Hero, What's logout? RAW novel - chapter (159)
159화 : 정해져 있는 것
알 수 없는 소년 한 명이 풀숲에서 튀어나와 데이드완을 깨물었다. 누구도 그 기척을 알아채지 못했으며, 깨무는 순간까지도 무슨 상황인지 이해하지 못해 아무도 반응하지 않았다.
하지만 그 직후, 데이드완의 아래쪽 몸 절반가량이 사라졌다. 정확하게는 단면에 이빨 자국이 생생했으며 소년이 무언가를 먹듯이 우물거리고 있었기 때문에 ‘뜯어 먹혔다.’라고 보는 것이 맞았다. 정령화 상태였기 때문에 피는 나지 않았지만 누가 보아도 치명상임을 알 수 있었다.
너무나 한 순간에 벌어진 상황. 본래 정령화 상태인 데이드완은 물리 공격에는 아무런 피해를 입지 않는다. 하지만 뜯어먹힌 몸은 복구될 기미가 보이지 않았다. 데이드완은 계속해서 신음을 흘리고 있었으며, 간신히 정신을 차린 아인이 급하게 몸을 추스르려 했지만 이미 늦었다.
“너 누구야. 갑자기 나타나서는, 너 누구냐고!!”
소년은 아무런 대답을 하지 않았다. 다만 한참 동안 무엇을 우물거리다가 꿀꺽 삼키고는 주변을 둘러보았다. NPC들은 물론 플레이어들도 한 명씩 쳐다본 그것은 띄엄띄엄 중얼거렸다.
“아직. 배고파.”
이내 가장 가까이 있는 아인에게 달려들려는 순간, 거대한 쇠말뚝 하나가 생겨나더니 소년의 가슴팍을 꿰뚫었다. 단면에서 마나가 계속해서 흐르고 있는 데이드완이 남아 있는 마력을 쥐어짜 공격을 제지한 것이다. 상황을 지켜보던 트로웰은 급하게 일행을 땅 아래로 끌어내렸다.
소년은 ‘음식’이 갑작스레 사라지자 고개를 갸웃했다. 그러고는 사위를 이리저리 둘러보았다. 탁하고 짧은 금발이 머리를 움직일 때마다 흔들렸다. 결국 처음 자신이 먹던 먹거리가 완전히 보이지 않는 것을 깨달은 소년은, 처음으로 눈살을 찌푸렸다.
그 순간, 소년에게 거대한 화염구 하나가 쇄도했다. 일반적인 화염구와는 달리 온갖 강화된 마법이 덕지덕지 발라져 있었기에 그 크기나 화력이 어마어마했다.
보통의 생물이라면 그대로 흔적도 남지 않은 채 녹아버릴 것이다. 하지만 소년은 한번 눈을 깜빡이다가 살짝 입을 벌렸다. 그리고 닿기 직전의 화염구를 그대로 먹어버렸다.
“저게 뭐야. 저게 뭐냐고. 데이드완을 간신히 처리하는 줄 알았는데 또 닉 모하지 놈들이 막타를 치러 오고. 어찌 됐든 레이드는 끝마치는가 싶더니 이상한 게 튀어나오고.”
“누가 함부로 공격하랬어. 어그로 집중됐잖아. 네가 탱커야? 해명문이나 작성할 준비 해.”
공포에 질려 자신도 모르게 마법을 사용했던 마법사는 불안한 눈빛으로 중얼거렸다. 메이지는 한숨을 쉬며 마법 스태프를 바로 쥐었다. 분산되어 있던 어그로가 이쪽으로 끌렸다. 전투를 피할 수 없는 것은 둘째치고 저 몬스터가 가지고 있는 특수능력을 알 수가 없었다.
‘대책을 마련할 수가 없어. 우선 정령화 상태의 데이드완에게 피해를 입혔으니 일반적인 물리 공격은 아니다. 악식왕이랑 비슷해 보여도 결이 달라. 도망치기에도 힘들어 보이는데.’
메이지는 자신의 특성 중 하나인 ‘대현자’를 이용해, 일정 시간마다 한 번씩 원하는 결과를 얻기 위한 확률이 어느 정도인지 파악할 수 있었다. 그는 즉각 특성을 발동시켜 ‘싸움에서 이길 확률’과 ‘도주할 확률’, ‘전원 생존할 확률’에 대해 살펴보았다.
사실 싸움에서 이기는 것까지는 바라지도 않았다. 자신은 ‘데이드완 공략’만을 위해 토벌대 파티에 들어온 것이었으니까. 한 명도 빠짐없이 돌려보낸다면 최소한 패배는 하지 않는다.
특성은 온갖 확률을 계산하더니 오래지 않아 알림창을 띄웠다. 그리고 레이드 내내 담담한 모습을 보이던 메이지는, 알림창을 확인하더니 처음으로 실소를 흘렸다.
[현재 전투에서 승리할 확률: 0.04%한 명 이상 도주 가능한 확률: 37%
전원 생존할 확률: 0%]
한 명도 빠짐없이 돌려보내기는커녕, 단 한 명이라도 살아남을 가능성조차 그리 높지 않았다. 데이드완 공략 시에 승리할 확률이 40%가 넘었었는데, 수치상으로만 따지면 이 정체를 알 수 없는 몬스터는 동대륙 전체를 잠식하고 있던 데이드완보다 천 배가량은 어렵다는 소리였다.
또한 전원 생존할 확률에 ‘전투 시’라는 조건을 붙이지 않았었다. 그럼에도 전원 생존할 확률이 0%라는 것은, 따로 계산하지 않았어도 또 다른 결론을 도출하기에 충분했다.
저 소년은 지금 우리를 목표로 삼고 있다.
계속해서 무언가를 중얼거리던 소년은 주위에 있는 흙이나 나뭇잎 같은 것을 아무렇게나 입에 넣어 삼키더니 시선을 토벌대 쪽에 고정했다. 얼굴은 본래 미형에 가까웠을 것 같지만 죽은 생선처럼 풀린 눈동자나 초췌한 얼굴은 그저 기이한 공포만을 느끼게 만들었다.
“도망쳐.”
메이지의 입이 뻐끔거렸다. 간신히 그의 말을 알아들은 공대장이 후퇴를 명하기 위해 숨을 깊게 들이쉬는 순간, 눈에 보이지도 않는 속도로 들이닥친 소년이 그의 머리를 통째로 집어삼켰다. 난장판과 고함과 비명이 이어졌다. 숲은 조금씩 시들어가고 있었다.
***
트로웰에 의해 땅속으로 도망치는 것에 성공한 일행은 급하게 데이드완을 눕히고 상처를 치료하기 시작했다. 하지만 푸른 마나는 눈에 보일 정도로 엄청난 양이 시시각각 쏟아지고 있었다. 물의 정령을 사용한 어설픈 치료 따윈 아무런 힘이 되지 못했다.
“데, 데이드완 님. 엘퀴네스의 눈물 가지고 있지 않았어요? 그걸 사용해요. 그러면 될 거예요.”
“…부끄럽게도, 제가 먹혔던 부분에 엘퀴네스의 눈물이 있는 것 같아요. 그 괴물의 몸속으로 들어간 거겠죠. 미안해요. 아인은 분명 사용할 곳이 있었을 텐데.”
“지금 그 부분에서 죄송할 게 아니잖아요. 지금 어떻게든 몸부터 치료를 해야 해요…!”
트로웰은 아인의 행동에 의아함을 느꼈다. 그는 데이드완을 살리기 위해 안간힘을 쓰고 있었다. 단지 착한 심성 때문이라기엔, 데이드완은 동대륙 전체를 집어삼키려 했던 대륙의 재앙이었다. 심지어 꼬박꼬박 ‘님’자를 붙여 얘기하던 것도 이해가 되지 않던 차였다.
‘이대로 살려봤자 똑같은 행보를 반복할 뿐이다.’라고 말하려고 하는 순간, 트로웰은 데이드완의 머릿속에서 스쳐 지나가는 장면들을 읽을 수 있었다.
일종의 주마등. 개중 몇몇 장면에서는 아인도 비추어졌다. 과거 데이드완은 아인의 스승과 함께 이야기하며 먼발치에서 아인을 보고 있었다. 하프엘프라는 사실 하나 때문에 서풍의 숲에서 쫓겨났다는 사정을 듣던 데이드완은 일종의 동질감을 느낄 수 있었다.
남들과 다른 사상을 가져 서풍의 숲에서 쫓겨났던 그였다. 에스텔에서 당분간 머물 수 있도록 허락한 것은 물론, 다양한 지원을 통해 아인이 무사히 성장할 수 있도록 도와주었다. 아인 역시 정확하게는 몰라도 어림잡아 데이드완이라는 것을 눈치채고 있었을 것이다.
트로웰은 눈을 깜빡이다가 뒤로 물러났다. 그러고는 닉을 힐끔 바라보았다. 카오스의 조각들은 이런 상황에서는 지루함을 느끼거나, 오글거린다고 생각하며 보지 않으려고 하는 경우가 많았다. 하지만 그녀는 표정만 덤덤할 뿐 남들과 크게 다르지 않은 감정이었다.
그 사이에 아인이 품을 뒤적이며 포션을 꺼내거나 정령술을 사용하는 등 온갖 행동을 취했으나 제대로 먹힐 리가 없었다.
“이미 늦었어요. 얼마 남지 않은 시간을 낭비하고 싶지 않아요.”
데이드완은 한사코 치료를 거절했다. 여전히 숲에 쏟아붓고 있는 마나도 거두지 않았다. 그는 오류 데이터가 아니었다. 설정에 충실하고 그에 따를 뿐인 NPC이자 ‘퇴치가 확정된’ 재앙.
“동대륙의 절반을 숲으로 만들고, 점점 방어 마법을 유지하기가 힘들어지고, 카오스의 조각들이 하루에 한 번씩 쉬지 않고 찾아올 때마다 이미 예상은 하고 있었어요.”
머릿속에서는 적당한 수준의 영토만 유지하고 자신을 격퇴하러 오는 이들에게 힘을 써야 한다고 말하고 있었지만 몸은 쉴 새 없이 숲을 늘리고 있었다. 마치 그렇게 정해진 것처럼.
“아까 했던 질문. 대답은 듣지 않아도 괜찮아요. 어느 쪽이든 슬퍼질 것 같거든요.”
데이드완은 부드럽게 미소지으며 아인의 머리를 한번 툭 건드렸다. 그러고는 금방이라도 숨이 끊어질 듯 반쯤 풀린 눈을 끔뻑이다가 더듬더듬 말을 이었다.
“처음 마음가짐을 유지하기로 했어요. 가짜 삶과 가짜 감정이라는 것은 존재하지 않는다고. 그 순간 느끼고 체험하는 모든 것은 오롯이 나만의 것이라고. 우리는 소설이나 연극 같은 허황된 것을 보면서도 얼마든지 울고 웃을 수 있으니까요. 실리본에게도 그렇게 말해주세요.”
그는 무언가를 더 말할 듯 입을 벙긋했으나 말은 더 들리지 않았다. 정령화 상태에서 모든 마나가 소모된 그는, 천천히 연기처럼 스러지며 공기 중에 스며들었다.
그리고 ‘기다렸다는 듯’ 닉과 아인의 눈앞에 알림창 하나가 띄워졌다.
[ 동대륙을 집어삼켰던 자연의 수호자. 데이드완이 숨을 거두었습니다. 하지만 그는 토벌대에 의해 죽은 것이 아닙니다. 재앙은 끝나지 않았습니다. 마지막 순간에 ‘무언가’가 그를 집어삼켜 버렸습니다. 세상은 무엇이든지 뜯어먹고 삼키는 새로운 재앙에 대비해야만 할 것입니다.마지막 타격자: 포식하는 자 에리식톤. ]
동시에 아인과 닉, 방금까지 레이드에 참전했었던 토벌대에게 걸맞는 보상이 지급되었다. 마지막 타격이 아니었음에도 상당한 보상이었으나 누구도 기뻐할 수가 없었다. 그 뒤에 곧바로 새로운 레이드 퀘스트가 생성되었기 때문이다.
이전에 분명 공략한 것으로 알고 있던 에리식톤. 하지만 그때의 일은 중요한 것이 아니었다.
방금까지 데이드완이 누워 있던 곳을 느리게 쓸던 아인은, 무표정하게 일어서더니 닉을 돌아보았다. 모든 색을 다 합쳐 결국 검은색이 되어버린 것처럼, 온갖 감정이 휘몰아치고 들끓다가 결국 가라앉은 것이다. 극단적인 감정은 무채색을 가진다.
“용사님. 재앙은 반드시 퇴치되어야 하고, 언젠가 그렇게 되고, 정해져 있는 거라고 하셨죠?”
예상외로 담담한 아인의 말에 닉은 눈을 깜빡였다가 말없이 고개를 끄덕였다.
“아무래도 그런… 편이지? 시간이 걸리더라도 결국은 퇴치하고 다음 재앙을 준비해야 하니까. 다른 목적이 없으면 그냥 내버려 두는 것도 곤란하지.”
그 말에 아인은 한번 깊게 숨을 들이마시더니 길고 얕게 뱉었다. 그 사이로 수많은 문장과 감정이 걸러져 빠져나왔다. 한동안 말이 없던 그는 서서히 미간을 좁히며 중얼거렸다.
“그러면 에리식톤도 반드시 퇴치되어야 하는 재앙에 속한다는 거네요.”
“…그렇지?”
완연한 적의가 서려 있었다. 데이드완을 설득하기는커녕 제대로 대화하지도 못하고 남의 손에 의해 보내버렸다는 사실을 아직도 믿을 수가 없었다.
아인은 에리식톤을, 더 나아가 이렇게 되도록 설정한 GM들이나 허락한 카오스까지 용서하기 힘들었다. 마지막에 처참한 최후를 맞이해버린 것조차 단순히 카오스의 조각들의 유흥을 위한 것이라 생각하니 더욱 미칠 지경이었다.
아인은 한 번 얼굴을 쓸어내렸다. 어떻게든 이 세상에 한 방을 먹이고 싶었다. 그걸 위해선 어떻게 하지? ‘영웅’부터 만나야 하는 건가. 온갖 생각과 방법을 머릿속으로 떠올리던 아인은 얼굴에서 손을 떼고 낮은 목소리로 말했다.
“저 좀 어디 갔다 올게요. 당분간 찾지 마세요.”