Hero, What's logout? RAW novel - chapter (122)
122화 : 그렇게 되지 않을 가능성
아인은 페리스를 향해 내뿜는 화염에 힘을 아끼지 않았다. 그 사이에 자신이 얼마나 발전했을지는 몰라도, 출력이 상급 정령 언저리라면 그에게 닿을지조차 의문이었다.
하지만 페리스보다 힘이 약한 것을 알면서도 아인의 눈에 공포는 거의 깃들어 있지 않았다.
‘적어도 지지는 않을 자신은 있어.’
정령화는 모든 물리 공격에 면역을 가지고 있으며, 상극 속성의 마법이나 정령술이 아닌 이상 큰 피해를 주지 못한다. 이는 아인이 페리스에게서 절대적인 우위를 가지는 부분이다.
자신이 알고 있는 이상 페리스는 별다른 마법 공격을 사용하지 않는다. 즉 정령화를 계속 유지하고 있는 순간에는 패배할 일이 없을 것이다.
처음 정령화를 사용할 때보다 사용 제한 시간도 크게 늘어난 상태라, 어떻게든 버티기만 한다면 자신이 손을 쓰거나 에르와 닉이 와 줄 것이라 믿었다.
분명히 그래야 할 텐데. 그러면 될 텐데.
화염을 가르며 다가오는 검날에 아인은 본능적으로 두려움을 느꼈다. 단순히 쇠로 만들어진 검. 자신에게 통하지 않을 물리 공격일 것인데도 자신의 모든 감각이 저것을 피하라고 외쳤다.
결국 아인은 검이 닿기 직전 몸을 크게 틀었다.
새까만 칼날이 자신의 뺨에 스치자 일순간 그 부분이 욱신거리더니 녹아내리는 것 같은 통증이 느껴졌다.
“……?!”
아인은 자신도 모르게 크게 뒤로 물러났다. 단순히 검에 닿았을 뿐인데 왜 피해가 들어오는 거지? 자신의 정령화가 완벽하지 못했던 걸까? 흔들리기 시작하는 눈에 불안함이 감돈다. 한번 공격을 실패한 페리스는 검을 툭툭 털고 어깨에 걸친 뒤 다시금 거리를 재기 시작했다.
“힘들어하는 것 같은데. 힌트 하나 줄까?”
“네.”
“너무 당당하잖아.”
페리스는 헛웃음을 흘리더니 한 손으로 검을 들어 아인을 가리켰다. 아직도 망령의 잔재가 남아있는 그것은 스산한 느낌을 풍기고 있었다.
“유령이 깃들어있는 저주받은 검이 일반적인 쇳덩어리랑 같을 리가 없다고. 안 그래?”
그 말이 끝나는 동시에 다시금 검이 아인에게 덮쳐들었다. 순간적으로 화염의 벽을 만들어 시야를 차단했지만, 예지에 가까운 육감은 아인이 어느 쪽으로 피했는지 정확하게 알아챘다.
길게 휘두른 검이 아인의 팔 부위를 그었다. 상당히 깊게 들어간 검은 아까와는 비교도 되지 않는 통증을 일으켰다. 터져 나오려는 비명은 억눌렀지만 경악한 표정은 감추지 못했다.
‘저 검의 일격 하나하나가 사령술을 휘두르는 거란 말이야?’
특정한 소재를 담은 검은 마법검이 된다. 축복을 받은 검은 신성 속성을, 바람의 정령석을 박아넣은 검은 바람 속성을 가진 식으로. 이 공식대로라면 과거로부터 온갖 유령을 머금고 있는 페리스의 검은 사령 속성을 가지고 있는 셈이었다.
정령의 가장 커다란 상성 중 하나는 자연의 순환과 고리를 깨는 사령술. 즉 절대적인 우위를 점하기는커녕 처참할 정도로 위험한 지경이었다.
‘위험해. 위험해. 피해야 돼…!’
상처를 입었다는 것을 티를 내면 그 순간 잡아먹히는 존재가 된다. 아인이 슬금슬금 뒤로 물러나려는 자세를 취하자 페리스는 씩 웃으며 순식간에 거리를 좁혔다.
“그러길래 얌전히 달라고 할 때 줬으면 얼마나 좋았을까.”
허리를 크게 젖혀 목으로 들어오는 공격을 피한 아인은 시간을 끌기 위해 하늘로 날아오르려 했다. 그러나 페리스는 그것조차 용납하지 않겠다는 듯 주변의 나무를 타고 순식간에 올라가더니 굵은 나뭇가지가 부러질 정도로 크게 도움닫기를 하고 공중에서 아인을 덮쳤다.
“여기까지다 아인. 도망치기만 해선 아무것도 얻을 수 없어.”
그것은 마치 지금까지의 아인의 행보에 대한 말처럼 들리기도 했다.
새까만 흑도가 아인의 한쪽 팔을 자르기 직전, 극도의 공포감에 반응한 오시하는 눈의 불꽃 조각과 아인의 방어 기제가 전방위로 거대한 불꽃을 폭사했다. 페리스조차 검을 거두며 뒤로 크게 물러나야 할 정도였고, 아인으로선 잠깐이나마 시간을 벌 수 있었다.
‘너무 강해. 정령화의 특징으로 버티기엔 상성도 나빠. 어떻게 이기지?’
스크립트 변경을 이용하여 페리스가 이렇게 되는 설정을 바꾸면 될 것 같았지만, 아인이 평온하게 설정을 읽고 허공을 휘적이며 스크립트 변경을 할 동안 페리스가 가만히 있을 리가 없었다. 최소한 한 번은 제압을 하거나 시간을 벌어야만 했다.
“페리스 님 혹시 저희 사과의 포옹이라도….”
“뭔가 꾸며 볼려면 티가 나지 않게 하려는 성의는 보여라 아인.”
택도 없었다.
아인은 결국 한숨을 쉬며 뒤로 크게 물러나고 두 팔에 마나를 모으기 시작했다. 마치 강력한 한 방을 준비하려는 듯한 모습에, 페리스는 이를 두고 보지 않고 땅을 박차고 나가 아인의 배에 검을 꽂아 넣었다.
“…아아아악!!!”
아인은 결국 견딜 수 없는 격통에 절규를 뱉었다. 페리스는 ‘이쯤 되면 알아서 내놔.’라고 중얼거리며 검을 빼려는데, 검이 조금도 움직이지 않자 한쪽 눈썹을 올렸다.
심지어 자신의 검에 있는 사령의 기운이 미칠 듯이 요동치더니 천천히 약화되고 있었다. 페리스의 입에서 처음으로 당황한 듯한 침음이 새어 나오고, 격통으로 인해 고개를 푹 숙이며 덜덜 떨고 있던 아인은 시선을 올리며 힘겹게 웃었다.
“그래서 이번엔… 도망 안 쳤어요.”
아인은 마나를 모아놓은 두 손으로 검을 더욱 강하게 움켜쥐었다. 그만큼 손아귀에 이는 고통도 커졌지만 페리스의 검에서 울리는 비명은 약해지고 있었다.
자연의 순환과 생명에서 힘이 비롯되는 정령술은 자연의 순환고리를 끊는 사령술에 큰 피해를 입지만, 동시에 사령술 입장에서도 정령술은 꺼려지는 기술이었다. 즉 서로에게 막대한 피해를 주는 속성이었다.
이대로 버티기만 한다면 한동안 페리스의 검에 있는 유령들은 제힘을 내지 못할 것이다. 페리스는 검을 빼내기 위해 안간힘을 쓰고 있었지만 이번만큼은 아인도 물러나지 않았다. 지지부진한 교착 상태가 이어지기 시작했다. 바로 아인이 바라던 때였다.
불꽃을 크게 일으키자 화염의 일부가 페리스에게 닿았고, 아인은 입 속으로 중얼거렸다.
“설정 프로그램 개입.”
[접촉한 몬스터 및 NPC의 설정을 확인하고 거기에 개입 및 왜곡이 가능합니다. 화염의 정령 상태인 지금, 일으키는 불꽃 역시 신체의 일부로 간주하여 불꽃에 닿는 이에게도 영향력을 끼칠 수 있습니다.현재 개입 가능한 개체 정보: 페리스 아크라바
대륙전쟁 당시의 영웅이자 사령술이 특기인 아크라바 가문의 현 가주로서….]
“시간 없어. 설정 스크립트 수정.”
『 이름: 페리스 아크라바
호칭: 자색의 핏줄, S급 용병, 망령의 주인, 거꾸로 쥔 검
사명: 용병 길드장, 헤르도아의 사냥개
레벨: 400
성향: 중립~악
체력: 18920/20000 마나: 4200/5000
근력: 1300 민첩: 1700 지력: 900 행운: 300 명성: 3600
사령술을 주특기로 하는 아크라바 주인의 정당한 주인이자 과거 헤르도아를 절멸시켰던 대륙전쟁의 영웅 중 한 명. 현재는 시골의 용병 길드장을 맡은 채 유유자적하는 생활을 즐기고 있지만 세상에 이변이 닥칠 경우 누구보다 빠르게 나설 용의가 있는 자다.
자신의 가문을 반파시킨 것도 모자라 사령술에 대한 이미지까지 실추시킨 헤르도아를 증오하고 있으며 무슨 일이 있더라도 그들을 용서하지 않겠다고 항상 이를 갈고 있다. 최근 dkdls을 지@#려다가 #&^뚫에 직격한 가트를 살리기? 위해 그는. 』
“이게 뭐야.”
아인은 설정창을 보며 정신이 멍해지는 기분이었다.
설정의 어디에도 페리스가 이후 헤르도아에 귀의한다는 내용은 없었다. 오히려 헤르도아를 무척이나 싫어하며 그 이유에 대해서도 본의 아니게 알아버렸을 뿐이었다.
다만 걸리는 것은 마지막 문장. 알아볼 수 없는 단어들로 이루어진 미완성의 설정. 그것은 아마 자신에 의해 영향을 받아 새롭게 쓰인 문장일지도 몰랐다.
“…….”
아인의 손아귀에서 힘이 점점 풀리기 시작했다. 사실 이 현상 자체만 보면 아인이 바라 마지않았던 장면이기도 했다. 이 세상이 결정했던 설정에서 벗어나 새롭게 자신만의 가능성을 찾고 스스로 삶을 일구어나가는 모습이니까.
‘가능성은 말 그대로 모든 것을 포함하고 있다는 거다. 좋은 의미든 나쁜 의미든.’
아인은 카오스가 자신에게 했던 말을 상기했다.
가능성은 긍정과 부정을 모두 포괄한다. 헤르도아의 사제가 마음을 고쳐먹고 교단을 배신한 뒤 새로운 삶을 살려는 것도. 헤르도아와는 척을 지고 증오하던 용병이 동료를 살리기 위해 헤르도아에 귀의하는 것도 모두 가능하다.
자신이 선택한 삶이 언제나 누군가의 마음에 들 수는 없다. 그것은 당연한 일이다.
그렇다면 아인이 설정 스크립트 변경으로 페리스를 헤르도아에서 벗어나게 할 수는 없었다. 그것은 스스로의 방침을 어기는 것이다.
아인이 설정 프로그램 개입을 하는 이유는 모든 것을 정해진 대로 움직이게 하기 싫기 때문이다.
그런데 지금 여기에서 스크립트를 변경한다면, 페리스가 선택한 것을 억지로 바꾸는 것이다. 자신이 그렇게도 싫어했던 이 세상의 행위를 그대로 답습하는 셈이었다.
이 상황을 어떤 감정으로 받아들여야 할지 몰라 아인은 그대로 눈물만 뚝뚝 흘렀다. 하지만 불의 정령인 상태였기 때문에 흘러내리는 것은 물방울이 아니라 화르륵거리는 불씨였다.
마침내 아인의 손에서 힘이 완전히 풀렸다.
페리스는 갑작스럽게 느슨해지는 검에 고개를 갸웃하면서도 검을 빼내 들었다. 아인의 손아귀에서 풀려난 새까만 검은, 다시금 억척스러운 유령의 기운이 강해지기 시작했다.
[불의 정령화 지속시간이 종료됩니다.]설상가상으로 불의 정령화 지속시간마저 모두 끝나버리고 말았다. 아까 전 과하게 힘을 쓴 탓인지 아니면 스스로 정령화를 유지할 수 없다고 생각해서인지.
정령화가 풀리고 눈물을 쏟아내고 있는 아인을 보자, 페리스는 높게 치켜들었던 검을 내렸다.
“마음은 여전히 물러 터졌구나.”
“페리스 님.”
“말해.”
“헤르도아에 가게 된 건 오로지 페리스 님의 결정이죠?”
혼잣말처럼 웅얼거리는 아인의 질문에 페리스는 질문의 의도를 파악할 수가 없어 고개를 갸웃했다. 혹시 자신이 누군가의 명령이라도 받은 줄 알았는지.
“물론이다. 오롯하게 나 혼자만의 결정으로. 내가 선택한 길이야.”
“그러면 페리스 님의 결정으로 다시 돌아올 수도 있는 거죠?”
그 질문에는 페리스는 대답하지 않았다. 별다른 직책을 받지 않은 일반 사제라면 모를까, 고위 사제의 명을 받고 움직이는 헤르도아의 사냥개가 쉽사리 돌아올 수 있을 리가.
“대답해주세요.”
“그건 내가 결정할 수 있는 게 아니야.”
“페리스 님이 결정하는 거예요.”
이상할 정도로 단호한 아인의 말에 페리스는 한숨을 쉬더니 결국 고개를 끄덕였다.
“그래. 기회가 되면 돌아갈 수도 있겠지. 다시금 내 결정과 선택으로.”
아인은 웃는 듯 우는 듯 애매모호한 표정을 짓고는 바닥에 주저앉았다. 오시하는 눈의 불꽃을 원하면 가져가라는 양.
“좀 아플 거다. 차라리 기절하는 게 나을지도.”
페리스는 다시금 검을 들었다. ‘팔 하나는 잘릴지도 모른다.’라는 말은 괜히 했던 것이 아니다. 앞으로 큰 방해가 되지 않으려면 커다란 패널티 하나는 남겨줘야 했다.
날카로운 검은 정확하게 아인의 오른쪽 어깻죽지를 노렸다. 페리스가 두어 번 심호흡을 하고 내려치려는 순간, 경박한 목소리가 한 곳에서 울려 퍼졌다.
“어머. 또 잘못 짚었나? 아까 엄청나게 큰 불꽃이 터지길래 분명 여기인 줄 알았는데! 나 신경 쓰지 말고 하던 거 해… 라고 싶은데 아는 얼굴이 있네?”
마라는 나뭇가지에서 훌쩍 내려오며 다가오더니, 페리스를 힐끔 보곤 웃는 얼굴로 아인에게 시선을 돌렸다.
“내가 좀 끼어들어도 될까?”
“…이미 하셨어요.”