Hero, What's logout? RAW novel - chapter (142)
142화 : 호감도작
마라는 이미 수도에 수차례 들렀던 경험이 있었기에 그녀와 같이 동행하여 텔레포트 시설로 이동하려 했지만, 작은 문제 하나가 생기고 말았다.
“시설 등록이 안 된 사용자는 제국 수도에 직접 입성하지 못해요. 대신 수도에서 가장 가까운 도시로는 텔레포트 하실 수 있어요.”
시설 관리자의 말을 들으며 일행은 잠시 실망했지만 이해는 할 수 있었다. 시설 등록이 안 된 사람을 수도에 멋대로 입성시켰다가 무슨 일이라도 벌어지면 큰일이니까. 텔레포트 시설을 이용할 때 정령이 일차적으로 감시를 하긴 한다지만, 그것만으로는 확실하지 않았다.
‘가령 헤르도아의 고위 사제처럼 악의가 없이 순수함으로 이루어진 사람이라면 정령도 눈치 못 챌 수가 있으니까.’
아인이 데이드완을 떠올리며 잠시 우울해질 무렵, 일행은 수도에서 가장 가까운 도시에 텔레포트하기로 동의했고 아인도 뒤늦게 고개를 끄덕였다.
“무슨 일 있어? 엄청 생각에 빠진 것 같던데.”
“그…게, 나중에 말씀드릴게요.”
아인은 자신을 빤히 쳐다보고 있는 에르를 보며 조용히 해 달라고 마음속으로 중얼거렸다. 괜히 좋은 분위기에 초를 치고 싶진 않았다. 게다가 데이드완이 헤르도아의 사제라는 것을 자신만 알고 있었다면 엄청난 혼란까지 불러일으킬 테니까.
이내 텔레포트 시설이 작동되고 일행은 수도 근처에 있는 한 도시로 이동하였다. 수도 인근이라 그런지 이곳도 수도 못지않게 규모가 크고 발달해 있었다. 수도의 비싼 땅값을 생각하면 인구는 이곳이 더 많을 수도 있었다.
아인이 돌로 만들어진 온갖 건축물과 아름다운 조각상을 구경하며 감탄을 내뱉던 사이, 마라는 길을 가늠하다가 한쪽을 가리켰다.
“저기로 쭉 가면 헌터 길드 주관 숙소가 있을 거야. 거기에 묵으면 돼. 오늘은 여기에서 묵은 다음 내일 아침 일찍 출발하자. 마감 날짜 넉넉하지?”
“충분히 남았어. 헌터 길드가 이전 진짜 편하긴 하네. 주관 숙소가 도시마다 있는 거야?”
“모험가가 없는 곳은 없어. 숙소이면서 동시에 길드원끼리 정보를 주고받는 공간이기도 하고. 정보 공유가 활발하게 이루어지는 방법이기도 해.”
“길드원도 아닌 나한테 알려줘도 되는 거야?”
“해보려면 해보든지. 참고로 초기비용은 나도 섬뜩할 정도로 깨졌다?”
“되게… 비법 양념 비율 자신 있게 알려주는 맛집 할머니 같네.”
닉은 그대로 마라에게서 뒤통수를 맞고 기절했다. 숙소는 멀지 않았다. 이후프는 닉을 들쳐 업고 말없이 걷다가, 숙소까지 다다르자 닉을 내려주고 일행을 돌아보았다.
“그럼 저는 잠시 따로 있다가 와도 될까요? 늦지 않게 돌아오겠습니다.”
“네? 아 네! 다녀오세요.”
도시가 예쁘니 구경이라도 하려는 걸까. 평소와는 묘하게 다른 모습에 아인이 고개를 갸웃하자, 에르는 멀리 떨어지는 이후프를 보다가 조용히 입을 열었다.
“이후프. 지금 마음이 복잡해 보여.”
“왜?”
“잘 모르겠어. 이젠 상관없다는 혼잣말만 들렸거든. 엄청나게 슬퍼하거나 그런 건 아니야.”
아인 일행 중에서도 가장 시원스럽고 웃는 소리로 넘기던 이후프가 그런 모습을 보이니 신경이 쓰일 수밖에 없었다. 하지만 사하바티와 라칼을 보아도 그들은 별말을 하지 않았다. 모른다기보단 구태여 말하고 싶지 않다는 분위기.
그렇다면 아인도 남의 입을 통해 들을 의지까지는 없었다. 언젠가 말해주겠거니. 그런 생각을 하며 아인은 바닥에 누워 있는 닉의 뺨을 찰싹찰싹 때렸다.
“용사님 일어나세요 용사님.”
“악. 악. 야, 야! 그만 때려. 너도 이제 스탯 꽤 강하단 말이야. 악!”
결국 닉은 양 볼이 퉁퉁 부은 채 뚱한 표정으로 일어났다. 그녀는 ‘HP가 얼마나 닳은 거야….’ 하고 중얼거리다가 시간을 확인하고는 마라를 보았다.
“수도까지는 걸어서 가는 거야?”
“아니, 마차로. 가장 가깝다곤 해도 진짜 엎어져 코 닿을 거리는 아니니까. 아 참, 말 나온 김에 텔레포트 비용은 내가 냈으니까 저기 마차 대주는 곳 비용은 네가 내라. 팁 하나 주자면 마차 관리인 호감도작 성공적으로 하면 좀 싸게 줘.”
“호감작 아이템이 뭔데?”
“그것까지 알려줘야 해? 직접 물어보면 될걸. 알아서 꼬셔. 난 여기 지부 좀 관리하러 간다.”
마라는 손을 흔들며 어딘가로 가버리고, 닉은 옆머리를 배배 꼬며 마차 대여소를 바라보았다. 생각 같아서는 차라리 생돈을 주고 대여하고 싶었지만, 모든 인원을 태우고 무게까지 지탱할 정도의 마차를 빌리려면 상당한 비용이 발생할 것 같았다.
“아인.”
“네?”
“너 사람 꼬셔본 적 있어? 저기 관리인한테 호감을 사야 하는데.”
“있을 것 같으세요?”
“딱히.”
“그럼 물어보지 마세요! 자기도 없을 것 같으면서!”
서로의 가슴에 상처만 남은 대화를 끝내고, 결국 닉은 쭈뼛거리며 마차 대여소 안으로 들어갔다. 그곳에는 딱 봐도 이곳을 관리하는 것처럼 보이는, 다소 해진 마부복을 입은 여자가 깐깐해 보이는 표정으로 돈을 세고 있다가 한쪽 눈썹을 올리며 닉을 보았다.
“마차 빌리려고요?”
“네? 아 네! 그 혹시… 저… 좋아하는 거… 있으신가요?”
뜬금없는 소리에 아인은 기겁을 하며 닉의 옆구리를 찔렀다. 호감을 얻어야 하는데 인사도 없이 다짜고짜 좋아하는 것부터 물어보면 잘 될 리가 없었다. 하지만 관리인은 눈을 깜빡이다가 돈을 다시 새더니 감흥 없는 목소리로 답했다.
“좋아하는 거요? 어디 보자… 성안에 피어나는 보라색 꽃이 있어요. 나는 그게 그렇게 예쁘더라. 향도 아주 진해서 근처를 지나가면 금방 눈치챌 정도로. 그런데 좀 드문드문 피어서. 누가 굳이 찾아서 나에게 꺾어주면 좋겠다는 생각을 종종 해요. 정성 어린 거니까.”
그 말과 동시에 닉의 눈앞에 퀘스트창이 떠올랐다. 성 안에 피어나는 꽃들을 가져다주면 관리인의 호감도를 올릴 수 있을 거라는 내용. RPG를 하던 게이머에게는 익숙하기 짝이 없었다. 이제 호감도에 필요한 아이템을 왕창 얻은 다음 한꺼번에 퍼 주면 될 일이다.
“아인 너는 여기서 기다리고 있을래?”
“네? 그, 그래도 되나요? 같이 찾으면 더 빠르지 않을까요?”
“나는 공략 볼 거거든. 차라리 혼자 하는 게 더 효율적일 수도 있어. 갔다 올게.”
어느새 덩그러니 남겨진 아인은 어색하게 웃으며 관리인을 보았다. 청소라도 할까 고민하던 중, 아인은 그녀의 뒤쪽에 쌓여 있는 쓰레기통으로 시선을 옮겼다. 온갖 잡다한 물건이 담겨 있는 그곳에는 말라비틀어진 꽃들도 잔뜩 들어 있었다.
호감도 아이템을 한꺼번에 주느라 쌓인 꽃들. 저 정도면 드문드문 피어나는 게 아니라 그냥 무성한 거 아닌가. 아인은 그런 생각을 하면서도 이게 정말 호감도 쌓는 일이 맞나 싶었다. 다짜고짜 좋아하는 것을 물어보더니 그것을 가득 안겨다 줄 뿐인 행위가 말이다.
아인도 좋아하는 것들은 있었지만 자신에게 그런 것을 갑작스레 뭉텅이로 쥐여준다면 기뻐하기보단 오히려 당황스러울 것 같았다. 무엇보다 선물을 주기 전에 서로 간의 대화로 친밀감을 높이는 것이 우선이라고 생각했다. 연이은 선물은 기쁨보단 부담을 주기 마련이다.
‘더군다나 저렇게 쌓일 정도면 말할 것도 없고.’
닉의 선물이 더 효과를 발휘하게 만들기 위해서는 기본적인 친밀도를 높일 필요가 있었다. 아인은 여전히 돈을 세고 있는 관리인의 옆에 앉았다. 그녀의 시선이 자신에게 옮겨지는 것을 느끼자, 아인은 특유의 선한 얼굴로 미소지으며 사근사근 입을 열었다.
“저는 아인이라고 해요. 성함을 여쭤 봐도 될까요?”
“…케아린이요.”
“반가워요 케아린 님. 저분은 제 동료분인 닉 모하지 님이에요. 카오스의 조각인데, 수도에 가기 전에 잠시 이곳에 들렀어요. 조금 말주변이 없죠? 그런데 제가 알고 있는 다른 카오스의 조각인 마라 님이나 악식왕 님을 보면 유독 이분만 더 그런 것 같다는 생각이….”
이후로 아인은 닉의 말주변에 대한 변호를 하고 화제가 떨어지자 이 근방에 대한 칭찬을 이어가기 시작했다. 케아린은 어설프게나마 계속해서 말을 이어가는 아인을 빤히 보다가 픽 웃었다. 이내 몸을 아예 그쪽으로 돌리더니 고개를 기울였다.
“아무한테나 님 자 붙여요?”
“네? 에?”
“케아린 님. 닉 모하지 님. 마라 님. 악식왕 님… 신분이 낮기라도 해요? 그 사람하고 주종?”
“그, 그건 아니지만요! 대부분 저보다 훌륭한 분들이셔서, 그렇게 자주 부르다 보니 습관이 되기도 했고… 혹시 부담스러우시다면 조금 고쳐도 되지만….”
손을 휘적이며 어쩔 줄 몰라 하는 아인을 보며 케아린은 결국 작게 소리내어 웃었다.
“네. 부담스럽네요. 케아린이라고 불러요 아인. 그래서 나에 대해 궁금한 거라도 있어요?”
“네? 네? 구, 궁금한 거… 그, 케아린은 언제부터… 여기서… 일했어요…?”
“꽤 오래됐어요. 햇수는 안 세어봤어. 자기는 수도에 갈 굉장한 몸이니 껄렁대면서 마차 내놓으라는 사람들을 수천은 봤지요. 최근엔 다짜고짜 꽃 주면서 마차 값 깎아달라는 카오스의 조각도 수두룩했고. 좋아하는 꽃이긴 하니까 깎아 주긴 했다만….”
역시 마냥 달갑게 여기진 않았구나. 아인이 쓴웃음을 짓고 있는데, 케아린은 거의 코가 닿을 정도로 아인에게 얼굴을 가깝게 들이밀더니 눈을 반쯤 감고 살짝 웃었다.
“그런데 당신은 다르네. 자세히 보니 되게 귀엽게 생겼고.”
“네???”
***
“진짜 더럽게도 퍼져 있다. 공략 지도 안 봤으면 하루 종일 걸릴 뻔했네.”
닉은 손에 열 송이의 꽃을 조심스레 모은 뒤 투덜거리며 마차 대여소로 향했다. 일곱에서 여덟 송이 정도를 주면 마차 값을 깎아준다는 것 같았지만, 혹시 모르니 10단위로 넉넉하게 준비해 두는 것은 게이머의 기본적인 소양이었다.
“아인 데려갈 걸 그랬나. 하지만 지도도 모르는데 괜히 나뉘었다가 길 잃으면 더 문제고.”
남아서 말실수는 안 하겠지. 닉의 걸음이 빨라지고 있던 무렵, 갑작스레 눈앞에 알림창 하나가 떠올랐다. 케아린의 호감도 충족에 성공했다는 내용이었다.
‘뭐야? 케아린은 누군데? 그 관리인이야? 꽃 아직 안 줬는데?’
관리인의 이름도 모르고 있던 닉은 물음표 수십 개를 띄우며 일단은 마차 대여소 안으로 들어가기로 했다. 그곳에는 얼굴이 새빨개진 채 고개를 푹 숙이고 있는 아인과, 뭐가 그렇게 재밌는지 깔깔대고 있던 케아린이 있었다.
“아 왔어요? 당신의 귀여운 친구가 절 즐겁게 해 줘서 꽃은 됐어요. 마차 값은 깎아줄게요.”
“네? 아… 네. 고맙습니다. 내일 아침 즈음 다시 올게요.”
“알겠어요. 그때 아인도 같이 오게 해요.”
어찌 됐든 퀘스트는 완료했으니 나쁠 것은 없었다. 닉은 꽃을 인벤토리에 집어넣고 인사를 한 뒤 대여소 밖으로 나왔다. 아인은 밖에 나올 때까지 붉어진 얼굴을 식히고 있다가, 고개를 불쑥 올리더니 뒤늦게 닉을 쳐다보았다.
“그, 그 용사님. 제가 먼저 그. 호감도 올려서. 마차 값 깎아놨어요!”
“알고 있는데 너 얼굴 왜 그러냐?”
“아, 알고 계셨구나. 저는 아무 일도 없었어요. 진짜 아무것도 안 했고요! 어쨌든 대화가 중요하다는 거 이제 아셨죠?! 무작정 선물보단 이게 더 효과적이에요!”
“수상할 정도로 목소리 높이고 말을 돌리네. 내가 보기엔 대화보다도 네 얼굴 때문에 된 거 아닌가 싶지만. 안에서 뭐 했어?”
“에, 에르한테 물어봐도 돼요. 아무것도 안 했어요! 절 놀리기만 해서…!”
무슨 일인지 짐작이 갔다. 닉은 헛웃음을 지었고 아인은 ‘정말로 아무 일도 없었음’을 계속해서 피력했다. 더 놀리기도 귀찮았던 닉이 대강 고개를 끄덕이려던 찰나, 아인은 어딘가를 보고 아까보다도 더 얼굴이 새빨개지더니 비명을 질렀다.
“엄마야아아아악!!!”