Hero, What's logout? RAW novel - chapter (145)
145화 : 황제 알현
본래 수도로 들어가기 위해선 꽤 복잡한 절차를 밟아야만 했지만, 정식 초청을 받은 닉 일행은 아무런 방해 없이 들어갔다. 이때 검사라도 받으면 황제의 눈썰미를 의심하는 것이냐며 불똥이 튈 수도 있었기에 오히려 빨리 들어가라고 등을 떠미는 수준이었다.
마라 역시 헌터 길드의 주축이었기에 절차는 간단하게 완료되었다. 이윽고 수도 안쪽으로 들어온 일행은 주변을 둘러보며 감탄을 금치 못했다.
분명 이전에 들렀던 수도 인근의 도시도 상당히 큰 규모였지만 건축 기술이나 예술의 발달 면에서는 확연히 다른 것이 느껴졌다. 광장에서는 음유 시인들이 노래를 하고 곳곳에서 거대한 조각상이 지나가는 사람들에게 버프를 나눠주기도 했다.
주위에 있는 건물 하나하나가 섬세하게 짜인 예술 작품이나 마찬가지였으며 하다못해 바닥에 깔린 도로 여기저기에 금박이 어려 있을 정도였다.
“앗 저것 보세요 용사님! 저희를 환대하기 위해서 유랑극단이 왔나 봐요!”
“유랑극단? 그렇게까지?
어이가 없는 얼굴로 아인이 가리키는 곳을 본 닉은 이내 잔잔한 미소를 지었다. 그곳에는 척 봐도 고인물 포스를 내뿜는 이들이 박자에 맞춰 춤을 추고 있었다. 아마 자동으로 모션이 이뤄지는 춤을 입력시켜 놓고 다 같이 완벽한 타이밍에 실행시켰을 것이다.
하지만 이것을 다 설명하고 이해시키는 것을 포기하고 닉은 고개를 끄덕이며 얌전히 아인과 함께 인사를 하기로 했다. 다행스럽게도 이런 반응이 익숙했는지 그들은 한 치의 표정 변화조차 보이지 않고 계속해서 춤을 추고 있었다.
아인은 폴짝폴짝 뛰다시피 하며 계속해서 주변의 풍경을 구경하고 있었다. 어느새인가 드래곤 형상의 조각상을 보며 감탄하던 아인은, 주위에서 울리기 시작하는 트럼펫 소리에 움찔하며 그곳으로 시선을 돌렸다. 그리고 입을 막으며 눈을 크게 떴다.
“요, 용사님! 저기 지금 결혼하나 봐요!”
“응? 아 정말?”
야외에서의 결혼식은 제대로 하려면 식장보다도 번거로운 면이 많고 특히 예쁜 스크린샷을 찍기에도 용이하지 않아 유저들이 선호하지 않았다.
때문에 카오스 내에서 야외 결혼식을 하는 경우는 보통 두 부류로 나뉘었다. 첫 번째는 날씨와 구도, 하객이나 구경꾼의 숫자까지 계산에 넣은 후 다소 번거롭더라도 완벽한 형태로 준비를 한 경우. 그리고 나머지 한 부류는….
“용사님 근데 저 두 분… 표정이 그렇게 행복해 보이지가 않아요.”
“두 번째 부류인가 보네.”
“두 번째 부류요?”
“응. 플레이어끼리 결혼했을 때 얻는 부수적인 이익만 노리는 경우.”
카오스 내에서 결혼을 할 때 받는 반지는 서로 같은 공간에 있을 때 어지간한 유니크 아이템보다도 강한 효과를 발휘한다. 게다가 하우징에서도 가격을 비롯해 약간의 공간적 이익을 얻을 수 있으며 업적이나 타이틀 효과를 위해서라도 한 번쯤은 해야 하는 시스템이었다.
물론 인게임에서 만난 캐릭터들끼리 마음에 들어 결혼하는 경우도 있지만, 저렇게 무표정하게 많은 것을 간소화하고 야외 결혼식을 진행하는 경우는 십중팔구 길드 내 인원끼리 효율을 위해 결혼하는 경우였다. 그 말을 들은 아인은 세상이 무너지는 듯한 표정을 지었다.
“그럴 리가 없어요. 아니, 그래서는 안 돼요…! 결혼은 반드시 사랑하고 아끼는 사람하고만 해야 하는 거라고요! 카오스의 조각들이 행하는 이런 피도 눈물도 없는 시스템 철폐하라!”
“정략결혼 같은 거라고 생각해. 걔들도 대부분 서로 좋아해서 결혼하는 거 아니잖아.”
완벽하게 들어맞은 비유에 아인은 울상을 지었다. 결국 주변의 모든 아름다운 것들이 비즈니스의 일환으로 보이기 시작했는지, 아인은 다소 뚱해진 얼굴로 일행의 뒤로 들어왔다.
“그러면 빨리 황성으로 가기로 해요. 기한은 남았다지만 빨리 가면 좋은 거 아니에요?”
그것은 아인의 말이 맞았다. 초청 기한 안에 어느 때든지 가면 불이익 없이 황궁으로 들어갈 수 있었으나, 초청을 받고 일찍 도착할 경우 평판이 약간 좋아지는 등의 이점이 있었다. 명성과 인지도가 곧 강함이자 생존인 닉과 아인이었기에 함부로 무시할 수는 없었다.
닉은 애초에 수많은 인파에 질려버려 벌써부터 진을 빼고 있었는지라 격하게 아인의 말에 동의하며 뒤를 돌아보았다.
“내 생각에도 그렇긴 해. 혹시 여기 구경하고 싶은 사람 따로 있어?”
이미 동심이 밑천까지 털려버린 아인은 고사하고 라칼과 사하바티, 이후프도 내켜하지 않는 얼굴이었다. 특히 이후프는 평소보다도 더 축 늘어진 모습을 보인 채 힘없이 웃으며 거절의 뜻을 밝혔다. 이전 도시부터 텐션이 낮아 보이는 이후프가 걱정된 아인은 조심스레 다가왔다.
“여기 뭔가 마음에 안 드시나요?”
“아니에요. 괜찮아요. 아주 사적인 문제예요. 신경 쓰게 만들어서 미안해요.”
이내 그는 한번 몸을 일으키더니 다시금 평소의 젠틀하고 시원스러운 텐션으로 돌아왔다. 무언가 이상이 있는 것은 확실하지만 더 캐묻기도 난감한 상황이었기에, 아인은 눈을 굴리면서 결국 더 물어보지 못하고 다시 본래 있던 곳으로 돌아왔다.
심지어 에르에게 이후프의 마음속을 알려달라고 청해도, 이미 이후프에게 언질 받은 것이 있었는지 에르는 느릿하게 고개를 저을 뿐 입을 열지 않았다.
이후로 닉 일행은 직선거리로 황궁까지 향했으나, 수도의 크기가 어마어마했기 때문에 중간에 딴짓 한번 하지 않았음에도 상당한 시간이 소요되었다.
황궁으로 들어서는 입구는 몇 겹이나 되는 성벽의 보호를 받고 있었다. 외성과 내성은 물론 중간에 마법적인 침입도 저해하는 두꺼운 결계가 쳐져 있었다. 벌레 하나 침입을 허용하지 않을 것만 같은 구조에 일행은 입을 벌리고 마라는 혀를 차며 그것을 바라보았다.
“그때 10초만 더 있었어도 안에 들어가는 건데.”
“너 그거 범죄야. 범죄라고!”
마라는 투덜거리며 짐을 뒤적이더니, 작은 구체 하나를 꺼내 무언가를 주입하듯 눈을 감고는 그대로 아인에게 건네주었다.
“아인. 이것 좀 가지고 있어 줄래?”
“네? 이게 뭔데요?”
“호신용이라고 생각해. 가지고 있으면 좋을 거야.”
아인은 고개를 갸웃하면서도 순순히 구체를 받았다. 본래 하얀색이었던 구체는 무언가로 물들어가듯 온갖 색으로 변화하고 있었다. 찝찝하긴 했지만 나름대로 자신을 위한 것이라 생각하니 거절하기도 뭣했다.
이후 성문 앞까지 도달한 일행은 경비병의 수색을 받았다. 정식 초청장을 가지고 있는 닉과 당시 그의 파티원이었던 나머지 일행들은 문제없이 들어갈 수 있었지만, 마라는 결국 경비병들에게 잡혀 질질 끌려가야만 했다.
“내 저렇게 될 줄 알았다….”
닉은 혀를 차며 끌려가는 마라를 보았다. 온갖 난리를 피울 줄 알았는데, 그녀는 의외로 얌전하게 끌려가고 있었다. 예상하고 있었던 것인지 자포자기를 한 것인지. 약간 불쌍하긴 했어도 이제 와 들여보낼 수는 없었기에 닉은 선두에서 결계와 내성까지 지나 황궁 안으로 들어갔다.
“진짜 으리으리하다….”
“용사님 벽 장식 하나가 저보다 비싸 보여요.”
“우리 통째로 팔아야 촛대 하나 살 수 있을 것 같은데.”
이렇게 해도 반란이 일어나지 않나 싶을 정도로 화려함의 극치였다. 다양한 보석을 한데 모아 특별한 공법으로 세공하여 형형색색으로 빛나는 촛대부터 두꺼운 기둥에는 통째로 금박이 발라져 있었다. 심지어 청소를 위해 움직이는 풋맨과 메이드들까지도 어지간한 귀족보다 좋은 재질로 의복을 갖춰 입은 상태였다.
무엇 하나 황제의 품위에 거슬리지 않게끔 하려는 노력이자 그만큼 황제의 권력이 막강하다는 방증이었다.
감시자이자 안내인이기도 한 황실 내의 하인들에게 안내를 받으며 끝이 보이지 않는 복도를 계속해서 걷던 와중, 닉은 어느 순간부터 공기가 달라지는 것을 느꼈다.
황궁에 온 자와 황제가 알현하는 공식적인 공간. 통칭 지고천의 옥좌. 그곳이 머지않은 것이다. 닉은 공기가 무거워진 것이 단순히 기분 탓이 아님을 알아챘다. 호흡뿐만이 아니라 움직임까지 부자연스러웠다. 마취라도 당한 듯한 감각.
온갖 능력자가 있는 이 세계인만큼, 황제를 시해하는 자를 막기 위하여 이곳엔 공기에조차 제약이 걸려 있었다. 한 번 호흡하는 산소의 양이 정해져 있다는 것을 깨달은 닉은 헛웃음을 흘렸다. 시해는 생각도 하지 않았지만 만일 성공하는 이가 있다면 얼마나 괴물일까 하고.
이후프나 사하바티는 폐호흡이 필요하지 않음에도 움직임이 굼뜬 것을 보면 온갖 종족에 걸쳐 갖가지 페널티를 부여한 모양이었다. 쌕쌕거리며 간신히 호흡을 안정시킨 닉은 어느덧 주변의 벽과 바닥에 마법 문양이 빛나기 시작한 것을 깨달았다.
“가지가지 한다 진짜.”
그 말을 중얼거리는 순간 일행들은 모두 그 자리에서 사라졌다.
눈을 떴을 때는 모두가 거대한 공간의 중앙에 있었다. 자세는 하나같이 누군가를 경배하듯 한쪽 무릎을 꿇고 고개를 푹 숙인 채. 몸을 움직여보려 해도 굳은 것처럼 마음처럼 되지 않았다. 닉이 이를 뿌득 갈며 힘을 더 주려는 찰나, 앞에서 굵고 늙수그레한 목소리가 울렸다.
“고개를 들라.”
그 말과 동시에 일행들은 말에 반응하듯 동시에 고개를 들었다. 그곳에는 휘황찬란한 보라색 옷을 입고 있는 노인이 번쩍거리는 옥좌에 앉아 있었다. 그 옆으로는 말이 떨어지는 즉시 당장이라도 달려나갈 황궁 친위대가 즐비한 상태였다.
노인의 목소리나 눈은 여전히 죽지 않았다. 몸은 아직도 뻣뻣했으며 팔걸이를 잡은 손에는 힘줄이 돋아나 있었다.
전 대륙을 통틀어 가장 강력한 대제국을 이끄는 단 한 명의 인물. 황제 엔토마우스가 일행들을 한번 훑더니 다시금 입을 열었다.
“에스피드켈론을 비롯하여, 오시하는 눈과 살아 움직이는 해저를 동시에 사멸시켜 전 대륙에 안정을 가져온 이들이여. 이렇게 만나게 되어 본인에게도 크나큰 영광이니라.”
황제의 말에 아인과 닉은 서로 눈빛을 교환했다.
‘뭐라고 하지?’
‘모르겠어요.’
죽음과도 같은 1~2초가 지났을 무렵, 라칼부터 시작해 사하바티와 이후프가 차례로 고개를 조금 더 들며 평소와는 다른 어조로 말했다.
“아랑족의 송곳니 라칼. 되바라진 먹잇감을 사냥했을 뿐.”
“가을 거목의 사하바티. 망가지는 균형을 맞추기 위해서란다.”
“서른 번째 파편 이후프. 이전에 못했던 일을 한 것입니다.”
이어 닉과 아인 역시 슬금슬금 눈치를 보다가 비슷한 자세로 황제를 보며 더듬더듬 입을 열었다.
“카오스의 조각… 닉 모하지. 냅두면 세상 망한대서요.”
“서, 서풍의 숲 출신 아인입니다… 모두가 같이 도와준 덕분에….”
둘의 어설픈 말이 기가 막혔던 것인지 귀엽게 느낀 것인지. 황제는 짧은 웃음을 흘리더니 고개를 끄덕이며 손짓했다.
“훌륭하다. 그 무엇 하나 같지 않은 이들이 한데 모여 대업적을 세웠다는 것이. 대륙의 영웅들에게 이런 대접을 하는 본인을 부디 용서하라.”
이후로는 지금껏 있었던 일을 신하가 한번 읊고 그 공을 황제가 치하하는 시간이 이어졌다. 별거 아닌 것처럼 보였지만, 닉은 자신의 공 치하가 끝나는 즉시 막대한 경험치와 명성, 스탯이 상승하는 것을 느끼며 자신도 모르게 저급한 감탄사를 뱉을 뻔했다.
닉이 용사 스킬의 효과만 믿고 레벨링을 해오지 않았던 것은 사실이었지만 나름대로 중상위급에 올라서는 레벨은 되었는데, 그런 닉조차도 초보자 시절마냥 레벨이 오를 정도였다.
‘진짜 스케일 하나는 오지는구나. 무서울 정도인데.’
모든 이들의 공을 치하한 후, 황제는 긴 수염을 한번 쓸어내리더니 다시 한번 일행을 훑어보았다.
“혹시 너희들이 이 대륙을 위해 힘쓰고 있는 것이 있느냐. 부족한 몸이나마 본인이 도와주겠다. 여러 명이서 힘을 합친다면 어렵지 않게 해결할 수 있을 것이다.”
그리고 그 말이 끝나는 순간, 에스피드켈론을 처리하는 데에 가장 큰 공을 세웠던 닉과 아인의 눈앞에 알림창 하나가 떠올랐다.
[기존에 가지고 있는 퀘스트를 메인 대륙 퀘스트로 지정하거나, 새로운 의뢰를 메인 대륙 퀘스트로 지정 가능합니다.]말 그대로 전 대륙의 모든 플레이어들이 자신의 퀘스트를 위해 움직이기 시작한다는 것. 세계에 의뢰를 거는 것이나 다름없었다.
극단적인 예시로 한 가게의 심부름을 지정한다면 전 대륙의 모든 플레이어가 그 심부름을 하기 위해 몰려드는 일. 때문에 쉽게 생각해서는 안 되는 일이었다.
아인이 어떤 것을 퀘스트로 지정해야 할지 고민하며 끙끙대고 있던 찰나, 닉은 그를 힐끔 보더니 먼저 앞으로 나섰다. 그리고 느릿하게 입을 열었다.
“사람 하나를 찾아주셨으면 합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