Hero, What's logout? RAW novel - chapter (152)
152화 : 자연의 수호자
닉 모하지 일행이 도착한 영지인 ‘바이나’는 과거 재앙으로 인해 자연이 복구 불가능할 정도로 파괴당하고 황량한 광야가 펼쳐진 곳으로, 대신 다양한 몬스터가 존재하여 그들을 사냥하며 이빨이나 가죽 등을 특산품으로 판매하는 영지였다.
얼핏 보면 몬스터만을 사냥하며 하루하루를 간간이 버틴다고 볼 수 있고 그렇게 틀린 말도 아니지만, 플레이어들과 모험가들이 몰린다는 것은 아주 중요한 발전 요소였다. 또한 주위의 몬스터들이 어지간한 플레이어도 잡기 어려울 만큼 상당한 고위 레벨이라는 점도 한몫했다.
때문에 타 길드는 이 영지에 지부를 세우지 않았으나 헌터 길드만이 이곳에 지부를 세우고 영지민들에게 환심을 사며 조금씩 영향력을 키우는 중이었다.
“고위 레벨이라는 게 뭐가 그렇게 중요해?”
닉이 의문스럽다는 얼굴을 하며 고개를 갸웃하자, 한창 설명을 이어가던 마라는 뭘 모른다는 얼굴로 검지를 좌우로 흔들며 한숨을 쉬었다.
“당연히 주변에 뭔가가 있다는 거지. 대륙 메인 퀘스트는 그때그때 평균적인 유저 수준을 고려해서 난이도를 정하기 마련이야. 현재 일반적인 유저에게 있어 적당히 어려운 몬스터를 뿌려놓은 여긴 얼마 안 가서 뭔가 일어날 거라는 말씀!”
“하긴 주변 잡몹이 갈색늑대 이런 것밖에 없는데 다음 레이드 몬스터가 나타나진 않으려나.”
마라는 복습예습 잘하는 학생을 보는 흐뭇한 얼굴로 고개를 끄덕인 후 다시 텔레포트 시설 안으로 들어가며 손을 흔들었다. 그녀는 이번 여정에는 같이 할 생각이 없었다.
“할 일만 아니었어도 바로 따라가는 건데. 그냥 지금부터 녹화 시작하면서 동영상 나 줘라.”
여전히 장난기 어린 어조였지만 닉은 곰곰 생각하더니 좋은 생각이라는 듯 고개를 끄덕였다.
“그러지 뭐.”
“응? 뭐? 잠깐. 진짜로?!”
“여러모로 도움받은 것도 있고 안 갚으면 찝찝하거든. 대신 이걸로 빚 갚은 셈 치자.”
사실 지금까지 상당히 고급스러운 숙소에 계속 묵으면서 하루하루 부채감이 쌓여가던 닉이었다. 심지어 상대방이 계산 하나는 철저한 헌터 길드의 실세인 만큼 언제 어떤 상황에서 ‘그동안 먹고 자고 쉬게 해준 빚을 갚아라!’라고 말하면 할 말이 없었으니.
사실 헌터 길드 측에서는 그들을 숙소에 엮어두는 것만으로도 여론이 좋아지는 터라 돈을 주면서라도 묵게 해야 할 처지였다. 심지어 골렘의 무덤은 모험가가 한 번쯤은 발견해야 할 전설 속 장소이기도 해서 관련 정보는 엄청난 값으로 팔릴 것이 분명했다.
진짜 장삿속이 없구나. 마라는 헛웃음을 흘리며 닉을 보다가 이내 고개를 끄덕였다. 그녀는 이런 상황에서 딱히 거절을 하는 성격이 아니었다. 다만 계산이 철저했기에 이것 역시 어떠한 형태로든 갚을 생각은 하고 있었다.
마라가 다시 텔레포트 시설을 이용해 수도로 돌아간 뒤 닉 일행은 주변을 살펴보기 시작했다.
새벽에 온 탓에 영지는 어둑했지만 드문드문 타오르는 횃불 덕에 대략적인 풍경은 볼 수 있었다. 그런데 황량한 광야밖에 없다는 정보와는 달리 영지 내부는 상당한 초목이 피어 있었다. 심지어 자연적으로 자라난 것처럼 보이는 야생 꽃들이 흐드러지게 피어난 곳도 보였다.
영지 바깥이 워낙 회색 땅밖에 없으니까 여기서라도 식물을 키울 수 있게 보살핀 걸까. 닉은 대수롭지 않게 생각하며 이후프 쪽으로 고개를 돌렸다.
“그런데 동도 트기 전에 와서 뭘 보여주고 싶다는 거야?”
“…새벽에 광야에 나서면 묘하게 빛이 나거나 마나가 충만한 돌들이 있습니다. 외부 충격 등으로 인해 죽어가는 골렘이 ‘무덤’으로 가는 도중 떨어진 파편이라 일종의 안내 길인데….”
이후프가 말끝을 흐리자 닉은 고개를 갸웃했다. 무언가 잘못되었나 생각하고 있는데, 이후프는 근처에 있는 성벽에 손을 대더니 그대로 안쪽으로 스며들고 이내 성벽 위로 올라갔다.
성벽 밖으로 보이는 것은 우거진 숲과 들판. 곳곳에 피어 있는 아름다운 야생화. 기존에 있던 몬스터뿐만 아니라 새로운 종류의 몬스터들도 다수 돌아다니고 있었다.
심지어 숲 안에는 건강한 자연이라는 증거인 온갖 정령까지 돌아다니는 중이었다. 드문드문 돌아다니는 땅의 정령을 제외하고는 어떤 정령도 없는 곳이었는데도.
자신이 알던 곳과는 너무나도 다르다. 잘못 온 것인가 싶었지만 최소한 영지 내부의 건물이나 구조 등을 보면 바이나가 확실했다.
자연이 번창한 것이 나쁘다는 것은 아니지만 이것은 너무나도 비일상적이고 갑작스러웠다. 이만한 규모의 숲이 자생하기 위해서는 수년 정도가 아니라 수십 년은 필요할 터였다.
이후프는 초목들을 가만 바라보다가 다시 성벽 밑으로 내려왔다. 무슨 일이 있냐는 듯 자신을 바라보는 일행들에게, 이후프는 난감한 웃음소리를 흘리며 바깥을 가리켰다.
“제가 알고 있는 곳과 상당히 달라졌는데요. 뭔가 일이 벌어지고 있는 것 같습니다.”
자연은 기본적으로 상당한 마나를 함유하고 있다. 이대로라면 마나를 품고 있는 돌을 따라가는 것도 어려울뿐더러, 풀과 나무에 가려져 은은하게 빛을 내뿜는 돌도 찾기가 힘들다.
분위기가 심각해지고 있는 사이, 영지 내 몇몇 NPC가 나오더니 소리를 치기 시작했다.
“곧 ‘레이드 업데이트’가 진행된다는 신탁입니다!”
“카오스의 조각들은 안전한 곳으로 들어가 로그아웃을 진행하십쇼!”
“1시간 후 ‘정규 업데이트’가 진행됩니다! 카오스의 조각들은….”
이 시점에서의 정규 업데이트라고 할 만한 것은 다음 ‘재앙’의 레이드밖에 없었다. 언제나 빠른 업데이트를 원하는 게이머들 때문에 슬슬 다음 패치가 진행될 때이기도 했고. 닉은 깊게 한숨을 쉬더니, 제 머리를 벅벅 긁으며 중얼거렸다.
“그러네. 분명히 일어나겠네. 무슨 일 말이야.”
***
오솔길은커녕 사람 하나 들어올 수조차 없어 보이는 우거진 숲속. 데이드완은 거대한 나무의 나뭇가지에 앉아 손가락에 정령을 올리고 가볍게 장난을 치고 있었다.
오염되지 않은 깨끗한 자연은 온갖 정령들의 놀이터가 되었다. 샘물에는 물의 정령이. 나뭇잎 사이에서는 바람의 정령이. 불에 타지 않게끔 마법이라도 걸어둔 것인지 하급 불의 정령들도 공터에서 불장난을 하고 있었고, 최근 새로 나타난 빛의 정령이나 어둠의 정령들도 있었다.
데이드완의 머리카락 위로 어둠의 정령이 스멀스멀 올라오자, 그는 작게 웃더니 무언가를 짧게 중얼거렸다. 그러자 그의 몸은 그림자로 덮이다가 이내 하나의 완전한 어둠으로 탈바꿈했다.
와중에도 손끝이나 발 일부분은 불꽃으로 휩싸이거나 하는 것을 보면 한 번에 다양한 속성의 정령화를 사용 가능하다는 뜻이었다. 이는 아인은 물론 에르조차도 힘든 일이었다.
그는 오류 데이터가 아니었다. 그저 선천적으로 타고났을 뿐인 막대한 친화력과 마나, 재능을 바탕을 가진. 대륙의 누구보다 자연을 사랑하고 수호하려는 존재이자 전 에스텔의 영주.
“데이드완.”
나무 밑에서 목소리가 들렸다. 온갖 감정을 꾹꾹 눌러담아 낮게 침잠한 목소리. 데이드완은 눈을 끔뻑이더니 정령화를 해제하고 고개를 밑으로 내렸다. 그곳에는 익숙한 얼굴이 있었다.
“실리본. 설마 당신이 올 줄이야. 좋은 차나 과일이라도 준비해둘 걸 그랬어요.”
“능글맞은 녀석. 기만이라도 하는 거냐?”
“저런. 저는 진심으로 당신을 반겨서 한 말인데도요. 그렇게 대하시면 조금 슬퍼요.”
데이드완은 특유의 부드러운 미소를 지으며 반갑다는 듯 눈웃음을 지었다. 데이드완은 변함없이 친절하고 다정했다. 그는 언제나 그러했다. 실리본은 실소를 흘리더니 지팡이를 까딱였다.
“갑자기 왜 이러는 거냐?”
“갑자기라니요 실리본. 저는 언제나 이랬고, 한순간도 변한 적이 없습니다.”
“변하지 않기는 무슨. 서풍의 숲에 있을 당시 인간 옹호론을 펼치다가 쫓겨난 녀석이.”
“그때는 인간과 모든 지성체가 우리와 함께 조화를 이룰 자연의 일부라고 보았으니까요.”
데이드완의 모든 행동은 자연의 수호를 기반으로 한다. 그 신념만은 올곧으며 전에도 앞으로도 바뀔 일이 없을 것이다. 데이드완은 실리본을 째려보는 바람의 정령을 가볍게 쓰다듬었다.
“자연을 파괴하는 모든 지성체들의 말살만이, 진정으로 이 세계를 구원할 길입니다 실리본. 이대로라면 기술 명목이라는 문장 아래 자연이 메말라 죽어가는 꼴을 볼 수밖에 없어요.”
특히나 카오스의 조각들이 온 이후로는 말이죠. 데이드완은 담담한 투로 툭 뱉었다.
오픈베타 이후
광기를 품은 이상론. 하지만 실제로 행할 수 있는 자가 광기를 품으면 그것은 더 이상 이상론이 아니게 된다. 실리본은 천천히 마나를 끌어올리던 중, ‘업데이트’라고 중얼거리기 시작하는 정령들을 보며 급하게 데이드완을 올려다보았다.
“데이드완. 내가 전에 너에게 비밀리에 말한 적이 있었지.”
“이 세상은 누군가의 조종이나 감시를 받는다… 라는 그것 말씀이신가요?”
“맞아. 그것과 관련하여 아인에게도 진실을 풀기 위해 부탁을 해 놓은 참이다. 분명히 네가 지금 이런 생각을 하고 세상을 파괴하려는 것도 그 때문일 거야. 그러니 조금만 더 참아봐. 네가 생각하고 있는 것은 누군가가 조종하는 가짜나 마찬가지야!”
닉 모하지나 아인이 온다면, 어쩌면 더 큰 일이 일어나기 전에 막을 수 있을지도 모른다. 이미 거대한 재앙에 있어 몇 번이나 그들이 커다란 역할을 수행해주었으니까.
절규에 가까운 부탁. 하지만 데이드완은 오히려 처음보다도 싸늘해진 얼굴로 눈을 끔뻑였다.
“실리본. 아까 말했지요. 저는 변한 것이 없습니다. 자연을 수호하고자 하는 마음도, 그것을 위해서라면 무슨 짓이라도 하겠다는 마음도 계속해서 그대로였지요.”
“그 무슨 짓이라도 하겠다는 마음이 광기인 거다. 우리는 알 수 없는 누군가가….”
“조종해서. 이 모든 행동과 생각이 가짜라면, 제 인생은 통째로 가짜라는 말씀이십니까?”
그 말에 실리본의 입이 턱 다물어졌다. 데이드완의 주위에서 살기가 천천히 피어오르고, 그것에 반응한 주변의 정령들이 동시에 실리본을 노려보았다.
“제 삶이 절대적인 무언가에 의해 조종된 것이라도, 그동안 느낀 슬픔과 기쁨마저 가짜라고 치부할 수는 없습니다. 그것만큼은 누구라도 부정할 수 없을 겁니다.”
숲이 조금씩 움직이고 있었다. 나무의 뿌리가 천천히 바깥으로 빠져나오며 실리본에게 향하고 있었으며, 실리본 주위의 빛과 그림자가 부자연스럽게 음영을 이루며 꿀렁였다.
“지금까지의 삶을 통째로 부정하는 것과, 그것을 모른 체하고 여전히 나 자신으로서의 삶을 살아간다고 믿는 것. 둘 중 하나를 선택하라면.”
저는 기꺼이 후자를 선택하겠습니다. 싸늘한 목소리가 이어졌다. 이윽고 숲 한가운데에서 거대한 폭발음과 함께 마나의 소용돌이가 휘몰아쳤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