Hero, What's logout? RAW novel - chapter (179)
179화 : 오류 데이터 사용자와 오류 데이터
‘이게 맞냐?’
닉은 입가에 피를 줄줄 흘리며 맨바닥에 쓰러진 채 그 생각부터 하고 있었다. 선딜레이고 뭐고 반응할 시간도 없었다. 잠시 눈앞이 흐려지는가 싶더니, 정신을 차리고 보니 온몸이 쑤시고 HP는 바닥이 나 있었다. 뼈가 부러지고 장기가 망가졌다는 온갖 알림창이 올라왔다.
우라노스가 굉장히 수상한 얼굴로 무언가를 중얼거릴 때는, 숨겨진 필살기라도 사용하는 줄 알고 경계했었다. 뒤늦게 그런 건 아니라는 것을 깨닫고 달려들었지만 이 결과가 이 꼴이다.
‘뭐지? 또 무슨 스킬을 숨기고 있었나? 하지만 압도적으로 이기는 걸 좋아하는 저놈 성격에 처음부터 사용하지 않을 리가 없을 텐데. 비싼 캐시템? 그런 걸 파는 건 못 봤는데.’
하지만 무슨 생각을 하더라도, 중요한 것은 지금 자신이 몸도 움직이지 못하고 쓰러져 있다는 사실이었다. 심지어 바닥에 가까운 HP는 조금씩 줄어들고 있었기 때문에 이 상태로는 가만히 있어도 죽을 것이다. 죽음 자체는 상관없어도, 이후의 일을 생각하면 곤란했다.
‘젠장, 아무리 빈사 상황이라도 포션 같은 건 좀 알아서 먹게 해 줘라. 움직이질 못할 정도의 부상이면 포션을 들 수조차 없잖아!!’
그 사이에 우라노스는 작은 감탄사를 흘리며 주먹을 쥐었다가 펴고 몸 상태를 확인하는 듯하더니, 아까와는 달리 밝아진 얼굴로 닉에게 다가왔다.
“쥐새끼마냥 돌아다니다가 그러고 있는 기분이 어떤가. 아… 말이 안 나오는 상태인가?”
대놓고 이죽거리는 꼴에 닉이 입모양으로 욕설을 뻐끔거렸지만, 우라노스는 그저 유쾌하게 웃었다. 지금의 기분이라면 그 정도는 웃어 넘길 수 있다는 양.
“이런 걸 지금까지 사용하지 않았다니 어이가 없을 지경이군. 이거라면 재앙이라도 일대일로 싸우는 게 가능하겠어. 군대의 선방에 서서 대륙을 위협하는 재앙을 물리치고 무력과 권력을 동시에 가진, 전무후무한 황제로서 말이지. 꽤 멋지지 않나.”
‘진정한 과몰입 환자는 이 새끼였잖아. 심지어 상상하는 것도 개 역겨워.’
닉은 머릿속으로 중얼거렸으나 입 밖으로 뱉어지진 않았다. 우라노스는 검을 검집에 집어넣은 후, 닉을 내려다보며 말을 이었다.
“프로토게노이 길드는 더 팽창할 거고, 앞으로는 네가 접속할 때마다 사방에서 목숨을 노리는 놈들이 널려 있을 거다. 처음 몇 번은 받아칠 수 있겠지만, 몇 날 며칠이고 지속 가능하겠어? 심지어 네 주변에 있는 건 플레이어도 아니고 일회용인 NPC들뿐인데.”
익숙하게 말을 꺼내는 것을 보면, 이미 이런 식으로 게임을 접게 만든 이들이 한둘이 아닐 것이다. 닉은 우라노스를 빤히 보다가 온 힘을 다해 손을 위로 올리고, 중지를 들었다.
‘조까세요.’
그리고 생각한 그대로를 정확하게 입모양으로 뻐끔거렸다. 마지막까지 기가 죽지 않은 모습에 우라노스의 얼굴이 잠시 가라앉았다. 이내 그는 검을 높게 들어올렸다.
“마지막에 잘못을 구하면 여러 조건을 들어서 봐 줄 생각이었는데. 그럼 안녕이다. 게임을 접는 순간에는 한 번 정도는 연락을 해도 받아주지.”
닉은 아득바득 자존심을 챙기는 편은 아니었으나, 저런 작자에게만큼은 굽힐 생각이 없었다. 끝까지 눈을 치켜뜬 채 우라노스를 바라보고 있을 무렵, 그는 문득 내리치려던 검을 멈췄다.
‘뭐야? 또 얼마나 뜸을 들이면서 개폼 잡으려고 저래.’
닉은 잠시 투덜거렸으나 단순히 허세를 위해 행동을 멈춘 것은 아닌 모양이었다. 우라노스는 어딘가를 빤히 바라보며 눈썹을 치켜올리더니, 이내 무언가에 얻어맞고 멀리 나가떨어졌다.
누워 있던 닉은 갑작스러운 사태에 눈을 끔뻑거렸다. 설마하니 우라노스가 혼자 원맨쇼를 하진 않았을 텐데. 찌뿌둥한 고개를 들어 주변을 살펴보니, 티없이 하얀 백색의 갑옷을 입은 존재가 손을 툭툭 털으며 이쪽으로 걸어오고 있었다.
비공식적으로는 우라노스보다도 강할 것이라 예상되며, 대륙에 혼란이 찾아올 때마다 어김없이 찾아와서 상황을 해결하고 홀연히 사라진다는 존재.
“영웅….”
설마 저 사람이 올 줄은 생각도 못했는지 닉이 입 속으로 웅얼거리자, 영웅은 품에서 포션 하나를 꺼내 자세를 낮춰 닉에게 먹여주었다.
“생각보다 오래 버텨 주었군. 이제 와서 미안하다.”
“헤르도아 처리하러… 온 거예요?”
현재 발생하는 대륙의 혼란은 대부분 헤르도아의 짓이었고, 영웅은 단독으로 몇 개나 되는 헤르도아의 지부를 붕괴시킨 이력이 있었다. 때문에 헤르도아의 천적이라는 별명까지 얻었다.
“지금은 우라노스. 물론 헤르도아에게서 수도를 방어하느라 늦은 감이 있지만.”
“쟤가 흑막이라는 거 알고 있었어요…?”
“대강은. 얘기하고 싶은 건 많지만, 지금 그럴 시간은 없는 것 같은데.”
영웅은 그 말을 하며 곧바로 팔을 치켜올렸고, 이쪽에 덮치는 검기를 그대로 막아내었다. 엄청난 소리가 울리긴 했지만 영웅은 가벼운 신음만 흘릴 뿐 큰 피해는 없어 보였다. 오히려 놀란 것은 공격을 한 우라노스 쪽이었다.
“뭐야? 뭐지? 어떻게 막은 거야? 프로그램까지 사용해서 스탯을 최대치로 올려놨는데.”
허망한 얼굴로 중얼거리는 우라노스를 보며, 영웅은 가벼운 한숨을 내쉬더니 흠집이 난 갑옷을 매만지다가 자리에서 일어났다. 불법 프로그램을 이용해 스탯을 한계치까지 올려놓은 우라노스와 비교해도 그 포스나 강인함이 결코 꿀려 보이지 않았다.
“프로그램을 자기 몸에 사용한 거야? 자기 말고 다른 녀석들에게만 사용하는 줄 알았더니.”
그 말에 우라노스는 멍한 표정을 짓다가 이내 무언가 깨달았다는 듯 씩 웃었다.
“그렇군. 너도 나와 비슷한 놈이었어. 아니, 오히려 선배님이었나.”
“제발 그런 징그러운 말은 하지 말아줘. 너 같이 귀염성 없는 후배를 둔 기억은 없는데.”
“말 돌리지 마라. 너 역시 데이터 오류를 발생시키는 프로그램을 사용했잖아? 그러니 내 공격을 그렇게 아무렇지도 않게 막은 거고. 바로 내가 그걸 사용했다는 것도 눈치채고 말이지.”
“허어, 눈썰미가 빠른데? 과연 돈만 처발라서 랭킹 1위 한 건 아니란 말이지.”
그녀는 가볍게 휘파람을 불더니 웃는 소리를 냈다. 닉이 배신감을 느끼는 얼굴로 우라노스와 영웅을 한 번씩 돌아보자, 영웅은 닉 쪽을 힐끔 보더니 가만히 있으라는 듯 손짓했다.
“거의 비슷하게 맞췄는데, 하나 틀린 게 있어.”
“뭐지? 나와 다른 프로그램을 사용했나? 하긴 너는 나보다도 데이터가 더 꼬여있는 것 같….”
“나는 프로그램을 사용해서 데이터 오류를 발생시킨게 아니라, 오류 데이터 그 자체거든.”
우라노스는 그 말을 이해하지 못했는지 멍하니 눈을 끔뻑이며 고개를 갸웃했다. 다만 그 단어가 익숙한 닉은 눈을 크게 뜨고는 입을 벙긋거렸다.
“뭐… 뭐야. 당신도 NPC였어?”
“그런 편이지? 이 세상에서 태어나고 자랐으니까.”
저번에 아인이랑 같이 있던 것도 연관이 있어서였나? 당연히 플레이어라고 여겨왔던 닉의 머릿속은 복잡하게 꼬이기 시작했다. 지금까지 영웅에 대해 보아왔던
“말도 안 돼. 당신은… 홈페이지에 글도 올리고 하잖아? 공략 게시판에 용사 사명에 대해 쓴 걸 내가 똑똑히 봤어. 영상 올리고 댓글도 쓰는 것 같던데. 플레이어처럼 말하고 행동하잖아.”
“계정만 가지고 있다면, 인게임에서도 인벤이랑 공식 홈페이지는 회원가입 없이도 접속이랑 글 쓰는 거 가능하잖아? 나는 가지고 있는 기능이랑 권한을 사용했을 뿐이야. 별거 없어.”
그리고 말이야. 영웅은 여전히 웃음기 어린 목소리를 유지한 채 말을 이었다.
“플레이어… PC처럼 말하고 행동하는 게 대체 뭔데? 그 기준이 뭔질 잘 모르겠는데.”
“……”
“NPC들은 모르는 단어를 사용하는 거? 옥상에서 뜬금없이 떨어지는 등의 괴상한 기행을 벌이는 거? 그럼 NPC도 너희들의 단어를 숙지하거나 비슷한 기행을 벌이면 PC가 되는 건가? 내가 봤을 때는 우리랑 너희랑 다른 건 크게 없거든. 다른 종족 정도의 느낌이야.”
목소리에는 웃음기가 담겨 있었지만 묘하게 뼈가 들어 있었다. 투구 속의 얼굴은 웃음 없이 싸늘할 것이다. 닉은 무의식중에 그런 생각이 들었다.
와중에 우라노스는 여전히 상황을 이해할 수 없는 듯 눈을 굴렸다. 자신에게 있어서 영웅은 완전한 플레이어였다. 닉이 말한 것처럼 홈페이지에도 모습을 가끔 보이고, 영상을 올리기도 했으니까. 권한이니 기능이니 예외적이니 하는 복잡한 이야기는 듣고 싶지 않았다.
“어쨌든 내 편은 아니라는 거군.”
“굉장히 단순하네. 어쩌면 그편이 더 고맙기도 하고. 응. 네 편은 아니야.”
“그걸로 됐다. 너도 닉 모하지와 같이 죽여주마.”
“할 수 있겠어? 네 말마따나 나는 그런 거 사용하는 데에 있어선 더 익숙한데.”
영웅은 자신의 몸에 손을 대고 무언가를 웅얼거렸다. 이내 몸을 잠시 움찔하는 듯하더니, 눈에 보이지 않을 정도로 빠르게 움직여 우라노스의 뒤에 위치했다.
“당사자로서 하나 충고하는데. 그거 함부로 사용했다간 큰코다친다.”
이후 언제 만든 것인지 영웅의 손에는 거대한 도끼 하나가 들려 있었다. 무식할 정도로 커다란 크기와는 다르게 영웅은 얇은 나뭇가지마냥 그것을 휘둘렀다.
구차하게 피하는 것은 싫었는지 우라노스는 다시금 검을 꺼내 정면에서 그것을 막아냈다. 쩌엉! 하는 소리가 크게 울렸다. 그 힘의 여파만으로 근방의 대지가 갈라지고 지진이 울렸다.
“크으으윽….”
우라노스는 팔이 저릿해지는 것을 느끼며 이를 갈았다. 영웅은 그를 내려다보며 투구 밖으로 짧게 웃음소리를 흘렸다. 마치 방금 전의 우라노스와 닉 모하지 같은 구도에, 우라노스는 그 상태로 모든 힘을 쥐어 짜내 우라노스를 밀어내기 시작했다.
“너도 내가 죽여버리고 말겠다. 알고 있는 GM에게 말해서 영구정지를 시키든, 데이터 삭제를 하든. 영웅이랍시고 내가 받아야 할 명성까지 독차지하는 게 안 그래도 꼴 보기 싫었어.”
“정말이지 그 집착에 경외감이 들 정도네. 뒷감당은 어떻게 하려고?”
“프로그램을 사용했다는 증거는 남지 않아. 그걸 확인하려면 지금 이 순간 내 데이터를 뜯어봐야 할 거다.”
“이야 너 진짜… 구구절절 뱉는 게 설명조 NPC같은거 알아? 되게 웃긴다.”
“닥쳐라!!”
우라노스는 남은 한 손을 쥐더니 그대로 우라노스의 투구에 주먹을 꽂아 넣었다. 맨손일 뿐이지만 한계치를 넘은 스탯은 주먹질마저도 어지간한 마법보다도 강력한 파괴력을 낼 것이다. 실제로 투구가 우그러지더니 영웅의 투구가 벗겨졌다. 은발의 머리카락이 사방으로 흩어졌다.
하지만 그 안에 있는 얼굴은, 한쪽 볼이 주먹에 의해 퉁퉁 부은 채로 밝은 미소를 짓고 있었다.
“알려줘서 고맙다 멍청아.”
설정 프로그램 개입. 이후 영웅은 우라노스의 몸에 손을 대고 짤막하게 읊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