도라 적혀 있었고. 그런데 증거를 다 가져와도 안 된다는 거예요. 확실하고 보상 충족 조건에도 표기됐는데. 그러더니 갑자기 퀘스트 내용이 바뀌고.”
이후로 영상은 ‘그렇게 정해져 있었다.’라고 말하는 우라노스와, ‘세상에 정해져 있는 운명이 어디에 있냐.’라고 발악하듯 말하는 귀족의 말싸움이 이어졌다. 닉은 말없이 영상을 계속해서 지켜보고, 우라노스는 내레이션이라도 하듯 드문드문 말을 꺼냈다.
“이건 오류다 싶어서 일대일 문의를 했어요. 감사하게도 저한테는 즉각 맞춤형 상담이 이루어지고 GM도 오더라고요. 오류 데이터가 맞다는 걸 인정은 했지만, 그 귀족의 영향력이 강해서 자신들도 당장은 삭제 조치가 불가능하다고. 대신 리셋을 꽤 많이 하더니 결국 어렵사리 퀘스트 보상을 받게 되었어요.”
“그러면 그 귀족은 지금 어떻게 됐는데요?”
“제가 높은 자리에 올리면서 실권 날리고 영향력 떨어트린 다음 GM 불러서 삭제했어요.”
“…….”
당연하다는 듯 말하는 투에 닉은 눈을 반쯤 감고 고개를 끄덕였다. 이상할 건 없다. 한 번 오류를 일으킨 NPC가 재차 그러지 않으리라는 법은 없으니까.
다만 ‘세상에 정해진 것이 어디에 있냐.’라든지, ‘소중한 사람을 지키고 싶다는데 당연하지 않냐.’라면서 부르짖는 모습이 아인의 몇몇 모습과 겹쳐 입맛이 썼다.
우라노스는 영상을 끈 후 닉에게 가까이 다가가 시선을 맞췄다.
“제가 장담할게요. 아인은 오류 데이터입니다. 데스 나이트 군단 토벌전이나 에리식톤이 있었다는 곳에, 이유는 알 수 없지만 프로그램에 일부 영향이 갔나 봐요. 닉 모하지 님도 언제 영향을 받을지 몰라요. 막말로 갑자기 계정이 삭제되거나 게임 자체에 영향이 가면 책임이 닉 모하지 님한테 가요. NPC가 무슨 책임을 져요. 살아 있는 사람이 지는 거지.”
우라노스는 오로지 닉을 위해서, 닉을 걱정하듯 안타까운 표정을 하고 점잖게 타이르듯 부드러운 어조로 말했다.
그리고 실제로도 우라노스가 하는 말에는 틀린 말이 없었다. 플레이어가 아닌 NPC들하고만 파티를 맺어 다니는 닉의 특성상, 그들이 오류를 일으켜 게임에 영향을 미친다면 닉이 덤터기를 쓸 가능성이 높았다. NPC에게 법적 소송을 거는 것부터가 웃기지도 않은 농담이다.
닉은 미간을 좁히고 자신을 쳐다보는 우라노스를 피해 시선을 아래로 내리깔았다. 몇 번 손을 꼼지락대고 입을 벙긋하다가, 한숨을 쉬듯 입을 열었다.
“그래서 제가 뭘 하면 되는 건데요?”
“간단해요. 제일 빠른 건 아인을 죽이는 거고. 힘들다면 파티에서 아인을 제외시키고 보내면 된답니다. 그러면 닉 모하지 님의 명성에 묻혀 있던 아인이 영향력을 잃게 되고, 때를 맞춰 GM을 부르면 삭제가 가능할 거예요.”
마치 기다렸다는 듯 대답이 술술 나왔다. 닉은 흔들리는 눈으로 고개를 한 번 끄덕이더니, 애매하게 웃었다.
“참고… 할게요. 감사합니다. 그런데 저는 그 대단하다는 인공지능이 괜찮다고 판단하면 상관없지 않나. 하고 생각하는 편이라. 물론 그 안전 불감증 때문에 지금 이 사태가 난 거지만? 아무튼 네. 조언 고맙게 받을게요.”
두서없이 아무렇게나 내뱉는 닉을 보며 우라노스는 계속해서 머금고 있던 웃음을 조금 가라앉혔다.
“혹시 NPC에게 너무 감정 이입 하시는 건 아니죠?”
“아뇨, 그런 건 아니고….”
“가끔 저희 길드에도 보이더라고요. 완벽하게 자신의 의지와 행동대로 움직일 수 있는 존재니까, 그 시점부터 평범한 NPC가 아니라 살아 있는 사람이나 다름없다고요.”
“…우라노스 님은 그렇게 생각 안 하세요?”
“그냥 게임이에요. 게임 NPC. 0하고 1로 이루어진 데이터요. 거기에 과몰입하는 것도 저는 잘 이해가 가질 않아서.”
“그건… 그렇죠. 그, 저. 지금 당장 답해야 하나요?”
“아뇨, 아뇨. 저도 이것만 말씀드리고 가려 했어요. 여기에 다음 재앙하고 관련한 단서가 나올 것 같아서 찾으러 왔죠. 그냥 현명한 처사를 기대드릴 뿐이에요. 조언이 헛되지 않길 빕니다.”
우라노스는 공손하게 인사를 한 뒤 자리를 떴다. 조언이라고는 했지만 사실상 자신이 말한 대로 하라는 것과 다름이 없는 말이었다.
닉은 어색한 웃음을 띠고 말없이 고개를 끄덕였다. 이내 뒷골목에는 닉 혼자만이 남았다.
불씨는 춤을 추듯 뒷골목을 빠져나가고, 겨울바람에 마른 풀은 우두커니 서서 세차게 흔들리고 있었다. 이내 둘의 공간이 완전히 바뀌고 서로가 시선에서 보이지 않을 무렵, 둘은 각각 누군가와 마주쳤다.
***
우라노스는 뒷골목을 빠져나오는 순간 익숙하고도 정말 듣기 싫은 목소리를 마주해야만 했다.
“하의~”
“…….”
“진짜 센스 없다. 이때 상의~ 하고 받아쳐 줘야지.”
마치 기다리고 있었다는 듯 구석에서 튀어나온 마라는, 팔짱을 낀 채 툴툴거렸다. 우라노스는 그녀를 더 보기도 싫다는 듯 눈도 마주치지 않고 혀를 찼다.
“여긴 또 무슨 일이야.”
“헌터 길드원한테 노타나 영지에 왜 왔냐고 하는 것도 웃긴 일이야. 그치?”
“노타나 영지 말고. ‘여기’에 왜 왔냐고.”
“혀 살살 굴리는 꼴 보러 왔지. 말 잘하더라.”
“내가 틀린 말 했나?”
그 말에 방긋방긋 웃음을 짓고 있던 마라는, 웃는 입은 그대로 눈만 살며시 뜨며 우라노스를 빤히 쳐다보았다.
“존1나 많이요, 새1끼야. 네가 말하는 위험 요소 중에 검증된 게 단 한 가지도 없는데.”
“너한테는 세상에 위험한 거라곤 존재하지 않잖아.”
“너같이 음모론 뿌리는 녀석이 제일 위험하더라고.”
“그럴 위험이 없다고 장담할 수 있나?”
“네가 바닥 기면서 저는 아무것도 할 수 있는 게 없는 멍청이입니다, 라고 하지 않을 거란 장담도 없지.”
우라노스는 숨을 낮게 뱉더니 손을 몇 번 쥐었다가 폈다. 그와 동시에 사방에 실체화된 살기가 일렁이며 마라를 위협하듯 뱀처럼 꿈틀거렸다.
우라노스의 사명, ‘패자(霸者)’의 특성 중 하나. 자신보다 약한 이들을 상대로는 능력치를 낮춰 버리며, 과하게 심약한 자가 앞에 나서면 그대로 죽어 버리는 일종의 오라였다.
마라는 일순간 움찔하며 인상을 찌푸리더니, 인벤토리에서 작은 폭탄 몇 개를 꺼내 들었다.
크기와는 달리 일대 전체를 날려 버릴 수도 있는 위력의 마력 폭탄. 모든 기본 방어나 스킬을 무시하는 충격파는 생물과 무생물을 가리지 않고 고정 대미지를 입히며, 인근에서 폭발에 휘말리면 랭킹 1위든 꼴찌든 상관없이 재로 만들어 버리는 아이템.
그리고 당연하게도 생명체가 아니기 때문에 우라노스의 오라에도 영향을 받을 일이 없었다.
“장난 더 칠까? 난 경험치 손실 입어도 별로 신경 안 쓰는 거 알지? 아~ 아앗~ 아아아앗~ 살기 때문에 너무 무서워서 손에 힘이 풀어져 버릴 것만 같아~”
“…….”
마라는 히죽 웃으며 금방이라도 떨어트릴 듯 마력 폭탄을 느슨하게 쥐었고, 우라노스는 결국 심기 불편한 얼굴로 살기를 거두어들였다.
“하고 싶은 말이 뭐야.”
“네가 길드에 위험 되는 애들 전력 깎아 먹으려고 온갖 짓을 다 하는 건 괜찮은데. 헛소리만 퍼트리지 말아 달라고 부탁하러 왔어.”
“아까도 말했지만 틀린 말은 아니….”
“틀려. 인공지능이 맞다면 맞는 거야. 이 세상에 오류 데이터 같은 건 없어.”
마라는 단언하듯 뱉으며 우라노스의 앞에 섰다. 머리 한두 개는 차이 날 정도로 큰 차이가 있었지만 기세만큼은 동등하거나 오히려 그 위에 있었다.
“카오스의 인공지능은 모든 상황에 맞춰서 데이터를 조정하기도 해. 퀘스트 내용이 바뀌면 거기에 맞춰 하면 되지 찌질하게 GM이나 부르고 그게 뭐냐?”
“그럼 그때까지 내가 노력한 건 뭐가 되지? 조정 시점을 플레이어한테 맞추지 않고 오류 걸려서 감정이 널뛰기하는 NPC한테 맞춘 게 문제야. 혹시 너도 NPC는 살아 있니 뭐니 하는 헛소리라도 할 생각인가?”
“글쎄.”
마라는 웃는 얼굴로 어깨를 으쓱했다. 그리고 닉이 있을 뒷골목 쪽으로 시선을 한 번 주었다.
“누가 살아 있다고 해 주면, 그 사람한테는 살아 있는 거지, 뭐.”
***
닉은 제자리에 서서 눈만 끔뻑이다가 자신에게 다가오는 이를 보고 간신히 입을 열었다.
“아인이야?”
“…네. 무슨 일 있으셨어요?”
“그냥. 우라노스라는 사람이랑 오해 있다고 했잖아. 그 사람이랑 만났어. 별일 없이 끝났고. 옷 샀어? 돌아가자.”
닉은 언제나처럼 대강대강 넘어가려 했지만, 이번만큼은 아인이 가만두질 않았다. 몸을 돌린 닉의 옷깃을 잡은 아인은 미간을 좁히고 재차 물었다.
“진짜로요?”
결국 닉은 혀 차는 소리를 두어 번 낸 뒤 얼굴을 돌려 아인을 마주 보았다.
“아인. 하나만 물어보자.”
“말씀하세요.”
“너 프로그램 건든 적 있어?”
“있어요.”
생각보다 너무 쉽게 나오는 답에 오히려 닉이 벙찐 표정이 되었다가, 아까보다 험악한 얼굴이 되었다.
“그게 뭘 의미하는지. 그 능력이 뭔지 알기나 해?”
“당연한 걸 당연하지 않게 바꾸고. 소중한 사람들을 지키는 힘이요.”
아인은 주저하지 않고 말했다. 닉은 아까 영상에서 봤던 상황이 오버랩되며 헛웃음을 흘렸다.
“그래?”
“네.”
“알았어.”
닉은 얼굴을 한 번 쓸어내리더니, 환경 설정을 누르고 로그아웃 버튼을 짚었다.
“나 로그아웃 좀 할게. 기다리지 말고 다른 애들이랑 알아서 할 거 해.”
“네? 자, 잠깐만요, 용사님! 용사님!”
이대로 가 버리면 오해든 뭐든 잔뜩 쌓인 채 응어리만 가지고 갈 것이 뻔했다. 아인이 닉의 옷깃을 더 꽉 잡았지만, 닉은 지친 눈으로 몇 번이고 말하던 것을 읊었다.
“로그아웃. 확인.”