Hero, What's logout? RAW novel - chapter (134)
134화 : 위험할 때가 가장 적기
“잠깐, 바다도 움직이는데?”
“아냐. 저건… 파, 파도가 덮친다! 모두 피해!!”
그것은 아직 아무런 행동도 취하지 않았다. 정확하게는 헤엄을 치고 있을 뿐이지만 그 행위만으로 엄청난 크기의 해일이 일어나 바닷가에 있는 인원들을 통째로 집어삼켰다.
대륙의 최북단에 위치한 노타나 영지의 바닷물은 얼음장같이 차갑다. 아주 잠깐만 노출되더라도 금방 저체온증에 걸리고 의식과 목숨을 앗아간다. 그나마 여력이 되는 길드는 냉기 저항이 되는 장비를 갖춘 듯 보였지만 그마저도 오래 가지 못했다.
“제기랄, 안에도 몬스터들이 있어. 이 거북이 하나만 온 게 아니야!”
해일에 의해 물속으로 빠진 이들은 얼마 지나지 않아 시 서펜스나 어인, 상어들의 희생양이 되기 시작했다. 까마득한 크기다 보니 작은 몬스터들이 숨어 있을 곳은 차고 넘쳤다.
“공격하지 않고 뭐 하는 거야!”
“하고 있어! 하고 있는데 씨알도 안 먹히는 거라고!”
온갖 속성의 마법들이 아스피드켈론에게 닿았지만 무엇 하나 유의미한 피해를 주는 것이 없었다. 등딱지는 물론이요, 드러나 있는 다리나 얼굴도 멀쩡했다. 느릿하게 끔뻑이는 거대한 눈도 얇은 피막에 의해 보호되고 있었는데, 그마저도 뚫지를 못하고 있었다.
마법 방어력이 높다면 근접 전사들이 활약을 할 때였다. 하지만 가까이 다가가야 공격이든 뭐든 할 텐데, 끊임없이 몰려드는 해일로 인해 접근 자체가 불가능할 정도였다.
그나마 수중 전투와 수영에 능하더라도 바닷속 안은 아스피드켈론을 따라온 해양 몬스터들로 즐비한 상태였다. 아무리 실력 좋은 전사라 한들 그것들 모두와 싸울 수는 없었다.
그것은 마치 하나의 해양 요새이자 성. 또한 바다를 범람시켜 해양 몬스터들이 육지로 활동 영역을 넓히게 만드는 충차의 역할을 맡고 있었다.
만일 바닷물을 안에 저장하는 능력을 가지고 있다면, 저만한 크기가 쏟아내는 바닷물은 영지 하나 정도는 물에 잠기게 하기에 충분할 것이다. 그렇다면 지금까지 육지 안쪽까지는 갈 수 없었던 해양 몬스터들이 아스피드켈론만 있다면 어디서든 활개를 치는 것이 가능했다.
시간이 지나 이런 것이 전 대륙의 바닷가에서 사방으로 몰려든다면.
비슷한 것을 생각한 것인지 몇몇 길드원들의 얼굴이 창백해지기 시작했다. 바닷가로 나오는 몬스터만을 잡던 얼마 전까지와는 다르다. 이제부터는 대륙의 명운을 가를 싸움이었다.
“원거리 공격이 가능한 이들은 최대한 눈을 노려 쏴라! 다른 이들은 어떻게든 저 녀석 몸에 올라타는 것부터 시도해!”
하늘을 날 줄 아는 몇몇 길드원들이 공중으로 날아 등딱지 위로 착지하려 했으나, 갑작스러운 비행 몬스터에게 습격당하더니 비명과 함께 바다로 추락했다.
“저건 또 뭐야? 왜 해양 몬스터도 아닌데? 애초에 어디서 나온 거지?”
“…등딱지 위에서 온 것 같아. 진짜 뭐 저런 게 다 있어?”
아스피드켈론은 어지간한 섬보다도 거대하며, 그 등딱지 위는 이미 수많은 몬스터들의 생태계가 자리 잡혀 있었다. 그들의 입장에서는 자신들의 삶을 위협하는 이들을 경계하고 요격하는 것이 당연한 일이었다.
무슨 방법을 써도 그것에게 다가갈 방법이 없었다. 지휘관들이 절망에 빠져있을 무렵 사상자는 점점 더 늘어나기 시작했다.
고위 길드, 거기에서도 뛰어난 실력자일수록 길드원 개개인의 사망은 커다란 피해로 직결된다. 지휘관들도 뒤늦게 후퇴 지시를 내리려 했으나 이미 한 명도 빠짐없이 해일에 휩쓸려 있는 상황이었다.
아스피드켈론을 적으로 간주한 닉의 스탯 역시 상당히 높아져 있는 상태였지만 어딜 어떻게 공격해야 하는지도 알 수 없었다. ‘일발역전’을 사용할 경우 약점 부근으로 갈 수야 있어도, 이렇게 덩치가 크면 정확히 무엇이 약점인지도 모르거나 뚫을 가능성도 없을 것 같았다.
가령 심장이 약점이라고 심장 부근의 등딱지로 보내줘 봐야 생채기만 조금 내고 그곳에 있는 몬스터들에게 둘러싸여 먹혀버릴 테니까.
이후프는 몸체를 거대화시키고 사하바티는 바닥에 뿌리를 단단히 내려 해일에 휩쓸리지 않았다. 나아가 허우적거리는 이들을 하나하나 잡아채 구해주었다. 닉은 이후프의 어깨에 올라가 있다가 바닷속에서 무언가를 보고 눈을 가늘게 떴다.
“저거 설마….”
“왜 그러냐 닉. 또 다른 몬스터라도 발견했나?”
“라칼 너는 휩쓸리면 끝장나서 사하바티한테 들러붙어있는 주제에 왜 그렇게 의기양양하게 답하는 건데. 아무튼 방금 아인을 본 것 같은 기분이 들어서. 잠깐 다녀올게. 아니다 싶으면 바로 올 수 있으니까 걱정하지 마.”
“아인을? 알았다. 이 답답한 녀석들은 어떻게든 구해보지.”
“아니 너는 사하바티한테 꼭 매달려 있으면서 왜 그렇게 자신감 넘치게 대답하냐고.”
닉은 로그아웃을 하면서 자동적으로 탈퇴되었던 파티를 새로이 생성하고 라칼과 이후프, 사하바티를 파티원으로 입력시켰다. ‘파티원 위치로 이동’을 외치면 다시 여기로 돌아올 것이다.
닉은 자기 자리에 다른 사람을 더 구해서 올려놓으라고 말한 뒤 바다에 스스로 빠졌다. 원래대로라면 엄청난 추위가 찾아와야 했지만 통각 수준을 상당히 낮춰 놓았던지라 선선한 정도로만 느껴졌다.
[저체온증이 시작됩니다. 일정 시간 이상 이 온도에 노출되면 사망합니다.]물론 몸은 그렇게 느끼지 않는 모양이지만.
닉은 물속에서 최대한 집중하여 주위를 둘러보았다. 온갖 해양 몬스터들을 상대로 싸우고 있는 길드원들이나 일방적으로 먹혀 끌려가고 있는 자들도 보였다.
아까 보았던 것은, 마치 물의 정령처럼 새파란 모습을 한 채 물에 빠진 사람들을 구하고 있는 존재였다. 스쳐 지나가듯 봐서 확실하진 않았지만 아인의 얼굴과 비슷해 보였다.
‘바람의 정령화나 불의 정령화도 한 적 있으니 물의 정령화도 할 수 있겠지 뭐.’
정령화라는 스킬과 그 습득 난이도에 대해 알고 있다면 이렇게 간단하게 말할 수가 없을 테지만, 오히려 문외한이었기 때문에 적당히 생각할 수 있었다.
‘그 녀석 성격이나 아까 봤던 모습 생각하면 물에 빠져서 죽어가는 사람 구하고 있을 것 같은데. 좀 더 아래로 내려가야 하나?’
한 손에는 새로 산 검을 들고 깊이 헤엄쳐 들어가던 닉은, 갑작스레 자신의 얼굴을 감싸는 촉수에 눈살을 찌푸렸다.
‘아 젠장. 당연히 나도 공격받을 수 있는데 그걸 생각 못 했어!’
검을 꺼내 휘두르려고 했지만 물속이었던 만큼 생각처럼 공격이 되지 않았다. 베는 것보다는 찌르는 것이 나을 것 같아 촉수를 내려찍었지만, 워낙 두꺼워 제대로 잘리지도 않았다. 심지어 입이 막혀서 ‘파티원 위치로 이동’을 외칠 수도 없었다.
[숨이 부족해집니다.]‘나도 알아!!’
일반적인 사람보다는 폐활량이 훨씬 높다지만 물속에서 숨을 쉴 수는 없었다. 결국 얼굴을 구긴 채 계속해서 촉수를 찌르고 있는데, 거대한 촉수가 하나 더 닉의 몸을 감싸더니 있는 힘껏 죄며 아래로 끌고 내려가기 시작했다.
갑작스러운 압박감과 속도에 그나마 있던 공기까지 급속도로 빠져나가는 와중, 무언가가 닉에게 다가오더니 얼굴을 감싸고 무어라 중얼거렸다.
그와 동시에 닉은 둥근 공기 방울에 둘러싸이고 촉수는 튕겨 나갔다. 간신히 숨을 쉴 수 있게 되자 닉은 몸을 숙이고 연신 기침을 터트렸다.
“프학! 콜록, 콜록. 하… 감사합니다. 누구세요?”
“왜 여기까지 오신 거예요 정말.”
닉은 익숙한 목소리에 눈을 깜빡이다가, 옅은 미소마저 띄며 고개를 들어올렸다. 그곳에는 짧고 뾰족한 귀 대신 지느러미를 단 채 물의 정령화를 시전하고 있는 아인이 있었다.
“그 말은, 콜록. 내가 해야 할 말인데. 그 모습은 뭐고 왜 여기 있는 거야.”
“…조금 복잡하긴 한데, 나쁜 건 아니에요. 어쨌든 다시 올라가세요.”
“너만 두고 갈 순 없잖아.”
아인은 눈을 둥그렇게 뜨더니 헤실 웃었다.
“지금은 제가 용사님 지켜주는 입장이거든요?”
“…그런가?”
항상 겁을 먹고 지켜주던 이미지가 강하다 보니 그 말을 들어도 쉽게 체감이 오지 않았다. 조금 민망해진 닉이 시선을 피하고 머리카락을 손에 감아 배배 꼬고 있자니, 아인은 닉의 옆에 서서 아스피드켈론을 가리켰다.
“바닷가에 도착하기 전부터 살펴봤었는데, 배를 통해서 안쪽으로 들어가야 할 것 같아요.”
“안쪽으로? 뱃속에 들어가라는 말이야?”
“네. 바람의 정령화를 이용해 공중에서 등딱지도 확인해 보니까, 몬스터도 몬스터인데 도저히 뚫고 들어갈 만한 두께가 아니에요. 그런데 아까 배를 통해서 온갖 몬스터가 쏟아져 나오더라고요. 아마 내부 갑피에 몬스터들을 숨겨두고 있는 것 같아요.”
“그거 완전 우주 전쟁 게임의 오버로드 아니냐?”
“그게 뭔데요 PC야.”
아인은 다소 시무룩해져서 혼자 중얼거리고 있는 닉을 내버려 두고 걱정스러운 얼굴로 위를 쳐다보았다. 아까 봤을 때는 다행히 사하바티와 이후프 덕분에 셋 모두가 해일에 휩쓸린 것 같지는 않았지만 저 상태로 언제까지 버틸 수 있을까.
하지만 여기서 물러나 전선이 뒤로 밀리면 바닷속은 수많은 해양 몬스터들로 꽉 찰 것이 분명했다. 막 나타나 제대로 자리를 갖추지 않은 지금이 가장 적기라고 할 수 있었다.
일단은 저 셋을 공기 방울로 감싸서 내려오게 할까 생각하던 그때, 거대한 고래 한 마리가 빠른 속도로 다가왔다. 저것도 아스피도켈론에게서 나온 몬스터인가 싶어, 닉은 검을 빼들고 경계어린 태도로 아인의 앞에 섰다.
“나 서포트해줄 수 있냐? 이거 공기 방울 안 터져?”
“…너무 심하게 움직이면 터져요. 하지만 터져도 바로 수복해드릴게요.”
아까처럼 허우적거리기만 하다가 당할 일은 없을 것이다. 닉이 검을 쥔 손에 힘을 주고 고래를 노려보고 있을 때, 지척까지 다가온 고래에게서 익숙한 목소리가 들렸다.
“난 적이 아니야 닉 모하지. 옆에 있는 건… 아인인가?”
“어라.”
“…누구세요?”
어디선가 들어본 목소리인데 바로 떠오르질 않았다. 닉과 아인이 서로를 바라보며 고개를 갸웃하자, 고래는 시원스러운 목소리로 웃기 시작했다.
“벌써 잊어버린 건가! 하기야 그 사이에 워낙 많은 일이 있었어야지. 그때 줬던 스튜는 잘 먹었나? 아인은 종족변환약으로 모습을 바꾼 건 아닌 것 같은데.”
스튜와 종족변환약. 특유의 시원스러운 웃음까지 더해지자 기억을 떠올린 아인이 먼저 소리치고, 뒤늦게 깨달은 닉이 놀란 얼굴로 눈을 크게 떴다.
“악식왕 님…?!”
“뭐야 당신. 사명 요리사 같은 거 아니었어?”
닉은 그가 몬스터들을 요리해 먹는 요리사 중 한 명이라는 것만 알고 있었다. 이전에 노타나 영지로 갈 때 헤르도아의 습격을 막아준 것을 생각하면 무언가 능력이 있을 거라곤 생각했지만.
“그걸 설명하기엔 시간이 부족하군. 혹시 자네들 동료가 이 근처에 있나?”
“아, 아! 위에 있어요. 아마 물에 빠지려는 사람들을 구해주고 있을 거예요.”
“훌륭하군. 몸에 여러 명을 붙여두고 있다면 구조도 훨씬 간편해지겠지. 혹여 저 거북이에 대해 어떻게 할지 생각하고 있었다면 내가 구한 사람들과 같이 의논하지 않겠나?”
악식왕 역시 사람들을 구해주고 있던 모양이었다. 아인은 감동한 표정으로 고개를 크게 끄덕이고, 닉 역시 거부할 이유가 없기에 긍정의 표정을 보였다.
“그런데 어떤 식으로 구하고 있었는데?”
“어떤 식이냐니. 그야 뻔한 것 아닌가.”
고래 모습을 하고 있는 악식왕은 그대로 거대한 입을 쩍 벌리더니-
“이렇게 구하지.”
“어? 어? 자, 잠깐만. 잠깐만!!!”
닉과 아인을 그대로 삼켜버렸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