Hero, What's logout? RAW novel - chapter (171)
171화 : 분란의 전조
오늘도 닉 일행은 자신들을 도와줄 이를 찾으러 돌아다니고 있었다. 비단 강화는 철로 만든 무구에만 적용되는 것이 아니었다. 마법사 길드의 아티팩트 제작 시설이나 천 방어구를 만드는 가게까지 한 바퀴를 죽 돌자 반나절이 소요됐을 정도였다.
즉 그곳 모두에 마라는 이름을 이용해 강화 성공의 빚을 지워둔 셈이었다. 닉은 마지막 가게에서 나오며 질린 얼굴로 마라를 돌아보았다.
“무슨 안 가본 데가 없네. 너 던전 공략을 위주로 하더니 연줄 만드는 것만 우선으로 한 거 아니야? 너 그 이름이라는 녀석도 얼마나 굴려댄 거야…?”
“아니 굴렸다니 말이 심하네?! 누가 들으면 던전 공략 안 하는 하루 날 잡아서 돈으로 꼬신 다음 이름 좀 있는 가게들은 모두 돌아다니면서 강화 성공 토템으로 세워둔 줄 알겠어!
“그렇게까지 상세하게 상상한 적은 없는데 너 그러다가 한번 신고당하는 거 아니야?”
“괜찮아. 애가 워낙 착하고 순수해서 자신이 도움이 된다면 마냥 좋아하거든. 정말이야. 물론 가끔씩 회의감을 느끼기도 하고 이러려고 헌터 길드에 들어온 거냐고 중얼거리긴 하지만?”
“방금까지는 장난으로 말한 거였는데 슬슬 걔를 위해서 진심으로 신고해야 할 것 같은 기분이 드는걸. 그런데 이건 노동청에 신고를 해야 하는 거냐 사사게에 올려야 하는 거냐?”
정말로 괜찮다니까~ 마라가 손을 휘적이며 글을 작성하려는 닉을 때려눕혔을 즈음, 누군가에게 귓속말을 받은 뒤 잠시 갔다 오겠다고 입을 벙긋거렸다. 아인은 바닥에 처박힌 채 쓰러져 있는 닉을 보며 쭈그려 앉아 어깨를 툭툭 건드렸다.
“일부러 봐 주신 거라고 믿을게요. 용사님은 전투 직종도 아닌 분에게 이렇게 처참하게 패배할 정도로 약하진 않을 거예요. 전 그렇게 생각해요. 강자에게 더 강해지는 분이기도 하고.”
“부탁인데 얘기할수록 비참해지니까 더는 아무 말 하지 말아줘.”
아인에 이어 라칼까지 ‘전투 기술도 없으니까 그 모양이지.’라고 핀잔을 주던 즈음, 마라가 콧노래를 흥얼거리며 돌아왔다. 평소에도 웃는 상에 장난기와 활기가 가득한 얼굴이었지만, 지금은 평소보다도 세 배는 활기가 돋아 있는 것 같았다.
“혹시 나한테 무슨 좋은 일 있냐고 물어볼 사람? 선착순 한 명!”
“어… 혹시 무슨 좋은 일 있으셨나요?”
“역시 아인 너밖에 없어! 롱샤랑 탕하고 있으면 항상 먹금 하고 얘기나 하라고 쳐다보는데!”
마라는 아인을 꽉 끌어안고 얼굴을 부비다가, ‘얘기나 해.’라고 쳐다보는 닉을 마주 보며 샐쭉하게 웃었다. 가늘게 뜬 눈에서는 즐거움과 함께 약간의 섬뜩함마저 담겨 있었다.
“우라노스가 죽었대! 아마 사망해서 로그아웃 당한 걸로는 최초인 것 같아. 아 너무 달아! 달아서 미치겠다 진짜. 요즘에 다이어트 하는 중인데 이렇게 행복할 수가 없네.”
현재 마라의 얼굴을 스캔하여 감정 지수를 찍어보면 행복 100%가 나오리라 예상될 정도로, 마라는 환한 얼굴로 계속해서 우라노스가 죽었다는 소식을 알려주고 있었다. 닉은 그것이 사실인지 확인하기 위해 카오스 홈페이지의 커뮤니티와 인벤에 접속했다.
[야 우라노스 죽었대. 계속 번복하고 뭐라 하더니 프로토게노이 측에서 공식 확인해줌.] [어쩌다가 죽은 건지는 안 알려주던데. 아마 개 쪽팔린 이유라서 그런 듯?]우라노스의 사망만이 분명하고 그에 대한 이유는 알려지지 않자, 온갖 억측과 루머들이 떠돌아다니고 있었다. 누군가의 PVP에서 져서 사망했다는 설부터 시작해 ‘영웅’이나 ‘카오스’가 우라노스를 처치했다는 말도 나왔다. 하지만 무엇 하나 확실한 것은 없었다.
“그 콧대 높은 녀석이 무슨 일이래. 어지간하면 그런 일은 없을 거라 생각했는데.”
우라노스는 위험을 추구하지 않는다. 미확인 던전은 들어가지도 않으며, 어느 정도 사망의 위험성이 있는 곳이라면 미리 정찰대를 보내서 자신이 보스를 깰 만한 정도인지를 확인한다.
이후 버프를 받은 상대로 네임드 몬스터만 일대일로 상대하다가, 다른 파티원들이 죽지만 않을 정도로 만들어 놓은 몹들을 모아서 이끌고 오면 그것들을 우라노스가 막타를 쳐서 경험치를 몰아 먹는다. 던전에서 나오는 좋은 아이템들을 독식하는 것은 기본 중의 기본이었다.
이것이 우라노스가 단기간에 엄청난 속도로 강해질 수 있었던 비결이자 욕을 먹는 이유이기도 했다. 던전뿐만이 아니라 다른 유저들이 존재하는 필드에서도 비슷한 식으로 몹몰이 및 사냥을 했기 때문에 그곳은 거의 프로토게노이 전용의 사냥터가 되는 것이다.
하지만 현재 존재하는 플레이어 중에서 프로토게노이에게 반기를 들 수 있는 자는 없었다. 문의를 넣어도 게임사 측에서 프로토게노이를 강하게 제재할 수 있는 방법이 존재하기 않기 때문에 약간의 주의만 주고 끝내는 경우가 대부분이었다.
이처럼 던전이든 필드이든 우라노스에게 위험이 가는 경우는 아예 없다고 봐도 무방했다. 설사 어쩌다가 혼자 남는 경우가 있더라도, 우라노스 자체의 스펙이 워낙 강했기 때문에 재앙이나 신화급이 아닌 이상 우라노스에게 대적이 가능한 몬스터는 존재하지 않았다.
마라는 주변에 있는 아무나 끌어안고 행복감을 만끽하다가, 한참이 지나서야 겨우 진정하고 어디선가 가져온 빛나는 안경을 쓴 뒤 명탐정처럼 입을 열었다.
“아마 플레이어는 아닐 거야. 프로토게노이한테 한 번 찍히면 접을 때까지 두고두고 괴롭힐 텐데, 그걸 감수하면서까지 우라노스를 잡을 이유는 없어. 진짜로 접을 생각이었다면 인벤에 자기가 우라노스를 죽였다고 인증글이라도 올리겠지. 더 잃을 것도 없으니까.”
“카오스나 영웅이라는 말도 있던데. 얘들은? 이 둘도 엄청 강하다는 건 알고 있는데.”
그 둘을 플레이어라고 볼 수 있나? 카오스는 분명 아바타이긴 하지만 이 세계를 총괄하는 인공지능 자체이고, 영웅은 홈페이지까지 들락거리며 플레이어 행세를 하긴 하지만 결국은 이 세상에서 생겨난 NPC인데. 옆에 있던 아인은 눈을 굴리며 애매한 표정을 지었고, 마라 역시 비슷한 얼굴을 하며 미묘한 웃음만 흘리다가 손을 휘적였다.
“그럴 가능성도~ 없잖아 있지만? 왠지 그럴 것 같지는 않아. 영웅은 확실하게 성향이 악에 치우친 녀석들을 청소하는 녀석인데, 우라노스는 재수 없긴 해도 지금 캐릭터 성향이 악은 아니거든. 하지만 카오스의 눈에 들어올 정도로 선 성향인 캐릭터라 하면 그건 또 아니니까.”
“전자는 몰라도 후자는 완전히 동의. 그 자식이 선 성향으로 취급되면 울분 터질 것 같아.”
그렇지? 마라는 닉의 말에 히죽 웃고는 한 손의 검지를 치켜들었다.
“그리고 우라노스는 분명 플레이어 중의 랭킹 1위이긴 하지만, 그게 NPC를 통튼 숫자는 아니야. 아직 이 세상에는 은둔하고 있는 고수 NPC들이 수북하다고. 지금 당장 우라노스를 죽일 수 있는 NPC는 상당히 많을걸?”
직업마다 바로 배울 수 없는 유니크 스킬들이 존재하고, 그 유니크 스킬들은 해당 직업의 극에 달한 이들에게 가서 전수를 받는 것이 보통이었다. 그리고 극에 달했다는 NPC의 실력이 보통이 아닐 것임은 당연했다. 아직까지는 이 세계의 주류는 NPC가 담당하고 있었으니까.
“그러면 그 은둔 고수 NPC가 우라노스는 왜 죽인 거야?”
“그것까지는 나도 모르지. 재수 없다는 이유로 죽였을 수도. NPC 중에서도 성격파탄자 많아.”
분명히 그렇긴 했다. 닉이 몇몇 NPC들을 떠올리며 느릿하게 고개를 끄덕였다. 아인도 자신이 알던 주변의 성격파탄자들을 떠올리다가 페리스까지 생각하고 잠시 침울해졌을 무렵, 그의 귓가에 작은 속삭임이 울렸다.
-…해, … 세요….-
불온하기 짝이 없는 속살거림. 마치 뇌리에 직접 울리는 것 같았다. 아인은 어깨를 흠칫했다가 주변을 둘러보았지만 자신에게 말을 건 이는 없었다. 유일하게 비슷한 방식으로 말을 하는 이후프도 겁에 질린 아인의 얼굴을 보며 고개를 갸웃거릴 뿐이었다.
“무슨 일 있나요 아인?”
“저, 그게… 갑자기 저한테 누가 말을 건 것 같아서. 착각이었을까요?”
하지만 단순한 착각이라기엔 그 목소리는 너무나 또렷했다. 동시에 어디에선가 들어본 목소리이기도 했다. 좋은 감정이 들지 않는 걸로 봐선 분명 안 좋게 끝났을 것이 분명했다.
-…한 혼돈의… 해… 주세요….-
“으아악?!”
아인이 비명을 지르며 펄쩍 뛰자, 의아한 표정을 짓고 있던 주변인들도 사태의 심각성을 느끼고 주변을 경계했다. 아인은 머리를 부여잡고 신음을 흘리다가, 한쪽을 가리키며 중얼거렸다.
“저기에서. 저기에서 누가 절 부르고 있어요. 누군진 모르겠지만… 엄청나게 불안해요.”
“한번 같이 가 보자. 새로운 퀘스트인가? 일인 퀘스트만 아니면 좋겠는데.”
닉은 아인과 일행을 데리고 가리키는 방향으로 걷기 시작했다. 그 과정에서 아인은 잘게 몸을 떨며 신음을 흘렸다. 그것은 마치 각인된 공포와 같았다. 동시에 이상할 정도의 분노도 치밀어 오르고 있었다. 어디에서 들었지? 언제 이 목소리와 마주했었지?
-진정한 혼돈의 존재여… 부디 우리를 구원해 주세요….-
혼돈과 구원. 이런 단어들을 한 문장에 사용하는 존재는 헤르도아밖에 없었다. 기억에 조금씩 가닥이 잡히기 시작했다. 공포에 질리기만 했던 아인의 얼굴이 차츰 가라앉고 있었다.
“저더러 자꾸 혼돈의 존재라고 하고 구원해 달라고 해요.”
“너 우리 모르는 사이에 헤르도아에 가입했었니? 너 얼굴에 복 많다고 하면 못 떨쳐내지?”
“진짜 이상한 소리 좀 하지 마세요!”
목소리는 일행을 도시 바깥의 외진 숲속까지 불러내고 있었다. 주변에 인기척은 들리지 않았다. 반대로 말하자면 무언가 알 수 없는 존재가 언제든 튀어나올 수도 있다는 소리였다.
닉이 검을 꺼내고 다른 동료들도 언제든 공격할 준비를 갖추는 사이- 한쪽에 있는 풀숲에서 부스럭거리는 소리가 울리더니 새까만 무언가가 튀어나왔다.
“으아악!! 귀여운 토끼예요!”
“으아아악 비명 지르면서 그런 소리를 왜 해 놀랐잖아!!”
기이할 정도로 새까만 빛을 띠고 있는 토끼는 입을 오물거리며 일행을 훑어보았다. 도망치지도 않고 오히려 기다렸다는 듯한 모습.
평범한 동물이 아닌가? 아인이 그 생각을 할 즈음, 토끼가 입을 벙긋거리자 그곳에서 목소리가 흘러나왔다. 그것의 붉은 눈동자는 정확하게 아인을 향하고 있었다.
“진정한 혼돈의 존재시여. 제 목소리에 응답해 주셨군요.”
목소리에 울림이 없어지자 누구인지 확실히 판별이 가능해졌다. 새까만 토끼를 마주하는 아인의 표정이 싸늘해졌다.
이전에 몇 번이나 마주했었던 헤르도아의 교주이자, 데스 나이트 군단과의 전쟁에서 가트에게 씻을 수 없는 저주를 쏟아부었던 이. 평생 잊을 수 없는 존재이자 아인의 원수 중 한 명이었다.
“당신이 왜 저를 불러요?”
자신더러 진정한 혼돈이니 뭐니 하는 말을 했지만 당연히 조금도 반갑지 않았다. 오히려 지금 당장 고함을 지르며 가트의 저주를 벗겨내라고 말하고 싶었다. 토끼의 모습만 아니었다면 무슨 짓을 저질렀을지 모른다.
간신히 분을 삼키며 입을 여는 아인의 심정을 아는지 모르는지, 토끼는 이번엔 모두를 한 번 돌아보며 말을 이었다.
“감히 혼돈을 통제하고 손아귀 안에서 굴리려는 우라노스를 죽이고, 저희를 구원해 주셨으면 합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