Hero, What's logout? RAW novel - chapter (180)
180화 : 아껴 놓았던 대륙 퀘스트
영웅이 설정 프로그램 개입을 읊는 순간, 그녀의 눈앞에 우라노스의 상태창이 펼쳐졌다. 예상대로 데이터를 멋대로 조작한 탓에, 깨지고 일그러진 흔적들이 곳곳에 남겨져 있었다. 영웅에게는 너무나 익숙한 모습이다. 자신 역시 그런 상태창을 가지고 있었으니까.
“이거 완전 미친놈 아니야? 무턱대고 스탯을 죄다 한계치까지 올려놨네. 반동 안 무서워?”
자신이 데이터를 조작한 흔적을 완벽하게 읽어내자, 우라노스는 움찔했다가 눈을 가늘게 뜨며 영웅을 노려보았다. 일반적으로는 자신이 무엇을 했는지 알아내는 것이 불가능할 텐데.
“넌 뭐야. NPC라더니. 설마 이 세계를 총괄하는 인공지능이냐? 정체가 뭐야?”
“아하하! 그 말 그대로 걔한테 들려주고 싶네. 인공지능 그건 아니지만.”
나는 누구려나? 영웅은 심각한 상황 와중에도 가벼운 질문을 떠올렸다가, 다시 한번 공격하려는 우라노스의 팔을 꺾어버리고 제압했다. 힘 스탯은 자신도 동일하게 한계치 이상으로 올려놓았으니 밀리지 않고, 스탯의 영향을 받지 않는 기술 측면에서는 오히려 자신이 위였다.
“어떻게 힘을 써야하는지도 모르는 모양이네. 이 상태로 기절이나 시킬까.”
“마, 망할. 놔! 놓으란 말이다! 네가 유저든 NPC든 날 상대로 무사할 것 같아? 유저라면 척살이고 NPC라면 그대로 데이터 삭제를 시켜주겠어! 당장 놔!”
“진짜 너무 전형적인 악당 스크립트라 하품이 날 지경이다. 넌 단역 엑스트라도 아슬아슬해.”
생각보다도 쉽잖아? 영웅은 속으로 콧노래를 흥얼거렸다. 얕보이고 싶지 않아 길드원들에게 지원을 요청하지도 않았던 우라노스 특유의 오만함이 화를 불렀다. 이대로 카오스에게 데려가서 불법 프로그램 사용자라는 것을 확인시키고 계정을 영구정지 시키면 된다.
그런데 그 순간, 영웅은 몸속이 뒤틀리는 감각에 한쪽 무릎을 꿇고 주저앉았다. 잠시나마 생긴 틈에 우라노스는 구속에서 풀려나 칼을 빼내 우라노스를 겨누었다. 숨을 헐떡이는 모습에는 도취된 승리감이 한껏 물들어 있었다.
“하, 하하. 아하하!! 행운도 최대치를 찍어 놓았더니 이런 일도 생기는군. 아까까지 나를 무시했겠다. 이게 바로 올바른 자세고 모습이라는 거다.”
그 이후로도 우라노스는 계속해서 무언가를 외치며 자신의 승리를 축복하고 있었다. 다만 영웅은 그의 말은 한 귀로 흘리며 미간을 좁혔다. 몸을 움직이기가 힘들었다. 정확하게는 한번 움직이려 할 때마다 몸이 거부하고 있었다.
‘언젠가는 올 거라고 생각했지만 설마 이 타이밍에. 제기랄, 진짜로 행운 스탯 때문이야?!’
자신의 데이터를 고의적으로 조작하고 엉키게 하는 자의 말로. 영웅은 그것을 너무나 잘 알고 있었다. 이따금 몸이 말을 듣지 않는 경우는 있어도 활동에 큰 지장은 없었는데, 최근 들어 이 현상이 점점 심해지다가 결국 지금에 와서야 부작용의 최대치에 이른 모양이었다.
‘움직여. 움직이라고. 한 번만 도와줘. 이번만 움직이면 돼. 그러니까!!’
영웅은 이를 악물고 어떻게든 한 발자국이라도 움직여보려 했지만 허사였다. 결국 대화라도 하면서 시간을 끌어보게끔 우라노스를 쳐다보았다. 그는 영웅이 자신을 무시하고 있던 것은 알고 있었는지 모르고 있었는지, 사방을 가리키며 웃음을 흘렸다.
“그러니, 나 하나를 어떻게 해봤자 수도 붕괴를 막지는 못할 거다.”
우라노스의 말에 영웅은 가만히 그를 마주 보다가 진중한 얼굴로 입을 열었다.
“미안한데 네 말 조금 대충 듣고 있다가 지금 집중하고 있거든. 그래서 전후 사정 한 번만 더 말해줄래? 갑자기 엄청난 소리가 나와서 어떤 반응을 해야 할지 약간 헷갈리는 상태야.”
우라노스만 제압하면 모든 것이 해결될 거라고 생각하던 영웅에게는 청천벽력같은 소리였다. 그 말에 우라노스는 기가 막힌다는 듯 실소를 뱉더니 영웅의 머리채를 잡고 들어 올렸다.
“사람 말을 무시하는 것도 정도가 있지.”
“그건 진짜 미안.”
“좋아, 다시 한 번 말해주마. 수도는 안팎으로 잠긴 상태다. 기껏해야 플레이어들이 텔레포트 시설로 간간이 들어올 수 있는 정도. 그 녀석들은 단순한 이벤트나 대륙 퀘스트로 알 거고. 나중에 ‘수도가 무너지는 것이 결정된 퀘스트’를 받았었다며 입 좀 털면 그만이야.”
우라노스는 얼마 전 ‘사정을 말할 수 없는 퀘스트’를 받았다고 둘러댄 적이 있었다. 그때는 대충 변명을 한 것이겠지만, 어쩌다 보니 적당한 떡밥이 된 것이다.
개인에게 주어진 퀘스트의 내용은 타인이 볼 수 없다. 물론 카오스는 그것이 거짓이라는 것을 알고 있지만, 이 세계의 균형을 총괄할 뿐인 카오스가 개인 유저인 우라노스의 데이터를 뜯어내어 증거를 확보했다가는 오프라인상으로도 일이 복잡해지기 마련이니까.
“그래도 수도에는 실력 좋은 플레이어들이 꽤 포진되어 있을 텐데? 헤르도아 군대를 막는 건 가능할 거야. 네가 수상한 짓 하던 걸 목격한 NPC가 한둘이 아닐 텐데.”
“그건 걱정 마라. 프로토게노이가 헤르도아 행세를 하며 그 녀석들을 잡아줄 테니.”
“…길드원들이 말이지? 아주 철저하게 준비했구나 개자식아.”
영웅은 작게 감탄을 했다. 그리고 경외심마저 들었다. 이렇게까지 악랄하게 할 수 있구나, 하는 부정적인 쪽의 경외심. 같은 PC라도 프로토게노이 소속의 상위 랭커들과 다른 일반 유저들 간의 격차는 확연히 존재하기 때문에, 수도 붕괴는 결코 막을 수 없을 터다.
‘진짜 미치겠네. 카오스, 이 사태 너도 보고 있잖아? 어떻게든 해 줘!! 유저와 내통한 헤르도아와 1위 길드가 수도가 작살내는 건 너도 원하던 스토리가 아니었을 거잖아!!’
***
아인은 퀘스트창에 표시되어있는 닉과 황제를 찾기 위해 에르와 함께 큰길을 누비고 있었다. 닉은 카오스의 조각인 데다 상당히 강한 편이니 크게 걱정되지 않았지만, 황제는 NPC인 데다 아마도 일반인 수준의 무력을 지녔을 테니 걱정이 이만저만이 아니었다.
황제를 먼저 찾자. 그렇게 결정한 아인은 다리에 힘을 주고 바닥을 박찼다. 비행해서 날아가면 시야도 넓어지고 조금 더 빠를지도 모르지만, 수도 곳곳을 점령 중인 언데드들에게 눈에 띈다면 귀찮아진다. 괜한 위험을 감수할 필요는 없었다.
아니, 귀찮아지는 정도가 아닐 것이다.
“자, 잠깐 에르. 저기에 숨어 있자. 누가 오고 있어.”
“그냥 부수고 가면 안 될까?”
“너 성격 그렇게 된 거 용사님 때문이야? 괜히 눈에 띄었다가 더 몰려오면 곤란해지니까.”
아인은 다가오는 기척에 경계심을 높이며 에르와 함께 골목길 어귀에 몸을 숨겼다. 그 순간 앞으로 검붉은 갑옷을 입은 언데드 한 마리가 낮은 울음소리를 울리며 앞을 지나갔다. 정면으로 싸운다면 온 힘을 다해도 장담할 수 없는 강한 기운이 느껴졌다.
데스 나이트의 상위종인 어비스 나이트. 보통은 고위 헤르도아의 사제를 호위하기 위해 소수만 기용하는 고위 언데드지만, 지금은 마치 정찰병마냥 혼자 수도를 거닐고 있었다. 얼굴이 창백해진 아인은 눈을 크게 뜨며 속으로 경악을 했다.
‘어비스 나이트가 저렇게 일반 병사처럼 돌아다녀도 되는 거야?’
이후로도 계속해서 수도를 돌아다니던 아인은 고위 언데드가 발에 차일 듯이 보이는 풍경에 걱정이 커지고 있었다. 오히려 하급 언데드들이 더 적게 보일 지경이었으며, 그나마도 직접 헤르도아가 데려온 것이 아니라 고위 언데드들의 스킬로 인해 만들어진 것처럼 보였다.
데스 나이트 군단과의 전투에서 보았던 어비스 나이트나 패잔병들의 왕, 찬탈자, 그 외 온갖 상위종의 언데드들이 곳곳을 누비며 플레이어들이나 수도의 방위병들과 전투를 하고 있었다. 개중에는 상당히 위험한 상황까지 몰아붙여지는 이도 보였다.
자신도 한시가 급한 상황이었지만, 결국 지나칠 수 없었던 아인은 그런 사람들이 보일 때마다 나서서 한 명 한 명을 구하기 시작했다. 처음 아인의 기척을 느꼈던 이들은 다른 적이 온 줄 알고 절망의 표정을 지었다가, 이내 자신을 구해주는 모습에 얼굴에 어렴풋한 희망을 띠었다.
“가, 감사합니다. 정말로 감사합니다. 당신이 아니었으면 죽었어요.”
수도의 방위병들은 상당한 실력자들을 우선으로 뽑는다. 그만큼 고위 언데드와 상대할 수 있을 정도로 실력도 정신력도 강한 이였겠지만, 지금만큼은 당장이라도 무너질 듯 지친 표정으로 숨을 몰아쉴 뿐이었다. 아인은 그를 안쓰럽게 보며 치료를 해주다가 주변을 둘러보았다.
“그냥 당연한 일을 한 것뿐인데요. 혹시 다른 곳 상황은 어떤가요?”
“비슷합니다. 어디서 나타났는지… 수도의 마법 결계는 어떻게 뚫은 건지. 아직까지는 가까스로 막아내고는 있다지만, 피해가 쌓여가고 있어요. 헤르도아의 군대는 계속해서 지원되고.”
헤르도아가 가진 언데드는 그 수를 짐작조차 하지 못할 정도지만, 수도의 방위병은 한계가 있다. 다른 곳에서 지원 요청을 하고 싶어도 수도는 나가지도 들어가지도 못한 채 잠긴 상태.
당장은 군대가 발 빠르게 언데드를 막고 민간인들은 피난소에 가 있다지만, 군대가 붕괴되는 순간 그야말로 끔찍한 사태가 시작될 것이다. 그것만은 어떻게든 막아야만 했다.
‘진짜 이런 때에는 자기가 가진 권한으로 수도의 문을 풀어준다거나 어떻게 해줄 수 있는 거 아니야?! 생긴 대로 꽉 막혀 가지고. 상관없는 사람들이 죽어가고 있다고!’
아인은 지금 있지도 않은 카오스를 떠올리며 이를 바득바득 갈았다. 하지만 대답해줄 리 만무한 이를 지금 욕해봤자 소용이 없다. 아인은 이후로도 몇 번이나 사람들을 구해주며 나아가다가 황제가 있는 곳에 도착했다.
“어라… 분명히 여기에 황제가 위치했다고 나와 있는데…?”
한때 황궁이 있었지만 지금은 폐허만 남은 곳. 하지만 주변에는 인기척이라고는 느껴지질 않았다. 아인이 고개를 갸웃하며 주변을 살피던 중, 눈앞에 작은 포탈 하나가 생겨났다.
[특수 공간을 확인했습니다. 진입하시겠습니까?]아인은 눈을 크게 뜨고는 다시 주변에 아무도 없는 것을 확인한 뒤 고개를 끄덕였다. 그 순간 아인의 몸이 어딘가로 빨려 들어가듯 일그러지더니 그대로 사라져버렸다.
“우웩… 우웨엑.”
이후 정신을 차린 아인은 울렁거리는 속 때문에 한참을 헛구역질하다가, 뒤늦게 정신을 차리고 고개를 들었다.
“화, 황제… 폐하…?”
그곳에는 이전과 같이 근엄한 표정을 지은, 하지만 다소 피곤하고 수척한 상태가 된 황제가 소수의 최측근만을 데리고 아인을 내려다보고 있었다. 호위대장이 경계심 어린 표정으로 아인을 노려보자, 황제는 그만두라는 듯 손짓하고 느릿하게 입을 열었다.
“짐이 이곳에 있다는 것은 어떻게 알았지?”
“네? 아, 그… 저. 퀘스트… 때문에?”
“퀘스트라. 카오스의 조각이 받는다는 그 운명의 부름 말인가… 나를 찾으라 말하던가. 자네에게도 그것이 왔다면, 지금 내가 무사한 것도 아마 자네 덕분이 아닐까 싶군.”
그건 아니었는데. 하지만 좋은 것이 좋은 것이니 아인은 웃는 얼굴로 연신 고개를 끄덕였다. 그러다가 문득 한 가지가 생각난 듯 눈을 크게 떴다.
운명. 정해진 것. 그 말을 아주 좋아하는 존재가 있었다. 수도의 상황을 실시간으로 보고 있을 텐데도 그저 방관만 하고 있을 이 세상의 신.
“황제 폐하. 전에 보류해 두었던 부탁을 하나 청하고 싶습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