Hero, What's logout? RAW novel - chapter (150)
150화 : 로그아웃4
그날따라 세훈의 전화기는 조용할 날이 없었다. 최근 카오스 내의 상황이 급변하면서 쉴 새 없이 전화를 받아야 하는 상황이 오기도 했지만, 업무 외적으로 사용하는 개인 핸드폰에마저 불이 붙은 것이다. 그냥 무시해버리고 싶은 마음이 굴뚝같았지만 가족이라 그럴 수도 없었다.
스피커폰으로 돌려놓은 핸드폰에서는 카랑카랑한 목소리가 세훈의 사무실을 가득 채웠다.
“진짜라니까? 내가 아무리 너를 띠꺼워 해도 이런 거짓말 치는 거 봤어? 적어도 인게임에 필요하다고 생각되거나 문제가 있는 건 말하잖아. 그런데 이건 왜 안 믿어주는데.”
“대뜸 전화하더니 랭킹 1위 플레이어가 불법 프로그램 까는 것 같다고 하면 곤란해 강지영.”
세훈의 여동생이자 게임에서 ‘마라’라는 닉네임을 가지고 있는 지영은 아까부터 ‘우라노스가 게임에 뭔가 손을 쓰고 있다.’라는 내용의 문자와 전화를 계속해서 날려대고 있었다.
본디 우라노스와 그녀와의 사이가 좋지 않아 이전에도 온갖 날조 섞인 욕설을 내뱉곤 했지만, 이번에는 다소 심하다고 생각해 세훈은 한숨을 쉬고 담담하게 말을 이었다.
“단순한 그래픽 깨짐 현상 때문에 그런 거야? NPC 데이터가 가끔씩 꼬인다는 건 너도 알고 있잖아. 딜미터기 프로그램을 말하는 거라면 허락한 적 없긴 하지만 함부로 잡을 수도 없어.”
“아 진짜 답답하네. 데이터가 꼬인 수준이 아니야. 얼핏 보기에는 문제없는데 자세히 확인해야 할 정도로 정교해. 그냥 한번 직접 확인 좀 해주면 안 돼? 높은 직책 가진 거 헛일이네.”
“높은 직책 이용해서 나한테서 온갖 정보 빼먹고 있는게 너니까 조용히 해. 그리고 근거도 없이 우라노스를 잘못 건드렸다가 여론이 망가지면 네가 책임질래? 랭킹 1위를 물로 보지 마.”
순수하게 과금을 많이 했다는 측면도 있지만, 카오스 내에서의 영향력 등을 살펴보았을 때 우라노스는 게임 운영진은 물론 사측에서도 쉽사리 건들 수 없는 인물이었다. 어설프게 접근했다가 게임 측이 랭커를 제재한다는 말이라도 나오면 온갖 역풍이 휘몰아칠 것이 분명했다.
심지어 세계적으로 온갖 게이머들을 끌어들이고, 모든 이슈의 총집합체이기도 한 카오스의 랭킹 1위는 단순한 게이머에서 그치지 않는다. 얼마 전에는 ‘세계에서 가장 영향력 있는 사람’에 최초로 인게임 플레이어인 우라노스가 뽑히기도 했으니까.
하지만 지영은 가만히 그 말을 듣고 있다가 오히려 짧게 웃음소리를 흘렸다. 시원시원하고 호기심 넘치는, 하지만 ‘해 보자는 거지?’라는 뜻도 담긴. 호승심이 가득 담긴 웃음.
“확실한 근거만 있다면 건드려준다는 말로 들어도 되지?”
“…불법 프로그램 사용에 예외는 없으니까. 하지만 말했다시피 근거도 정황도 확실해야 해.”
“알았어. 조만간 내가 그 추악한 낯을 가감 없이 찍어서 여봐란듯이 들고 올 테니까.”
“응원은 하지 않을게.”
“바라지도 않았어. 그나저나 롱샤랑 탕이 요즘에 무슨 일 있어? 내 눈치 보면서 피하던데.”
“현실에선 인게임 닉으로 얘기하지 마… 아무튼 그 둘이 오시하는 눈 조각 소스를 우리한테 줘서 아인한테 척살령 냈잖아. 넌 아인 예뻐하고. 그것 때문에 네 눈치 보는 것 같던데.”
“아 그거~? 괜찮아! 물론 당시에는 좀 빡돌긴 했어도 결과적으로 문제없었고? 둘 다 악의로 한 일이 아니라 나름대로 게임을 위해서 한 거니까.”
“가족 중에 누구보다 게임을 위해서 헌신하는 사람은 나인데, 대접이 영 그렇네.”
“너는 색갸… 가장 멋대로 구는 게 너인 거 모를 줄 알아? 닉모하지 그만 좀 괴롭혀.”
이후로도 지영과 세훈은 온갖 욕설을 주고받다가 세훈 측에서 전화를 끊어버렸다. 지끈거리는 이마를 누르던 세훈은 우라노스와 관련된 서류를 찾아 뒤적거리더니, 비서를 호출했다.
“요즘 카오스 동향은 어때? 게임 자체를 말하는 게 아니라, 인공지능의 아바타 말이야.”
비공식으로 우라노스보다 강하다고 평가받는 유저 중 한 명인 ‘카오스’는 사실 인공지능이 자체적으로 만들어낸 자신의 아바타 캐릭터이다. 그것도 얼마 전에 알게 된.
처음엔 그 의도를 이해할 수 없어 걱정도 많았지만, 현재는 인게임에서 어느 한쪽의 밸런스가 망가질 경우 개입하여 균형을 맞추는 존재였기 때문에 운영진과 사측에서는 기꺼운 대상이었다. ‘영웅’이 악의 세력들을 멋대로 죽이고 있을 때 다시 균형을 맞추느라 선 성향의 NPC들을 죽이곤 해서 타 플레이어들에게는 악의 화신 같은 이미지로 낙인찍혔지만.
만일 카오스가 직접 우라노스에게 개입하는 움직임이 보였다면 정말로 우라노스에게 껄끄러운 무언가가 있다는 증명이나 마찬가지다. 비서는 무언가를 잠시 확인하더니 세훈에게 답했다.
“영웅이 눈에 띄지 않고 있는 만큼 모습을 잘 드러내진 않습니다. 다만 수도 근처에서 영웅이랑 같이 한 번 모습을 드러냈다는 유저의 목격담은 있네요.”
생각지도 못한 이가 거론되자 세훈은 한쪽 눈썹을 치켜올렸다. 게임을 좀먹고 있는 오류 데이터 덩어리인 영웅은, 자신은 물론 카오스가 이를 갈고 있을 존재였을 텐데.
“영웅이랑? 그게 가능해? 같은 자리에 있을 리가 없잖아. 보자마자 서로 죽이려 들 텐데.”
“각각 흰색 갑옷과 검은 갑옷을 입었다는 말뿐이라 신뢰도가 높진 않습니다.”
세훈은 침음을 흘리며 검지로 제 관자놀이를 꾹 눌렀다. 지영은 우라노스가 눈치채기 힘들 정도로 조금씩 황궁 내의 프로그램을 건드려보고 있다고 말했다. 황제를 비롯해 제국이 대륙에 끼치는 영향을 생각하면 민감하게 다룰 수밖에 없는 사항이었다.
다만 세훈으로서는 우라노스가 황궁을 건든다는 것이 이해가 되지 않았다. 그의 입지나 그의 사명을 생각하면 언젠가 황제가 될 것이다. 지척에서 쫓아오는 라이벌도 없었으며 상당한 시간만 들인다면 자연스레 따라오는 권력일 텐데.
그는 턱을 괴고 눈을 끔뻑이다가 결국 우라노스의 동향에 대한 조사를 추가로 지시했다. 다만 들키지 않게 멀리서부터 시작해야 할 것이다. 눈치를 채는 순간 망하는 것은 이쪽이다.
“말씀대로 하겠습니다. 그리고 방금 에리식톤의 기동에 대해 허락을 받고 싶다는 말이 올라왔는데, 어떻게 처리하시겠습니까? 데이드완 패치를 하면서 같이 기동시킬까요?”
‘포식하는 자’ 에리식톤.
제대로 데이터가 꾸려지기도 전에 닉 모하지에 의해 공략되어버린 재앙이자 레이드 보스 중 하나로, 본래는 이보다도 조금 더 뒤에 나올 레이드 보스였다.
공략된 뒤 남은 데이터를 긁어모아 어떻게든 재정비를 하긴 했지만, 본래의 레이드 보스보다도 열화판의 느낌이 있었다. 물론 그것마저도 충분히 재앙이라고 불릴 정도의 힘은 있지만.
“동시에 하면 어느 한쪽에게 시선이 쏠려버리고 충분히 이야깃거리가 되지 못하는데.”
“현재로서는 데이드완과 비슷한 스펙을 가져서 그렇다고 합니다. 이후로 나오는 레이드 보스일수록 점점 더 강해져야 하니까요.”
그건 분명 맞는 말이다. 그렇다고 해서 에리식톤의 스펙을 무작정 올리자니 카오스의 인공지능 측에서 허용해 줄지가 의문이었다. 이 세계에 커다란 영향을 끼칠 밸런스 조정은 무조건 인공지능의 필터를 한번 거치기 마련이니까.
“…그러면 이렇게 해 봐. 연출상으로 자극적이기도 하고. 에리식톤이 강해지는 개연성으로도 크게 문제는 없어. 다만 타이밍을 잘 맞춰야 할 거야.”
***
지영은 의자에 앉아 콧노래를 흥얼거리며 컴퓨터로 공식 홈페이지나 인벤 등을 둘러보고 있었다. 찾는 것은 우라노스에 대한 정보. 이런 곳에서 얻는 정보는 한정적일 수밖에 없지만, 이따금 질 좋은 목격담이 올라오기도 했으니까.
“어우… 길드원들이 쉴드를 얼마나 쳤으면 그 며칠 새에 프로토게노이 욕하는 글들이 거의 다 사라져버렸네. 예상보다는 타격이 적긴 한데.”
에스피드켈론 사건 이후 프로토게노이는 온갖 조롱성 밈과 야유에 시달려야 했지만, 그들이 죄를 지은 것은 아니라는 글과 월급을 쏟아부은 장비가 모두 망가져버렸다는 동정 호소 글에 힘입어 다시금 회생의 분위기로 변하고 있었다.
물론 스스로 자정작용이 되었다기보다는, 프로토게노이에 대한 안 좋은 글을 발견할 때마다 우르르 몰려가 욕을 하는 통에 질려버려 자체 게시물 삭제를 하는 것에 가까웠지만.
건수를 제대로 잡아야 우라노스랑 프로토게노이를 말아먹을 텐데. 지영이 턱을 매만지며 방법을 고민하던 중, 현관문에서 벨소리가 울렸다.
이 시간에 올 사람이 없는데. 지영이 눈을 끔뻑이다가 경계 어린 모습으로 카메라를 확인하다가, 이내 부드럽게 풀린 눈으로 웃었다. 그녀는 휠체어를 조작해 현관으로 가서 문을 열었다.
“연락도 없이 무슨 일이야?”
“서프라이즈 선물 주려고 왔어.”
“뭔데?”
“바로… 나.”
“헛소리할 거면 나가.”
최지우는 익숙하게 안으로 들어와 과자를 내려놓고 냉장고부터 뒤적거리기 시작했다. 지영은 내려놓은 과자를 뜯어 한 입을 우물거리곤 다시 컴퓨터가 있는 곳으로 움직였다.
“나 바로 게임할 건데 너 혼자 외롭고 쓸쓸하고 처량하게 놀다가 가도 돼.”
“진짜 개억울하다. 카오스에 내 친구들 다 뺏기고 있단 말이야.”
“너도 시작하라니까? 좀 귀여운 종족으로 하나 만들고 뉴비마크 단 채 마을 두리번거리고 있으면 고인물들이 텔레포트 쓰고 너한테 와서 소매넣기 할 거야.”
“그렇게 오래된 게임도 아닌데 무슨 고인물이 있어. 컨텐츠가 없나 보네 컨텐츠가.”
최지우는 냉장고에서 멋대로 꺼낸 음료수를 마시다가, 문득 생각났다는 듯 지영을 보았다.
“중독 수준 아니야? 하는 시간만 보면 아예 거기에 살고 있잖아. 게임 자체도 엄청 좋아하는 것 같고.”
“캡슐 가격 빼면 좋은 게임이라 생각해. 나는 자유도 엄청나게 중시하니까. 카오스는 완전 새로운 세상이나 다름없으니. 뭐어… 오래 하는 건 맞는데 부모님이 만든 게임이니까 뭐라 하면 간접 패륜이기도 하고.”
“탈룰라 걸려가지고 욕도 못하겠네. 그러면 너도 혹시 과몰입 같은 거 해?”
“갑자기? 무슨 유형 과몰입 말하는 건데?”
다소 뜬금없는 말에 지영은 과자를 입에 문 채 고개를 갸웃했다. 최지우는 침음을 흘리며 기억을 되새기듯 손가락을 까딱이다가 고개를 끄덕였다.
“그~ 내가 아는 친구 중에서 NPC가 살아 있네 마네 하는 문제로 되게 고민하는 애가 있거든. 솔직히 3자 입장에서 보면 좀 어이없긴 한데, 직접 체험하면 또 다르려나 싶어.”
“아무래도 스스로 사고가 가능하고 자신이 살아있다고 믿는 인공지능 NPC들이니까 안 그럴 것도 없지. 실제로 되게 말 많은 부분 아니야? 어떤 태도로 대해야 하는지 그런 것들.”
“넌 어떻게 생각하는데?”
“별생각 없어. 그래도 ‘데이터 쪼가리 주제에’라는 생각은 안 했던 것 같아.”
“그래? 너라면 ‘당연히 가짜 아냐? 그 사람들 믿는 건 자유지만.’이라고 할 것 같았는데.”
“그러게~ 얼마 전까진 알아서 믿을 사람 믿고 말 사람 말고, 라는 식이었는데. 좀 귀여운 NPC들도 많아서 백화됐나 봐.”
그러니까 너도 빨리 시작하라고. 지영은 괜히 지우를 한번 흘겨본 뒤 과자 여러 개를 한 입에 털어 넣었다.
“그런데 걔 닉네임은 뭐야? 나 정보상 비슷한 직업이라 들어본 적 있을지도 모르겠다.”
“몰라. 안 알려줘. 유명인이라면서 가상현실 게임에서 실친 만나기 싫대.”
“유명인이면 내가 모를 리가 없을걸. 솔직히 처음엔 예의상 말해준 건데 진짜 궁금해졌어.”
“그런데 대충 짐작은 가. 걔 다른 게임에서도 항상 흔한 닉네임 쓰려다가 다 선점당해있어서 남아있는 이름이없음, 이름 뭐함, 닉네임12345, 닉네임 뭐하지 이딴 식으로 짓더라.”
그런데 그런 이름이면 과몰입하려다가도 안 될 것 같은데. 지우는 음료수가 마음에 들었는지 상표를 자세하게 살피고 있었고, 지영은 눈을 끔뻑이다가 이내 입꼬리를 길게 늘리더니 아하하 웃었다.
“그만큼 과몰입할 대상이 주변에 있는 거겠지.”