Hero, What's logout? RAW novel - chapter (107)
107화 : 이게 아닌데
“아, 진짜 지금 뭐 하시는 거예요!”
아인은 기겁하면서 이름을 잡으려 몸을 던지고, 사하바티는 그런 아인을 덩굴로 잡고 얼음의 균열 사이에 뿌리를 넣은 뒤 단단히 고정시켰다.
특유의 비정상적인 민첩성 덕분에 아인은 바다에 빠지기 직전인 이름을 붙들었고, 크라켄이 마구잡이로 휘두르는 다리에는 운 좋게 한 대도 맞지 않으며 뒤로 물러날 수 있었다.
“야, 미친 크라켄 나타났어!”
“저거 잡으면 S급 식재료 준다! 날붙이 있는 거 뭐든 가져와서 살점 잘라 내!!”
그리고 얼음 밖으로 기어 나온 크라켄이 낚시꾼과 주변을 구경하던 여행객과 모험가들에게도 행패를 부리자 숨어 있던 고수들이 튀어나와 사태는 금방 일단락되었다.
아인은 이름을 꽉 붙든 채 숨을 몰아쉬다가, 눈을 가늘게 뜨고 그를 노려보았다.
“너무 무모했어요.”
“아, 그랬나…? 걱정 마세요. 불행아 특성의 장점이 있다면 죽었을 때 페널티가 별로 없다는 점이거든요. 접속 못 하는 시간은 똑같아서 아쉽긴 하지만.”
“그런 게 문제가 아니잖아요! 목숨을 함부로 이용하지 말란 말이에요!”
“…그런 말을 들으니까 신선하긴 하네요.”
“목숨 소중하게 여기라는 게 보통은 당연한 거 아니냐고요!”
“저는 PC들하고 주로 어울려서요. 물론 보편적인 시선으로는 이상한 게 맞지만….”
“카오스의 조각들은 다 이래요?”
닉과 만난 초반에 자신의 몸을 돌보지 않고 행동하던 것이 생각나 아인의 목소리가 절로 높아졌다. 이름은 당황하며 손을 이리저리 휘젓다가, ‘이래서 특이하다고 한 거였구나.’라고 중얼거리더니 고개를 푹 숙였다.
“놀랐다면 미안해요. 이쪽이 익숙하거든요. NPC들 앞에선 이 방식은 자제해야겠네….”
“아무리 봐도 익숙해지질 않아요, 자기희생을 아무렇지도 않게 할 수 있다는 건.”
이름은 아인의 손을 풀고 일어나더니 균열이 일어나 갈라진 얼음을 발로 툭툭 건드렸다.
“중요도의 문제일 뿐이에요. 아인도 목숨이 여러 개라면 비슷해지지 않을까 싶은데. 카오스의 조각이라도 목숨이 단 한 개밖에 없다면 이런 식으로는 못 움직이죠.”
“그러면 당신들한테 중요한 건 뭔데요?”
“여기 온 목적은 각각 달라서 뭐라고 얘기할 수가 없네요. 별생각 없이 온 사람도 있고. 유흥만을 찾아온 사람도 있고. 높은 위치에 올라서서 군림하려 하는 사람도 있고….”
“그러면 이름은요?”
“…자기희생을 하러?”
농담은 아닌 투였다. 난처하게 웃는 이름을 보며 아인은 샐쭉한 표정을 지었다. 뒤를 돌아보니 사하바티 역시 옅게 미소를 짓고 있어 아인은 더 열불이 나는 것 같았다.
“됐어요. 해류 움직임이나 살펴볼래요.”
구멍에 더 가까이 다가간 아인은 고개를 기울였다. 얼음에 큰 균열이 일어나 구멍이 뚫린 바다는 이상한 움직임을 보이고 있었다.
바람이 강하게 부는 것이 아니라면 한 방향으로 일정하게 물결이 쳐야 맞는 것인데, 별다른 바람이 부는 것도 아닌데 표면의 물살이 어지럽게 몰아치고 있었다. 때로는 북쪽으로. 때로는 동쪽으로. 그러다가 다시 남쪽으로.
“확실히 부자연스러운 모습이 있네요. 얼음 안 깼으면 몰랐을 것 같아요.”
“저 안에 누군가가 헤엄이라도 치는 걸까?”
“단순히 그뿐이라면 엘퀴네스 님이 해결 못 할 리가 없잖아요!”
“수영하던 사람을 건드리는 건 좀 예의에 어긋나잖니.”
“그건 그렇지만! 맞는 말이긴 하지만!”
아인과 사하바티는 쓸데없는 소리가 80% 정도 섞인 채 말싸움을 하고 있었고, 이름은 다소 떨어진 곳에서 그들을 구경하고 있었다.
애매하게 거리를 둔 이유는 괜히 자신이 가까이 갔다간 불행하게도 발밑의 얼음이 다시 두 동강이 나며 모조리 빠질 위험이 있기 때문이었다.
아인과 사하바티가 자신의 행운을 가져갔기에 그들과 같이 있으면 어떻게든 떨어지진 않겠지만, 크라켄 때문에 이렇게 사람이 많이 모인 상황에서는 지나가는 다른 누군가에게 행운이 옮겨 가는 경우도 있었다.
‘그나저나 정말 신기하게 반응해 주네. 이야기하는 거 보면 진짜 사람이랑 별반 다를 바 없기도 하고. 자아를 가지고 있는 거라면 나중에 꽤 시끄러워질 수도 있을 것 같네.’
이름은 처음부터 플레이어들과 주로 교류해 왔다. 때문에 그의 머릿속에 있는 NPC의 이미지는 키워드에 따른 스크립트만 출력할 뿐인 과거 데스크톱이나 모바일 RPG 게임의 NPC에 머물러 있었고, 카오스를 하면서 만난 NPC들 역시 형식적인 대화를 하는 것에서 그쳤기 때문에 그 이미지가 바뀌진 않았다.
‘상황에 따른 스크립트를 수천수만 개씩 만들어 뒀을 리는 없고. 인공 지능이 알아서 상황 파악 하고 대사 출력하고. 키워드는 있겠지만 기본적으로 감정도 대사 출력도 자율인 건가.’
이름이 카오스에 온 이유인 ‘자기희생’은 기본적으로 플레이어들에게만 적용되었다. 하지만 NPC들 역시 살아 있는 이들이나 다름없다고 하면 기준이 애매해지기 시작한다.
‘어렵네. 일단은 천천히 생각해야지. 어차피 이 사람들에게는 도움을 줄 생각이었고.’
마라, 롱샤와 같이 노타나 영지로 왔을 때는 단순히 이쪽에 온갖 소문이 파다하게 퍼져서 마라의 호기심이 발동해서라고 생각했었다.
하지만 마라는 영지에 도착해서도 얼어붙은 바다 쪽에는 별 관심도 가지지 않더니, 어느 날은 갑자기 우라노스를 욕하다가 아인 일행을 헌터 길드 소속의 여관에 들여보내기도 했다.
‘목적은 일행 쪽이었나…? 마라 씨가 그렇게 눈여겨볼 정도로 엄청난 파티는 아닌 것 같은데.’
마라는 자신이 관심 있어 하는 것에는 열정적이고 집착적이지만, 반대로 관심 없는 것에는 눈앞에서 죽어 나가든 말든 신경도 쓰지 않을 정도로 무관심한 태도를 보인다.
그런 마라에게 아인을 보게 된다면 잘 보살펴 달라는 말까지 들었다. 첫 만남 때부터 지금까지의 모습을 생각하면 보살펴지고 있는 것은 사실상 자신이었지만 말이다.
아인과 사하바티의 콩트와도 같은 말싸움이 점점 진정되고 있는 것을 보고 있던 중, 이름은 등골에 오싹하게 잡히는 기운을 느낄 수 있었다.
불행아 특성을 얻고 난 뒤 종종 감지할 수 있었던 감각. 처음에는 불쾌하고 무서웠지만 지금은 익숙해져 별로 신경도 쓰지 않는 것.
살기였다.
‘보살펴 달라고 하는 게 이런 쪽이었나…?’
적이 많은 사람(ex: 마라)하고 같이 다니면 온갖 사건 사고에 휘말리곤 하는데, 불행아라는 특성 탓에 다른 사람에게 올 기습이나 암살 시도가 자신에게 쏟아지곤 했다.
왠지 모르게 불어온 바람 때문에 화살의 궤도가 틀어져 자신의 머리에 박힐뻔한다든지. 목이 말라서 두 개 나온 홍차 중 하나를 마셨는데 하필 거기에 독이 들어 있었다든지.
가끔은 ‘마음에 안 든다.’ 혹은 ‘같이 있으니 한패일 것이다.’라는 오해를 불행하게 사는 바람에 같은 암살 대상에 포함되는 경우도 종종 있었다. 그리고 이번이 그때라는 생각이 들었다.
이름은 주변을 느릿하게 훑었다. 적의 규모는 잘 모르겠지만 오염된 가을 거목의 숲을 지나쳤으면 몸 상태가 정상일 리가 없었다.
더군다나 제정신이 아닌 이상 이렇게 많은 사람들 사이에서 함부로 습격을 가하긴 어려울 것이다. 그렇다면 아인 일행이 용무를 마치고 돌아갈 때가 기회인데, 그전까지 붙들어 놓으면서 롱샤를 기다리고 텔레포트 마법을 사용하면 된다.
이름은 현재 상황을 알리기 위해 아인과 사하바티에게 가까이 다가갔다. 다만 이름이 알 수 없어 간과할 수밖에 없는 두 가지 부분이 있었다.
첫 번째로 간과한 부분은, 아인 일행을 쫓아오는 이들은 헤르도아의 사제이기 때문에 헤르도아의 저주로 인해 망가진 가을 거목 숲의 오염에 별다른 영향을 미치지 않는다는 점.
두 번째로 간과한 부분은, 헤르도아의 사제들은 제정신이 아니었다.
숲에서 거대한 규모의 그림자가 꿀렁거리며 나타나고 있었다. 처음엔 천천히 걷는 수준이었던 그들의 발걸음을 점차 빨라지기 시작했다.
크라켄을 박살 내고 그 전리품을 나누고 있던 이들은, 갑작스레 이쪽으로 달려오기 시작하는 정체불명의 괴한들을 보며 질겁하기 시작했다.
“야, 저기에서 누구 오고 있는데?”
“낚시꾼이나 모험가들이겠지. 정령사 파티라도 꾸려 오든가.”
“아냐. 마나 종류가 엄청 탁하고 이상해. 좀… 좀 이상한데. 야, 가까이 가지 마!!”
하지만 그 말을 들을 리가 없었다. 헤르도아는 마치 주문을 읊듯이 정확하게 아인 일행이 있는 쪽으로 다가오고 시선을 고정시킨 채 입을 끊임없이 놀렸다.
“위선의 개들을 벌하리라.”
“성자의 살점을 든 이를 세 번 부르라.”
“자격에 맞지 않는 불꽃을 든 죄는 열 번 불태워야 죄를 사할 수 있으니.”
헤르도아의 사제들은 검붉은 로브를 뒤집어쓰고 정갈하게 줄을 맞춰 오고 있었다. 입으로는 덤덤하고도 일정한 톤과 속도로 다 같이 알 수 없는 소리를 중얼거렸고, 그들의 모습이 무서운 괴물로 보이거나 사술을 쓰지 않았음에도 기이한 공포감을 자아내고 있었다.
아인도 뒤늦게 그들의 존재를 눈치챘는지 고개를 돌렸다가 얼굴이 창백해졌다. 전에 습격을 당했을 때는 악식왕이 나서서 그들을 모두 처리해 주었기 때문에 별다른 위협을 느끼지 못했다. 오히려 그런 습격이 있는지조차 금방 잊어버렸고 망각은 독이 되었다.
“…헤르도아.”
“헤르도아요? 이렇게 쫓아올 정도로 원한 살 짓 했어요?”
“몰라요! 우선 도망가요!”
하지만 앞에는 크게 갈라진 얼어붙은 바다가 쩌적거리는 불길한 소리를 내고 있었다. 조금만 발을 헛디디거나 운이 없으면 당장 차가운 바다로 빠질 위험이 존재했다.
허허벌판이었기에 제대로 도망칠 곳도 숨을 곳도 없다. 아인은 또다시 라칼과 이후프를 데려오지 않은 것에 후회하며 떨어져 있는 이름을 향해 가까이 오라고 손짓했다.
“지, 지금 갈게요!”
그나마 여기 있는 이들은 그렇게까지 무겁진 않았다. 제피로스를 활용하고 자신도 바람의 정령화를 사용한 뒤 아예 초고속으로 저들을 지나쳐 뚫고 도망칠 생각이었다.
‘나는 사하바티를 안고 제피로스가 이름을 잡으면 돼. 여기까지 오는 길은 모두 외웠어. 직선은 아니라지만 빠르게 이동한다면…!’
아인이 머릿속으로 도주 경로를 치밀하게 짜고 있을 무렵, 거의 다 도착한 이름에게 한 가지 불행이 닥쳤다.
헤르도아의 사제들에게 겁을 먹은 다른 모험가 한 명이 이름의 바로 옆을 스쳐 지나간 것이다.
자신의 능력을 제어할 수 없는 이름은, 본래 사하바티와 아인이 가지고 있던 자신의 행운을 고스란히 그 모험가에게 뺏겨 버렸다.
이 순간 사하바티와 아인은 행운아가 아니고, 이름은 극악의 불행아였기에 너무나 불행하게도. 다가오는 순간 모두의 발밑에 있던 균열이 더욱 깊어졌다.
그리고 얼음은 완전히 산산조각이 나 붕괴하며 셋은 모두 차가운 노타나의 바닷속에 빠져 버렸다.
***
“이제 와 들어가자니 또 좀 어색한데….”
김유리는 팔짱을 낀 채 서서 캡슐을 한참 동안 노려보고 있었다.
아직 아인을 완전히 이해한 건 아니다. 불안 요소도 있고 정확하게 확인해야 할 사항이 한두 가지가 아니었다.
하지만 그것들이 아인을 버릴 만한 요소는 되지 못했다. 적어도 자신은 그렇게 생각했다.
‘뭣보다 그런 오류 하나 못 잡아 내면 게임사 잘못이지 내 잘못이냐?’
언제나 그랬듯 조금은 심드렁하고 약간은 뻔뻔한 모습으로 돌아오며, 김유리는 아인을 만나서 할 말들을 정해 둔 뒤 캡슐 안에 들어가 몸을 뉘었다.
“로그인.”
이제 곧 익숙한 로그인 화면과 함께 자신이 로그아웃했던 곳의 풍경이 나타날 것이다. 혹시나 바로 옆에 아인이 있을 때를 대비하여 바로 말을 준비하고 있는데, 눈앞에 로그인 화면이 아닌 다른 알림창이 떠올랐다.
[잠시 후 레이드 업데이트가 예정되어 있습니다. 패치 시간 동안 로그인이 불가합니다.]“진짜 가지가지 한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