Hero, What's logout? RAW novel - chapter (25)
25화 : 살아갈 이들
“그게… 무슨 소리지?”
“너흰 그냥 데이터 쪼가리인데 왜 진짜 살아있는 것처럼 구냐고. 갑자기 자기들끼리 출생의 비밀 찍고 있어서 당황스럽잖아.”
실리본은 순간적으로 자신이 잘못 들었거나, 용사가 다른 의미를 내포하고 의미심장한 말을 한 것인지 생각했다.
하지만 예리한 엘프의 귀는 한 글자도 빠짐없이 들었고. 용사는 복잡한 말을 하는 성격이 아니었다.
그야 이렇게 살아있지 않은가.
설마 협박인가 싶어 눈을 가늘게 뜨고 마나를 끌어올렸지만, 살기가 느껴지지도 않았다.
용사, 닉 모하지는 진심으로 자신들에게 의문을 품고 있는 것이다. 왜 살아있는 것처럼 말하냐며.
“솔직히 기분이 좋진 않군. 카오스의 조각들은 모두 그런 식인가?”
“뭐가?”
“불멸의 존재라는 것은 익히 알고는 있지만. 그렇다고 우리의 삶을 폄하할 자격을 가질 정도로 대단한가?”
실리본의 말을 들은 용사는, 제 옆머리를 손가락에 감아 배배 꼬다가 떨떠름한 얼굴로 입을 열었다.
“아니. 그게… 그야 그렇지? 우린 PC고 너흰 NPC잖아.”
“엔피시라는 것이 그런 뜻이었군. 이 세상은, 어떤 성향이든 어떤 삶을 살든 너희와 너희가 아닌 것으로 구분된다 이 말인가?”
“학자 타입 정말 싫증난다. 자꾸 물어보고 자기혼자 고개 끄덕이고.”
“한 가지만 더 물어보고 싶은데.”
“싫어!! 말 안 해!”
닉은 침음을 흘리며 마른세수를 하다가, 진이 빠진 얼굴로 실리본을 돌아보았다.
“여기서 로그아웃 하고 좀 있다가 와도 돼?”
“오래 있다가 와도 문제될 것은 없다.”
“접진 않을 거고… 오픈베타 한지 얼마 안돼서 복귀유저 혜택도 없단 말이야. 아무튼 아인 찾으면 여기 있다고 말해줘. 그리고 나 로그인 했을 때 얘기 좀 하자고도 전해주고.”
닉은 거기까지만 말한 뒤 방의 벽에 기대서더니 로그아웃을 했다.
실리본은 실이 끊어진 인형처럼 풀썩 주저앉는 닉을 뒷짐을 진 채 바라보다가, 물어보지 못한 마지막 질문을 읊조렸다.
“그러면, 우리와 이 세상은 대체 뭐란 말이냐.”
그는 자신이 살아온 세월과, 그간 있었던 모든 사건 사고를 모두 어제 일처럼 또렷하게 기억하고 있었다.
용사는 무엇을 말하고 싶은 것인가. 왜 우리가 살아있지 않은 것처럼 말하는가.
학자이고 연구자이기도 한 그는 이전에 빛과 어둠의 정령 소환술을 강행했을 때처럼 탐구심이 들끓는 듯했으나, 동시에 그때와는 비교도 되지 않는 공포가 몰려들었다.
이것을 밝혀내는 순간 무언가를 돌이킬 수 없을 것 같다고. 근거도 없는 가설이지만 실리본은 확신할 수 있었다.
“…어쩌면, 네가 열쇠가 될지도 모르겠다.”
실리본은 문가 쪽으로 시선을 돌렸다. 살기어린 공격을 탐지하면 전이가 되는 마법으로 인해 아인과 에르는 방 밖으로 쫓겨났으나, 굳이 탐지마법을 쓰지 않아도 마나가 느껴지는 것으로 봐서 둘은 문 바로 앞에 있다는 것을 알 수 있었다.
이 안에서 하는 이야기는 방음처리로 인해 밖으로 새어나가지 않기에, 방금 닉이 하는 말은 아인이 듣지 못했을 것이다. 그것은 모두에게 다행인 일이었다.
***
김유리는 그 자리에서 로그아웃을 한 뒤, 캡슐을 열었다.
하지만 캡슐을 열고도 한동안 밖으로 나오진 않았다. 지친 한숨이 좁은 집 안에 퍼졌다.
의미 없이 캡슐 뚜껑을 열었다가 닫고. 다시 숨을 두세 번 깊게 쉬었다가, 느릿하게 캡슐 안에서 나왔다.
찝찝한 여운이 가시질 않았다. 당분간은 무엇을 해도 이 기분이 씻겨 내려가진 않을 듯했다.
“아… 기분 존나 이상해. 필터링 안 되는 것도 익숙하질 않아서 더 이상해. 나도 모르게 과몰입하고 있었나?”
김유리는 머리를 벅벅 긁었다. 이윽고 그 자리에서 핸드폰을 열고 머리를 비우기 위해 동영상 사이트에 접속했다.
근래에 본 것이 가상현실게임 ‘카오스’에 관련한 것밖에 없는지라. 알고리즘은 관련 동영상만을 추천해주고 있었다.
빠르게 레벨 업 하는 장소. 히든 사명. 근래 발생한 메인 퀘스트 등등.
이미 비슷하게 본 것들이 대부분인지라 대충 제목만 보고 훑던 도중, 김유리의 눈에 한 동영상이 눈에 들어왔다.
개발진과의 인터뷰. 제목은 ‘가상현실에서 오류가 난다면?’ 으로 어그로성이 짙었지만, 클릭할 수밖에 없었다.
내용은 예상대로 뻔했다. 사례는 일부 그래픽이 웃긴 모습으로 깨지거나 사소한 버그 몇 가지를 보여주는 것으로 끝난다.
개발진 및 운영진은 오류가 나지 않도록 모든 직원들이 최선을 다할 것이며, 가상현실에서의 오류로 현실의 몸에 영향을 끼치는 일은 없을 테니 안심해 달라는 류의 말을 하는 정도.
욕설을 뱉으며 동영상을 끄려는 차에, 개발진 중 한 명의 답변이 김유리의 귀에 들어갔다.
“뿐만 아니라, 카오스 내부를 총괄하는 인공지능은 오픈베타 이전부터 초단위로 세계를 점검하며 지금 이 순간에도 스스로 오류들을 고쳐나가고 있습니다. 카오스라는 세상의 유지와 스토리 진행에 문제가 없는 방향으로 말이죠.”
인터뷰는 그것으로 종료되었다. 김유리는 동영상이 종료되고 새로고침 표시가 뜨는 화면을 멀거니 쳐다보았다.
‘오류를 고쳐나가는 방식이란 건 어떤 거야.’
‘진짜로 과몰입충이 돼서 예민 반응을 하는 건가?’
‘사실 저 엔피시들이 무슨 짓을 하든 그냥 트레일러나 이벤트 보듯 감상했으면 됐을 일인데. 괜한 말을 해선.’
‘그냥 컴퓨터로 하는 투디겜에서 같은 소리 하면 별 생각 안 났을텐데. 몰입이 쉬운 가상현실 게임이라 그런 것뿐이겠지.’
생각이 깊어지던 중, 김유리의 손에서 힘이 풀려 핸드폰이 얼굴을 치고 바닥에 엎어진다.
“악! 시발.”
얼굴에 닿으며 몇 번 아무렇게나 터치가 되었는지, 엎어진 핸드폰에선 새로운 동영상이 재생되고 소리가 흘러나왔다.
“-즉, 인공지능으로 만들어져 자아를 가지고 있는 카오스의 엔피시들은….”
말은 채 이어지기도 전에, 핸드폰을 주워들고 동영상을 중지시킨 김유리에 의해 끊겨버렸다.
아예 동영상 사이트 자체를 꺼버린 그는, 사놓고 남은 인스턴트식품을 데워먹기 위해 자리에서 일어났다.
“현타 온다….”
사명도 용사라는 애매한 것을 얻었는데, 그냥 이대로 캐릭터를 삭제하고 새로운 곳에서 시작할까 하는 마음도 있었다.
하지만 지금까지 들인 돈이나 시간도 적지 않았다. 그렇다고 지금 들어가서 불편한 상황과 맞닥뜨리는 것도 싫다.
자신은 그냥 적당히 게임을 즐기려고 하는 것뿐인데 왜 이런 고민을 하게 되는 건지.
하드 유저와 라이트 유저 사이 그 어디쯤에 걸쳐진 애매한 몰입감이 스스로를 더 괴롭게 만드는 것 같았다.
“번지수 잘못 찾았어.”
김유리는 뚱한 얼굴로 중얼거리며 인스턴트식품에 포크를 쿡 찍어 입 속에 집어넣었다.
자신은 그냥 평범한 대학생에 평범한 겜창일 뿐이다.
인공지능이니 캐릭터의 자아니 그런 것들에 대해 생각하는 시간보다는 당장의 전공 과제가 더 급한 사람.
캐릭터 삭제는 하지 않기로 했다. 대신 앞으로는 모든 것을 가볍게 여길 생각이었다.
엔피시는 그냥 게임 데이터. 나는 게임 즐기러 온 플레이어.
그거면 됐다. 이 당연한 문장을 결정하는 데에 무슨 고민을 그렇게 오래 한 건지. 김유리는 남은 인스턴트식품을 입 속에 털어 넣은 뒤 밖으로 나갔다.
잠시 바람을 쐬고 다시 접속하면 아무 일 없을 것이다. 당분간 캐릭터 육성에나 전념해야겠다는 생각을 하며, 김유리는 다시 핸드폰을 키고 카오스의 공략 영상들을 훑어보았다.
***
살기를 띄며 실리본에게 주먹을 내지르려 하는 순간, 아인은 순간 정신을 잃고는 밖으로 나와졌다는 사실을 뒤늦게 깨달았다.
전이의 여파인지 몇 발자국을 움직이는 것도 힘들었다. 조금 걷나 싶다가도 다리가 풀려 문 바로 앞에 주저앉았다.
당장이라도 문을 열고 다시금 달려들고 싶었지만, 이젠 몸뿐만 아니라 마음도 천천히 꺾여가고 있었다.
정기점검 당시에 몸이 완전히 멈추지 않았을 때에 알아챘어야 했는데.
차라리 그때 지엠에게 걸려서 삭제됐으면 이렇게 힘들진 않았을까. 하는 생각을 했다.
“아인. 이상한 생각하진 마.”
“으음… 미안해요 에르.”
아인의 기분이 점점 가라앉는 것을 느낀 에르가, 등 뒤에서 검은색 날개를 펼치더니 주변을 감쌌다.
아인의 눈앞에 새까맣게 암전되었다. 세상에 저와 에르 밖에 남지 않은 것처럼 공간이 그림자로 덮였다.
이전에도 사용한 적이 있는 어둠의 정령의 능력. 그때는 마냥 무섭기만 했지만, 지금은 오히려 안락하다는 느낌이 들었다.
에르는 낮게 가라앉은 검은색 눈을 깜빡이다가, 쪼그려 앉아 아인과 눈을 마주쳤다.
“그냥 살아가면 돼.”
아인은 이전에 에르에게 했던 말을 그대로 돌려받자, 쓴웃음을 지으며 고개를 끄덕였다.
사실 생각해보면 그렇게 충격 받을 만한 일도 아니지 않을까.
하프엘프로 태어나 존재가 틀렸다는 이유를 그렇게나 많이 들어왔는데. 이제와 틀린 존재라는 말을 들어도 익숙하다고 볼 수도 있었다.
“…그래도.”
아인은 무릎을 모아 그 사이에 얼굴을 푹 묻었다. 낮고 길게 숨을 뱉었다. 열 오른 숨은 피부를 뜨겁게 만들었다.
“인정받고 싶었어요.”
익숙하다고 아프지 않은 것은 아니었다.
수없이 아파왔기에 이제 슬슬 아프지 않아도 되지 않을까. 라는 기대감을 품기 시작했다. 나아가 행복을 꿈꿔도 되지 않을까 라는 소망도.
네가 있어서 다행이라든지. 아니면 무언가를 잘 해내주었다든지 라는 말로도 족했다.
아인은 얼굴을 쓸어내렸다. 시야도 소리도 차단된 어두운 공간 속. 눈물은 흘리지 않았지만 계속되는 상념에 시간이 얼마나 흘렀는지도 알 수가 없었다.
아인이 고개를 들어 에르를 보니, 그는 변함없이 덤덤한 얼굴로 앞에 앉아 있었다.
“고마워요 에르… 얼마나 이렇게 멍하니 있었던 거지.”
“고개를 숙인 다음 드는 시점까지 정확하게 한 시간 사십팔분 이십이초.”
“…와중에 애매하게 긴 시간이네요!”
일단은 여기서 마냥 푸념만 하고 있을 수는 없었다. 담판을 짓든 차후에 사과를 약속받든 무언가를 얻어가야 직성이 풀릴 것 같았다.
틀린 존재가 뭐 어때서! 아인은 닉처럼 좀 뻔뻔해지기로 결심했다. 아무리 생각해도 자신이 생각하기엔 오류 데이터니 뭐니보단 카오스의 조각이 훨씬 더 이상했다. 그런 이들도 멀쩡하게 활개 치는데 자신이라고 못할 것이 무엇인가.
“그럼 다시 들어갈까요. 들여보내줄지는 모르겠지만. 일단 방금처럼 실리본을 바로 공격하는 건 금물….”
그때였다.
아인이 실리본의 방문을 두드리려는 순간. 그의 눈앞에 검은 양피지처럼 생긴 무언가가 슥 떠올랐다.
[@^*znpfr?스트 발생]“…어?”
[ 퀘스xm명 : ▨▒의 증명내용 : 자신이 xmffls 존재가 아니라는 것을 입증하고, tkfdkdlTdma을 인정받으시오.
제한 조건 : 오류 데이터일 것. 삭제 시 퀘스트 실패.
기간 : 지명 받은 이가 당신을 완전히 부정하기 전까지
보상 : ???
실패 시 : 데이터 삭제 ]