Hero, What's logout? RAW novel - chapter (117)
117화 : 삼자대면
닉은 언제나 그랬듯 당연스레 문고리를 잡고 열려 했고, 아인은 문과 영웅을 번갈아 보더니 안절부절못하다가 일단 문을 잡고 버티기로 했다. 덜컥거리는 소리와 함께 문은 열리지 않았지만, 이상함을 느낀 닉이 힘을 더 주자 문 자체가 들썩이기 시작했다.
“우아아악!! 우아악!! 잠시만요! 기다리세요!”
“무슨 일 있어? 왜 문이 안 열리지”
“아니에요! 아무 일도 없어요! 돌아가셔도 돼요!”
“아인!! 거기 안에 없어? 왜 문이 안 열려 이거?”
“지금 제 목소리 안 들리는 거예요? 미치겠네 진짜!!”
하지만 영웅이 둘만의 대화를 위에 방 안의 설정을 조정해놓은 탓에 아인의 목소리는 누구에게도 들리지 않았다. 그 사이에 닉은 아인에게 사고라도 터졌는지 걱정되기 시작해 슬슬 문을 발로 차기도 했다. 쾅쾅거리는 소리와 함께 엄청난 진동이 아인의 손에 느껴졌다.
닉은 지금까지 이루어 온 업적으로 인해 스탯만큼은 깡패나 다름없었고, 그녀가 문을 잡고 흔들자 엄청난 소리가 울리기 시작했다. 아인 역시 스탯 면에 있어서는 상당한 편임에도 버티기가 힘들었다. 결국 아인은 문고리에 거의 매달리다시피 한 채로 영웅에게 소리쳤다.
“지금이라도 설정 건드려서 못 들어오게 하면 안 돼요?!”
“그렇게 하면 나도 못 나가서.”
“일단 창문 통해서 나가든지 어떻게 하세요!!”
“좀 힘든데. 창문 통해서 드나드는 사람 있을까 봐 온갖 결계마법 삼엄하게 쳐 놨더라고. 오히려 정면이 뚫기 편해서 나도 문으로 들어온 거야.”
“아 정말! 이대로 용사님하고 당신하고 만나게 하란 말이에요?!”
아인의 말에 영웅은 침음을 흘리며 턱을 매만지다가, 대수롭지 않은 얼굴로 어깨를 으쓱했다.
“안될 건 없지 않니?”
“…네? 뇌가 롤백 되기라도 하셨어요?”
“욕하는 거 봐. 처음에 얼굴만 나 닮았다고 한 거 취소할게. 아무튼 내가 알기로 닉 모하지는 나한테 별다른 악감정은 없던데. 서로 용사인 마당에 이래저래 대화도 하면 좋지 않을까?”
“그, 그러다가 용사님에게 오류 데이터인 걸 들키거나 GM에게 걸리거나 하면 어떡해요!”
“그렇게 의심할 근거는 조금도 없고, 운영진들은 이미 나 잡아서 어떻게 해보려고 사방팔방 돌아다니는 중인걸. 그 부분에서는 걱정하지 않아도 좋아.”
“걱정되는데요?! 특히 당신 말고 저희 안위가 엄청나게 걱정되기 시작했는데요!!”
기가 막힌 아인의 주의가 문이 아닌 영웅에게 쏠리기 시작할 즈음, 문은 더욱 큰 진동을 울리더니 이내 우지끈 하는 소리와 함께 통째로 뽑혀버렸다. 영웅은 벗어두었던 투구를 다시 쓰는 동시에 아인의 목덜미를 잡아 침대로 던져버렸고, 이내 인상을 찌푸린 닉이 안으로 들어왔다.
“왜 이렇게 문을 안 열어? 귀마개 하고 자는 중이…?”
방 안을 살피던 닉은 반쯤 부서진 침대와 그 위에 처박혀있는 아인, 옆에서 묘하게 멋들어진 팔짱을 끼고 있는 영웅을 보고 눈을 이리저리 굴렸다.
상황 파악을 하기까지 10여 초 정도의 시간이 걸렸으며, 상황을 이해하는 것은 포기해버렸다. 닉은 어색하게 고개를 주억이며 영웅을 보았다.
“안녕하세요?”
“반갑다 닉 모하지.”
NPC네. 닉은 자연스레 그 생각을 했다. 낯선 이를 보자마자 대뜸 반말부터 박는 것은 실력에 자신이 있는 PC 아니면 대부분 NPC였다. 그리고 닉은 주는 대로 되돌려주는 타입이었다.
“응. 난 별로 안 반가운데 여긴 왜 왔어?”
“…여기로 오면 너를 만날 수 있다고 해서 들렀다. 저 녀석이 여기서 기다리고 있으면 네가 알아서 올 거라더군.”
영웅은 그 말을 하며 침대에 떨어질 때의 충격으로 인해 반쯤 기절한 아인을 가리켰다. 닉은 흐린 눈을 한 채 고개만 움찔거리는 아인을 보며 질린 표정을 했다.
“그래… 그런데 무슨 일 있었는지 물어봐도 돼? 재는 왜 저 상태고?”
닉의 질문에 영웅은 잠시 말없이 가만히 서 있다가, 덤덤하게 답했다.
“졸리다면서 자던데. 지금은 졸고 있고.”
“변명을 하려면 좀 신경 써서 해라!!”
“젠장 안 믿네.”
“믿을 리가 있냐고!”
위험을 느낀 닉이 허리춤의 검을 뽑으려는 찰나, 간신히 정신을 차린 아인이 상체를 벌떡 일으키며 손을 휘저었다.
“자, 잠시만요. 용사님! 이분 적 아니에요! 용사님도 알고 있는 분이에요!”
“내가? 이런 이렇게 멍청한 사람하고 어울린 적이 없는데.”
“어울린 게 아니라. 아까 전에도 용사님이 말씀해주셨던, 영웅하고 카오스라는 사람 있잖아요. 그중 영웅이라는 분이에요.”
아인의 말에 닉은 한쪽 눈썹을 치켜올리며 믿을 수 없다는 표정을 지었다.
영웅.
최초로 용사 사명을 가졌다고 알려져 있는 존재. 동시에 랭킹 1위라고 알려져 있는 우라노스보다도 비공식적으로는 더 강력하다고 알음알음 말이 나오는 플레이어였다.
카오스와 마찬가지로 자신의 영상은 거의 올리지 않기 때문에 실질적인 무력이나 플레이 스타일은 알려져 있지 않지만, 타인이 촬영한 영상 속에서의 영웅은 가히 영웅이라는 그 닉네임이 부끄럽지 않고 오히려 미적지근하다고 생각될 정도였다.
개중 하나가 헤르도아의 지부 하나를 혼자서 엎어버리는 영상이었는데, 상대가 누구든 헤르도아의 사제라면 가리지 않고 죽이곤 했다. 동시에 헤르도아에 잡힌 일반인들은 풀어준 뒤 한마디도 하지 않고 돌아가는, 냉정하고 독선적인 선인이라는 수식어가 어울리는 자였다.
하지만 지금 눈앞에 있는 것은, 변명 하나 제대로 하지 못하고 ‘스탯 조정 하고 올걸….’하고 알 수 없는 소리나 중얼거리는 멍청한 사람뿐이었다.
“사칭하는 거 아니야?”
“이 갑옷 한정판이라서 다른 사람은 못 가질 텐데.”
“외양만 비슷하게는 만들 수 있잖아. 무엇보다 지금 당신한테 적의를 가지고 있는데 스탯이 안 오르고 있거든? 그러면 나랑 비슷하거나 나보다 약하다는 소리인데 그럴 리가 없잖아.”
용사의 사명을 가지고 있는 이들은 자신보다 강한 상대를 마주할 때에 자동적으로 스탯이 오르는 패시브 스킬을 가지고 있었다. 상대방을 적이라고 인지하는 즉시 발동되는 것이지만, 영웅에게 한껏 살기를 발산하고 있는 닉의 스탯은 변함이 없었다.
하지만 비공식 랭킹 1위를 다투고 있을 영웅의 스탯이 닉보다 낮을 리가 없었다. 게다가 닉네임 중복도 가능한 시점에 유명 PC들의 외양을 따라하는 사칭범들은 이미 존재하고 있었다.
“날카롭네…? 스탯이 문제라면야 그 부분은 의문을 풀어줄 수 있어.”
그 말을 하곤 영웅은 팔짱을 낀 상태로 무어라 입 속으로 웅얼거렸다. 닉이 의심스러운 눈초리로 그것을 보던 중, 얼마 지나지 않아 그녀의 눈이 점점 커지기 시작했다.
“…어? 어라?”
닉의 스탯이 순식간에 높아지기 시작했다. 처음엔 그 상승폭이 적은 듯하더니 점점 가팔라지고, 무서울 정도로 끝도 없이 상승하고 있었다. 결국 닉 쪽에서 그만하라는 듯 손으로 X자를 그린 이후에야 스탯은 상승을 그만두었다.
“용사 스킬 중에 전투력 숨겨두는 것도 있어…?”
“아쉽게도 이건 내 고유 스킬이야. 이제 좀 믿게 되었을까?”
“…대충은. 그런데 아직 아인이랑 방 꼴이 왜 이런지에 대해서는 설명 못 들었어.”
“자고 있었다니까.”
“그거 안 먹힌다고. 언제까지 밀고 갈 건데… 일어난 김에 직접 묻자. 아인, 무슨 일 있었어?”
닉의 시선이 아인에게 돌려지자, 아인은 어깨를 흠칫하고 자신을 가리켰다. 하지만 솔직하게 얘기할 수는 없었다.
‘나와 같은 오류 데이터이자 어머니이기도 한 영웅이 갑자기 들이닥쳐서 오시하는 불꽃 조각을 내놓으라고 했어요. 근데 전 그게 싫어서 서로 말싸움을 하기도 하고 이것저것 진지한 이야기도 하고 조금 감동도 했다가 헤어지려고 하는데 용사님이 오셔서 어떻게 대처해야할지 고민 중에 절 집어던지는 바람에 이렇게 된 거예요. 라고 말할 수 있을 리가.’
애매하게 올라간 입꼬리에 식은땀이 후드득 떨어졌다.
“아는 사이라서… 기다리던 사이… 얘기 좀 하고… 가볍게 말싸움도 하고 어쩌다 보니…?”
“영웅이랑 아는 사이였다고.”
닉은 한숨을 쉬며 아인과 영웅을 한 번씩 번갈아 보았다. 그러곤 ‘이쯤 되면 진정했겠지.’라고 혼잣말을 하더니 환경설정을 키고 한 마디를 읊었다.
“에르 소환.”
말이 끝나는 동시에 에르가 방 안에 소환되었다. 한창 흥분한 상태였던 강제 역소환 때와는 달리, 조금은 진정했는지 평소와 같은 차분한 모습으로 닉을 돌아보았다.
“한대 때려도 돼? 아니 세 대 정도.”
“조금도 진정하지 않았구나. 그건 사과할게. 일단은 내 부탁 좀 하나 들어줄래? 저 사람이 아인을 못살게 군 것 같은데. 둘이 아는 사람인지 아닌지 구별이 필요해.”
아인을 못살게 굴었다는 말에 에르는 다시금 표정이 돌변하더니 닉이 가리키는 영웅을 한껏 째려보았다. 하지만 그것도 잠시. 영웅의 속마음을 읽고 그것이 진짜인지 거짓인지 판별하던 에르의 얼굴이 점차 풀어지기 시작했다.
‘모두 사실이란 걸 알았지? 그러니까 지금은 조용히 해 줘. 많은 사람이 알았다간 아인도 위험해지고 말 테니까.’
마지막 속마음을 읽은 뒤 에르는 고개를 끄덕이고 닉을 돌아보았다.
“거짓말 아니야. 서로 알고 지내던 사이.”
“뭐…? 진짜로?!”
실제로 거짓말은 아니긴 했다. 알고 지내던 사이 정도가 아니라 모자지간이었으니까. 닉이 놀란 얼굴로 믿을 수 없다는 얼굴을 하자, 영웅은 아인에게 어깨동무를 하고 시원스레 웃었다.
“대륙 이곳저곳을 다니던 때에 만난 적이 있어. 그때 얘기를 해서 안면이 있거든. 너도 알다시피 아인 성격이 나하고는 맞질 않아서 사소한 갈등이 생길 때가 있기도 했고.”
딱 봐도 영웅의 성격이 아인과는 달라 보이긴 했다. 자신과 아인이 가끔 마찰을 빚을 때처럼. 닉은 떨떠름한 구석이 남아 있었지만 어찌어찌 넘어갔고, 마지막으로 남은 의문을 뱉었다.
“그래서 나는 왜 만나러 온 건데?”
“몇 없는 용사 사명을 가진 유명인이잖아. 그래서 혹시 도움을 줄 수 있는 게 없나 했어. 용사 사명이 가진 불합리함 같은 건 내가 누구보다 잘 알고 있거든.”
“아. 정말 쓰레기 같긴 해. 대체 무슨 생각으로 이딴 걸 만든 거지. 아직까지 게임 안 접고 유지하고 있는 나에게 상을 주고 싶어.”
“아무리 그래도 그렇게 노골적으로 말하면 나도 상처받아.”
“하지만 정말이라고. 제 성향엔 안 맞아. 당신처럼 불의를 보고도 못 참는 성격도 아니고. 무슨 일이 있어도 대강 설렁설렁 넘어가자는 주의라서. 애초에 플레이어인 당신도 알 거 아니야. 어지간히 게임에 과몰입한다고 해도 우리는 완전히 진심으로 대할 수 없다고.”
닉의 말에 영웅은 말이 없었다. 아인은 둘의 눈치를 잠시 살피고, 아인의 옆에 달라붙어 있던 에르는 이리저리 들썩이는 감정을 보며 눈을 깜빡였다. 하지만 그것도 잠시. 영웅은 작은 웃음소리를 내었다.
“고착되어 있는 용사의 이미지는 있지만, 사람마다 구해진다는 것의 정의는 다르니까. 네 성향도 분명 누군가를 구하고 도와줄 수 있으니 이 세상이 그 사명을 준 거야.”
“거 참 어렵네.”
“그럼 용사의 길이 쉬울 줄 알았어? 이왕 받은 김에 오랫동안 고민하고 과몰입도 해 봐. 이 세상은 네 생각보다도 훨씬 더 세밀하고 진짜 같으니까.”
영웅은 그 말을 하며 문 쪽으로 향했다. 닉은 그 말을 곱씹듯 다시금 중얼거리다가 영웅을 보았다.
“벌써 가?”
“그냥 얼굴 좀 보러 온 거기도 하고. 이 말이 가장 하고 싶기도 했어.”
“진짜 이상한 사람이네. 알았어.”
굳이 잡고 싶지는 않았는지 닉은 대강 손을 흔들었고, 영웅은 아인과 닉을 한 번 돌아보고 고개를 끄덕였다. 이내 발을 움직이는가 싶더니 그대로 문을 밖으로 사라져버렸다.
“…뭐 저딴 사람이 있어.”
“아무래도 유명인 중에는 괴짜도 많은 편이니까…?”
아인은 어색한 웃음소리를 내더니 긴장이 풀렸는지 바닥에 미끄러지듯 주저앉아버렸다. 닉도 찝찝한 구석이 남아있어 침대에 걸터앉아 머리카락을 배배 꼬던 사이, 멀리서 하이텐션의 목소리가 다가오기 시작했다.
“얘~들아 얘들아! 얘들아!! 여기 있니? 너희가 그 금발 헤르도아의 사제 데려온 거야? 무슨 일이니 어쩐 일이니 걔 너무 귀엽더라. 앞으로 쭉 데리고 있을….”
마라는 방 안으로 불쑥 들어오더니, 반쯤 박살난 침대와 지친 듯 앉아있는 둘을 보며 얼굴을 붉히더니 입을 턱 막았다.
“어머. 어머어머. 어머. 내가 방해했니?”
“잠깐. 더 얘기하지 마. 그런 기능 불가한 거 너도 알잖아.”
“내가 무슨 얘기 하려고 했는데~”
말려버린 닉은 입을 턱 다물어버리고, 마라는 깔깔 웃더니 뜯겨진 문과 침대를 한 번씩 보며 고개를 기울였다.
“그나저나 정말로 뭐 싸우기라도 했어? 왜 방 안이 난장판이 되어 있담. 숙소 관리자가 한번 더 하면 너희들한테 청구하겠다던데.”
“…좀 봐줘. 영웅이 갔다 와서 그래.”
투덜거리듯 말하는 닉의 말에, 마라의 얼굴에서 웃음기가 한순간에 사라졌다.
“누가 왔다고?”