Hero, What's logout? RAW novel - chapter (160)
160화 : 걔가 요즘 사춘기라
아인은 그대로 정령화를 사용하여 바람의 정령으로 변한 뒤 날개를 펄럭였다. 목적지도 목표도 말하지 않는 모습에, 닉은 당황하며 손을 뻗어 아인의 팔을 붙잡았다.
“야, 야 잠깐만! 왜 갑자기 그래? 뭐가 문제야? 그리고 혼자 가서 뭘 어쩌겠다고?”
“다요. 다 문제예요. 그러니까 해결하려는 거예요. 용사님은 여기서 해줄 수 있는 게 없어요.”
“너 지금 엄청나게 감정적인데 우선 진정부터 해봐. 데이드완 죽어서 그런 거야? 에리식톤이 문제라면 네 말대로 어차피 나중에 결국 퇴치되기 마련이니까 막타는 칠 수 있게….”
“그걸로 해결할 수 있는 게 아니란 말이에요!”
대체 원하는 게 뭔지 모르겠다. 닉은 머리카락을 배배 꼬다가 한숨을 쉬었다. 아인도 아인 나름대로의 생각이 있었던 모양인지 ‘이게 아니었는데….’라고 연신 중얼거리고 있었다. 자신은 정령처럼 생각을 읽을 수 없다. 닉은 도와달라는 얼굴로 에르와 트로웰을 바라보았다.
하지만 둘 모두 아인과 닉을 번갈아 보더니 느리게 고개를 저었다. 아마 아인 자신이 말하지 않기를 강하게 희망했기 때문일 터다. 어차피 당장의 레이드는 종료된 것이나 마찬가지니, 닉은 얼굴을 한 손으로 쓸어내리고 지친 눈으로 아인을 보았다.
“데이드완이 뭐 얘기도 하기 전에 죽어서 그런 거야? 아니면 마지막에 한 말 때문에?”
닉의 말에 아인은 입을 다물고 시선을 내리깔았다. 한 번 눈을 깜빡일 때마다 눈가가 축축해졌다. 그것만이 문제는 아니지만, 분명 큰 부분을 차지하고 있었다. 설득은커녕 제대로 대화도 못하고 허망하게 가버렸다는 사실이 아인의 감정을 더욱 복잡하게 만들고 있었다.
닉은 이걸 어떻게 위로해야 할지 모르겠다는 듯 침음을 길게 흘렸다.
‘아마 원래대로였으면 그것보다 더 허망하게 죽었을 것 같지만.’
페이크 보스가 한순간에 허망하게 사망하면서 진 최종보스가 엄청난 임팩트를 주며 등장하는 연출은 게임에서 그렇게 희귀한 연출도 아니었다. 트로웰 덕분에 바로 지하로 들어갈 수 있어 망정이지, 데이드완이 한두 입에 그대로 삼켜지는 모습이 자신에겐 더 훤하게 그려졌다.
하지만 지금 이걸 말할 필요는 없었다. 그리고 앞으로도 말할 생각이 없었다. ‘예상보다는 덜 허무한 죽음이었다.’라고 말해 봤자 돌아오는 것은 경멸과 분노밖에 남지 않을 터다.
오랜 시간 고민하던 닉은 결국 마음을 정했는지, 에르를 툭 건드려 아인을 가리켰다.
“당분간 같이 있어. 급할 때 되면 명령어 입력해서 강제 이동시킬 거니까 아인이랑 떨어지지 마. 그리고 아인 너는 얘 데리고 마음 진정되면 돌아와. 이상한 곳 싸돌아다니지 말고.”
생각보다도 쉽게 놓아주자 아인은 의외라는 얼굴로 눈을 끔뻑이며 닉을 보았다. 그 얼굴에 닉은 뭐가 문제냐는 듯 미간을 살짝 좁히며 고개를 기울였다.
“여기서 내가 할 말이 뭐가 있겠냐? 나는 너 이해 못해. 반대도 마찬가지고.”
닉은 게임 속 NPC가 아니며 정해진 설정이나 스토리도 존재하지 않는다. 현실에서는 반드시 해야 하는 메인 퀘스트나 일일 퀘스트도 없으며 내키는 대로 살면 되니까. 그런 자신이 게임 속 NPC에게 ‘그런 거에 너무 과민 반응 하지 말라.’라는 식으로 말해 봤자 도움이 안 된다.
‘부자로 태어나 가난을 접해 보지도, 이해하지도 못하는 사람이, 진짜 가난한 사람 앞에서 가난은 극복할 수 있다느니 아파야 청춘이라느니 되도 않는 소리로 고나리질 하는 셈이지.’
약간의 고마움. 약간의 속상함. 약간의 안도. 약간의 실망감 등을 이리저리 느끼던 아인은 결국 고개를 끄덕인 뒤 밖으로 날아올랐다. 에르도 곧바로 뒤를 따르고, 닉은 허리에 한 손을 얹고 그들이 사라진 곳을 바라보다가 트로웰 쪽으로 고개를 돌렸다.
“책임감이니 뭐니 하면서 아인한테 골렘 핵 줘버린 거 후회하는 거 아니지? 못 뱉는다.”
“아하하, 생각보다는 어린 면이 보여서 놀랐지만? 책임감 자체는 저버리지 않은 것 같아.”
아인의 속을 읽을 수 있었던 트로웰이었기에 그것은 거짓말이 아닐 것이다. 되게 편한 능력이네. 닉은 작게 투덜거리다가 이번에는 이후프 쪽으로 고개를 돌렸다.
“너는 괜찮아? 그렇게 골렘 핵을 모으면서 함부로 쓰이는 거 싫어하는 것 같더니.”
“아인이 처리해줘서 차라리 감사하다는 생각입니다. 이제 와 자연으로 되돌리는 것도 뭔가 아니고, 적당한 예우나 쓰임새를 찾아줘야 하는데 마땅한 곳이 없었거든요.”
“…모르겠다. 아인이 감정적으로 구는 게 마냥 철없이 보이기만 해서. 예우하곤 거리가 먼데.”
“헤르도아와의 전쟁에서 전선에 섰던 이들도, ‘감정적인’ 골렘들이었습니다.”
이후프의 말에 닉은 고개를 갸웃했다. 이내 시원스러운 웃음소리가 짧게 울렸다.
“수천 년, 길게는 수만 년까지 살아오는 골렘들은 그 기간 동안 수많은 전쟁과 갈등을 목도합니다. 일정 시기가 되면 되풀이되는 소란 같은 느낌이죠. 그 때문에 많은 것에 무감해지고 대륙의 정세에 참여하지 않는 성향이 대부분이지만… 변덕스러운 골렘도 종종 있었습니다.”
비극이 일어날 때마다 일일이 분노하거나 슬퍼하고, 자신의 일처럼 공감하는. 기나긴 세월을 피곤하게 살아가는 존재들.
“그렇게 감정적이고 뭔가 행동하는 분들이 뭔가 바꾸곤 하더라고요. 아인은 그런 와중에 자신이 가진 힘의 책임감에 대해서도 종종 상기하려 하니, 핵의 주인들도 만족했을 겁니다.”
“그렇게 생각한다니 다행이긴 한데… 그래, 좋게 생각하자. 나쁘게 엇나갈 성격은 아니니까. 에르도 있으니 이상한 짓은 안 하겠지. 언제 돌아올지가 문제네.”
“한 30년 안에는 오지 않을까요?”
“부탁인데 네 관점의 시간관념으로 말하지 마라. 아찔해지니까.”
***
아인은 밖으로 나간 후 계속해서 허공을 날다가, 사람이 보이지 않는 널찍한 공터로 천천히 내려앉았다. 에르도 같이 옆으로 따라오고, 아인은 신경 쓰인다는 듯 옆을 힐끔 보았다.
“용사님도 너무 걱정이 많다니까. 때 되면 알아서 돌아갈 건데….”
“아까까지는 아인도 굉장히 감정이 복잡했으니까. 닉도 눈치챈 것 같아.”
“그렇게 티가 나? 솔직히 나 평소에도 말 많이 하니까 그렇게 안 변했을 줄….”
“목소리가 올라가고 입술이 좀 튀어나오고 눈이 가늘어지고 얼굴에 피 올라서 붉어지고….”
아인은 눈을 가늘게 뜨고 입술을 쭉 내민 채 에르를 보다가 몸을 휙 돌려 다시 걷기 시작했다. 에르는 알려달라고 해서 알려줬을 뿐인데 기분이 더 좋지 않아진 아인을 보며 의문을 품다가 뒤를 쫓아갔다. 아인은 주변에 기척이 없는 것을 확인하고 나서야 걸음을 멈췄다.
“이쯤이면 되겠다.”
“여기가 목적지였어? 아니면 먼 곳으로 갈 거야? 한 30년 뒤쯤에 돌아오거나?”
“그, 그 정도는 아니야. 네 시간관념으로 말하지 말아줘… 그냥 누구 좀 부를 거야.”
“아는 사람? 친한 사람은 아닐 거 아냐.”
“그렇… 긴 하지? 알고 있다고 하기에도 애매하고 사람이라고 하기에도 애매하고… 안 친한 줄은 어떻게 알았어?”
“아인이랑 친한 사람들은 지금 전부 놓고 왔으니까.”
“에르 너 요즘에 나한테 왜 그래….”
아인은 자신의 친구 숫자를 세다가 잠시 울적해지더니, 이내 허리를 굽혀 땅에 손을 대었다. 잠시 고민하듯 눈이 한번 이리저리 굴렀지만 갈등은 오래가지 않았다.
“설정 프로그램 개입. 설정 스크립트 변경.”
‘이 세상’ 전체를 범위에 두고 아인은 설정 프로그램 변경을 사용했다. 하지만 당연하게도 적절한 대상이 아니라면서 알림창이 떠오르고 효과는 일어나지 않았다. 다만 아인은 정말로 이 세상을 완전히 바꾸기 위해 능력을 사용한 것이 아니었다.
‘정말로 바꿀 수 있었으면 좋았겠지만. 지금은 그냥 ‘부르는’ 용도로 사용할 뿐이니까.’
그자가 정말로 이 세상을 아우르는 신적인 존재라면, 방금 자신이 하려 했던 행동을 그냥 넘길 수 없을 것이다. 눈에 띄는 행동을 해서 자신을 직접 찾아오게 만들 요량이었다.
그에게는 부탁할 것이 있었다. 들어줄지 안 들어줄지는 확신할 수 없었지만.
그리고 아인은 자리에 서서 눈을 감고 곧 다가올 카오스를 기다리기 시작했다. 정령화를 해제했지만 주변에 이는 바람이 기분이 좋았다. 앞으로 다가올 큰일과는 대조적인 분위기.
그렇게 약 5분가량이 지났다. 아인은 천천히 눈을 뜨더니 다시 쪼그려 앉아 땅에 손을 대고 설정 프로그램 변경을 사용했다. 그 후 아무 일도 없었다는 듯 눈을 감고 감성적인 분위기 속에서 뚝심 있게 기다리기 시작했다.
그렇게 약 10분가량이 더 지났다. 인기척은 여전히 없었다. 아인과 에르뿐이었다.
얌전히 눈을 감고 있던 아인의 얼굴에서 조금씩 식은땀이 배어 나오기 시작했다.
‘왜 안 오지? 왜 안 오는 거지? 눈치 못 챘어? 일부러 그렇게 소란을 피운 건데? 자고 있나?’
이대로 카오스가 오지 않으면 상당히 곤란해진다. 꽤나 자신감 있게 들고 온 방법인데, 민망한 것은 둘째 치고라도 이제 갈 곳이 없다. 카오스나 영웅이 어디에 있는지 알 길도 없다.
결국 아인은 눈을 뜨더니, 옆에서 자신을 가만 바라보고 있는 에르를 보며 입을 열었다.
“에르. 지금 화 풀렸다면서 어색하게 돌아가면 사람들이 아무 일도 없었다는 듯 받아줄까?”
“문제는 없을 텐데 다들 눈 굴리면서 대단한 거라도 하나 싶더니 왜 지금 왔나 생각하면서 어색하게 화제를 변경하거나 애매한 웃음을 한 시간 정도 흘리지 않을까.”
“왜 그렇게 상세한 거야! 그리고 그게 더 싫어! 그 죽을 만큼 어색한 공기가 비웃는 것보다 싫단 말이야! 모처럼 남의 말 안 듣고 내 의지로 여기로 왔는데 카오스는 만나고 가….”
그 순간-
“착각했나. 여기였군.”
뒤에서 낮게 가라앉은 목소리와 함께, 주먹을 쥐고 있던 아인의 몸이 완전히 굳어버렸다. 소리를 지르던 입도 어떤 말도 꺼낼 수 없었다. 전에 한 번 느껴본 익숙한 감각이었다.
거역할 수 없는 절대적 존재를 마주한 데에 대한 근본적인 두려움과 복종. GM과는 비교도 되지 않는 압박감. 이 세상 자체인 카오스를 마주하는 NPC로서 당연히 느낄 감정들이었다.
“…일부러 불렀는데 많이 늦으셨어요.”
“현상 자체는 느꼈지만 발원지가 다른 곳인 줄 알고 착각했다. 꽤 용기 있는 방식이군. 아무런 일이 일어나지 않았다고 내가 그냥 넘어갈 줄 알았나.”
“이런 걸 할 수 있는 게 저나 영웅밖에 없잖아요. 그렇게 헷갈릴 일인가… 어차피 안 되는 거 당신을 부르는 용도라는 것도 눈치챘을 거 아니에요.”
아인의 말에 카오스는 아무 말도 하지 않다가, 용건이나 말하라는 양 얼굴을 까딱였다.
아인은 침을 한번 삼켰다. 여기서부터 말을 잘해야 한다. 어쩌면 지금이야말로 이 세상의 시스템을 바꿀 기회일지도 몰랐으니.
“부탁이 있어요. 거래라고 생각하셔도 돼요.”
“그것은 내가 알아서 판단한다. 들어줄 가치도 없는 어리광일지도 모르니까. 말해라.”
싸늘한 카오스의 말에 아인은 잠시 움찔했다가, 심호흡을 하고 힘을 주어 말했다.
“지금 예정되어 있는 모든 재앙과 대륙 메인 퀘스트를 취소해주세요.”