Hero, What's logout? RAW novel - chapter (189)
189화 : 최후의 발악
패치 내용은 생각보다 대단한 것이 아니었다. 곳곳에 산재한 오류 점검 및 서버 안정화를 했을 뿐이며, 패치 이후 수도에서 언데드를 퇴치한 공로에 따라 모두에게 보상이 돌아갔다.
“미친, 나 황제한테서 신임 얻었어. 대박이다….”
“기여도별로 황궁 사람들이 보는 시선도 달라지는 것 같던데. 몇 퍼센트 얻었어?
“아 진짜로? 0.12퍼센트.”
“개쩐다. 나는 0.03퍼센트 얻었어. 떨떠름하게 보긴 해도 황궁에 들어갈 수 있게는 해주더라.”
비록 참여하는 인원이 많았던 만큼 토벌 보상 자체가 엄청나진 않았지만, 황제과 연줄이 닿는다는 사실 하나만으로 온갖 퀘스트의 시작이 될 수 있었다. 특히나 헤르도아로 인해 정세가 혼란스러운 요즘 상황에서는 잘만 하면 히든 퀘스트의 단서도 얻는 것이 가능했다.
“불사의 언데드에게 두려움 없이 맞설 수 있었던 것은 사그라지지 않는 용기일 터이요. 이에 수도가 무너지지 않게끔 도와준 모든 병사과 카오스의 조각들에게 경의를 표하는 바… .”
황제는 수도를 지킬 수 있도록 도와준 모든 참여자에게 감사를 표했다. 하지만 그 과정에서 사태의 원인이라고 생각되는 우라노스나 프로토게노이 길드에 대해서는 언급하지 않았다.
괜히 좋게 말해줄 이유는 없지만, 그들이 대륙에 끼치는 영향력을 생각했을 때 노골적인 적대도 금물이었다. 다만 수도 개편이라는 명목으로 프로토게노이의 건물을 축소하는가 한편, 그들이 수도에 들어올 때의 검문도 상당히 엄격하게 관리하기 시작했다.
남들은 몰라도 당사자들은 확연하게 느낄 수 있는 불편함. 우라노스는 또다시 수도에 있는 프로토게노이의 본부가 축소되었다는 말을 들으며 느릿하게 눈을 깜빡이다가, 모두 자리에서 떠나라는 듯 손짓했다. 이윽고 커다란 사무실에 혼자 남게 된 그는 누군가에게 귓속말을 했다.
“내가 말한 건 어떻게 되고 있어? 뭐 하나 처리된 게 없는 것 같은데. ‘데이터를 멋대로 조작하는’ NPC가 버젓이 돌아다니는 상황에 운영진은 뭘 하고 있는 거야?”
대상은 게임의 운영진 중 하나. 영웅을 비롯하여 눈엣가시 같은 NPC들을 상대로 데이터 삭제를 요청했으나, 측근들에게 정보를 들어보니 자신이 말한 어떤 NPC도 삭제가 되지 않았다. 자신의 말이 영향력이 없는 것인가? 그것 때문에 우라노스의 심기는 뒤틀린 상태였다.
-부, 분명 말을 했고 카오스에게 해당 NPC의 데이터 삭제를 요청해놓은 상태였어요. 그런데 아인은 처리 반려. 영웅에 대해서는 카오스가 자체적으로 ‘삭제 보류’라는 판정을 해서….-
그 말에 우라노스는 이를 뿌득 갈았다. 아인은 그렇다 쳐도 영웅만큼은 확실하게 삭제를 하고 싶었는데 그마저도 마음대로 되질 않는다. 요 근래에 자신의 뜻대로 되는 것이 없다. 자신은 핵과금러이고, 랭킹 1위이고, 온라인 오프라인을 통틀어 엄청난 영향력을 구사하는데도.
“원래 그렇게 반려니 보류니 하는 게 자주 일어나나? 운영진이 하는 게 뭐야?”
-사실 이따금 보류가 나온 적은 있었지만 이렇게까지 저희 요청에 반대한 적은 처음입니다.-
일정 이상 영향력이 있는 NPC의 삭제는 운영진이 아닌 카오스의 총괄 인공지능이 진행한다. 하지만 운영진 측에서 요구하는 것은 지금까지 모두 받아들여졌는데, 이번만큼은 그들의 의사에 반하면서 제멋대로 굴고 있었다.
“그 망할 인공지능의 판단이 인간 판단보다 중요하다는 거야?”
-아, 아무래도 인공지능은 다른 거 없이 인게임 측면으로만 판단하니까요… 그래도 반려가 아니라 보류니까 시간이 지나면 알아서 삭제하지 않을까 싶습니다.-
화가 잔뜩 응축된 우라노스의 말에 운영진은 쩔쩔매며 비위를 맞추려 애썼고, 우라노스는 간신히 이성을 차린 후 의자에 몸을 묻듯이 깊이 누웠다.
“프로토게노이에 대한 사측 여론은 어때?”
-사실 그다지… 좋게 받아들여지진 않습니다. 하지만 할 일이 늘어나서 그런 것뿐이지, 사용하시는 프로그램이나 데이터 조작 관련해서는 완전히 눈치채지 못한 것 같습니다.-
“목소리 크게 내지 마라. 누가 들으면 어쩌려고. 닉 모하지에 대해서는?”
-어… 대체적으로 여론이 좋은 편입니다. 특히 캐디가 취향이라면서….-
“쓸데없는 말 하지 마. 닉이 소속된 길드는 있나? 아니면 주로 같이 다니는 플레이어나.”
-소속 길드는 없지만, 헌터 길드와 마라랑 주로 같이 다니는 것 같습니다.-
가장 싫어하는 두 이름을 듣는 순간 우라노스의 철제 책상이 요란한 소리를 내며 부서졌다. 요란한 소리를 들은 운영진은 침을 꿀꺽 삼켰다가 조심조심 말을 이었다.
-…그 외엔 플레이어와는 잘 어울리지 않는 것 같습니다. 솔로 플레잉 위주인 것 같고.-
“그러면 NPC들과는 잘 어울린다는 거지? 닉한테 일정 호감도 이상을 가진 NPC들 모두 추려내서 나한테 알려줘. 같이 다니는 NPC들 것도 싸그리 모아서.”
-그건 어렵지 않지만… 뭘 하려고 그러십니까?-
“지지 기반을 무너뜨려야지. 기분이 더러워져서 무지성으로 나한테 돌진하면 더 고맙고. 다행스럽게도 어울리는 놈들이 모두 NPC라서, 한 번 죽이면 되살아나지도 못할 테니 잘 됐군.”
지금까지 둘이 마주쳤을 때, 잃을 게 많고 실제로 잃은 것도 많은 쪽은 언제나 우라노스였다. 이렇게 당할 수는 없었다. 최소한 닉 모하지도 한 번쯤은 얼굴을 구겨지게 만들어야 했다.
화를 간신히 삭이는 우라노스의 말을 듣던 운영진은, 무언가를 생각하듯 잠시 침묵을 이어가다가 자신감에 찬 목소리로 입을 열었다.
-그것 때문이라면… 같이 다니는 아인이라는 NPC와 관련한 이들을 살펴보고 무너뜨리는 게 좋을 겁니다. 닉 모하지의 지지 기반은 대부분 아인과 연관되어 있기도 해서.-
***
“사실 우라노스가 아인이랑 영웅한테 죄를 뒤집어씌우면 입장이 애매해져. 그리고 실제로 둘에 대한 삭제 요청이 들어왔다는데. 카오스가 직접 반려랑 보류는 했다지만.”
마라는 아인 일행을 헌터 소속의 숙소에 데려온 후, 우라노스를 어떻게 해야 할지 논의하고 있었다. 그가 불법 프로그램을 악의적으로 사용하려는 것은 사실이었다. 하지만 우라노스가 ‘그 모든 것은 이 오류 데이터들이 자행한 것이다.’라고 말하면 곤란해진다.
운영진 측에서 NPC와 플레이어 중 누구의 말에 귀를 기울일 것이냐고 묻는다면, 후자일 수밖에 없었다. 심지어 그 플레이어가 랭킹 1위에 운영진에게까지 영향력이 있다면 더더욱.
“사실 우라노스한테 엿을 먹이기 위해선 한 사람만 설득을 하면 되긴 해. 카오스 사장.”
황제 같은 인물을 생각하고 있던 닉은, 전혀 예상치 못한 사람을 언급하자 마시고 있던 물을 뱉어버렸다. 사레가 들려 연신 기침을 하던 그녀는, 미간을 좁히며 마라를 쳐다보았다.
“콜록, 아니. 그. 쿨럭. 바깥쪽 회사 사장 말하는 거, 콜록, 맞지? 그 사람한테 무슨 수로?”
“우리 집 큰오빠거든. 사실 내가 싫어해서 가깝게 안 지내는데, 지금은 필요한 게 짜증나네.”
“이 게임 완전히 비리 덩어리잖아. 정보 길드 실세가 게임사 사장 동생이라니.”
“무슨 말을 그렇게 해. 사실 몇몇 정보는 몰래 전해 들은 게 있긴 했지만 내 개인적인 호기심이었고, 그 외에는 오로지 헌터 길드가 독자적으로 알아낸 거라고!”
“몇몇 정보를 인정한 시점부터 틀려먹었어!! 그런데 사장이라면서 함부로 부를 수 있냐고.”
하지만 지금 혈연관계 유착에 분노하고 적폐청산을 외칠 수는 없는 노릇이었기에, 닉은 한숨을 쉬며 물을 한 모금 홀짝였다. 하지만 마라는 걱정 말라는 듯 히죽 미소지었다.
“그 자식, 일은 뒷전이고 직접 게임 상태 살펴본다면서 허구한 날 게임에 접속해 있거든. 한번 아인 네가 직접 설득해보는 건 어때? 근거만 충분하면 얘기는 들어줄 거야.”
이번에는 아인이 먹던 음료를 뱉어버렸다.
“아 진짜 쌍으로 염병을 하네. 침대 너희들이 빨 거야?!”
“죄송해요! 죄송해요! 가, 갑자기 저한테 부탁하셔서 놀랐어요.”
“그야 우라노스의 데이터도 그렇고 진상을 알고 있는 게 너랑 영웅뿐이니까. 그런데 영웅은 지금까지 한 짓 때문에 좋아하질 않는 걸 넘어서 질색하거든. 아인 네가 말해줘야 할걸.”
“영웅을 싫어하면 저도 그렇게 좋아하진 않으실 것 같은데요… 친해지는 것부터 해야 할까.”
아인은 물의 정령으로 침대에 묻은 얼룩을 제거하며 걱정스러운 표정을 지었다. 그 사람과 만나본 적도 없는데 대뜸 ‘우라노스는 나쁜 사람입니다.’라고 말해봤자 소용이 있을까 싶고.
마라는 수심 가득한 아인을 보며 걱정 말라는 듯 다가가 어깨를 토닥여주었다.
“그 부분에 대해서는 신경 쓰지 않아도 될 거야.”
“차, 착한 분이신가요…?”
“그건 아니고, 여기 데려올 거니까 지금부터 친해지면 돼.”
“너무 갑작스러워요!! 제발 마음을 정리할 시간 좀 주시면 안 돼요?!”
마라하고 비슷하게 생겼을까. 성격도 비슷할까. 아인의 얼굴이 긴장으로 가득 찼을 무렵, 아인이 가지고 있던 수정에서 빛이 나기 시작했다.
실리본이 연락용으로 주었던 것. 최근 사태에 대해 물어 보려고 하는 걸까. 아인은 잠시 기다려달라고 손짓한 뒤 방구석으로 들어가 수정에 마나를 주입했다.
“실리본? 무슨 일이에요?”
하지만 대답은 즉각 들려오지 않았다. 폭발음 같은 요란한 소리가 몇 번이나 울리더니, 사람들의 비명 소리가 들리기 시작했다. 처음엔 고개만 갸웃하던 아인도 점점 심각성을 인지했는지 미간이 좁혀졌다. 무슨 일이냐고 소리를 지르기 직전, 먼저 실리본의 목소리가 들렸다.
-아인, 지금 수도에 있나?-
“네. 무슨 일이에요? 폭발음이 들리고 비명소리도 들리는데, 거기 서풍의 숲 아니에요? 헤르도아가 또 습격했어요?”
-겉모습은 그렇게 꾸미긴 했지만 헤르도아는 아니야. 하는 말을 보아서는 NPC도 아니고.-
“플레이어… 요? 왜 갑자기? 거기 주변에 퀘스트라도 발생한 거예요?”
-그건 아니야. 하지만 네 이름을 거론하길래 연락했다. 프로토게노이나 우라노스라는 이들과 연관이 있나? 갑작스레 이곳을 습격하더니 기반을 무너뜨릴 거라면서….-
두 단어를 듣는 순간, 아인의 눈이 차갑게 가라앉더니 더 듣지도 않고 곧바로 밖으로 뛰쳐나갔다. 주변에 있던 이들이 무슨 일이냐고 물어보았지만, 일일이 답할 시간은 없었다.
***
얼마 지나지 않아 숙소의 문에 두어 번 노크하는 소리가 울리더니, 한 남자가 들어왔다.
사장이자 고위 GM으로서의 권한도 가지고 있는 그는, 차분한 인상의 하프엘프 모습으로 주변을 둘러보았다. 여동생인 마라의 부탁을 듣고 오긴 했지만, 다른 플레이어 앞에서 대놓고 모습을 드러내는 것은 쉽지 않은 일이었다. 하지만 동시에 그만큼 중요한 사안이기도 했다.
‘우라노스가 불법 프로그램을 사용했다는 심증은 나도 있었지만.’
확실한 물증이 나오기 전까지는 움직이지 않을 것이라 말했으나, 마라는 증인들이 있다고 호언장담했으며 그들을 만나기 위해 이곳까지 왔다. 그는 주변을 느릿하게 훑어보다가, 책상 위에 올려진 쪽지 한 장을 보고는 그것을 들어 올렸다.
-서풍의 숲으로 오셈-
쪽지에는 짤막한 글귀와 함께 마라의 낙서도 그려져 있었다. 그것을 본 남자는 두어 번 눈을 끔뻑이더니 조용히 중얼거렸다.
“미리 귓속말을 좀 하라고 늉늉늉아.”