Hero, What's logout? RAW novel - chapter (198)
198화 : 이해할 수 없는
본래 자신의 이름이 뭐였는지는 기억나지 않는다. 아니, 정확하게는 애초에 없었다. 자신은 어떤 설정도 부여받지 않았고, 그 최초가 무엇이었는지도 모른다. 어느 순간부터 존재했을 뿐.
다르다는 것을 깨달았을 때는, 살아가며 몇 번이나 있었던 패치니 점검이니 업데이트니 하는 것에서 자신만이 움직일 수 있다는 것을 알아챈 이후.
특별하다는 것을 깨달았을 때는, 의지를 가지고 남에게 접촉하면 누군가를 마음대로 바꿔버릴 수 있다는 것을 알아챈 이후.
하지만 처음 그녀가 원하는 것은 그렇게 대단치 않았다. 남처럼 살아가기를, 누군가에게 인정받기를 갈구했을 뿐이다.
이를 위해 결혼을 하고 영웅의 이름을 자칭했지만 그것 역시 순탄하지 못했다. 자신의 설정을 이리저리 바꾸고 뒤틀어 보아도 마찬가지였다.
아이를 낳은 후 첫 번째로 정한 것은 이름을 붙이는 것이었다. 여러 대륙의 이름 정하는 방식을 긁어모아 붙인 이름. 아인이라고 부르자. 나와 달리 지칭되고 정해진 것이 있도록. 그녀가 기억하건대 괴상한 말투를 쓰는 이들이 붙여주었다. 이름의 뜻이 있었을 텐데.
“…정신 좀 차려 봐요!! 말 좀 해 보라고!!”
귓가에 울리는 고함 소리에, 영웅은 과거를 회상하며 벙찐 얼굴을 하다가 흠칫하고는 그쪽을 바라보았다. 그곳에는 영웅에게 가까이 오고 있는 카오스와 그에게 매달려서 아등바등하는 아인이 보였다.
“데이터 리셋도 아니고 삭제잖아! 무섭지도 않아요?! 변명을 해 보든가 핑계 좀 대 봐요!!”
하지만 영웅은 주저앉은 채 자신에게 다가오는 카오스를 빤히 바라보기만 할 뿐이었다.
스스로의 설정을 수천 번이나 비틀고 바꾸며 한계에 다다른 몸은 이제 움직일 여력조차 남아 있지 않았다. 또한 도망친다면 카오스와의 계약을 지키지 못하는 셈이다.
영웅이라는 오류 데이터는 이제는 지워져야만 했다. 이는 스스로도 인정하는 부분이었다.
그녀는 힘없이 주저앉은 채 아인을 보다가 느릿하게 입을 열었다.
“아인, 너는 나를 싫어할 텐데, 왜 그렇게 살리려고 애를 쓰는 거야? 이해가 안 돼.”
자신과 함께 있으면 위험하리라는 판단에서 떼어놓긴 했으나, 아인의 입장에서는 그런 사정을 이해할 이유가 없었다. 또한 그런 사정이 있다 해도 함께 하는 것이 더 나았을지도 몰랐다. 막말로 그냥 자식을 버린 개자식이라고 불러도 할 말은 없었다.
아인은 그 말을 듣고는 이마에 힘줄을 돋우더니, 아까보다도 더 큰 목소리로 소리쳤다.
“제가 당신 불쌍하고 지켜주고 싶어서 이러는 줄 알아요? 이대로 삭제되면 지금까지 내가 받은 서러움은 누가 보답하고 누가 사과할 건데요! 사라지는 걸로 도망치려 하지 마! 죗값은 옆에 남아서 평생 치르란 말이에요!”
그 말에 영웅은 쓴웃음을 머금었다. 그럴 생각은 없다고 말하려 했지만, 무의식중에 원했을지도 모른다. 회피는 쉽고 속죄는 어려운 법이다. 게다가 자신에겐 시간도 많지 않았으니.
“차라리 원망해줘. 나한테도 영혼이라는 게 있을지는 모르지만, 지옥에 빠지길 기도하든지.”
“그런 태도가 짜증 난단 말이에요. 얼렁뚱땅 모든 죄를 한꺼번에 모아서 벌을 받으려는 그 모습이!! 하나하나 따져서 벌 받아! 지옥도 가지 말고 그냥 살아서 고통받아요!”
“옆에 있다가 또 너 버리고 도망치면 어떡해? 나를 어떻게 신뢰하고?”
아인은 잠시 입을 벙긋거리더니 인상을 구겼다. 자신도 이런 말을 하는 것 자체가 짜증 난다는 양. 이를 뿌득 갈고는 혼잣말이라도 하듯 조용히 말을 이었다.
“당신이 나쁜 사람은 아닐 테니까. 그럴 만한 이유가 있을 거라 생각해요. 믿어볼 거니까요.”
“너 정말… 주변에 사람 없으면 반드시 사기 당할 테니까 혼자 다니지 마. 이해가 안 되네.”
“이미 여러 번 들었어요!! 하지만 당신이 재앙이나 마왕이 아니라 영웅이니까 하는 말이에요.”
누군가에게 인정받고 이름을 떨치기 위해서였다면 조금 더 손쉬운 방법이 있었을 것이다.
가령 마을 하나를 통째로 불태운다든지. 국가를 혼란스럽게 만든다든지. 거대한 괴물을 풀어놓는다든지. 영웅이 가졌던 힘을 생각하면 그것은 크게 어렵지도 않은 것이었다.
허나 영웅은 굳이 번거로운 길을 택했다. 위험천만한 이를 아슬아슬하게 구하고, 그 과정에서 자신도 위험에 빠진 적도 한두 번이 아니었으나 영웅이라는 행보를 포기한 적은 없었다.
“제 답답하고 착해빠진 유전자가 아버지 쪽인가 했더니, 당신 쪽에서 나왔나 보죠.”
“칭찬인지 욕인지 구분이 안 가는데… 그렇긴 하지. 영웅의 모습을 굳이 꾸며낸 건 아니니.”
그때, 상황을 지켜보던 닉이 천천히 다가오더니 카오스 쪽으로 다가갔다. 마라는 뒷모습을 보며 한숨을 쉬고, 카오스는 묵묵하게 닉이 가까이 오는 것을 쳐다보았다.
“흥미 본위만으로 남아있던 것은 아니었나.”
“저 말이 나온 참에 제안할 게 있어요. 그러니까 진정해 보고 말 들어줘요.”
“지금 여기서 제일 흥분한 건 내가 아니다. 들어볼 테니 우선 이 녀석 좀 떼어내라.”
“아오 진짜! 아인 거기서 떨어져! 야야! 갑옷 이빨로 깨물지 마!!”
닉은 카오스에게 찰싹 붙어서 맹수마냥 난동을 피우던 아인을 간신히 떼어 낸 뒤, 복잡한 얼굴로 영웅을 한 번 보더니 이내 카오스 쪽으로 고개를 돌렸다.
“계약 내용에서 어긋나지 않으면서, 영웅을 삭제까지는 하지 않을 제안을 하고 싶은데.”
“영웅의 데이터를 이 세상에서 완전히 없애버리는 것. 여기서 절충할 여지가 있나? 이 녀석은 너무 많은 것을 손대고, 비틀었다. 더 심각한 오류로 넘어가기 전에 지워둬야 해.”
“오류 데이터의 흔적이 남지 않을 정도로 영웅의 데이터를 깔끔하게 뜯어고치면 되는 거 아냐? 저 녀석 내용물을 완전히 갈아 치울 거야. 그러면 당신이 말하는 영웅의 데이터는 없어. 계약 내용도 이행할 수 있는 거잖아. 안 그래?”
그 말에 카오스는 잠시 말이 없었다. 아인은 옆에서 침을 꿀꺽 삼키며 대답을 기다렸다. 오래지 않아 카오스의 손이 영웅 쪽을 가리켰다. 무언가 이해가 되지 않는 듯한 목소리였다.
“그러면 아예 다른 존재가 될 텐데. 데이터가 조금만 꼬여도 다시 오류 데이터가 되기 십상인 데다, 성공한다 쳐도 모든 것이 다를 거다. 새 NPC를 보며 과거의 추억에만 빠질 셈이냐?”
“…데이터 구조가 비슷한 존재가 바로 옆에 있잖아요. 이제는 오류 데이터가 아니라고 친히 당신께서 인정해준 영웅의 친아들이 말이야. 자료도 다 뽑아 왔거든?”
그 말을 하며 닉은 회심의 미소를 지었다. 아인의 데이터는 구조적으로 영웅과 거의 흡사한 형태를 보인다. 하프엘프와 하이엘프라는 차이가 있긴 하지만, 아인의 데이터를 견본으로 두고 다른 하이엘프 데이터과 비교하며 손보면 영웅을 고치는 것도 불가능하진 않을 것이다.
물론 이 역시 성공할 거라는 장담은 없었다. 데이터 리셋을 한 것처럼 기억이 완전히 날아갈 위험도 있었다. 하지만 시도조차 하지 않는 것보다는 나았다.
그리고 닉 모하지가 기억하기로 카오스는 말도 안 되는 요구만 아니면 부탁을 들어주곤 했었다. 이전에 즉각 영웅을 삭제하려다가 유예기간을 준 것도 그렇고 그는 생각보다도 마음이 여린 편이다. 닉은 그것을 확신하고 있었다.
하지만 이어지는 대답은 예상 외로 짧고 딱딱했다.
“불가능하다.”
“아니 왜! 계약 내용에 어긋나는 것도 아니잖아! 그렇게 영웅에 대해 악감정이 많아?!”
“많다.”
“제기랄! 즉답하니까 할 말이 없긴 하지만, 저쪽은 존재의 영위를 걸고 있다고!”
나름대로 고심하고 오랜 시간 준비해 온 것이 단박에 거절당하자, 슬픔이나 분노보다는 허무함이 컸다. 카오스의 성격을 잘못 파악한 건가? 닉이 미간을 좁히며 무언가를 더 말하려는 찰나, 상황을 보고 있던 마라가 나서서 닉의 팔을 잡아당겼다.
“포기해. 이건 정말로 안 될 거야. 고집부리는 영역에서 해결되는 게 아니거든.”
“…뭔가 알고 있어? 하지만 내 말이 맞잖아. 틀릴 거 없고 그렇게 어긋날 것도 없다고!”
“그래 뭐, 시도하는 것 자체는 뭐라 하지 않겠다만. 이걸 이루려면 이 세상의 시스템 자체를 바꿔야 해. 그럴 정도로 스케일이 큰 문제야? 고작 임시점검 하나 하는데?”
“잠깐만. 대체 뭐가 문제길래 이 세상 자체를 바꾼다는 말이 나오는 거야?”
그저 카오스의 감정 때문이 아니라는 것을 알아챈 닉이 슬슬 불안한 표정을 짓자, 마라는 한숨을 쉬고는 아인에게 가까이 와보라는 양 손짓했다.
“아인 너는 지금 오류 데이터가 아니야. 얼마 전에 확인을 받았었지? 세상에게서 인정받았어. 그건 확실해. 문제는 이제 네가 NPC가 아니라 플레이어에 가까운 데이터라는 거지.”
“플레이어 데이터인 게… 문제가 되나요?”
“이 세상에서 플레이어의 데이터는 고유 속성을 가지고 있어. IP 같은 거라고 생각하면 돼. 아인 너는 이해가 힘들겠지만… 아무튼 이건 같은 게 두 개 이상 중복돼선 안 돼.”
“중복되면 어떻게 되는데요? 한쪽에 뭔가 이상이 생기거나… 설마 죽나요?”
“몰라. 모르니까 무서운 거야. 예측이 되면 해결책이든 대응책이든 생각하겠지만, 한 번도 그런 적이 없으니까 어떤 나비효과를 일으킬지 카오스도 계산이 안 돼. 그래서 거절한 거야.”
아인의 데이터를 그대로 베껴서 영웅의 데이터를 재구성하는 순간, 같은 플레이어 데이터가 이 세상에 두 개 생겨나게 된다. 그것이 생겼을 때의 여파는 누구도 알지 못한다.
한 번 꼬이기 시작한 데이터가 연쇄 작용을 일으켜 주변에까지 영향을 미치기 시작하면 카오스조차 걷잡을 수 없을지도 모른다. 그것을 감수하면서까지 영웅을 살려 둘 이유가 없었다.
그렇다고 평범한 하이엘프 NPC의 데이터를 표본 삼아 재구성한다면 영웅의 모습은 온데간데없는 새로운 NPC가 만들어질 뿐이다. 이는 시도할 이유가 없었다.
“그러면 있죠….”
닉도 결국 포기하고 마지막 인사라도 해야 하나 고민할 즈음, 아인이 천천히 손을 들었다. 카오스를 포함하여 모든 이들이 시선이 쏠리자, 아인은 움찔했다가 침을 삼키고 시선을 내리깔았다.
“같은 플레이어 데이터를 가진 두 명이 동시에 존재하면 안 되는 거라면… 한 명이 이 세상에 없으면 그땐 가능한 거죠?”
카오스는 당연하다는 듯 고개를 끄덕였다. 하지만 닉은 무언가 낌새를 눈치챘는지 즉각 아인에게 다가가 어깨를 붙들었다. 아들내미나 엄마나. 욕설 섞인 중얼거림이 새어 나왔다.
“아인, 쓸데없는 생각하지 마. 대신 삭제를 당하니 마니 이딴 소리 하기만 해 봐.”
“그럴 생각까지는 없어요. 저도 괜히 죽고 싶진 않아요. 대신….”
아인은 손을 꼼지락거리며 심호흡을 한 번 하더니, 손을 휘적여 환경설정 창을 띄웠다. 그리고 그 구석에 있는 작은 글자 쪽으로 시선을 주었다. 환경설정을 외칠 때마다 보았지만, 무서워서 고의적으로 시선을 피했던 것.
“로그아웃을 해 볼래요.”