Hero, What's logout? RAW novel - chapter (131)
131화 : 전조
“데이드완 님…?”
아인은 지금 무슨 일이 일어났는지 이해하지 못했다. 정확하게는 머리가 지금 눈앞에 보이는 장면을 이해하는 것을 거부하고 있었다.
보이는 인물과 들리는 목소리는 분명히 데이드완이었다. 사람의 특징을 잘 기억하는 아인이 그것을 분간하기엔 어렵지 않았으며. 그래서 더욱 충격을 받을 수밖에 없었다.
다정하고 따뜻한 마음씨. 최초로 정령화를 성공시킬 정도로 자연과 정령에 대한 애정이 크며, 장수종인 만큼 에스텔의 영원한 영주로 남을 것만 같았던 그였다. 하지만 그런 데이드완이 다른 곳도 아니고 헤르도아의 주교 중 한 명이라니. 농담도 이런 지독한 농담이 없었다.
그런 아인의 마음에 대답하듯 데이드완의 나레이션이 이어졌다.
-이 말을 듣고 충격을 가지실 분들도 있으리라 생각됩니다. 허나 이는 사실이며 어쩌면 제 성향을 생각했을 때 이미 예정되어 있던 일일 수도 있습니다.-
일종의 환각이고 환청이다. 이곳에 데이드완이 있는 것 같지는 않았다. 그것을 인지하면서도 아인은 계속해서 주변을 둘러보며 ‘그럴 리가 없어요.’라고 중얼거렸다.
하지만 그런 중얼거림이 무색하게 눈앞의 장면은 헤르도아의 사제복을 입고 있는 데이드완으로 옮겨졌다. 그것을 보고 나서야 아인의 목소리가 멎었다.
-저는 이 세계의 자연을 사랑합니다. 그것은 변하지 않으며 앞으로도 변치 않을 사실입니다. 누구보다도 순수하게 열망하면서요.-
헤르도아의 고위직은 악에 물들지 않았다. 오히려 정령과도 같은 순수한 광기를 가지고 있다. 아인은 자신이 언젠가 들었던 지식과 파시에가 했던 말들을 떠올렸다.
이후 눈앞의 장면은 다음으로 넘어갔다. 이 세상의 풍경 중 일부. 산속에서 물이 흐르고 불이 바람에 흩날려 점점 더 번져가는 모습. 새벽의 어스름. 노을 지는 풍경. 번개가 치는 장면.
-자연은 단 한 가지의 속성만으로 이루어져 있지 않습니다. 순수한 물, 순수한 바람, 순수한 대지나 불꽃만으로 생성된 곳은 없습니다. 타 속성의 정령이 더 많이 발견된 지금은 더욱 그 생각이 확고합니다. 완전한 자연은 모든 것이 섞여 있으며, 이는 곧 혼돈을 의미합니다.
저는 이제야 이것을 깨달았습니다. 자연의 온전한 상태는 혼돈이라는 것. 그리고 세상을 공평하게 혼돈으로 이끌려는 헤르도아의 길이 진정한 자연을 위한 길이라는 것을. 대륙전쟁 당시 저는 반대편에 섰지만 이제는 그들과 함께하려 합니다.-
그 모습은 여타 헤르도아의 사제들이 보였던, 높은 목소리로 외치며 강박적인 모습과는 거리가 멀었다. 드문드문 보이는 얼굴도 사제복을 입고 있는 것을 제외하면 여전히 다정함과 친절이 묻어나왔고 목소리 또한 그러했다. 오히려 그래서 더욱 큰 광기가 느껴졌다.
데이드완의 다정함은 모두 자연을 생각하는 마음에서 비롯되었다. 공생을 자연의 가장 큰 가치로 삼았기에 누군가를 배려하고 같이 살아갔을 뿐. 하지만 혼돈을 가장 큰 가치로 삼은 지금 목소리와 표정은 그대로더라도 하는 행동만큼은 완전히 뒤바뀌었을 것이다.
그는 친절한 사람이 아니다. 그저 섬뜩해질 정도로 순수하게 자연을 기준으로 생각하고 자연만을 위해 살아가는 존재다.
-엘퀴네스의 눈물은 제가 가지고 있습니다. 다만 아직 사용하지는 않았습니다.-
그 말에 아인은 퍼뜩 정신이 들었다. 가트를 치료할 수 있는 유일한 방법이 데이드완에게 있었다. 그것을 어떻게 해서든 되찾아야만 했다.
-엘퀴네스의 눈물을 가지러 올 정도면 그만큼 자연에게 사랑받고 또한 저만큼 자연을 사랑해 마지않는 분이라고 생각합니다. 같이 나눌 이야기가 있습니다. 이곳에 저의 물건을 두고 가겠습니다. 그것을 가지고 있다면 시간이 지난 후 제가 먼저 찾아뵙도록 하겠습니다.-
그것으로 장면은 끝이 났고, 시야는 희미한 빛이 나는 심해의 한복판으로 되돌아왔다. 그리고 시야가 돌아오는 동시에 파시에의 고함 소리가 귀를 때렸다.
“아인!!!”
“으, 으악! 왜 그래요 파시에?!”
예민한 귀에 큰 소리가 울리자 아인이 움찔하며 귀를 막았다. 파시에는 눈을 가늘게 뜨고 아인을 보다가 한숨을 쉬었다.
“…아무리 불러도 말을 안 하잖아. 갑자기 멍때리더니 그럴 리가 없다고 중얼거리기만 하고. 갑자기 환각이라도 본 것처럼.”
“파시에는 못 봤어요? 엘퀴네스님은요? 방금 데이드완님이 나타나서….”
“무슨 소리를 하는 거야. 아무것도 안 나타났고 그냥 너만 갑자기 멈춰 섰어.”
하지만 파시에는 물론 엘퀴네스 역시 아인이 무슨 말을 하는지 이해하지 못하는 표정이었다. 결국 아인은 설명을 포기했다. 동시에 내심 자신이 그저 단순한 환각에 빠졌던 것이기를 바랐다. 잠깐 지나간 어이없는 망상이었을 뿐, 실리본이 수정을 통해 데이드완은 에스텔로 무사히 돌아갔다고 말해주길 바랐다.
실리본에게 지금 당장 물어보면 알 수도 있을 것이지만 아인은 그러지 않기로 했다. 남의 입으로 듣기보단 차라리 자신의 눈으로 확인하길 원했다.
엘퀴네스는 아인을 빤히 보다가 덤덤한 말투로 말했다.
“못 들으셨던 것 같으니 다시 말씀드릴게요. 엘퀴네스의 눈물이 사라지고 그 자리에 못 보던 정령석 하나가 놓여 있었어요.”
“정령석이요?”
“네. 온갖 속성이 혼재돼서 실제 정령이 소환될 것 같지는 않았지만요.”
엘퀴네스는 아인에게 정령석 하나를 건네주었다. 말마따나 여러 종류의 속성이 어지럽게 얽혀 있었으며 여기에 마나를 주입한다고 해서 온전한 형태의 정령이 나타날 것 같지도 않았다. 정령석을 자세히 살펴보던 아인은 구석에 한 문장이 적혀 있는 것을 발견할 수 있었다.
고대 엘프어로 이루어진 말. 아인은 기억을 더듬어 그것을 해석하며 천천히 중얼거렸다.
“모든 것은… 자연으로 되돌아가야 한다….”
예전에 닉이 받았던 데이드완의 장신구에도 적혀 있었던 문구. 아인은 실소를 흘렸다. 이것은 아주 갑작스럽게 벌어진 일이 아니다. 심사숙고하여 결정된 데이드완의 선택이었다.
다시금 아인의 말이 끊어졌다. 입만 벙긋거리며 눈을 굴리는 모습에, 엘퀴네스는 내내 여유로워 보였던 엘퀴네스가 살짝 난처해진 얼굴로 한숨을 쉬었다.
“당신에게 도움을 드릴까 했었는데 미안해요.”
그 말에 아인이 오히려 펄쩍 뛰며 고개를 필사적으로 저었다.
“아, 아니요! 괜찮아요. 그게 사라진 게 엘퀴네스 님의 탓도 아니고요. 설마 이런 바닷속까지 누가 들어올 수 있겠어요. 그리고 항상 도움만 받을 수도 없고….”
“비단 그것뿐만이 아니에요. 저와는 달리 아인은 좋지 못한 것을 본 것 같아서. 괜히 큰 부담감을 주기까지 했는데 상처만 안겨다 주어 뭐라 할 말이 없어요.”
아인의 감정은 엘퀴네스가 굳이 상세하게 보려 하지 않아도 저절로 읽힐 정도로 복잡하게 요동치고 있었다. 생각을 숨길 수는 없다. 아인은 다시 한 번 ‘괜찮다.’라고 말하려다가 애매하게 입꼬리를 일그러뜨렸다.
괜찮지 않았다.
“…언젠가 알았어야 하는 일이라면 차라리 나아요.”
하지만 계속해서 도피하고 외면할 수도 없었다.
“그리고 괜찮아야 해요. 지금은 할 일이 많잖아요.”
얼마 지나지 않아 닥칠 위협을 어떻게 처리할지도 문제였다. 엘퀴네스의 눈물이 있어야 대처가 가능했던 위협이라면 상응하는 무언가가 필요할 텐데. 아인이 난처하게 웃으며 볼을 긁적이자, 엘퀴네스는 그를 가만 쳐다보다가 볼을 감쌌다.
“아인. 여기 올 때 사용한 기술이 정령화였죠? 혹시 다른 정령으로도 변화가 가능한가요?”
“네? 그, 바람의 정령이랑 불의 정령만 가능해요. 둘만 가능하다기에는 이미 제 수준보다도 훨씬 더 높은 능력을 가진 것 같지만….”
당황한 아인이 눈을 굴리며 아무렇게나 말하자, 이내 엘퀴네스는 그의 이마에 입을 맞추고 몸을 끌어안았다. 눈을 크게 뜬 아인의 몸이 굳었지만, 반대로 몸속의 마나는 깨끗해지고 주변의 물들이 친숙하게 느껴지기 시작했다.
“엘퀴네스의 눈물 정도는 아니더라도. 제가 할 수 있는 것은 최대한 도와드릴게요.”
그와 동시에 아인의 눈앞에 여러 개의 알림창이 동시에 떠올랐다.
[가장 순수한 물이 당신의 올곧음을 좋아합니다. 정령왕의 가호가 잇따릅니다.] [물의 친화력이 대폭 상승합니다.] [물의 친화력이 상승합니다.] [물의 친화력이 상승합니다.]이내 친화력이 상승한다는 알림창이 계속해서 띄워지다가, 마지막에 다른 알림창이 올라갔다.
[물의 정령화 사용이 가능합니다.]***
얼어붙은 바다에서 한참 몬스터들을 사냥하던 프로토게노이와 상위 길드들은, 한바탕 전투를 끝낸 뒤 저마다 얼음 위에 주저앉아 숨을 고르며 재정비를 하고 있었다.
“이거 조금만 더 지나면 방어선 뚫리겠는데.”
“이권은 차치하고 전선을 뒤로 물려야겠어. 먼저 죽이려고 욕심부리다간 전멸당할 것 같아.”
점점 몬스터의 수준이 격상하고 있었다. 방금 나타났던 것은 바다를 떠도는 거대 유령선의 함장 잭 드레이크. 신성이나 불꽃 속성이 아니면 제대로 된 피해를 입힐 수도 없는 데다, 영혼을 빼앗긴 이들은 일시적으로 유령선의 선원으로 만들어 대는 통에 골치가 아팠다.
당장은 큰 문제가 없었다. 하지만 슬슬 공략법이 필요한 수준의 몬스터가 나오기 시작하자 피해가 누적되고, 사망으로 인한 로그아웃 페널티가 끝나기도 전에 더 강력한 존재들이 모습을 드러내고 있었다.
몇몇 길드원은 홈페이지의 정보 글을 보다가 혀를 찼다.
“노타나 영지뿐만 아니라 북쪽 대륙의 해안선엔 이제 몬스터들이 꽤 밀려들기 시작했어. 동부나 서부 대륙의 바닷가에서도 간간이 나타나기 시작한다는 모양이야.”
시간이 지나면 전 대륙의 모든 바닷가에서 몬스터가 나오는 것이 아니냐는 가설은 처음에 억측에 가깝게 받아들여졌지만, 지금은 모두가 그것을 가볍게 여기지 않았다.
전 대륙의 모든 바닷가에 인력을 투입하는 것도 무리였다. 하지만 제대로 된 방어가 갖추어지지 않은 곳에 훗날 이런 수준의 몬스터들이 들이닥친다면 저항 한 번 하지 못하고 쓸려버릴 것이 분명했다. 전 세상이 바다에 포위되는 것이나 마찬가지였다.
“이건 본체를 공격해야 하는데 아직 길드 윗선 쪽에서는 별 얘기 없어?”
“숙고 중이라는 말만 나와. 내 생각엔 방법을 못 찾은 것 같아.”
이러다가 정말로 세상이 망하는 건 아닐까. 설마 하는 마음이 들면서도 불안감을 떨칠 수가 없었다. 카오스는 최소한의 밸런스 패치는 해도 이미 벌어진 일에 대해서는 절대로 롤백하거나 운영진 쪽에서 과하게 개입하는 경우가 없다. 균형은 인공지능의 의도에 의해 맞춰지고 있기 때문에 애초에 깊이 개입하는 것조차 불가능하다고 들었다.
“젠장. 바닷가하고 가까운 곳에 돈 들여서 작은 땅 하나 사 놨었는데.”
이곳저곳에서 탄식이 들리는 와중, 먼 바닷가를 살펴보던 정찰대 하나가 눈을 찌푸렸다. 아주 먼 거리에 전에 없던 점 하나가 보였다.
“저거 뭐야? 원래 있었나?”
“뭔데? 또 몬스터야?”
“잘 모르겠어. 그냥 섬 같기도 하고. 워낙 멀리 있어서 잘 모르겠는데.”
정찰대원은 천리안 마법을 사용해 다시금 그곳을 쳐다보았다. 곁에 있던 길드원 한 명이 궁금증에 그를 툭툭 건드렸다.
“뭐가 있어서 그래? 아직도 안 보여? 또 유령선은 아니겠지?”
“…거북이.”
“응?”
생각지도 못했던 말에 주변 사람들이 눈을 끔뻑이자, 정찰대원은 어이가 없다는 얼굴로 입꼬리를 비틀었다.
“어지간한 섬보다도 거대해 보이는 괴물 거북이가 이쪽으로 헤엄치고 있어. 하루 정도면 도착할 것 같아.”