Hero, What's logout? RAW novel - chapter (46)
46화 : 간절함의 차이
그 순간은 아무도 움직일 수 없었다.
페리스는 날카롭게 눈을 치켜뜬 채 가트를 노려보았고, 가트는 한 손으로 검을 쥔 팔을 잡고 힘을 주었다.
콰득.
두 사람이 서 있던 나무 바닥이 음푹 파이고, 근처에 날카로운 기가 흩뿌려지기 시작했다.
[공포 상태에 빠집니다.]그들을 지켜보는 여관 주민들은 물론이고, 내로라하는 실력자들조차 식은땀이 흐를 정도로 중압감이 일었다.
자칫 그들과 싸울 수도 있겠다고 생각한 것인지, 옆에서 침만 삼키던 닉은 자신의 스탯이 기하급수적으로 상승하는 것을 보며 헛웃음을 흘렸다.
얼마 전에 만났던 어비스 나이트는 가볍게 상회할 정도. 아네모이를 제외하면 지금까지 보아 왔던 어떤 상대보다도 스탯이 높아지고 있었다.
순간순간이 억겁과도 같았고, 일 분이 지났는지 한 시간이 지났는지도 알 수 없는 순간이 지날 무렵 페리스가 짧게 한숨을 쉬었다.
“…정말로 가트 맞냐?”
“네 정신 상태부터 물어봐야 할 것 같은데.”
“멀쩡해.”
“그러면 네가 판단하면 되겠지.”
가트의 말에 페리스는 한참을 노려보다가 이내 한숨을 탁 뱉고 검을 집어넣었다.
동시에 일대를 휘감던 불길함이 누그러들었다. 당장이라도 압사할 것 같은 공기가 언제 그랬냐는 듯 가볍다.
“헤르도아의 주술에 잠식됐다고 들었어. 움직일 수는 있나?”
“당장은. 시간이 지나면 장담은 못 하겠군.”
“네가 그렇게 말할 정도면 보통 독한 놈이 아닌가 본데.”
“나를 아는 것처럼 얘기했다. 잘 기억은 나지 않지만.”
“네가 으깬 헤르도아 사제가 한둘이어야지. 아무튼 꽤 미움을 샀나 봐. 이래서 사람은 착하게 살아야 한다니까.”
페리스는 혀를 차고는 아인을 돌아보았다.
“후방에만 있으라고 했잖아.”
“죄송해요. 정말로 죄송해요….”
내가 나서지 않았다면 가트는 이런 일을 당하지 않았을지도 모른다.
그 생각을 하자, 아인은 죄책감에 눈물이 핑 돌았다. 이제야 조금씩 성장을 하면서 믿음직한 모습을 보여 주나 싶었는데.
이대로는 가트를 볼 면목조차 없을 것 같다는 생각에 고개를 푹 숙이자, 페리스는 한숨을 쉰 후 아인의 머리를 양손으로 감싸 꾹 눌렀다.
“너 탓 하는 거 아니야. 너까지 휩쓸릴까 봐 무서워서 그랬다.”
“… 하지만 제가 잘못한 건 맞….”
“결국 활약한 건 사실이고. 가트도 너 못 믿고 멋대로 달려든 거야. 따지고 들면 한도 끝도 없다.”
손가락을 빙빙 돌리며 아인을 안심시키려던 페리스는 손을 딱 멈추더니 눈을 가늘게 떴다.
“아니다. 끝 있네. 결국 가장 큰 원인은 헤르도아니까.”
다시금 아까와 같은 살기가 피어오르려는 차에, 이번엔 아인이 옷자락을 잡아당겨 간신히 페리스를 말릴 수 있었다.
“지금은 부길드장님을 다시 멀쩡한 상태로 치료할 방법부터 생각해야 할 것 같아요.”
“알았어. 그런데 어차피 되돌릴 방법이라 해 봐야 뻔하잖아.”
“그건 그런데….”
주술을 건 당사자 혹은 헤르도아의 주술에 해박한 고위 사제를 데려오는 것. 하지만 말이 쉽지 일반인들에겐 사실상 불가능에 가까운 일이다.
거대한 세력을 가진 헤르도아의 사제 중에서 주술을 건 이를 찾으려면 한 세월이 걸릴 터. 그렇다고 고위 사제를 데려오는 것도 쉽지 않다.
전장에서 보았던 데스 나이트나 어비스 나이트, 그 외 수많은 고위 언데드들을 뚫고 주요 거점지를 돌파해야 가능한 일.
때문에 헤르도아의 주술에 잠식된 일반인들은 고통을 견디지 못하고 죽음을 택하거나 스스로 헤르도아에 귀의하여 고위 사제에게 치료를 부탁하는 경우가 대부분이다.
“물론 가트가 귀의하는 경우는 없을 거다. 자의로든 타의로든 말이다.”
“당연하죠. 저희가 어떻게든 해 볼게요. 고위 사제를 데려와서라도.”
“말이 쉽지. 위치는 알고 있는 거야? …됐다. 여기 있는 용병이나 아는 정보상들에게 물어보고 올 테니 기다려. 가트, 따라와.”
페리스와 가트가 정보를 얻기 위해 여관에서 나가자, 사하바티가 길게 침음을 흘리더니 제 쪽을 가리켰다.
“있지. 방금 말한 것들, 우리가 도움을 줄 수 있을 것 같아.”
“네? 어떻게요?”
“전장에서, 사제 하나를 잡았거든.”
그 말에, 아인은 가트를 잡고 도주하던 중 이후프가 ‘소기의 목적은 달성했다.’라고 말한 것을 깨달았다. 그게 헤르도아의 사제를 말한 것이었을까.
사하바티의 말에, 라칼의 눈매가 치켜 올라갔다가 이내 포기했는지 쑥 내려갔다.
“그걸 벌써… 됐다. 어차피 이런 곳에 쓸 생각이었으니.”
사하바티는 라칼의 말에 부드럽게 웃더니, 나무줄기로 엮어 놓은 덩어리를 등에서 내려놓았다.
진한, 혹은 역하게도 느껴질 고기 냄새가 풍겨 왔으며, 아인은 묘하게 불안한 느낌이 일었다.
‘서, 설마 저기에 시체를 그대로 싸 온 건 아니겠죠.’
이윽고 나무줄기가 하나둘씩 풀리며 냄새는 더욱 강해졌고, 오래지 않아 완전히 드러난 안쪽에서 보인 것은….
바짝 마른 고깃덩어리.
“으아아아아악!!!”
“아. 이건, 파벨 왕국의 특산품인 발효 돼지고기.”
“놀랐잖아요! 드라이어드라 돼지고기 드시지도 않을 거면서!”
“우리 늑대가, 좋아해.”
“도, 동료애… 그나저나 왜 그걸 쭉 메고 다니신 거예요?!”
“나무 냄새가 배면, 풍미가 좋아.”
“진짜 미치겠어.”
꼬박꼬박 정성스러운 대답은 해 주니 뭐라 하진 못하겠고. 아인은 얼굴을 쓸어내리곤 사하바티의 등에 있는 또 다른 덩어리를 가리켰다.
“그거예요? 빨리 보여 주세요. 물어볼 게 많아요. 설마 발효된 사람이 된 건 아니겠죠?”
“음….”
“농담이에요. 농담이라고요! 농담이었다고요!!”
사하바티는 알 듯 말 듯한 얼굴로 나머지 하나를 바닥에 내려놓고 천천히 풀었다.
그곳엔 사하바티의 줄기에 대부분의 생기를 뺏겨 버려 비쩍 마른 남자 한 명이 무표정으로 누워 있었다.
수더분하게 흩어진 검은 머리카락에 몸도 초췌하나, 붉은 눈빛만은 별다른 고통을 느끼지 못하는 것처럼 또렷했다.
헤르도아의 사제도 설정 프로그램 변경을 통해 더 확실히 알 수 있을까. 아인은 그런 생각을 하며 나무줄기를 풀다가 그와 손이 스쳐 버렸고, 그 순간 상태창 하나가 눈앞에 나타났다.
[PC의 설정 프로그램을 변경할 권한이 충족되지 않았습니다.]‘이 사제, 일반적인 사제가 아니라 카오스의 조각이잖아?!’
“이, 이 사람…!”
“왜 그래?”
“그놈이 허튼짓이라도 했나?”
순간적으로 놀라 소리를 낸 아인은 식은땀을 흘렸다.
외양만으로는 PC와 NPC를 정확하게 구분할 수 있는 능력이 존재하지 않는다.
때문에 카오스의 조각인지 어떻게 알아냈냐고 추궁이라도 들어올 시, 자칫 자신의 ‘설정 프로그램 변경’이 다른 사람들에게도 들킬 수 있다. 그러면 끝없이 귀찮아질 것이 뻔했다.
아니, 귀찮아지는 정도가 아닐 것이다.
순간적으로 머리를 부리나케 굴린 아인은, 눈이 빙글빙글 도는 것 같은 심정으로 팔을 벌리며 일행들을 돌아보았다.
“이 사람한테 너무 심하게 대하진 마세요! 똑같은 사람이니까…!”
“…뭐? 헤르도아에게 동정심을 품는 거냐? 아까 전장에서 뭘 본 거지?”
너무나 원론적인 대답에 라칼의 얼굴이 험하게 일그러졌다.
하필 대답을 해도, 헤르도아에게 커다란 상처를 받은 이를 상대로 말해 버렸다.
아인은 뒤늦게 실수를 깨닫고 눈을 질끈 감아 버렸다.
사과를 해야 할까 말을 돌릴까 고민하던 차에, 뒤에서 남자를 빤히 보던 닉이 고개를 갸우뚱하더니 헛웃음을 흘렸다.
그도 남자가 자신과 같은 플레이어임을 눈치챈 것이다.
사실 이상할 것은 없다. 서풍의 숲에서부터 플레이어로 존재하는 헤르도아의 사제는 이미 봤었으니까.
다만 그는 플레이어이기에, 고문이나 협박 같은 것은 절대로 통하지 않는다는 것이 문제였다.
닉은 아인을 노려보는 라칼을 톡톡 건드리고는, 남자를 턱짓으로 가리켰다.
“똑같은 사람 아냐. 얘한테는 원하는 대로 안 될걸.”
“흥. 광신도라서? 몸에 칼이 박히고도 같은 말을 할 수 있을까? 고통은 똑같을 텐데.”
라칼은 당장이라도 포를 떠 버리고 싶다는 얼굴로 그르릉거리며 남자를 바라보았다. 그러자 지금까지 내내 입을 다물고 있던 그는 처음으로 입을 열었다.
“안 똑같아.”
“뭐?”
“통각 0으로 하면 아무리 주먹으로 쳐도 그냥 문지르는 느낌이야. 망치로 손을 부숴도 가볍게 마사지해 주는 정도일걸.”
“너 이 자식… 카오스의 조각이었나! 헤르도아엔 왜 있는 거야!”
“안 될 이유는 뭐야. 재밌어 보이길래 들어온 건데.”
‘재밌어 보이길래’라는 말에 아인이 움찔했다가 다시 시선을 내리깔았다.
저들은 원래 저런 이들이다.
대륙 최고의 성자도, 마계를 이끄는 마왕이 될 수도 있는 존재.
단지 유흥을 위해 이 세계에 강림한 신의 조각. 그 태생부터 이해할 수 없는 자.
“젠장, 하필 잡아도 이런 녀석을 고르다니.”
라칼이 짜증을 내며 이빨을 드러내자, 닉은 손가락에 머리카락을 감아 배배 꼬다가 앞으로 나섰다.
“오히려 잘된 걸 수도 있어. 내가 해 볼게.”
“용사님…!”
답지 않게 당당히 앞으로 나서는 모습에, 아인은 놀라는 동시에 기대감이 차올랐다.
이전에도 다른 PC와 마주한 적은 몇 번 있었지만, 이렇게 정면으로 적대하게 되는 경우는 처음이었다.
‘어떤 식으로 정보를 알아내실까? 환경설정을 이용한 특수한 정보계 마법 같은 거라도 있을까? 서로 심리전이 오가는 가운데 엄청난 말솜씨로 쥐락펴락할까? 그들만이 아는 정보를 이용해 협박이라도 할까?’
작게 소곤거리는 목소리로 말하고 있었기에 다른 이들에게는 들리지 않았을지도 모르지만, 아인은 눈을 감고 집중해 특유의 예민한 청각으로 대화 내용을 들을 수 있었다.
“헤르도아 진영 별로 안 좋아 보이는데 그냥 캐삭하고 다시 하시죠.”
“그럴까요…. 안 그래도 요즘에 후회하는 중이긴 했어요.”
“잘됐네. 어차피 잡힌 이상 돌아가도 평판작 해 놓은 거 개망했을 거예요. 좋은 게 좋은 거라고 초기화하기 전에 그냥 정보 알려 주고 손절 치면 안 될까요.”
“평판작 얘기 들으니까 더 의욕 떨어지네. 알겠어요. 제가 있는 곳은 종언의 광야? 거기에서 더 밑으로 내려간 곳에 있었거든요. 어디냐면….”
아인은 이야기를 들으며 기분이 멍해졌다.
정보계 마법도, 엄청난 기 싸움이나 말솜씨는 물론 협박도 없었다.
생각보다도 굉장히 수월한 진행. 보통이라면 알아내기까지 수년이 걸렸을지도 모르는 정보를 순식간에 알아냈다.
거기에 도달하기까지 폭력이라곤 조금도 없이 아주 예의 바르고 원활하게.
마치 일상적인 대화를 하듯. 남자의 목소리에서 귀찮음이 뚝뚝 묻어나올 정도로.
자신의 목숨마저 아무렇지 않게 여기며 절대적인 복종을 약속하는 헤르도아의 광신도들과는 상반되는 모습.
저번 서풍의 숲에서도 비슷한 풍경이 나왔다지만, 저런 고급 정보까지 알고 있으려면 헤르도아에서도 꽤 높은 자리에 위치해 있을 텐데.
‘저래도 되는 건가? 소속해 있는 곳에 대한 애정이나 충성은 보이지도 않네.’
“정보 얻어 왔어. 고위직이 모여 있는 장소가 있다는데. 종언의 광야라는 곳인데….”
닉이 돌아와 얻은 정보를 얘기해 주는데도 아인은 그다지 기쁘다는 생각이 들질 않았다.
어쩌면 우리 측에서 헤르도아에게 서슴없이 정보를 알려 주는 이들도 있을지도.
그 생각을 하는 순간, 아인은 머리가 차가워지며 섬뜩해지는 기분이 들었다.
“그래서 그쪽에 있는 관문 몇 개를 통과하면… 으악! 아인 너 왜 그래?”
“그, 그냥 너무 잘하셔서 감격해 가지고….”
아인은 저도 모르게 닉의 손을 꽉 잡고 눈을 굴렸다.
생명이니 증명이니 하기 전에, 떠나지 않을 이유도 만들어야 한다는 생각이 들었다.
지금까지 항상 옆에 있어 와서 깨닫지 못했지만, 자신의 정체를 모조리 까발리고 어디론가 사라진다 해도 닉은 그닥 아쉬울 것도 없을 테니까.
닉이 영문을 모르겠다는 얼굴로 눈을 깜빡일 무렵, 대화를 듣던 이후프가 턱 부근을 매만지며 고개를 기울였다.
“그런데 그 정보. 확실한 건가요?”
“응?”
“너무 순순히 말해줘서요. 거짓말일 가능성도 염두해야 하지 않을까 싶네요.”
이목구비 하나 없는 이후프였지만, 머리에 울리는 듯한 목소리는 평소보다도 차갑게 가라앉아있었다.
언제나 차분하고 예의 바른 그조차, 헤르도아를 앞에 두고는 평정심을 유지하기가 어려웠던 것.
예상했던 질문이었는지, 닉은 고개를 끄덕이더니 턱짓으로 멀찌감치 떨어져 있는 에르를 가리켰다.
“안 그래도 물어보려 했어. 아까부터 계속 보고 있었잖아. 에르, 쟤 거짓말한 적 있어?”
“없어.”
상대방의 감정과 진의를 알아채는 정령의 능력은 NPC와 PC를 가리지 않는다. 에르가 고개를 젓자, 닉은 시원스레 웃음을 흘리곤 헤르도아의 사제에게 꾸벅 인사를 했다.
“그럼 됐네. 가세요.”
“아 혹시 친추하고 싸인 하나만 부탁드려도 될까요?”
“친추랑 싸인이요?”
“그쪽하고 옆에 있는 NPC. 요즘 핫클립으로 자주 뜨거든요. 유명인이에요.”
“예상은 했지만…”
그 말에 닉은 얼굴을 두 손으로 쓸어내렸다.
시간이 지날수록 사람들의 주목을 받고 귀찮은 일에 더욱 휘말릴 거란 생각에 짜증이 솟구쳤다.
“늉늉.”
“친추랑 싸인은 정보 알려 준 값이라 쳐 주세요. 당신 아니면 이것저것 뜯어냈을 테니까.”
“살면서 한 싸인이라곤 오만 원 넘는 카드 결제 빼고 없는데. 잠깐 기다리세요.”
닉은 한숨을 쉬며 몇 번 화면을 조작한 뒤 그와 친구추가를 맺었고, 종이와 펜을 구하러 잠시 자리를 비웠다.
그사이 팔짱을 끼고 상황을 보던 라칼이 남자에게 다가왔고, 남자는 고개를 들어 올려 마주 보았다. 얼굴은 여전히 담담했다.
“나 잡은 애구나. 백스토리가 꽤 심각한 NPC인데 미안하게 됐네.”
“카오스의 조각들은 다 너 같은 것밖에 없나?”
“설마. 시간이고 돈이고 다 매몰시키는 바람에 진짜 광신도보다 심한 애들 많아. 난 그런 것들이 별로 안 아까워서 그런 거고.”
그는 짧게 웃음소리를 내더니, 사인된 종이를 가지고 오는 닉을 힐끔 보고 혼잣말처럼 중얼거렸다.
“NPC하고 우리의 대표적인 차이는 간절함이라 보거든. 그게 충족되면 둘이 다를 것도 없어. 이렇게 말해도 너는 이해 못 하겠지만.”
남자는 어깨를 으쓱한 뒤 닉에게서 공손하게 사인을 받았다.
“늑대분이 절 되게 싫어하는데. 원하시면 제 몸으로 퍼즐놀이나 할래요? 죽기 전까지 로그아웃은 안 할게.”
“캡슐 안에서 토하긴 싫어서요.”
“너 같은 놈을 죽여 봤자 기분만 나빠진다. 당장 꺼져.”
씹어 뱉는 듯한 라칼의 말에 남자는 의뭉스러운 웃음소리를 흘렸고, 손을 살랑살랑 흔들다가 깜빡한 것이 있다는 듯 눈을 크게 떴다.
“아참. 미처 말 못 한 게 있는데….”
그는 모든 이들을 한 번씩 죽 훑었다. 라칼과 이후프, 사하바티, 아인과 닉, 에르까지.
그러곤 얇게 눈웃음을 지으며 검지를 치켜올리고, 짧은 문장을 덧붙였다.
“이 상태로 가면 전부 다 죽을 거예요?”
“뭐…?”
“아하하. 힘내세요. 로그아웃. 확인.”
무언가를 물어보기도 전에 남자는 이내 순식간에 사라져 버리고, 그 위로 에르의 담담한 목소리가 깔렸다.
“저것도 거짓말 아니야.”