Hero, What's logout? RAW novel - chapter (174)
174화 : 최종 수단
그 시각 황궁은 비상사태에 빠져 있었다. 에리식톤은 페리스를 만나러 혼자 떠난 우라노스의 명령으로 인해 오랜 시간동안 먹이를 공급받지 못한 채 공복에 빠져 있었다. 뭐라도 먹지 않은 채 몇 분만 시간이 지나도 난동을 부리는데, 종일 공복인 위장은 비명을 지르고 있었다.
‘배고파. 배고파. 배고파. 먹고 싶어. 그런데 그러면 안 돼. 가만히 있으라고 했어. 난동 부리지 말라고 했어. 그런데 배고파. 못 참겠어. 그런데 가만히 있으라고 했어.’
에리식톤의 눈동자는 점점 흐려지고 입가에서는 침이 계속해서 흐르고 있었다. 눈에 보이는 모든 것이 먹을거리였다. 황궁을 이루고 있는 기둥부터 액자나 샹들리에, 갑옷 장식은 물론 자신을 힐끔거리며 지나다니는 황궁의 사용인들은 너무나도 먹음직스러워 보였다.
결국 에리식톤의 허기는 임계치를 넘기 시작했다. 심지어 자신이 삼킨, 출처를 알 수 없는 상쾌한 기운이 자신을 억누르는 족쇄를 천천히 풀고 있었다. 허기와 느슨해진 족쇄가 맞물렸을 즈음, 결국 에리식톤은 근처의 벽에 머리를 쾅 박더니 낮게 중얼거렸다.
“가만히 있으라고 했어. 그러면 가만히만 있으면 된다는 거지?”
자신에게 합리화를 하듯 중얼거린 에리식톤은 이내 입을 크게 벌려 벽 한쪽에 이빨을 박아넣었다. 최대한 크게, 보다 많은 것을 먹을 수 있도록. 에리식톤에게서 마나가 뿜어져 나오는 순간, 이빨을 박아 넣은 벽이 순식간에 무너지더니 에리식톤의 입안으로 빨려 들어갔다.
그것을 목격한 황궁의 메이드 중 하나는 들고 있던 빨래 바구니를 떨어트리며 뒤로 넘어졌다. 바닥과 벽, 천장의 일부까지 붕괴된 모습. 그리고 에리식톤은 무언가를 열심히 씹듯 턱을 움직이며 우드득거리는 소리를 내다가 목울대를 꿈틀거렸다.
“저, 저게 뭐야. 괴물, 괴물이 다시 움직이고 있어요. 아무도 없어요? 황궁을 집어삼키고 있다고요. 친위대든 누구든 제발 와 주세요. 우라노스 님이 가져온 괴물이…!!”
메이드의 고함에도 에리식톤은 상관도 하지 않고 맞은편 벽에 이빨을 박아넣었다. 조금은 배를 채울 수 있었다. 하지만 이것만으로는 간에 기별도 가지 않았고, 오히려 불에 기름을 부은 셈이었다. 이대로 ‘가만히’ 위에 있는 모든 것을 빨아들일 생각이었다.
뒤로 넘어진 메이드는 그곳에서 도망치기 위해 팔다리를 움직였지만, 일반적인 인간의 힘으로는 그 힘에 저항하는 것이 불가능했다. 할 수 있는 것이라고는 비명을 지르면서 조금이라도 덜 끌려가기 위해 주변의 사물을 잡거나 바닥을 손톱이 부서질 정도로 긁는 것뿐.
소란을 눈치챈 황궁 내 친위대들이 에리식톤을 제압하기 위해 검과 스태프를 꺼냈으나, 메이드와 다른 것이라고는 조금 더 똑바로 서 있다는 정도일 뿐 입속으로 끌려간다는 점은 변하지 않았다. 혼란은 빠르게 황궁 내부에 번져나가고 있었다.
모든 것이 에리식톤을 기점으로 흡수되고 붕괴되어갔다. 최강의 물리 및 마법 방어력을 가졌다고 알려진 황궁의 기둥은 모래성처럼 허물어지기 시작했다. 황궁 곳곳에 붙어 있던 마법진은 찌그러지고 붕괴되고 있었다.
“황성이 무너진다!! 모두 대피해! 마법사들은 최대한 붕괴를 늦춰봐!”
“폐하, 황제 폐하는 어디 계신 건가! 친위대는 황제 폐하부터 찾아라!”
황제는 그의 목숨을 노리는 수없이 많은 이들에게서 보호받기 위해, 최측근을 제외하고는 누구도 그 위치를 알지 못한다. 지금까지는 이 비밀스러운 수단이 많은 도움이 되었지만, 지금처럼 갑작스러운 사태가 일어났을 때는 오히려 독이 되어버린다.
부디 최측근과 황제가 이 사태를 최대한 빠르게 눈치채주길 바랄 뿐이었다. 친위대 중 한 명은 이를 뿌득 갈며 에리식톤을 노려보았다. 분명히 우라노스의 말로는 자신이 완전히 제압했으니 문제가 없을 거라고 했었는데. 만에 하나라도 살아갈 수 있다면 반드시 그 죄를 물 것이다.
“에리식톤을 노려라!! 움직이지 않는 걸 보면 무언가 제약이 있는 것은 확실하다. 그때를 노려야 한다! 보호 마법을 씌운 뒤 가장 관통력이 강한 무기를 들고 원거리에서 요격하라!”
현재 상황과 에리식톤의 상태를 고려한 적절하고 훌륭한 전략이었다. 다만 문제가 있다면 폭주하기 시작한 에리식톤은 그 어떤 공격도 통하지 않으며, 쏟아지는 무기와 마법 모두가 일개 먹잇감이 되어버렸다는 점이다.
그로부터 30분 뒤, 드래곤의 습격에도 뚫리지 않을 것이라고 장담했었던 제국의 황성은 완전히 붕괴되었다. 남은 것은 발버둥을 치다가 사라진 친위대의 흔적과, 행방불명된 황제뿐.
“배고파.”
아직도 배를 채우지 못한 에리식톤은 입에 들어있는 것을 씹어 삼키고 중얼거렸다. 여전히 자리에서 움직이지는 않고 있었다. 성 내에서 피어오르는 나팔 소리와 군중들의 혼란스러움은 알 바가 아니었다. 먹을 건 더 안 오는 걸까. 여기서는 언제 움직일 수 있을까 하는 생각뿐.
그리고 뒤늦게 수도에 도착한 우라노스는 완전히 무너진 황궁과 그 중앙에서 눈을 끔뻑거리는 에리식톤을 보며 이를 뿌득 갈았다. 즉시 자신의 검을 빼 들고 에리식톤의 목을 치기 위해 다가가던 우라노스는 걸음을 멈췄다.
조종을 받는 이들은 여러 특징을 가진다. 그것은 자신에게 주어진 최소한의 임무만을 행하면서 인형처럼 스스로 생각하지는 않는 것이 있고, 겉으로 보이는 것으로는 멍한 얼굴과 초점이 흐린 눈이 있었다. 다만 지금 보이는 에리식톤은 그와는 거리가 멀어 보였다.
에리식톤은 지금 이 순간 확실하게 우라노스에게 초점을 맞추고 있었다. 거기에 살기는 들어있지 않았지만 우라노스는 섬뜩함을 느꼈다. 마치 지나가는 벌레나, 간식을 보는 듯한 눈빛.
자신의 명령이 어느 정도는 유효한지 에리식톤은 그 자리에서 더 움직이지는 않았다. 하지만 조금 더 가까이 다가가는 순간 어떤 일이 일어날지 자신도 알 수가 없었다.
“제기랄… 뭘 먹었는지는 기억나냐? 황제도 먹었어? 그것만 말해라.”
“몰라. 여기에 있는 건 다 먹었어. 황제를 찾는 말은 많이 들었어.”
전혀 도움이 되지 않는 대답. 하지만 황궁이 이렇게 붕괴되었는데 황제라고 무사할 리가 없었다. 난리통에 휩쓸려 에리식톤의 입속으로 사라졌을 것이 분명했다.
이대로라면 수도는 물론 제국 전체가 혼란에 휩싸이게 된다. 아직은 너무 이르다. 본래의 계획대로라면 조금 더 에리식톤을 이용하고 온갖 나라에서 인지도를 쌓은 뒤 정당하게 황제의 인정을 받고 (혹은 인정하지 않을 수 없는 분위기 속에서) 자리에 올라섰어야 했다.
우라노스는 얼굴을 한 손으로 쓸어내리며 무언가를 중얼거리다가, 결정한 듯 눈을 날카롭게 치켜떴다. 위기를 기회로 만드는 것은 자신의 특기 중 하나였다. 우라노스는 무언가를 생각하다가, 친구창을 열고 내통 중인 헤르도아의 사제 유저에게 귓속말을 했다.
“지금 있나? 헤르도아의 군대들은 수도에 언제 도착하지?”
“어, 어떻게든 시간을 늦추려고 하고 있지만 역부족입니다. 몇 시간 내로 당도하고 말 거예요. 수도에 방위 병력은 갖추셨습니까? 자칫하다간 완전히 무너지고 말 겁니다!”
“바라는 바야. 시간을 늦추지 마. 재촉하고 병력을 더 불러일으켜. 확실하게 수도를 망가뜨릴 수 있도록 해. 소환에 드는 비용도 지불할 테니, 초고위 언데드든 뭐든 다 만들어내.”
“네…? 네? 지금 뭐라고 말씀하셨….”
혹시 연속되는 극한 상황에 우라노스가 미쳐버린 것인가. 헤르도아 유저는 잠시 심각하게 받아들였지만 우라노스의 목소리를 광기에 젖은 것도 아니고 아주 냉철하기 그지없었다.
“수도를 완전히 박살 내. 황궁이 무너진 것부터 시작해서, 모든 것을 헤르도아가 일으킨 사건으로 몰아갈 거다. 쌓아놓은 호감도가 아깝긴 하지만, 자기들끼리 수군대는 것보단 나아.”
“자, 잘못하면 스케일이 엄청나게 커지는데요? 자칫하다간 제2의 대륙전쟁이 발발할지도…!”
헤르도아 유저의 말에 우라노스는 짙은 미소를 지었다. 오히려 그 말이 마음에 들었다는 듯 느릿하게 고개를 끄덕이기까지 했다. 대륙전쟁. 자신의 그릇에 걸맞는 아주 좋은 울림이었다.
“좋잖아. 우리의 손으로 대륙 메인 시나리오와 레이드를 만드는 거야. 수도에 있는 건 플레이어고 NPC고 다 쓸어버리게 도와주겠어. 플레이어는 다시 살아날 테지만, 대륙 메인 퀘스트의 시작이라고 하면 알아서 이해해 줄 거다.”
이후 우라노스는 부길드장을 비롯한 길드의 고위 관계자들에게 전체적으로 귓속말을 보냈다.
“성문을 모두 걸어 잠가. 그리고 밖으로 개미 새끼 한 마리 못 지나가게 해. 지금부터 성안에 있는 모든 것을 죽여버린다. 자세한 건 나중에 설명할 테니까 일단 명령부터 들어.”
우라노스의 말에 의문을 품거나 딴지를 거는 이들은 없었다. 그들은 우라노스가 시키는 것이라면 뭐든 하는 일종의 회사원이나 마찬가지였으니까. 모든 이들에게 귓속말을 끝낸 후, 우라노스는 깊게 한숨을 쉬고 손을 꾹 쥐었다.
입술이 잘게 떨리고 있었으나 이것은 공포나 죄책감이 아닌 흥분감에 가까웠다.
“예상보다 최종 수단의 시행일이 빠를 뿐이야. 오히려 잘됐어. 이제 남은 건 새로운 대륙전쟁을 일으킬 헤르도아를 내가 토벌하는 일만 남았어. 그러면 모든 것이 계획대로 된다.”
아무 문제 없다. 남은 것은 주인공이 등장할 타이밍만 계산하면 될 뿐이다. 다만 남은 것은 저것의 처리였다. 우라노스는 여전히 가만히 있는 에리식톤을 빤히 바라보았고, 에리식톤은 그런 우라노스와 마주 보며 고개를 갸웃했다.
***
[야 지금 말도 안 되는 언데드 군단이 텔레포트해서 이동중이라는데? 수도 방향.] [그거 나도 본 것 같은데. 어디서 대륙 퀘스트 하나 생기나?] [관련해서 패치는 한 적 없잖아. 그만한 스케일을 잠수함패치 했을리도 없고.] [그러면 다들 본게 가짜라는거? ㅋㅋ 하여간 속고만 사니 믿지도 않지.] [찐티내지 말고 급발진 ㄴ]그 소식의 시작은 인벤. 이윽고 온갖 커뮤니티에 스크린샷을 첨부한 게시물들이 우후죽순 올라오기 시작했다. 그것은 장소가 다를 뿐 비슷한 장면을 찍고 있었는데, 수많은 헤르도아의 사제와 고위 언데드들이 군대처럼 집결해 있는 모습이었다.
그리고 일단은 에리식톤을 만나기 위해 수도로 향하던 닉 모하지 역시 그 소식을 들을 수 있었다. 처음에는 단순 어그로인 줄만 알았던 것이 사진 첨부까지 되기 시작하자, 보통 일이 아니라는 것을 깨닫고 한쪽 눈썹을 치켜올렸다.
“혹시 그 헤르도아의 사제가 우라노스 족치려고 자신들이 먼저 움직일 거라는 말 한 적 있니?”
“그런… 말은 안 했었는데요. 왜요? 무슨 일 있어요?”
“정말로 단단히 화가 난 모양인데. 저번에 황궁 기습 정도로는 끝나지 않을 것 같아.”
그 말을 하면서, 닉은 홈페이지에 올라왔던 증거 영상 중 몇 개를 보여주었다. 일전에 있었던 데스 나이트 군단을 연상시키는, 하지만 그때보다도 훨씬 많고 병력의 질 면에서도 월등히 높은 언데드의 군대. 대륙전쟁 당시의 군세마저 연상시키는 규모였다.
“자, 잠깐만요. 멈춰주세요 용사님!”
걱정스러운 얼굴로 영상을 쭉 훑어보던 아인은 급하게 손을 흔들었다. 닉이 의문스러운 얼굴을 하면서도 영상을 멈추자, 아인은 눈을 가늘게 뜨고 영상을 자세히 살펴보다가 딱딱하게 굳은 표정으로 중얼거렸다.
그곳에는 작지만 익숙한 외양의 인물이 있었다. 자색의 머리에 새까만 흑도를 들고 있는, 흉흉한 기세로 언데드의 선두에 서 있는 사람.
“…페리스 님.”