Hero, What's logout? RAW novel - chapter (173)
173화 : 이 세상은 생각처럼 만만하진 않다
우라노스는 강제 로그아웃 후 페널티 시간이 끝나자마자 곧바로 게임에 접속했다. 사망하는 순간 사방으로 흩날렸던 잿가루들이 다시 모이기 시작하면서 사람의 형태를 만들었다. 평소의 로그인과는 묘하게 다른 감각. 낯설고도 께름칙한 기분이 들었다.
우라노스는 심각한 고민에 빠져 있었다. 로그아웃을 한 후 다시 로그인을 하기까지 내리 고민을 했던 질문이었지만 아직까지도 답이 내려지지 않았다.
‘페리스는 왜 조종되지 않은 거지? 백신 프로그램에 막힌 건가. 하지만 조작 프로그램을 건네준 녀석은 틀림없이 가능할 거라고 했는데. 설마 그사이에 카오스가 눈치라도 챘나?’
차라리 후자의 경우라서 곧바로 계정 제재가 이루어졌다면 그거대로 할 말이 있었을 것이다. 자신이 데이터를 조작했다는 증거는 즉각 삭제한 뒤, 인공지능이 오류를 일으켜 멋대로 계정을 중지시켰다면서 카오스 측과 법적 공방까지 할 계획이 있었으니까.
하지만 조작은 조작대로 먹히지 않았는데, 분명 눈치를 챘을 카오스 측에서의 제재도 들어오지 않으니 되려 우라노스는 불안한 마음이 점점 커져가고 있었다. 상대방이 무슨 생각을 하는지 알 수 없고, 자신과 내통 중인 운영진은 상부의 진의를 알 정도로 직위가 높지도 않다.
‘좀 더 돈을 써서 윗선과 내통을 할 걸 그랬군. 하지만 이제 와 후회해 봤자니까. 어차피 내가 프로그램 조작을 했다는 증거는 남지 않아. 그러면 더 이상 피해 볼 것도 없다.’
우라노스는 로그인을 완료한 후 천천히 눈을 떴다. 페리스에게 사망했었던 인적 드문 숲속. 하지만 분명 죽을 때까지만 해도 페리스와 자신밖에 없었건만, 시야에 수많은 사람들이 이쪽을 쳐다보고 있었다. 정확하게는 소문을 듣고 우라노스의 사망 위치를 알아낸 플레이어들이었다.
“야 나왔다! 우라노스 로그인 했어!”
“얼굴 진짜 죽상인데. 자기도 죽을 줄은 몰랐나 보네.”
“목소리 너무 크잖아 멍청아. 프로토게노이한테 찍히고 싶어?”
“저도 우라노스 님 같은 고결한 존재가 죽을 줄 몰라서 한 말이었습니다.”
“저기 왜 죽으셨어요? 여기 주변에는 던전이나 필드보스도 없는데. PVP 하셨어요?”
플레이어들은 스크린샷을 찍으면서 온갖 질문을 우라노스에게 퍼붓고 있었다. 당황스러움에 바로 대답을 하지 못하는 사이, 프로토게노이의 길드원들이 스킬까지 써 가며 구경꾼들을 물리고 있었다. 하지만 길드원들로만 막기에는 인파가 끝없이 몰려오고 있었다.
“암살자가 덮치기라도 했나요? 최근에 엄청나게 유명세를 타고 있었잖아요. 다른 랭커의 경우에는 스케일 큰 퀘스트를 하다가 죽어서 오히려 자랑하듯 알리기도 하는데, 사망이 알려진 게 비공식적이어서 뭔가 다른 이유가 있나 싶습니다. 대답해 주세요 우라노스 님!”
온갖 목소리에는 단순한 궁금증도 있었지만 비아냥이나 조롱도 섞여 있었다. 제국의 기사이자 황제의 최측근, 랭킹 1위, 그 외 등등 그렇게나 유명하고 인망 높은 존재가 볼품없이 이런 산중에서 사망해 있다는 사실은 프로토게노이에게 어떤 감정이 있었든 좋은 사냥감이었다.
우라노스는 잠시 아무 말도 하지 않다가, 이내 자리에서 일어나 사람 좋은 웃음을 지었다.
“개인적인 퀘스트를 하던 중 일어난 사건입니다. 즉사 패턴 같은 건 아니었고요, 생각보다도 강한 NPC가 있어 방심했습니다. 기밀 퀘스트라 여기까지밖에 알려드릴 수가 없네요.”
퀘스트 중에는 남들에게 많이 알려지거나 제3자의 개입이 있는 순간 실패하는 종류도 있었다. 의문이 남긴 했지만 저렇게 대답하면 더 캐물어 볼 수는 없는지라, 결국 대다수의 플레이어들은 아쉬운 듯 입맛을 다시며 자리를 떠났다.
우라노스는 정중하게 인사를 한 뒤 몸을 돌렸다. 길드원들이 더 다가오지 못하도록 주변을 통제하고, 누구도 소리를 못 듣도록 마법을 사용한 우라노스는 한 명에게 귓속말을 전했다. 방금까지와는 달리 표정은 싸늘하게 굳어 있었으며 눈에는 살기가 감돌고 있었다.
“지금 나랑 장난하자는 거냐? 네가 준 데이터 조작 프로그램인가 뭔가가 말을 안 듣잖아. 분명히 페리스 안쪽에 그걸 박아 넣었는데 아무런 일도 안 일어났다고.”
-자, 잠깐만. 진정해. 내가 준 건 완벽했어. 메이드나 에리식톤에게도 통한 걸 너도 봤잖아. 뭔가 문제가 있었다면 프로그램이 아니라 그 NPC 쪽에 이상이 있는 거야. 처음부터 데이터가 꼬여 있었다든지 해서. 아무리 나라도 그런 경우까지 계산하며 만들기는 힘들다고.-
그 말에 우라노스는 말을 멈추고 그때의 일을 상기했다. 죽기 직전 보았던 마지막 알림창.
그때는 단순히 프로그램에 이상이 생겨서 나온 것이라 생각했지만, 지금 떠올려보면 NPC의 데이터 자체에 문제가 생겨 충돌이 일어났을 수도 있다. 우라노스는 혀를 차는 소리를 냈다.
“이번엔 넘어가 주겠어. 하지만 에리식톤같이 이미 프로그램이 박힌 녀석들에게도 비슷한 일이 일어나면 두 번은 없어. 그럼 너는 다음 패치 때 페리스를 삭제시키든 원상복구시키든 해.”
“아, 알았어. 영향력이 높은 NPC라서 삭제는 힘들 거야. 한번 다음에 롤백시켜 볼게.”
역시 좀 더 직위가 높은 녀석을 끌어들였어야만 했다. 우라노스는 머리를 북북 긁은 후 귓속말을 끊어버렸다. 프로토게노이의 이미지가 조금 떨어지긴 해도 NPC 사이에서의 평판은 변함이 없다. 끓어오르는 분노를 삭이며 황궁으로 돌아가려던 중, 다른 이에게서 귓속말이 울렸다.
헤르도아의 사제로 활동하는 플레이어. 그 안에서 상당히 높은 자리까지 올라간 그는, 일전에 황궁을 습격하도록 헤르도아의 병력을 모아준 적이 있었다. 공식적으로는 길드원이 아니지만, 그에 준하는 혜택과 남모를 지원을 받고 있는 이.
-우라노스님! 큰일났습니다. 지, 지금 당장 길드원들을 수도 쪽으로 집중시켜야 해요!-
“…또 무슨 일이지?”
-헤르도아가 저번에 황궁을 급습할 당시 제대로 피해를 주지 못했다면서 제대로 이를 갈고 있었어요. 제대로 수도를 무너뜨리겠다면서 초고위 언데드까지 동원하고 있습니다!!-
안 좋은 일은 연달아 생긴다더니, 우라노스는 지끈거리는 이마를 감쌌다. 지난번 황궁 급습 당시에는 수도나 황궁의 피해가 애매한 수준에 그쳤다. 제국민들이 분명한 불안감과 공포는 느끼면서도, 뒷감당은 할 수 있을 정도로 병력을 조절했기 때문이다.
그 덕분에 프로토게노이를 포함한, 휘하 상위 길드들은 제국민들에게 한창 신뢰를 받고 있었다. 그들이 있었기에 수도가 큰 피해 없이 헤르도아를 무찌를 수 있었다면서. 몇몇 가게에서는 해당 길드 소속원들에게는 할인을 시켜 주고, 음유시인의 노래가 나올 정도였다.
하지만 선을 넘을 정도의 피해가 나온다면 이야기는 달라진다. 공포가 임계점을 넘어가며 신뢰는 바닥으로 떨어질 것이다. ‘그들이 있어서 헤르도아가 습격한 것이다.’라는 말까지 나온다면 최악이다. 그리고 이 경우에는 그 말이 틀린 것도 아니었다.
헤르도아와의 내통과 불법 프로그램까지 사용하며 황궁과 사람들의 마음을 잡기 시작했는데 여기서 끝낼 수는 없었다. 그 두 개가 모두 들킨다면 게임 내외적으로 모두 문제가 생긴다.
“지금 당장 갈 테니까 너는 어떻게든 헤르도아의 군대가 진격하지 못하도록 시간을 끌어. 죽어서라도 막아. 페널티 복구 비용은 내가 정산해준다. 여기에서 수도가 무너지면 끝장이야.”
-그 그리고, 또 문제가 하나 더 생겼는데….-
헤르도아가 수도 쪽으로 진격한다는 것은 바로 말했는데, 그보다도 더 말하기 껄끄러운 사실이 있단 말인가. 우라노스는 욕설이 나오려는 것을 간신히 삼키고 말을 재촉했다. 최악의 경우만 아니면 된다.
가령 에리식톤이 말을 듣지 않는다든지, 아직 황제의 자리를 받기도 전에 현 황제에게 무슨 일이 생겼다든지 같은 것. 그 외에는 자신의 힘과 영향력으로 어떻게든 해결 가능했다.
-황궁에 있던 에리식톤이 폭주했습니다. 제대로 말을 듣지 않아요. 황제는 행방불명입니다.-
“늉늉.”
***
그 시각, 아인은 미간을 좁힌 채 턱을 매만지고 있었다. 주문이라도 외우듯 끊임없이 중얼거리는 모습은 심각한 고민에 빠진 듯 보였다.
“에리식톤에게 맛있는 걸 건네주면서 엘퀴네스의 눈물과 바꾸자고 하는 건 역시 별로일까요?”
“별로인 정도가 아닌데.”
“하지만 에리식톤은 먹는 걸 좋아하잖아요.”
“그 문제가 아니잖아!”
헤르도아의 사제에게 가트의 치료 방법을 들은 아인은 울상을 지으며 땅바닥에 엎어졌다. 본디 데이드완이 가지고 있었던 엘퀴네스의 눈물은 에리식톤이 그의 절반을 통째로 뜯어먹으며 안에 삼켜졌을 것이 분명했다.
소화가 됐을지 안 됐을지는 몰라도, 뱃속에 들어간 것을 어떻게 빼낸단 말인가.
“구토유발제라도 줄까요?”
“역시 그 문제가 아니잖아… 애초에 흙이나 바위도 씹어먹는 녀석에게 그런 걸 줘봤자.”
“하지만 정말로 방법이 생각나지 않는단 말이에요….”
최악의 경우, 에리식톤은 엘퀴네스의 눈물을 흡수하여 사망할 정도의 커다란 부상을 입더라도 단번에 회복하는 능력까지 가졌을지도 모른다. 그렇다면 ‘공략하기 힘든’ 정도가 아니다. 전 대륙이 나서도 죽이기 어려운 사상 최악의 재앙이 탄생했을지도 모를 일이었다.
“하지만 에리식톤은 우라노스가 조종 중이라는데. 잘은 몰라도 어떻게 성공한 모양이고.”
닉의 말에 아인은 눈이 튀어나올 듯 크게 뜨며 말까지 더듬었다.
“네?! 에?!! 에, 에리식톤을 조종해요? 길들였다고요? 뭐 먹을 걸로 유혹이라도 했대요?”
“공식 발표로는 그냥 싸움에서 이기고 제압하니까 겁먹고 말 듣는다… 이렇게 말하던데.”
물론 프로토게노이 측에서의 공식 발표라서 그렇게 신뢰성은 가지 않았지만, 실제로 에리식톤이 우라노스의 뒤를 졸졸 쫓아다니며 말을 듣는 영상이 있으니 믿을 수밖에 없었다. 닉이 그 영상들을 보여주자, 아인은 반신반의의 표정을 지으며 침음을 흘렸다.
“진짜네요. 카오스의 조각이라 그런가. 무슨 특별한 능력이라도 사용했나… 물론 조종만 할 수 있다면 좋지만… 먹을 건 뭐 주고 있대요? 유지하는 비용만 해도 엄청날 텐데.”
“너 배고파? 아까부터 자꾸 먹는 소리를 하고 있어. 좋은 사료를 주든 소 한 마리를 통째로 주든 알아서 몇 개 가져다주겠지. 수도니까 먹을거리 조달에는 큰 문제가 없을 테고.”
“…에리식톤은 몇 개 가져다주겠지. 정도로 끝나면 안 돼요.”
다소 가라앉은 아인의 목소리에 닉이 한쪽 눈썹을 올리자, 아인은 창백해진 얼굴로 입꼬리를 꿈틀거렸다.
“에리식톤은 끊임없이 먹어요. 정확하게는 끊임없이 먹지 않으면 안 돼요. 그러지 않으면 폭주해버려요. 그게 ‘포식하는 자’라는 이명이 붙은 이유이자, 과거 자신이 자멸했던 이유기도 해요.”