Hero, What's logout? RAW novel - chapter (136)
136화 : 과도한 설정 변경
아인과 에르는 두 개체의 불의 정령으로 변화하여 주변에 불을 지르기 시작했다. 이곳이 뱃속의 어느 위치인지는 정확하게 알 수 없었지만, 일단 뱃속에 불이 붙기 시작했으니 아무리 크기가 크더라도 타격은 확실할 것이다.
“불의 장벽.”
“화염의 자취.”
한 곳이 거대한 불의 장벽으로 덮이고, 날아다니고 지나다니는 길마다 불길이 올라왔다. 특히나 상급 정령 이상의 화력을 낼 수 있는 에르는 어마어마한 크기의 화염을 쏟아붓고 있었다.
사실 밀폐된 곳에서 멋대로 불을 쏘아대는 것은 불의 정령이 아닌 이상 시전자에게도 피해가 갈 수 있었다. 때문에 아인은 정령화 시간이 끝나기 전에 가능한 한 많은 피해를 입혀야만 했다.
엘퀴네스가 전선에 있는 플레이어만으로는 막기 불가능할거라고 단언한 괴물. 에스피드켈론을 막아야만 가을 거목의 숲이나 노타나 영지도 무사할 것이고, 살아 움직이는 해저 카리브디스를 죽일 기회가 생길 것이다.
이번 전투에 모든 힘을 쏟아부어야만 했다. 아인은 결연한 얼굴을 하고서 있는 힘을 다해 뜨거운 불꽃을 폭사하며 곳곳으로 이동하고 있었다.
“…우와 맛있는 고기 굽는 냄새 난다.”
약간 집중이 안 되기도 했지만 일단은 노력했다. 악식왕에게 선물로 주기 위해 드문드문 불의 검으로 잘라낸 고기를 챙기기도 했다.
거북이의 신체 구조를 조금이나마 알고 있었으면 심장이나 주요 장기가 어디에 있었는지 파악했을 텐데. 타격을 주고 있는 것은 맞지만 결정적인 한 방이 필요했다. 온 힘을 쏟아부어 얻은 결과가 에스피드켈론의 장염이나 위궤양 정도라면 허무하기 짝이 없을 테니까.
급소를 집중 공략하거나 급소까지 닿을 정도로 넓은 부위에 공격할 필요가 있었다. 하지만 그걸 어떻게? 에르가 강력한 것은 맞지만 지금은 힘이 억제된 상태였으며 아인이 불의 정령화 상태이기는 해도 출력 자체는 오히려 에르보다 약한 편이었다.
아인은 침음을 흘리다가 자신의 손을 쳐다보았다. 에스피드켈론을 ‘설정 프로그램 개입’으로 약하게 할 수 있진 않을까. 유혹이 스멀스멀 퍼지기 시작했다.
‘에스피드켈론을 막지 못하면 엄청난 사람들이 희생돼. 그걸 눈앞에서 두고 보는 것보단 상식이나 이치에 맞지 않더라도 설정 프로그램 개입을 사용하는 게 맞지 않을까?’
하지만 함부로 남발하다간 GM이나 카오스가 당장이라도 자신을 잡으러 올 것 같았다. 아인은 입을 우물거리다가 결국 한숨을 쉬며 손바닥을 자신의 가슴께에 가져다 대었다.
“설정 프로그램 개입을 언제 사용해야 하고 사용하면 안 되고를 알 수 있으면 편할 텐데.”
그렇게 자신의 몸에 손을 대고 ‘설정 프로그램 개입’을 입에 담는 순간.
[본인의 설정 데이터에 개입합니다. 개입하는 NPC: 아인]“어라…?”
지금까지 보인 적이 없던 알림창이 떠오르며 아인의 상태창이 눈앞에 펼쳐졌다.
『 이름: 아인
호칭: ▒류 데▥xj, 정령의 동료, 바람의 친구, 불의 계승자, 물의 사랑을 받는 이
사명: 인정받기 위한 자
레벨: ??0 성향: ?? 선
체력: 5,400?/5,400? 마나: 7,400?/7,400?
근력: ▤!# 민첩: 11▦% 지력: &70 행운: *^+> 명성: ∏¿ ?
정령술사이자 닉 모하지의 동료. 자신을 위한 퀘스트 진행 중.
현재 롤백, 리셋, 설정 스크립트 수정, 데이터 삭제 가능. 』
상태창은 예전에도 한번 본 적이 있었다. 하지만 그 때와는 달리 체력이나 마나 같은 것이 올라가 있었고, 알 수 없었던 글자가 보이기 시작하거나 온전한 형태의 호칭들도 생겨나 있었다. 무엇보다 사명이 나타났다는 점과 짧게나마 설정이 덧붙여진 것이 가장 놀랐다.
‘혹시 이 세계한테 인정받고 있는 건가?’
카오스가 자신에게 까칠하게 대하긴 해도 의외로 좋게 보고 있을 가능성이 높았다. 아직 완전한 상태창이라고는 할 수 없지만 저번보다는 확실히 사정이 나았으니까. 아인은 다소 밝아진 얼굴로 자신의 상태창을 구경하다가 괜히 눈치를 보고 중얼거렸다.
딱 한 번만 시험 삼아 해 볼 생각이었다. 어떤 결과가 나올지는 몰랐지만.
“설정 스크립트 수정. 지력 최대치로 상승. 불의 친화력도 최대치라는 설정 덧붙이고.”
[본인의 설정이 수정됩니다. 과도한 설정 변경으로 인해 단 1분간만 변경이 적용됩니다.]그리고 알림창이 떠오르는 순간, 아인은 자신의 몸에서 이제까지 느껴보지 못한 엄청난 힘이 솟구치는 것을 느꼈다. 한 번도 경험해보지 못한 감각이라 일단 멋대로 팔을 휘둘렀다.
그러자 에르가 사용한 것보다도 몇 배나 큰 불기둥이 뿜어져 나왔다.
“으아아 이게 뭐야 으아아 죄송해요!”
익숙하지 못한 힘을 조절하기 위해 발버둥을 칠수록 사방은 불지옥이 되어가고 있었다. 에르조차 놀란 눈으로 아인을 보며 눈을 깜빡였다.
[남은 시간: 30초] [에스피드켈론이 괴로워합니다.]거의 울상이 된 얼굴로 어쩔 줄 몰라 하던 아인은, 알림창을 보는 순간 힘을 조절할 필요가 없다는 것을 깨달았다. 오히려 온 힘을 다하면 다했지.
“에르 혹시 모르니까 방어막 쳐 두고 있어!”
아인은 20여 초가 남았을 무렵, 최대한 깊숙한 곳으로 들어가면서 현재 할 수 있는 최대 출력의 힘을 뿜어내기 시작했다. 에르 이상. 어쩌면 정령왕보다도 뛰어넘을 가공할 화력에 에스피드켈론의 내부는 통째로 타오르기 시작했다.
[에스피드켈론이 거대한 고통을 느낍니다.] [에스피드켈론의 심장을 두르고 있던 갑피가 약화됩니다.] [갑작스러운 생명력 저하에 충격을 느껴 10분간 받는 모든 피해가 50% 상승합니다.] [설정 프로그램 개입 효과가 종료됩니다.]그리고 아인 본인도 슬슬 힘이 떨어질 즈음, 알림창이 떠오르며 동시에 정령화도 종료되었다. 에르는 불길에 휩싸이지 않도록 아인을 자신의 방어막 안에 둔 후 등을 토닥였다.
“그런 힘을 숨기고 있었던 거야?”
“숨긴 건 아니야. 그나저나 거의 다 잡은 것 같은데… 마무리 일격을 하긴 힘들 것 같아.”
“다른 사람들이 알아서 해 주겠지. 그나저나 아인은 정말로 괜찮은 거 맞아?”
“아마도?”
정령화가 끝난 탓일까, 주변의 불길 때문에 공기가 부족한 탓일까. 아인은 속이 울렁거리고 머리가 띵한 느낌을 받았다. 속이 뒤틀리는 기분. 하지만 고통이라고 하기엔 애매했다. 더 정확하게는 내부부터 뭔가가 일그러지고 있다는 느낌이었다.
아인은 에르를 안심시키기 위해 애매하게 웃으며 숨을 헐떡이더니, 다시금 자신의 상태를 확인하기 위해 손가락을 까딱이고 상태창을 읊조렸다.
『 이름: 아인
호칭: ▒류 데이터, 정령의 동▥, 바람의 꿹뚫, 불의 계승자, 물의 ▒▒을 받는 이
사명: ●○받기 위한 자
레벨: ??0 성향: ?? 선
체력: 5,400?/5,400? 마나: 7,400?/7,400?
근력: ▤!# 민첩: 11▦% 지력: &70 행운: *^+> 명성: ∏¿ ?
???
현재 롤백, 리셋, 설정 스크립트 수정, 데이터 삭제 가능. 』
그리고 이전과는 달라진 상태창을 보는 순간 아인은 뒷목이 차가워지는 것을 느꼈다.
호칭의 글자가 깨지기 시작했으며 사명의 글자마저 가려져 있었다. 심지어 자신을 설명하는 짧은 문장마저 사라지고 ???로 대체되어 있었다. 반면 오류 데이터를 의미하는 것 같은 글자는 오히려 더 뚜렷해졌다. 단지 그 1분만을 사용했을 뿐인데 이 정도였다.
“어… 이, 이러면 안 되는데. 이러면 안 되는데.”
녹색 눈동자에 두려움이 일기 시작했다. 세계의 상식과 질서에 어긋나는 힘을 써서 그런 걸까? 설정을 과도하게 바뀌어서?
이대로 돌아가지 못하면 어떡하지? 눈물이 날 것 같은 심경에 아인이 입을 벙긋거리고 있는 사이, 주변이 크게 흔들렸다. 방금의 공격으로 인해 커다란 피해를 입은 에스피드켈론이 고통에 몸부림을 치기 시작한 것이다.
혼란이 가라앉지는 않았지만, 불의 정령화 지속시간도 끝난 마당에 이곳에 계속 있을 수는 없었다. 에스피드켈론을 마무리하는 것엔 이제 관심도 없었다.
“에르, 용사님이랑 다른 사람들이 있던 곳으로 돌아가자!”
너무 큰 공격으로 인해 그 사람들도 휘말린 것은 아닐까. 아인은 걱정스러운 마음을 담고 에르에게 안긴 채 다시금 밑으로 내려가기로 했다.
빠르게 왔던 곳을 되짚기만 하는 것은 어렵지 않았다. 오래지 않아 본래 있던 곳으로 돌아오니, 안도하는 이후프와 사하바티가 있었고 라칼이 어이가 없다는 표정을 지었다.
“무사히 와서 다행입니다. 고생하셨어요.”
“휘말리진 않았을까 걱정했단다.”
“도대체 무슨 기술을 사용한 거야? 불길이 여기까지 닿아서 기겁을 했다. 사하바티는 가지 끝에 불이 붙을 정도였어.”
아인은 사하바티에게 사과를 하고는 애매하게 웃으며 ‘있는 힘껏….’이라고 대강 얼버무렸다. 하지만 그들과는 달리 악식왕은 무시무시한 얼굴로 아인에게 다가와 멱살을 잡았다.
“아인. 너 도대체 무슨 짓을 한 거냐?”
이전까지는 본 적이 없던 거친 태도. 그 얼굴에는 확연한 분노가 담겨져 있었다. 혹시 자신이 이 세계의 규칙마저 깰 정도로 강한 힘을 썼다는 것을 안 건가? 아인이 입을 꾹 다물며 공포를 느끼고, 악식왕은 이를 뿌득 갈며 소리쳤다.
“부위에 따라 굽는 정도가 달라야 하는데 이렇게 한꺼번에 구웠다가 제대로 된 맛을 느끼지 못한단 말이다! 심지어 날로 먹어야 제 맛을 느낄 수 있는 부분도 있을 텐데! 다 망했어!”
“그거 때문이냐고요! 전 걱정도 안 됐어요?! 저리 가요! 그나저나 용사님은 어디 있어요!”
라칼은 어리광을 피우는 수염 난 거대 중년 남자를 뒤로 밀어버린 후 앞으로 다가왔다.
“닉이 알림창인가 뭔가를 보고 에스피드켈론의 심장으로 가서 마무리 일격을 하기로 했다.”
“어떻게요? 날 수 있는 능력도 없지 않아요?”
“전용 스킬 사용하면 된다더군. 오래 걸리진 않을 거라 전해달라던데.”
***
“하. 다행이다. 도박 성공했어….”
‘일발역전’을 사용해 곧바로 에스피드켈론의 심장 주변에 도착한 닉은 안도의 한숨을 쉬었다. 체내에 있으니 여기서 일발역전을 사용하면 바로 뇌든 심장이든 도착하지 않을까 했는데 판단이 맞았다. 자칫 외부의 머리 위나 등껍질 위로 이동했다면 순식간에 죽었을 것이다.
“일부러 좀 뒤늦게 온 것도 정답이었고. 그나저나 에르가 이 정도 공격은 못할 텐데. 아인이 했나? 불의 정령왕이라도 소환한 것 같은데.”
본래 엄청난 두께의 단단한 갑피로 보호되고 있었던 심장. 지금은 불에 잔뜩 그을려 손으로 만지는 것만으로도 갑피가 쉽게 부서졌다. 심지어 일종의 경비병처럼 활동하고 있었을 체내의 기생충들은 이미 불에 타 죽어 굴러다니고 있었다.
심장 역시 기본적인 내구도나 방어력이 보통이 아니겠지만 지금은 딱 보기에도 상당히 약화된 상태였다. 기다릴 것 없이 닉은 무기를 빼어 들고는 있는 힘을 다해 심장에 검을 찔러 넣었다.
강화된 스탯은 단 한 번의 찌르기조차 엄청난 일격으로 변화시킨다. 심장은 움찔하는 듯하더니, 이내 온갖 곳에서 피를 뿜기 시작했다. 다소 비위생적인 모습에 닉은 질린 얼굴로 설정창에서 피를 오렌지 주스로 변화시킨 후 한숨을 쉬었다.
“왠지 아인이 양념 다 쳐놓은 거 막타 뺏은 기분이긴 한데. 원망하진 않겠지?”
물론 마지막 타격자에게 여러 보상을 주지만, 실질적으로 입힌 대미지에 따라서도 보상을 차등 적용해주기 때문에 아인도 상당한 보상을 받을 수 있을 것이다. 닉은 계속해서 오렌지 주스를 꿀럭거리는 심장을 바라보았다. 오래지 않아 눈앞에 알림창 하나가 떠올랐다.
[움직이는 섬 에스피드켈론이 거대한 몸을 눕히고 어머니의 품 안으로 침잠합니다.마지막 타격자: 닉 모하지]
이제 끝났나. 닉은 바닥에 주저앉고 깊은숨을 뱉었다. 다만 이상하리만큼 안도감보다는 불안감이 강하게 들었다. 또 귀찮은 일이 벌어질 것만 같은 감각이 닉의 목덜미를 감싸고 흘렀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