Hero, What's logout? RAW novel - chapter (125)
125화 : 끝? 시작!
카오스는 자신이 이 세상 자체이자 인공지능이라고 불린다 말했다. 그것은 곧 퀘스트를 주고, 사명을 주고, 이 세상의 모든 흐름을 총괄하는 신이라는 의미였다.
그렇다면 오류 데이터인 아인과, 아인의 엄마인 영웅을 껄끄럽게 여기는 것은 당연했다. 모든 것을 손아귀 안에 둔 자신에게 있어 유일하게 예상할 수 없는 존재들이니까.
‘하지만 생각보다는 상냥한 부분도 있었는걸.’
물론 자신을 죽이기 위해 달려들었던 적도 있지만 결국에는 살려줬을 뿐만 아니라 자신에 대해 알려주기도 하고 아인이 하는 일에 대한 위험성도 언급해 주었다.
‘그렇게까지 싫어하는 건 아닌 걸까. 나중에 더 이야기를 할 수 있으면 좋을 텐데.’
스스로도 ‘가능성 자체를 주는 것’은 부정하지 않는다고 했으니 카오스가 눈을 감아주거나 용납할 수 없는 상황의 기준점이 있을 것이다. 그것을 알 수 있다면 의외로 잘 공존할 수도 있겠다고, 아인은 다소 낙천적으로 생각했다.
얼마 지나지 않아 마라와 닉은 다시 로그인을 하고 들어왔다. 닉은 왜 이런 타이밍에 점검이냐고 투덜거렸고, 마라는 심각해진 얼굴로 무언가를 계속 중얼거렸다. 아인은 그 사이에 있었던 일을 말할 수는 없다고 생각해 에르와 마찬가지로 모르는 척을 했다.
“저, 저도 그 순간에 갑자기 멈춰버려서 잘 모르겠어요. 어쨌든 사라진 건 좋은 거니까요?”
“그렇긴 하지. 이제 더 버티기도 힘들 참이었으니까.”
능력치로 제한을 없앴던 에르의 포션 효과 지속시간이 거의 남지 않은 참이었다. 아인은 에르에게 다가가 꽉 끌어안으며 중얼거렸다.
“고마워 에르. 네 덕분에 무사히 도망칠 수 있었어. 거기에서 중요한 사람을 봤거든.”
“다치지만 않으면 됐어.”
닉은 기껏 도망쳐놓고 다시 돌아온 아인에게 무어라 한 소리를 하려다가, 좋은 게 좋은 거라고 생각했는지 아직도 쭈그려 앉아 혼잣말을 계속하는 마라를 보았다.
“넌 아까부터 계속 뭐라고 하는 거야?”
“너 긴급점검 내용은 봤어?”
“아니. 그냥 마지막에 긴급점검이 있습니다. 하고 바로 꺼지던데. 여기서 그런 거 흔하잖아.”
과한 대처를 막기 위해 대륙 메인 퀘스트도 점검 시작 30분 전부터 알려주는 것이 이 게임이었다. 그렇다면 긴급 점검 정도야 이렇게 할 수도 있지 않을까.
닉이 속 편하게 그런 말을 하고 있자 마라는 눈을 가늘게 뜨고 쳐다보다가 한숨을 쉬었다.
“그래. 골 아프게 생각하면 대개 나오는 결과도 골 때리더라. 젠장 이럴 줄 알았으면 여기 오지 말고 그냥 계속 싸울걸. 무사히 끝났으려나 모르겠네.”
“그러고 보니 너는 가장 규모 클 거라 예상되는 곳으로 갔지? 어땠어?”
“있었어. 거기가 살아 움직이는 해저를 깨운 곳이더라. 어차피 역소환은 불가능하고 자기 입맛대로 조종할 수 없도록 박살만 내는 걸로 만족하기로 했어.”
“B 지역인가. 그쪽은 어때?”
“아직 별 연락은 없긴 한데 어련히 잘하고 있지 않을까?”
중간에 물어볼 수도 있었지만 한창 싸우는 도중에 연락을 하는 것은 좋지 않았다. 한순간의 판단이나 방심으로 칼을 맞느냐 안 맞느냐가 정해지는 전장에서 괜히 귓속말을 보냈다가 죽음에 이르게 한다면 안 되니까.
공중에서 한참 에르를 쓰다듬던 아인은 마라의 말을 듣고 눈을 크게 떴다. 심신이 지친 상태이긴 하지만 아직은 더 움직일 수 있었다. 가볍게 발을 튕겨 닉과 마라의 앞에 내려온 아인은 주먹을 꼭 쥐고 결연한 표정으로 소리쳤다.
“도와주러 가요! 마라 님이 장소 아실 거 아니에요. 에르랑 제가 금방 데려다줄 수 있어요.”
“흐음~ 그러면 가 볼까? 사실 내가 있던 곳은 굳이 안 가도 될 거야. 나 없어도 할 만하다고 판단하니까 온 거고. 그러면 남은 곳으로 갈까? 거기도 헤르도아 지부 찾았다 했거든.”
이후프와 사하바티, 이름이 갔던 곳.
아인은 빠르게 고개를 끄덕였다. 아인이 닉을 들고 에르가 마라를 들어 올리자, 마라는 에르에게 안긴 채 몸을 툭 건드렸다. 자신의 특성을 이용해 능력치나 강함을 확인하자 입이 절로 벌어질 정도였다.
“진짜 엄청 강하네. 좀 더 살펴봐도 돼?”
“살펴보기만 하는 정도라면 상관없어.”
“이런 걸 데리고 다니려 했다 이 말이지. 세계정복이라도 꿈꾼 거냐고.”
4대 원소는 물론 빛과 어둠, 꿈 등등. 현재 존재하는 모든 자연 원소를 사용할 수 있으며 다양한 원소를 배합해 치명적인 독까지 만들 수 있었다. 게다가 그 하나하나를 정령왕급의 출력으로 사용한다. 자칫 거의 준 재앙이라고 해도 과언이 아니었다.
‘밸런스상 설정 건드렸다더니 그럴 만하네. 영향력이 높아지기 전에 손을 써둔 게 다행인가.’
지금의 아인이나 닉 수준으로 에르의 명성이 높아졌다면 GM 차원에서 건드리지 못했을 가능성도 있다.
그러면 유저 간의 밸런스를 위해 정말로 에르 레이드가 나왔을지도. 아직 마라가 에르의 몸을 이곳저곳 더듬고 있자, 아인은 출발하기 직전 그쪽을 힐긋 바라보았다.
“아직 에르 상태 살펴보시는 중이세요?”
“응? 그건 다 끝났어. 이건 그냥 내 개인적인 흑심으로 만지는 중이야.”
“당장 멈춰요!!!”
마라는 짧은 탄식과 함께 손을 떼어냈고, B 구역을 찾기 위해 공중으로 한참 올라가던 중 손가락으로 한 방향을 가리켰다.
“저쪽으로 쭉 가다 보면 엄청나게 우거진 숲이랑 절벽이 나올 거야. 그 절벽 아래에 지부가 있어. 지형이 어지간히 나쁜 게 아니다 보니 적절한 인물 추려내는데 좀 고생했지.”
“자칫하면 헤르도아랑 싸우기도 전에 꽤 다치거나 죽고 시작하겠는데요.”
규모상으로는 C 구역이 가장 컸다지만, 헤르도아가 게릴라전을 유도하면 더 큰 피해를 입을 수 있는 것은 B 구역이었다. 게다가 오염된 가을 거목의 숲은 헤르도아에겐 피해를 끼치지 못하지만 다른 이들은 서 있기만 해도 중독이 되는 지역이다.
안 그래도 이후프와 사하바티가 있는 곳인지라 신경이 쓰여, 아인은 좀 더 속도를 높였다. 에르도 아인의 마음을 읽더니 그를 힐끔 보고 더 빠르게 비행했다.
바람의 정령 둘이 움직이는 속도는 여간 빠른 것이 아니었다. 얼마 지나지 않아 마라가 지목한 곳까지 도달할 무렵, 아인은 절벽에서 기괴한 생명체 하나를 발견할 수 있었다.
“뭐야 저건…?”
절벽의 중앙에서 새까맣게 물든 거대 골렘이 튀어나와 있었다. 상체만이 드러난 그것은 절벽 아래를 향해 계속해서 주먹을 휘둘렀는데, 얼마나 강한 힘인지 그것의 주먹이 한번 바닥을 칠 때마다 땅이 울리고 먼지가 피어오를 정도였다.
비행 내내 ‘공주가 된 기분이야.’라고 잡담을 하며 여유를 부리던 마라도 예상치 못했던 것이 보이자 미간을 좁히며 자세를 바로 했다. 자신이 보았던 정보에는 저런 것이 없었다.
“잠깐만… 설마 다음 재앙을 미리 소환한 거야? 그럴 리가 없는데?”
아인은 그것을 가만히 쳐다만 보고 있던 에르를 잡아 흔들었다.
“에르! 저것 좀 어떻게 해 봐! 저러다가 모두 다치겠어!”
“응? 응.”
에르는 고개를 갸웃하더니 공중에서 거대한 철퇴 하나를 만들어냈다. 말이 철퇴지 강철 메테오라고 불러도 무방해 보이는 그것은, 에르의 손짓에 따라 점점 더 커지고 회전력을 가지기 시작했다. 어지간한 성도 한 방에 무너뜨릴 수 있을 정도로.
“그러면 이거 어떻게 해?”
“그야 당연히 저 골렘을 막아야지! 네 힘으로도 힘든 거야?”
“할 수는 있는데.”
에르는 여전히 이해가 안 된다는 얼굴로 고개를 갸웃하며 골렘을 가리켰다.
“근데 저건 이후프잖아. 그래도 돼?”
“응? 누구라고?”
그 말에 아인은 반대로 고개를 갸웃했다.
에르는 여전히 알 수 없다는 얼굴이었지만 일단 시키는 대로 거대한 철퇴를 휘둘러 골렘-이후프에게 던지고, 아인은 기겁하며 손을 휘저었다.
“어? 어? 진짜로 이후프라고? 으아악 에르 잠깐!!!!”
***
“하하. 어디서 그런 공격이 나오나 했더니 에르였군요. 저흰 다른 지부가 급습하나 했어요.”
“정말로 죄송합니다….”
“괜찮아요. 사하바티 덕분에 다친 곳은 없으니까.”
에르가 말한 대로 절벽의 중앙에서 바닥을 주먹으로 내려치던 이는 이후프였다. 에르가 날린 철퇴는 다행스럽게도 직격하기 직전 사하바티가 소환한 거대한 나무 수십 그루에 막혔다.
모습을 변화시켜 평소의 모습으로 돌아온 이후프는 절벽에 만들어놓은 자신의 분체를 다시 무너뜨렸다.
검게 물들어 있던 아까의 모습과는 달리 흠집 하나 없이 멀끔한 상태였다.
“겉모습도 새까만 상태이길래 헤르도아가 소환한 다른 골렘인가 했었어요.”
“헤르도아가 날린 온갖 마법과 저주를 좀 뒤집어쓰긴 했죠. 그렇게 쳐다보지 않아도 돼요, 괜찮아요. 유기물에게 효과가 있는 저주라서 아무런 효과가 없었으니까요.”
저주라는 말에 이제 트라우마가 생긴 아인이 무시무시한 기세로 이후프를 살펴보려다가 안도의 한숨을 쉬었다. 밑으로 내려와 보니 이미 상황은 반쯤 끝난 상태였다. 방금 이후프는 회생의 여지를 주지 않기 위해 지부의 남아 있는 구조물까지 가루로 만들고 있었던 것이다.
“그나저나 지형이 험악해서 힘들지 않을까 했는데 다행이에요.”
“그런 곳은 저희의 무대죠. 골렘과 드라이어드가 있는데 절벽이나 숲이 배경이라면, 상대방은 절벽과 숲 전체를 상대로 싸워야 하는 것이나 마찬가지에요.”
말마따나 숲에 있는 나무 곳곳에는 포획되거나 반 죽음 상태인 헤르도아의 사제들이 주렁주렁 매달려 있었다. 한 곳에서는 이름이 숨을 돌리며 쉬고 있다가, 마라를 보곤 손을 흔들었다.
“아. 마라 님 여기까진 무슨 일이세요? 원래 있던 곳은 다 끝났어요?”
“응응. 이쪽하고 합류할 일이 생겨서 나부터 급하게 오긴 했는데 거기도 문제는 없을 거야. 특히 그 복슬복슬 늑대인간이 아주 미쳐 날뛰더라고. 너는?”
“이쪽도 골렘 분이랑 드라이어드 분이 활약해 주셨어요. 절벽 내려가는 것부터….”
이후프가 절벽 중앙에서 거대한 형태로 변해 한 방에 헤르도아의 지부를 날려버리던 순간은 잊지 못할 것이다. 물론 그 순간에 운 나쁘게 휘말려서 오염된 숲의 중앙에 떨어진 순간도. 이름은 은은한 얼굴로 아까 전의 전투를 회상했다.
아인은 사하바티의 상태도 무사하다는 것을 확인한 뒤, 이제야 긴장이 풀리는 듯 정령화를 해제시키며 바닥에 주저앉았다.
“세 군데 모두 지부가 있었으니 얻어갈 게 많겠어요.”
“물론이지! 지금 바닷가 쪽은 죄다 프로토게노이랑 전투력 측면에서 강한 길드들이 독점하고 있었거든. 헌터 길드는 활약상이 없어서 슬슬 뒷말이 나오기 시작했는데 다행이야.”
헌터 길드는 전투력이 아닌 모험과 정보 측면에서 발군인 길드였기 때문에 사냥터 독점 관련과 관련해서는 큰 힘을 쓰지 못하는 것이 사실이었다.
오래도록 활약상이 없으면 금방 묻혀버리는 이곳에서 손가락만 빨고 있는 것만은 피해야 했는데, 이것으로 한 차례 헌터 길드의 이름이 알려지며 한숨은 돌린 것이다.
“물론 본격적인 시작은 지금부터지만 말이야.”
마라는 싱글벙글 웃었고, 아인은 의문을 담은 눈을 끔뻑였다.
“아직 헤르도아의 지부가 남아있나요?”
“아니. 이 주변은 완벽하게 다 처리했어. 내가 말하는 건 살아있는 해저 쪽이야.”
그쪽 관련 사냥터는 다 독점을 하고 있다 하지 않았나? 아인과 이름이 나란히 이해가 되지 않는다는 얼굴로 마라를 쳐다보자, 그녀는 아기 새들을 보는 얼굴로 둘의 머리를 쓰다듬으며 위험한 미소를 지었다.
“이제 피라미들이 아니라 진짜 위험한 몬스터들이 나올 때가 됐거든.”