Hero, What's logout? RAW novel - chapter (47)
47화 : BUS KNIGHT
“설마 가트 님이 당하실 거라곤 생각지도 못했습니다. 저희 쪽도 최대한 정령사나 그 방면에 특화된 성직자들을 찾아보겠습니다.”
“고마워. 그리고 이번에 부활한 헤르도아에 대해 잘 알 법한 이들이 왔다면 알려 줘. 대륙 전쟁에 참여한 이들이라면 더욱 좋고.”
“아시다시피 유명한 분들은 대부분 잠적을 하신 데다, 현역에서 뛰고 계신 분들도 다른 곳으로 불려 나갔다고 알고 있습니다.”
“쳇. 그러면 최우선은 주술을 억제하는 사람들을 찾는 것에 주력해 줘.”
“알겠습니다.”
“하아…. 큰소리 뻥뻥 치고 나왔는데 건진 게 별로 없네.”
대륙 전쟁 당시 영웅으로 알려져 있던 자신과 가트가 직접 나섰는데도 도통 정보를 캐는 데에 진전이 없었다.
헤르도아에 대한 기밀은 물어본다고 바로 줄 정도의 값싼 정보는 아니었으나, 물어보는 상대에 따라 꽤 쉽게 얻는 경우도 있었다.
‘이 정도면 정말로 없는 거라고 봐야 하나. 아니면 나하고 가트의 위상이 좀 떨어졌거나.’
페리스는 한숨을 쉬며 옆에서 같이 걷는 가트를 힐끔 돌아보았다.
오랜 시간이 지나며 헤르도아의 술식에 대해서도 어느 정도 파훼가 이루어진 지금, 치료는 못 하더라도 그 속도를 최대한 늦추는 방법에 대해서는 꽤 많은 진전이 이루어졌다.
더욱이 몸의 내구성과 면역에 대해서는 타의 추종을 불허하는 가트인 만큼, 마법과 함께 몸을 잠식하는 주술을 막는 데에만 집중한다면 오랜 시간을 버틸 수 있을 것이다.
하지만 주술을 건 이를 찾는 것이나, 고위 사제를 찾는 것이나 절대로 쉬운 것이 아니다.
자칫 정보 하나를 얻는 데만 몇 년이 걸릴 수도 있는 일. 중간에 갑작스레 증상이 악화될 우려도 있었다.
“얼마나 버틸 수 있겠어?”
“장담 못 하겠군. 몇 주일지 몇 달일지 1년일지.”
“빌어먹을.”
차라리 나 혼자라도 지금 온 대륙을 뒤져 봐야 하나. 페리스가 지끈거리는 이마를 감싸고 여관으로 돌아왔을 무렵-.
“그 자식이 우리에 대해 뭘 알고 이기니 지니 죽느니 마느니 결정한단 말이냐!”
“앗, 오셨어요 길드장님, 부길드장님! 다른 게 아니라 지금, 으아악! 날뛰지 마세요!”
난장판이 펼쳐져 있었다.
허공에 대고 고래고래 소리를 지르는 라칼과 그를 말리는 이후프. 몇 발자국 떨어져 그저 온화한 미소로 보고 있는 사하바티. 안절부절못하는 아인. 포기한 얼굴의 닉과 아인만 보고 있는 에르.
대체 무슨 일이 있었던 건지. 페리스는 이마가 더 지끈거리기 시작했다.
“다들 가만히 있어!!”
거대한 목소리가 여관의 로비를 쩌렁쩌렁 울리고, 모든 이들이 움직임을 멈추었다. 겨우 진정이 된 것 같자, 페리스는 아인에게 가까이 오라는 듯 손가락을 까딱였다.
“사태를 설명해 봐.”
“그, 그러니까. 저희 사이에 약간의 소란이 있었는데….”
“말 안 해도 알아. 요점만 말해.”
“헤르도아의 요충지로 가기로 했어요.”
“미안하다. 좀 자세히 얘기해 줘.”
결국 아인은 지금까지 있었던 일을 자초지종 설명하고, 이야기를 들을수록 페리스는 물론 가트의 얼굴에마저 놀라움이 번졌다.
눈에 띄지 않도록 결계를 치는 것은 물론, 지하의 대분묘에 무리를 지어 살기도 하는 헤르도아의 거점은 정말 얻기 힘든 정보이다.
첩자를 보내 놓는 것조차 불가능하기 때문에 말 그대로 대륙을 뒤집어엎어야 몇 개를 찾을까 말까 하는 수준.
그런 고급 정보를 술술 풀어 놓다니. 다행이라는 생각이 들면서도, 카오스의 조각에 대한 신뢰는 또다시 떨어진 페리스가 닉을 잠시 흘겨보다가 고개를 돌렸다.
“좋아. 거짓말이 아니라는 것도 확인했고. 문제는 너희의 강함이라는 거지?”
“아하하….”
아인이 애매하게 웃으며 고개를 끄덕였다. 안 그래도 아까부터 그것 때문에 라칼이 길길이 날뛰고 있던 참이었다.
뛰어난 실력과 비례한 높은 자존심을 가지고 있는 아랑족의 수장이, 강하지 않다는 말을 정면에서 들었으니 화가 나지 않을 리가 없었다.
아인의 웃음에 페리스는 마주 웃더니, 아직도 분이 풀리지 않은 라칼 앞에 섰다.
“당장이라도 그곳으로 가서 모두 쓸어 버리면 될 것 아닌가!”
“장담하는데, 당신 거기 가면 5분 안에 늑대 좀비 돼서 나와.”
“뭐?”
페리스의 말에 라칼은 눈을 날카롭게 뜨며 고개를 돌렸다.
“넌 뭐야. 인간 중에서 좀 강하다고 감히 날 얕잡아보는 건가?”
“그건 아니지만. 뭐 그렇게까지 안 세 보이기도 하고?”
능글거리는 표정으로 웃는 페리스를 보며 아인은 한숨을 쉬었다.
‘나왔다. 나쁜 버릇….’
기본적으로 페리스는 선을 추구하지만, 성격이 좋은 편은 아니었다.
누군가를 놀리고 장난치는 것은 기본에, 자신이 실력이 되기 때문에 살살 가지고 놀다가 기를 꺾어 버리는 경우도 다수.
지금도 분명 라칼의 기를 한번 누르기 위해 일부러 도발을 하는 것이리라.
“그런가.”
하지만 이번만큼은 조금 달랐다.
“시력 교정을 한번 시켜 줄 필요가 있군.”
라칼에게서 따끔거리는 투기가 일렁이기 시작했다.
어지간한 명검보다도 예리하고 단단한 발톱과 이빨. 중갑옷 이상의 방어력을 자랑하는 거칠고 두꺼운 외피.
그럼에도 인간의 수배 이상 되는 민첩성과 힘을 보유한 그들은, 스타트 라인을 일류 전사라는 골인지점 바로 앞에 세워둔 반칙성 존재나 다름없었다.
그럼에도 끊임없이 강함을 추구하며, 일대일로는 타의 추종을 불허하는 투쟁의 종족.
“아직 노안은 안 왔는데.”
그럼에도 페리스는 여전히 빙글거리는 미소를 유지하며 예비용 검을 달칵거렸다.
전성기 때와 비교하면 다소 무뎌졌지만, 살아 있는 전설이자 영웅인 그는 인간이라는 한계를 한참 뛰어넘은 지 오래였다.
아인이 우왕좌왕하며 한쪽에 붙어 말리려는 찰나, 가트가 그의 뒷덜미를 잡고 느릿하게 말했다.
“내버려 둬라.”
“네? 하지만….”
“둘 다 쌓인 것이 많아 보인다. 이번 기회에 푸는 것도 나쁘진 않겠지.”
“서, 설마 두 분 다 일부러 서로한테 시비를…?”
“시비가 붙은 건 그냥 둘 다 성격이 나빠서 그런 것 같군.”
“아.”
어쨌든 응어리진 것을 풀 수 있다면 다행이었다. 아인이 보기에도 둘은 각각의 이유로 점점 더 조급해지고 있는 것이 보였다.
페리스는 자신의 오랜 전우인 가트가 헤르도아의 주술에 잠식돼서. 라칼은 기껏 찾은 헤르도아에게 조금도 분을 풀지 못해서.
아인과 닉은 입맛이 좋지 않았다. 그 모두에 각각 자신이 크든 작든 연관돼 있었기에.
“이곳을 망가뜨리긴 싫으니, 밖으로 나가서 결판내지.”
“그렇게 사람들 앞에서 망신을 받고 싶은 타입?”
페리스의 비죽임에 라칼은 이빨을 드러내며 그르릉거리고, 카운터를 보던 여관 주인은 안도의 눈물을 흘렸다.
아인이 ‘어떡할까요?’라는 얼굴로 뒤를 돌아보았다.
에르는 무뚝뚝하게 아인만 보고 있고 닉은 언제나 그렇듯 심드렁한 얼굴이었고 사하바티는 여전히 온화한 미소만 띠고 이후프는 애초에 이목구비가 없었다.
‘의중 파악하기에 그닥 도움 안 되는 분들만 남았구나.’
조금 은은해진 아인은 결국 둘의 단판승부를 지켜보기로 했다. 다른 이들도 구태여 말리려는 구색은 보이지 않았으니.
둘이 여관 밖으로 나가자마자 페리스를 알아보는 이들로 인해 근방이 조금 소란스러워졌다. 개중에는 ‘아랑족이 남아 있었나?’라고 되뇌며 라칼을 보는 이들도, 뒤따라오는 아인과 닉을 주목하는 이들도 있었다.
어느새 작은 군중들이 주변을 넓게 둘러쌀 즈음, 아인은 팔로 X자를 치며 사방을 뛰어다녔다.
“잠시 두 분이 대련을 할 거거든요! 다칠 수도 있으니 멀리 떨어져 주세요! 다른 분들 통행에 방해되니 너무 몰려 있지 말아 주세요!”
폴짝거리며 인원을 통제하는 아인을 보며 페리스는 짧게 웃더니, 아이라도 자랑하는 부모처럼 라칼을 툭툭 치곤 아인을 가리켰다.
“저 아이, 언제나 열심히란 말이야.”
“…여러모로 성장할 필요는 있지만.”
“그건 동의. 만난 김에 훈련 좀 시켜 줄까 했는데 마침 좋은 기회도 얻었네.”
“내가 시켜 주는 훈련에 너도 동참하면 되겠군.”
“헤에….”
라칼의 도발에 페리스의 눈이 재밌다는 듯 휘어졌다. 예비용 검을 쥔 손에 힘이 들어갔다.
“다른 녀석들을 성장시킬 필요가 있다는 데엔 너도 동의하지?”
“물론.”
“그러면 여기에서 이기는 녀석이 우리들의 성장을 총괄하는 건 어때.”
“그거 재밌군. 아랑족의 강함이 타고난 육체에서만 비롯된 것이 아니라는 걸 알려 줘야겠어.”
그르릉거리는 소리가 낮게 울렸다. 호승심이 어린 긍정 어린 울음소리.
그 상황을 계속 구경하던 닉은 픽 웃으며 둘을 한 번씩 번갈아 보았다.
“그러면 둘 중 한 명이 버스 기사가 되는 거야?”
“응?”
“뭐?”
처음 듣는 단어에 페리스는 물론 라칼도 고개를 갸우뚱했다.
“기사? 난 용병인데.”
“난 전사다.”
이 단어를 알 리가 없지. 닉은 자신의 실책을 깨닫고 짧게 얼굴을 쓸어내리더니, 어떻게든 단어를 현지화시켜 설명하기 위해 갖은 애를 썼다.
“아 아니. 그러니까… 버스 기사란 건 말이지. 강한 자에게만 부여되는 특권… 아니, 명예직 같은 거야.”
“큰 공훈을 세운 이에게 명예 귀족위를 선사하는 것인가.”
“비슷하지…?”
닉은 애매하게 웃으며 고개를 끄덕였고, 라칼은 제 손을 풀며 페리스를 노려보았다.
“좋아. 그러면 이번에 이 녀석이 내 밑에 있다는 걸 입증하고 그 호칭을 갖겠다.”
“사실 귀족 작위도 고사했었는데, 카오스의 조각이 말하니까 좀 탐이 나네.”
페리스와 라칼은 그 말을 하며 점점 더 거리를 벌리더니, 동시에 자세를 낮추곤 상대를 잠시 쳐다보았다.
상대방과의 거리, 육체의 특징, 리치, 자세 등을 종합적으로 분석하는 짧은 시간.
오래지 않아 판단은 끝나고.
카앙-!
잠시 눈을 깜빡거리는 정도.
그 찰나에 둘은 순식간에 서로에게 쇄도하고, 단단한 라칼의 주먹과 페리스의 예비용 검이 맞부딪혔다.
상식적으로라면 아무리 털과 가죽이 두껍더라도 주먹이 조금씩이라도 베여야만 했지만, 아랑족 특유의 외공은 털 하나하나조차 돌이나 강철처럼 단단하게 만들 수가 있었다.
그들이 ‘온몸이 흉기’라고 불리는 이유.
페리스는 잠시 헛숨을 들이켰지만, 빈틈을 보이지 않고 몰아치며 관절이나 얼굴 등 상대적으로 방어가 취약해 보이는 곳을 날카롭게 찌르기 시작했다.
이에 라칼은 움찔하며 방어를 하는가 싶더니, 도리어 약간의 상처 정도는 감수하고 더욱 맹공을 퍼붓기 시작했다.
카앙! 쾅! 깡! 타앙! 쾅!
맨몸과 검이 맞붙는다고는 도저히 생각도 하지 못할 쇳소리가 울리고, 소리의 간격은 점점 빨라지고 있었다.
“큿.”
순간, 라칼이 한쪽 눈을 찌푸리며 잠시 거리를 벌렸다.
지금껏 칼날에 직접 닿아도 끄덕도 않던 손이 얕게 찢어져 있었다.
“검기를 썼나?”
“네가 너무 진지하게 하잖아.”
페리스는 여전히 빙글빙글 웃고 있었지만, 그 미소의 농도가 처음과는 꽤 달라져 있었다.
그리고 그와 오랜 시간을 같이했던 아인과 가트는 저 표정의 의미를 알고 있었다.
‘재밌는데 화난 상태.’
저러다가 진짜로 열이 올라 버리면 곤란한데. 아인은 가트의 눈치를 보며 끼어들 준비를 했고, 이번에는 가트도 말리지 않았다.
그리고 그런 분위기는 이후프와 사하바티 쪽도 마찬가지였다.
“아하하…. 울음소리가… 라칼이 조금 진심으로 하려는 것 같죠?”
“저러다, 광폭 상태 되겠어.”
“그 전에 말려야겠어요. 에르, 혹시 둘이 조금 세게 맞붙는다 싶을 때 싸움을 멈추도록 도와줄 수 있나요?”
이후프의 말에 가만히 전투를 구경하던 에르는 눈을 깜빡이다가 얌전히 고개를 끄덕였고-
그 순간은 오래지 않아 찾아왔다.
“이 일격으로 끝내지.”
“질질 끄는 건 나도 사양이다.”
“페리스 님 흑영검 다시 뽑으면 어떡해요!!”
“라칼, 발톱 집어넣어요! 기 두르지 마세요!”
페리스가 아까 전의 전장에서 사용했던 대검을 뽑고, 라칼이 아랑족의 비기를 쓰기 위해 발톱에 기를 흘려 넣을 무렵-.
그것을 빤히 바라보던 에르가 느릿하게 손을 올렸다.
“멈춰.”
이후, 얼음으로 이루어진 거대한 쌍룡이 둘을 향해 덮쳐들었다.
카가가가가가각!!
“저, 저게 뭐야!”
“영창도 없이 나왔어! 꺼내 놓은 소환수인가? 으악, 파편 튀어!”
꽤 멀리서 구경하고 있던 군중의 절반 정도가 놀라 달아날 정도의 위력.
페리스와 라칼을 향해 폭사된 얼음 용은 둘을 휩쓸기 직전 간신히 부숴졌다.
그 뒤로 인상을 찌푸리며 검을 완전히 뽑아 든 페리스와, 푸른 기운을 발톱에 감싼 채 얼음에 몸 곳곳이 얕게 찢긴 라칼이 숨을 헐떡이고 있었다.
“…진짜 죽을 뻔했네. 저거 뭐야?”
“…조금만 대처가 늦었어도 얼음 동상이 됐겠군.”
그리고 그 모습을 쭉 지켜보던 닉은 질려 버렸다는 얼굴로 에르를 힐끔 바라보았다.
“…네가 버스 기사 할래?”
“?”
영문을 모르는 최강자는 고개만 갸웃할 뿐이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