Hero, What's logout? RAW novel - chapter (164)
164화 : 완벽한 영웅
그 시각 수도에서는 황궁뿐만 아니라 황궁의 인근 지역까지 소란이 벌어지고 있었다. 몇몇 언데드가 황궁 안쪽이 아니라 주변의 NPC들에게 시선이 돌아가 자리를 이탈하고 난동을 피우기 시작한 것이다. 더군다나 그것은 바로 제압할 수 있는 종류의 언데드도 아니었다.
뒤늦게 수도 방위병들이 도착하긴 했지만, 급하게 온 데다가 수도의 한가운데에서 언데드가 나타날 거라고는 생각하지 못했는지 제대로 된 장비도 갖추지 못한 상태였다.
“망할, 그냥 정신 나간 네크로맨서가 부리는 하급 언데드가 아니었어! 지원을 요청해!”
“웬만한 던전에서 주인으로 있을 만한 놈들이 왜 여기에서 돌아다니는 거야!”
온갖 곳에서 비명이 울리기 시작했다. 실력이 좋더라도 은제 무기나 성속성 마법도 준비하지 않은 상태에서는 하급 언데드라도 상대하기 버겁다. 아직까지는 민간인 피해가 나오지 않았지만, 하나둘 언데드에게 당하기 시작하면 그 파급은 점차 더 크게 퍼져나갈 것이다.
개중 고위 언데드인 ‘죄악자’는 기분 나쁜 웃음을 흘리며 한 병사에게 다가가고 있었다. 함께 달려온 병사들은 이미 죽어있거나 다른 언데드들을 상대하고 있었다. 병사는 죽음을 직감했다. 이제 곧 끔찍한 정신 계통 마법을 겪으며 고통스럽게 사망하는 일만 남은 것이다.
“죄악을 청산하라. 고해하라. 네 그림자를 목도하고 마주하라.”
“사, 살려… 살려줘. 제발 살려줘. 난 가족이 있어. 바로 오늘 저녁 약속도 잡았… 으악!”
결국 그는 슬금슬금 물러나다가 뒤로 넘어져버렸다. 그런 와중에 통신석도 박살 나 눈을 질끈 감았다. 모든 희망이 사라졌다. 세상에 있는 모든 신적 존재에게 간절하게 기도를 하면서도 진심으로 와 줄 거라는 기대는 들지 않았다. 절망만이 마음속에 가득했다.
하지만 시간이 지나도 별다른 일이 벌어지지 않았다. 고통도 없이 죽어버린 건가 싶었지만 몸의 뻐근함이나 넘어질 때의 고통도 여전했다. 그는 의아함을 느끼며 슬며시 눈을 떴다.
그곳에는 마라가 황궁을 보며 혀를 차고 있었으며, 탕은 언데드를 한 손으로 눌러 반쯤 터트리는 중이었다. 롱샤는 한숨을 쉰 뒤 머리를 정리하더니 가까이 다가와 병사를 일으켜주었다.
“괜찮으세요? 다른 곳 다친 곳은 없으시고요. 언데드에게 당했다면 작은 상처라도 크게 감염될 위험이 있어요. 가볍게 생각하지 말고 있으면 지금 당장 말씀해주세요.”
“괘…괜찮아요. 넘어진 것 빼고는 다친 곳도 없고….”
“다행입니다. 우선… 여기는 저희가 맡겠습니다. 곧 플레이어들… 카오스의 조각들도 와요. 어그로 삑난 언데드들은 이쪽이 알아서 처리할 테니 방위병들은 주민들의 대피를 맡아주세요.”
멋지다. 그는 잠시 얼굴을 붉히다가 롱샤의 말에 결연한 얼굴로 고개를 끄덕였다. 예사 언데드들이 아니다 싶었는데, ‘어그로 삑난’이라는 호칭까지 따로 가지고 있는 네임드 몬스터일 줄이야. 병사는 곧바로 일어나 지원을 요청하기 위해 달려갔다. 롱샤는 허리를 펴고 일어났다.
그사이에 탕은 언데드에게 별다른 이상이 없다는 것을 샅샅이 확인하고는, 품에서 최상급 성수를 꺼내 언데드의 머리에 쏟아냈다. 언데드는 비명을 지르다가 곧 녹아내렸다.
“언데드 자체엔 데이터가 문제가 없어 보여. 단순히 헤르도아가 가져온 거야.”
탕의 말에 마라는 혀를 차더니 바닥을 한번 굴렀다. 어지간히 짜증이 났던 모양인지 돌바닥은 그대로 균열이 가며 발 모양대로 자국이 새겨졌다.
“헤르도아 고위직에 올라간 플레이어랑 내통도 한 모양인데. 진짜 어지간히 준비해 놨네. 수도 내부로 들어오는 텔레포트는 우라노스나 프로토게노이 측에서 마련해 줬겠지.”
롱샤는 멀어져 가는 방위병을 가만 보다가 고개를 돌려 마라와 황궁을 한 번씩 번갈아 보았다. 황궁이 난리가 나고 있긴 하지만 이것 자체는 헌터 길드는 물론 자신에게도 이렇다 할 손해는 아니었다. 저 정도로 황제가 죽을 일은 없다. 일종의 이벤트라고 봐도 무방할 테니까.
“마라 너는 지금 저 사태가 우라노스의 거대한 음모 중 일부라고 생각하는 거지?”
“아 그렇다니까! 황궁에 뭔가 심어 놨어. 그거랑 분명 연관된 거야. 토 달지 말아줘. 너희 둘 저번에 멋대로 아인한테 척살령 내린 뒤로 최소한 한 번은 내 말 무조건 듣기로 했잖아!”
롱샤와 탕은 이전에 헤르도아가 아인에게 척살령을 내리게끔 운영진에게 정보를 흘린 적이 있었다. 오시하는 눈의 불꽃 조각을 빼앗아 살아있는 해저를 정석대로 공략하기 위해서.
문제가 있다면 당시에 아인은 마라가 점찍어 놓았던 NPC였고 둘 모두 그것을 알고 있었다는 것. 진실을 알고 난 이후에는 집에서 한바탕 난리가 났었다. 공략까지 무사히 마친 후에는 사흘 정도는 그것으로 달달 볶였다. 할 말이 없었는지 탕과 롱샤는 시선을 피하며 말을 아꼈다.
둘은 사과의 의미로 소원권 하나씩을 마라에게 주었고, 마라는 거절하지도 않고 기쁘게 받은 후 이번 사태의 진상을 파악하는 데 둘을 유용하게 써먹기로 했다.
애초 아인에게 척살령을 낸 것도 그들에 대한 적의나 악의에서 비롯되었다기보다는, 진심으로 게임과 이 세상의 안위를 걱정해서 한 행동이었기에 마라도 진심으로 화낸 적은 없지만.
“어쨌든 황궁 안으로 들어가서 사태 파악 좀 할 필요가 있어. 소란을 틈타면 못 들어갈 것도 없고. 던전 공략한다는 느낌으로 가자.”
“그러고 보니 이름이는 안 부를 거야?”
탕은 얼마 전에 던전 공략 파티에 새롭게 낀 플레이어를 떠올렸다. ‘불행아’라는 특성 탓에 여러 던전 공략에서 유용하게 사용되곤 했지만 이번에는 보이지 않았다. 하지만 마라는 날개 달린 신발의 설정을 조정하며 한 손을 휘적거렸다.
“이름이는 어그로 빼는 데에 최적인데, 여기선 한 번 어그로 이상하게 끌리면 사고 날 것 같아서 못하겠어. 내가 적재적소에 잘 보내놨으니까 일단은 우리끼리만 가자.”
“알았어. 그러면 들어가는 건 어떤 방식으로?”
“롱샤가 공격 마법진 하나 그려주라. 최대한 요란하고 크게. 그런 건 자신 있지?”
은신 마법이나 텔레포트 마법을 생각한 롱샤가 관련 마법진을 그리고 있던 중, 이어지는 마라의 대답에 몸을 멈췄다. 이내 제정신이냐는 듯 눈을 가늘게 뜨고 마라를 보았다.
“너 또 이상한 짓 하려는 거지? 선 넘으면 안 할 거야.”
“뭐? 무슨 그런 소리를 해? 내가 틈만 나면 황궁 잠입 방법 생각하고 방어막에 폭탄 썼다가 걸려서 도망치고 초소형화해서 들어가는 사람 짐 안에 잠입했다가 들키는 사람처럼 보여?
“응.”
“역시 날 제일 알아주는 건 가족밖에 없어.”
마라는 웃으며 엄지를 올렸다가, 이내 온갖 소란이 일고 있는 부서진 방어막 쪽을 가리켰다.
“이미 안쪽은 난장판이야. 소란 한두 개 더 일어난다고 이상할 것도 없을걸. 뭔가 이름을 알 수 없는 무시무시한 언데드가 마법을 날렸나보다~ 정도로 생각하겠지.”
“하아… 알겠어. 무슨 마법을 쓰길 원하는데? 네 말 대로 최대한 요란하고 큰 건 특기니까.”
효율을 포기하면서까지 본래의 마법을 한번 꼬아 극단적인 형태로 발산시키는 ‘이단 마법사’ 특성은 단순한 화염구 하나라도 투석기와 비견될 정도의 파괴력을 갖출 것이다. 롱샤가 적당한 마법들을 머릿속에서 나열하고 있을 무렵, 마라는 씩 웃으며 팔을 쭉 폈다.
“이왕 벌이는 거 크게 할까? 황궁 절반 정도는 날려 먹게.”
***
“생각보다는 소란이 크게 벌어지지 않는군.”
우라노스는 등장했을 때의 임팩트를 최대한 강하게 주기 위해서 아바타 룩을 고민하다가, 수도의 현재 상황을 들으며 가볍게 혀를 찼다. 언데드가 피해를 입히고 있긴 하지만 생각보다는 속도가 늦었다. 이대로라면 근처에 있던 플레이어들이 도착하여 금방 제압될 것이다.
프로토게노이의 본부도 있는 만큼 과하게 피해를 입히지 않게끔 언데드의 숫자를 조절했지만, 적당한 절망과 무기력 정도는 있어야 자신이 등장했을 때의 파급력이 강할 것이다. 새로 들어왔다는 그 페리스라는 검사도 불러와야 했나 싶지만 지금은 늦었다.
그렇다면 타이밍이 중요하다. 황궁과 수도의 공포심이 가장 고점을 찍을 즈음, 완벽한 순간에 혜성처럼 등장해야만 했다. 다만 그것을 위해서라면 한 가지 사전작업이 필요했다.
“에리식톤은 어디쯤에 있지? ‘인형’은 먹었나?”
-아직 안 먹은 것 같습니다. 경로도 워낙 불규칙해서 예상하기가 어려워요.-
황궁 곳곳에 작업을 해 놓은 NPC들을 먹는 순간이 시작이었다. 결국 가만히 앉아서 기다릴 수는 없다고 판단한 우라노스는, 직접 에리식톤이 있다는 방향으로 걸음을 옮겼다.
위치를 찾는 것은 어렵지 않았다. 부수고, 죽이고, 무언가를 우득우득 씹는 소리가 들리면 에리식톤이 지척에 있다는 뜻이니까. 십여 미터도 떨어지지 않은 곳까지 다가온 우라노스는, 근처에 미처 대피를 끝내지 못한 고위 귀족과 사용인들이 뭉쳐 있다는 것을 알았다.
-우라노스님, ‘인형’을 먹은 것 같습니다. 에리식톤과 인형의 위치가 같아졌어요.-
우라노스는 브리핑을 듣자마자 사람들이 모인 공간 안으로 들어갔다. 순간적으로 비명을 지르려던 사람들은 안에 들어온 이가 우라노스라는 것을 인지하자마자 안도의 한숨을 쉬었다. 우라노스는 진심으로 우러나온 미소를 지었다. 바로 이거다. 이런 반응을 보여야만 했다.
‘게임을 하는 이유가 남이 우러러보고 부러워하는 것 때문에 하는 건데, 요 근래에는 닉 모하지니 마라니 온갖 방해물들이 있어서 거슬렸었지. NPC라는 게 조금 아쉽긴 하지만.“
“걱정 마십시오. 이곳엔 제가 있으니 안심하셔도 됩니다. 무슨 일이 있어도 이 황궁과 당신들, 그리고 황제 폐하를 지키겠습니다. 저 우라노스의 이름을 걸고.”
우라노스는 그 말을 하며 사방에 마나를 피워올렸다. 남들이 보기엔 멋들어진 기백과 아우라를 풍기는 것 같지만, 실상은 에리식톤을 이쪽으로 유인하는 것뿐이었다.
처음 에리식톤을 황궁으로 유인할 때에도 같은 방법을 썼었다. 진하고 양도 많은 고품질의 마나를 뿜어내면서, 나를 먹고 싶다면 황궁으로 오라면서.
예상대로 마나의 냄새를 맡은 에리식톤은 엄청난 속도로 우라노스가 있는 곳을 향해 달려오고 있었다. 벽과 가구들이 부서지는 소리가 점점 가까이 다가왔다. 뒤에 있던 사람들이 점점 공포에 질리며 방의 구석으로 물러날 즈음, 바로 앞에 있던 벽이 파괴되었다.
그곳에는 이미 무언가를 한참 먹은 것인지 입가가 피로 가득한 에리식톤이 우라노스를 빤히 바라보고 있었다. 그리고 메이드의 것으로 추정되는 치맛자락까지 한입에 털어 넣어 삼킨 후, 기괴한 비명을 지르며 우라노스에게 달려들었다.
모든 것을 먹어치우는 괴물의 몸이 더 빠르고 강했다. 이대로라면 그의 손이 우라노스의 머리채를 잡고 통째로 뽑아버릴 것이다. 이내 손이 목에 닿기 직전-
돌연 에리식톤이 멈칫했다.
일반인들에게는 보이지 않겠지만, 실력이 있는 자가 보면 바로 눈치챌 수 있을 정도로. 그리고 우라노스 같은 존재에게는 그 순간은 영원과도 같은 긴 시간이었다.
그리고 우라노스는 칼을 에리식톤의 가슴팍에 찔러 넣었다. 에리식톤은 저항도 하지 않고 그대로 벽에 박힌 채 고통스러운 신음을 흘렸고, 잠시 퍼덕거리는가 싶더니 이내 얌전해졌다.
적막이 잠시 흘렀다. 이후 탄성 소리와 울음소리가 조금씩 배어 나왔다. 목소리는 오래지 않아 감사와 칭송으로 가득해지기 시작했다.
“살았다.”
“살았어. 살았다고. 우라노스님이 우리를 구해주셨어.”
“주, 죽는 줄 알았어.”
“생명의 은인… 아니 제국의 은인이나 마찬가지야.”
“황제 폐하도 우라노스 님 덕분에 무사할 테지.”
“우라노스! 우라노스!”
“진정한 영웅의 탄생이다!”
위기에 빠진 자신들을 구해내고 절체절명의 순간에 등장한 완벽한 영웅. 우라노스에 대한.