Hero, What's logout? RAW novel - chapter (146)
146화 : 대륙 퀘스트
닉은 딱히 무언가를 대륙 퀘스트로 의뢰할 생각이 없었다. 자신이 진행하고 있는 퀘스트에 누군가가 개입하는 것도 좋아하지 않았을뿐더러, 실제로 내걸 만한 것도 없었다. 조금 스케일이 큰 거라고 해 봤자 용사의 길이라든지 아인을 생명으로 인정하느냐 마냐를 결정하는 퀘스트.
다만 전자는 오로지 용사 사명 전용 퀘스트인 데다가 후자는 닉 모하지 전용 퀘스트라고 불러도 과언이 아니었다. 자칫 이것을 대륙 퀘스트로 돌렸다간 무슨 일이 벌어질지 상상도 되지 않았다. 대륙 사람들이 모조리 달려와 ‘너는 살아있어!’라고 외치는 장면이 상상됐다.
‘엄청나게 뜬금없는 감동 게릴라 콘서트의 시작인가.’
심지어 이것도 희망적인 관측이고 사실은 아인을 생명으로 인정하지 않을 가능성이 컸다. 자신도 처음에는 0과 1로만 이루어진 NPC가 무슨 자아니 생명이니 쓸데없는 소리를 한다고 생각했으니까. 타인에 의해 아인의 데이터가 삭제되는 건 가장 끔찍한 일이다.
‘하지만 다른 건 정말로 생각나지 않는단 말이지… ‘나한테 돈을 주세요.’라든가 ‘나를 평범한 게이머로 대해주세요.’ 이런 건 해봤자고. 무리한 퀘스트면 그만큼 페널티가 올 거야.’
진지하게 황제를 보며 ‘춤이나 한 판 신나게 춰주세요.’라고 말하려던 닉의 눈에 아인이 들어왔다. 어떤 퀘스트를 할지 전전긍긍하며 고민하는 얼굴. 자신과는 달리 생각할 것도 많고 결정할 것도 많을 것이다. 그러니 개중 하나만을 선택해야 할 터.
모든 것에 진심인 아인의 성격상 무엇 하나를 우선순위로 올려놓기는 힘들 것이다.
그렇다면 자신이 아닌 아인을 위해 의뢰를 소모하는 것이 좋겠다고 생각했다. 아무리 비교해봐도 황제가 팝핀댄스를 추는 걸 볼 바에야 아인에게 맡기는 것이 훨씬 낫다.
“사람 하나를 찾아주셨으면 합니다.”
“어렵지 않지. 누구인가?”
“페리스라는 용병입니다. 혹시 알고 계신가요? 보라색 머리에 한량 같은 사람인데.”
의문스러운 얼굴로 닉을 보던 아인의 얼굴이 크게 흠칫하더니 이내 안절부절못하는 표정이 되기 시작했다. 자신 때문에 귀중한 기회를 쓴 것을 마음에 둔 듯.
하지만 닉은 일부러 아인 쪽을 돌아보지도 않았고, 황제는 수염을 천천히 쓰다듬었다.
“페리스 아크라바를 말하는 건가? 잘 알고 있지. 과거 대륙 전쟁을 승리로 이끈 주역 중 한 명이 아닌가. 관철자 가트와 단둘이서 헤르도아의 지부 수십 개를 처리한 괴물 같은 이라네.”
생각보다도 대단한 사람이었잖아. 황제의 말에는 닉 뿐만 아니라 아인도 놀랐다. 닉은 두어 번 눈을 끔뻑이더니 이내 고개를 끄덕이며 말했다.
“그 사람이 헤르도아 쪽으로 귀의한 듯 보입니다. 여러 의미로 가만두면 안 될 것 같아요.”
“관련 소문은 들었다만 사실이었다니… 그렇다면 척살령을 내리면 되겠나?”
“잠깐 진정해보세요. 진정하세요. 신하한테 굉장히 무서운 얼굴로 뭔가 전하지 마! 생포해서 저희한테 가져다주시면 됩니다. 이래저래 할 말이 많아서요.”
화끈한 성격의 황제를 간신히 진정시킨 닉은 척살령을 무마시킨 뒤 안도의 한숨을 쉬었다. 사실 할 말도 내가 아니라 아인 쪽이 많은 것이긴 하지만. 닉은 더 이상의 용건이 없다는 듯 고개를 꾸벅 숙이고 뒤로 물러났다. 그리고 동시에 눈앞에 알림창이 떠올랐다.
[대륙 메인 퀘스트: 페리스의 행방대륙전쟁의 주역 중 한 명이었던 페리스는 현재 알 수 없는 이유로 헤르도아에게 귀의하고 그들을 위해 움직이고 있다. 우리는 그에게 물어볼 것이 많을뿐더러, 헤르도아가 그런 강력한 무기를 가지고 있는 것도 좌시하기 힘들다. 그를 데려와야만 한다.
퀘스트 보상: 경험치, 골드, 황제의 인정, 해당 의뢰를 내세운 플레이어의 추가 보상.
페리스가 사망할 시 보상 감소. 시체에 상태에 따른 추가 페널티 존재.]
이것은 비단 닉뿐만 아니라 카오스 전체에 있는 플레이어 모두에게 나타난 퀘스트창일 것이다. 새삼스레 그 스케일을 확인한 닉은 속으로 식은땀을 흘렸다.
‘무슨 짓을 해서든 데려오라는 말은 안 해서 다행이다.’
죽이기만 하는 것이라면, 하이랭커급 플레이어 여러 명이 뭉쳤을 때 그렇게 어려운 일도 아닐 것이다. 헌터 길드를 통해 어떻게든 페리스의 위치를 대략적으로라도 알아낸 후 그곳을 대거 폭격하면 된다. 하지만 생포라면 이야기가 달라진다.
부상 정도나 사망에 따라 보상이 차등 적용되는 퀘스트인 데다, 황제의 신임을 받는 것은 굉장히 어려운 일이므로 모두가 페리스를 깔끔한 상태로 생포하여 데려가길 희망할 것이다. 문제가 있다면 페리스가 자신을 적당히 봐주는 공격에 당해줄지가 의문이었다.
아인이 여러모로 복잡한 얼굴을 한 채 입을 우물거리고 있을 즈음, 황제는 닉에게서 천천히 고개를 돌려 아인을 가리켰다.
“그러면 자네는 어떤 의뢰를 원하는가?”
“네?! 아 네! 저, 저는….”
아인은 황제의 지명에 화들짝 놀라며 입을 벙긋거렸다. 물론 닉이 말해준 덕에 짐 하나는 줄긴 했지만 여전히 원하는 것은 수없이 많으며 대륙에는 셀 수도 없을 정도로 잠재적인 위험들이 존재한다. 그것을 뭉뚱그려 의뢰하자니 여간 힘든 일이 아니었다.
여전히 말을 못한 채 아인이 고민을 하고 있자, 황제는 아인을 빤히 보다가 먼저 말했다.
“자네가 원하는 방향이 무엇인가?”
말을 빨리 하지 않고 시간을 낭비한다며 불호령이라도 떨어질 줄 알았는데, 생각보다도 차분한 목소리가 오자 아인은 눈을 질끈 감고 있다가 천천히 뜨며 의아한 목소리로 답했다.
“방향…이요? 어떤 걸 말씀하시는지 정확히 이해하지 못했습니다. 죄송합니다.”
“고르기 힘들 정도로 많은 생각이 떠오르고 있겠지. 본인도 선택에 어려움이 있다는 것을 인정하는 바이다. 짐을 거쳐간 카오스의 조각들은 오히려 그 목적도 알기 쉬웠지.”
카오스의 조각들은 대부분 하나의 목적을 가지고 이 세상에 들어온다. 그것이 유흥이든, 다른 이들의 위에 서는 것이든. 어떤 모습으로든 변할 수 있고 예측 불가하다는 특징이 유명하지만 사실 성향을 파악하고 나면 카오스의 조각만큼 예상하기 쉬운 이들도 없었다.
하지만 NPC는 다르다. 이 세상에 어엿하게 살고 있으며 그만큼 수많은 이해관계를 지니고 있다. 여느 지적생명체가 그렇듯이 단 하나의 목적만을 가지고 살아가지 않는다.
황제는 턱을 괴더니 아인을 가만 바라보았다.
“원한다면 지금 당장 의뢰를 청하지 않아도 좋다. 대륙의 영웅을 못 기다릴 것도 없으니. 다만 지금 떠오르고 있는 수많은 생각들. 네 목적들이 가지고 있는 공통점만 얘기해보라.”
“제가 가지고 있는 목적들의 공통점….”
아인은 자신이 생각하고 있던 수많은 의뢰 후보군들을 상기했다. 특정 지역의 괴물을 물리쳐달라는 것이나 재난 피해를 다 같이 복구해주자는 것. 기록상 대대로 힘든 날들을 보내고 있는 주민들을 도와주는 것. 그 외 등등.
고민은 오래가지 않았다. 아인은 조금 민망한 미소를 머금었다가 볼을 긁적였다.
“모두… 다 같이 행복하게 잘 살았으면 좋겠어요. 사람들과 더불어서. 항상 평화롭지는 않더라도 서로가 힘을 합치는 그런 모습을 원해요.”
이상론이었다. 아인의 말에 닉은 픽 웃었고, 황제는 가만 쳐다보다가 작게 웃음소리를 냈다. 이내 고개를 끄덕인 황제는 아인은 물러가도 괜찮다는 듯 손짓하다가, 무언가를 곰곰이 생각하더니 물러나라는 손짓을 닉과 아인이 아닌 신하들에게 하기 시작했다.
“이들과 이야기할 것이 있다. 모든 대신들은 물러나라.”
“하, 하지만 폐하. 만난 지 얼마 안 되어 신원조차 불분명한 이들과 함께하신다니요. 대접을 원하시는 거라며 우라노스가 근처에 있으니….”
황제의 말에 그 자리에 있던 신하들이나 호위병사들은 머뭇거리는 기색을 보였다. 아무리 닉이나 아인이 그다지 위험해 보이진 않는다 해도, 단지 셋만을 이곳에 남겨두는 것은 너무 위험했다. 하지만 황제는 요지부동으로 모두를 자리에서 물렸다.
“내가 지금까지 이 자리에 앉아있을 수 있는 이유가 사람 보는 눈 하나 때문이다. 물러나라.”
이윽고 공간에는 황제와 아인, 닉만이 남아있었다. 아인의 예민한 귀에도 누군가 안에 있다는 기척이 들리지 않았다. 이것은 황제가 자신들을 신임한다는 이야기도 되지만, 그만큼 비밀스러운 이야기를 하기 위해서일 터였다.
닉은 어이가 없다는 듯 주변을 살펴보며 헛웃음을 흘렸다.
“저희를 믿어주시는 건 좋지만 너무 과한 신임 아니에요? 까놓고 말해서 지금 당장 제가 황제님한테 달려들어도 할 말은 없는데. 전 죽지도 않는 카오스의 조각인데도요.”
“그런 말을 한다는 것 자체가 나를 해할 생각은 없다는 것이겠지. 살아있는 모든 이들에게 가능성은 존재한다. 나를 시해할 가능성은 가장 아끼는 신하에게도 적용되지 않나. 다만 신뢰할 뿐이다. 그 사람과 그 사람을 믿은 나라는 존재를 말이다.”
“…좋아요. 그래서 너도 나도 우리도 다 믿으면서 하고 싶었던 말이 뭐예요?”
닉의 말에 황제는 주위를 살펴보더니, 느릿하게 입을 열었다. 여전히 근엄하고 무게감이 실려있었지만 다른 의미로 가라앉은 어조였다. 목소리에는 근심이 가득했다.
“데이드완이 헤르도아와 결탁했다는 소식을 들었다. 알고 있나?”
황제의 말에 아인은 크게 어깨를 흠칫했다. 노타나 영지에서 엘퀴네스의 눈물을 가지러 갈 때 확인했던 내용이었다. 하지만 그것을 티 내기에도 뭣했기 때문에 시선을 내리깐 채 작게 고개를 저었다. 다만 닉은 대충 그럴 만하다 생각했는지 순순히 고개를 끄덕였다.
‘과하게 착해 보이면서 능력 좋은 NPC들은 언젠가 뒤통수를 후린단 말이지.’
특히나 툭하면 미소를 짓거나 특히 눈웃음을 잘 짓는 이들이 그러했다. 데이드완은 그런 ‘선한 인간상’에 완벽하게 부합했고 오히려 ‘언젠가 배신할 것 같은 얼굴’에 부합하기도 했다.
황제는 대비되는 둘의 모습이 재밌는지 껄껄 웃다가도 다시 굳은 표정을 했다.
“일전에 한 번 만났을 때 이야기를 해 본 적이 있다. 그는 이 대륙의 누구보다도 자연을 사랑하고 아낀다. 좋게 말하면 이상적인 자연주의자였으며, 다소 나쁘게 말한다면….”
일종의 광기까지 엿보이기도 했다. 황제는 그 말을 덧붙이며 아인을 힐끔 돌아보았다.
“그리고 나는 자네에게서도 비슷한 일면을 보았네.”
“저, 저는 헤르도아에 귀의할 생각이 없습니다!”
“알고 있네. 하지만 자신의 개인적 욕망을 얼마든지 실현할 수 있는 곳에서 그런 말을 한다는 것은 쉽지 않아. 그것도 일종의 광기라고 볼 수 있지. 그리고… 비슷한 유형의 광기를 가진 이들은 서로를 가장 잘 이해하리라 생각하고 있다.”
그 말에 아인은 엘퀴네스의 눈물을 얻으러 갔을 때 보았던 데이드완의 모습을 상기했다. 엘퀴네스의 눈물은 어마어마한 가치가 있음에도 그것을 사용하지 않고, 마치 그것을 찾으러 온 이를 기다리기라도 하는 듯한 모습.
“데이드완은 정령술에 특화되어 있다. 자네와도 일면식이 있을 거라 생각하네만.”
“그렇습니다.”
“광기를 가진 이들은 무엇도 두려워하지 않아. 하지만 유일하게 자신의 이해자가 없다는 것에 가장 민감하다. 자네라면 그와 어렵지 않게 접촉할 수 있을 거라 믿네.”
이내 황제는 자리에서 일어나 가까이 다가왔다. 이미 모든 이들을 자리에서 물렸음에도 더욱 조심스럽게 전할 정보가 있다는 양.
“동쪽에 있는 ‘거석의 무덤’으로 가게. 그곳에서 데이드완이 뭔가를 꾸미고 있으니.”