Hero, What's logout? RAW novel - chapter (62)
62화 : 영웅과 혼돈
라칼과 사하바티, 이후프는 갑작스레 사라진 세 명 때문에 골머리를 앓았고, 특히나 에르의 상태는 시간이 갈수록 점점 심각해지고 있었다.
“안 돼. 안 돼…. 아인이 저기 있는데.”
“에르, 진정해요. 아무렇게나 힘을 쓰면 언데드들이 더 몰려옵니다!”
게다가 무슨 영문인지 아까부터 언데드의 양뿐만 아니라 질도 달라지고 있었다.
기껏해야 함정용 언데드나 스켈레톤, 구울 등이 간간이 나왔던 아까에 비해 데스 나이트의 하위 호환인 스켈레톤 나이트가 눈에 띄게 증가하고, 사람의 얼굴 가죽을 덕지덕지 붙인 인면 수집가 같은 몬스터도 나오기 시작했다.
“크흐흐흐. 네 얼굴 가죽을 내ㄴ… 인간 얼굴이 없잖아!”
아랑족 라칼, 드라이어드 사하바티, 골렘 이후프, 정령 에르가 아직 이런 수준에서 위험에 빠질 정도는 아니었다.
하지만 시간이 지나며 다수의 어비스 나이트나 엘더 리치, 그 외의 고위 언데드가 나오기 시작한다면 그들도 궁지에 몰릴 위험이 있었다.
게다가 도망치자니 언제 저 안에서 아인 일행이 나올지 모르는 상황.
몇 번이나 통로 안쪽으로 뛰어 내려가려 해도 무언가에 막힌 듯 입구로 전송되었고, 그것 때문에 에르는 점점 패닉 상태에 빠져 가고 있었다.
이러다가 에르가 폭주하기 시작한다면 언데드를 감당하면서 억제시킬 인원조차 없다. 이후프는 달려드는 스켈레톤 나이트 한 마리를 완전히 으깨 버린 뒤, 에르의 어깨를 꾹 잡았다.
“아인은 괜찮을 거예요. 닉과 마라가 같이 갔으니까요.”
“그래서 더 안심이 안 되는 건데.”
“음.”
확실히 정신적인 측면에서는 정말로 걱정이 되긴 했다.
지금까지 보아 왔던 이미지를 생각하면, 아인이 무슨 이유로 우울해하면 닉은 위로도 없이 무심하게 대했다. 마라가 과하게 리액션을 하며 더 싫어할 것 같았다.
“…그래도 지금은 마땅히 방법이 없어요. 아인도 그동안 많이 성장했답니다. 아인도 이제 에르를 믿어요. 그러면 에르도 아인을 믿어 주세요.”
아인은 에르를 믿고 하고 싶은 것을 하길 바라고, 혼자서도 설 수 있기를 바라 왔다.
그렇다면 자신은 아인을 기쁘게 해 주기 위해 그 기대에 충족시켜 줄 의무가 있었다.
“아인이 스켈레톤 한 마리는 어떻게 해 볼 수 있을 거라고 믿어 볼게.”
“꽤 기대치가 낮군요.”
하지만 이 정도라도 시작하는 게 낫나. 이후프는 대지 속성의 마나를 담은 거대한 주먹으로 밴시를 쥐어짠 후, 쓴웃음을 흘리며 고개를 끄덕였다.
“지금 우리의 역할은, 그들이 돌아왔을 때 위험에 빠지지 않도록 미리 길을 닦아 주는 거예요. 할 수 있죠?”
“응.”
에르는 힘차게 고개를 끄덕인 후, 다시금 힘을 모아 언데드를 격퇴하는 데에 힘을 쏟았다.
그렇게 크게 집중한 것 같지도 않건만, 토네이도와 불꽃이 섞인 거대한 염화가 한쪽 일대를 완전히 초토화시켜 버렸고, 재생하지도 못할 정도로 타 버린 언데드 한 무리가 바람에 잿가루로 화해 흩날렸다.
‘힘이 약해졌다곤 해도 에르는 에르군요.’
사실 힘이 줄어들지 않은 예전이었으면, 화염의 여파가 여기까지 닿았을 수도 있었다. 이유가 뭔진 몰라도 당장은 이 상태를 유지하는 게 좋겠다는 생각을 하며, 이후프는 다시금 전선에 서서 언데드들을 격퇴하기 시작했다.
목이 잘리고, 으깨지고, 덩굴에 휘감겨 거짓된 생기마저 빨리며 언데드들이 속수무책으로 쓰러지고 있던 차에, 라칼이 고개를 들고 코를 찡긋거렸다.
“위험한 냄새가 난다.”
“어느 정도인가요?”
“방심하면 죽어. 다들 집중해.”
라칼은 특유의 강함 때문에 오만한 성격이었지만, 전투 상황에서만큼은 상대를 함부로 깔보거나 과대평가하지도 않았다.
아군의 수준과 적의 수준을 정확히 파악한 뒤에 평가되는 전력. 이후프와 사하바티도 행동을 멈추고 라칼이 쳐다보는 곳으로 시선을 옮겼다.
그곳에는 사람의 육체와 뼈로 이루어진 옥좌와, 그 위에 앉은 존재가 있었다.
그 밑에서는 스켈레톤 나이트들이 옥좌를 떠받들고 있었으며, 주변으로 어비스 나이트와 슬레이프니르를 탄 듀라한을 비롯하여 고위 언데드들이 그를 호위하고 있었다.
제 부모를 죽이고 역모로 왕위에 오른 뒤, 끝없는 폭거 끝에 사형당하거나 사고사를 당한 망국의 왕.
그럼에도 욕망을 놓지 못해 자신의 군대와 더불어 되살아난 타락의 군주.
최고위 언데드 중 하나, ‘찬탈자’.
수많은 마법과 언데드를 부리는 엘더 리치의 상위 종으로, 주변 언데드들을 모두 소멸시키기 전까지 본인에게는 상처를 입힐 수 없으며 마치 인간의 군대처럼 잘 짜인 전술을 사용했다.
또한 공포의 오라 등 약자에게만 압도적인 힘을 보이는 보통 언데드들과는 달리, ‘허가받지 않은 계승자’라는 특기로 강자에게는 특히 더 강한 모습을 보여 레이드하기가 까다롭기 그지없는 몬스터 중 하나였다.
대개는 폐허가 된 자신의 왕국에서 나타나는 보스급 몬스터였지만, 이런 곳에 있다는 것은 해당 던전의 주인에게 억울하게 죽임을 당했을 가능성이 컸다.
“망할. 이 던전 보스는 어떻게 생겨 먹은 놈이길래 왕국까지 통째로 집어삼킨 거람.”
투덜거리는 라칼 일행의 앞에 당도한 찬탈자는 손가락을 까딱이더니 그들을 둥글게 에워싼 언데드 무리를 일으켰다.
하나하나는 강하지 않지만, 군대 숫자만큼의 언데드를 상대하다 보면 자연스레 체력이 달릴 것이고 확실하게 죽일 수 있을 때에 친위대가 나서 라칼 일행의 목을 베러 달려올 터였다.
하지만 이런 방식의 전투는 이쪽의 일행 역시 익숙했다.
라칼은 이후프에게 후방에 벽을 세우게끔 눈짓하고, 발을 가볍게 굴러 사하바티에게 엄호를 부탁했다.
또한 마지막으로 에르에게 가장 강한 공격을 찬탈자가 있는 곳 주변에 쏟으라고 손짓했다.
그런 라칼을 가만 보던 에르는 눈을 느리게 깜빡였다가 입을 열었다.
“말을 해.”
“그냥 센 거 하나 저기에 써 줘.”
“응.”
수신호도 가르쳐야겠다고 생각하며 자세를 낮춘 라칼은, 발톱에 마나를 두른 뒤 당장이라도 쇄도할 준비를 했다.
그 순간, 라칼은 흠칫하며 튕겨져 나가려던 다리에서 힘을 풀었다.
“…멈춰.”
“네?”
“말 그대로다. 아무것도 하지 마. 움직이지 말고 경계해. 저런 뼈다귀하고는 비교도 안 되는 괴물이 둘 오고 있어. 자칫하면 도망쳐야 할 수도 있다. 도망치는 게 가능하다면.”
전투 상황에 있어 라칼의 지시는 정확하다. 이후프는 거대한 벽을 세우려던 것을 멈춘 뒤 사위를 살피고, 사하바티 역시 바닥에 뿌리를 내린 채 대기했다.
찬탈자만 해도 다소 고생을 할 수도 있는데, 라칼이 저렇게까지 말할 정도면 대체 얼마나 강한 언데드가 온다는 것인가.
공기가 뻣뻣해진다. 경직된 분위기에 숨을 쉬기도 불편하다는 생각이 들 즈음-
“무저갱.”
“일발역전.”
사방에 가득 차 있던 언데드들이 새까만 공간에 휩쓸리더니 흔적도 없이 사라지고, 동시에 모든 호위 병력을 잃은 찬탈자가 허무하게 목을 베였다.
그곳에 있는 것은 둘.
세상에 어떤 검은색을 가져다 놓더라도 그것보다 짙을 것 같은 흑색의 갑주를 입고 주먹을 쥔 자와, 이물질로 가득한 이곳에서 부자연스러울 정도로 티 하나 없이 새하얀 갑주를 입고 검을 든 자.
적으로 상대한다면 일격에 죽는다. 라칼뿐만이 아니라, 이곳에 선 모든 이들이 그렇게 생각하고 있었다. 심지어 에르조차도.
“…네 예전이면 상대해 볼 만하지 않냐?”
“그때라면 죽진 않아도, 이긴다는 생각은 안 들어.”
라칼은 에르의 대답에 헛웃음을 흘렸다. 하지만 부정하지도 않았다.
저들은 강함 이전에 근본적인 곳에서 자신들을 압도하고 있었다. 굳이 단어를 붙인다면 존재의 격 같은 것.
하얀 갑옷과 검은 갑옷은 각각 기술을 거두더니, 라칼 일행은 안중에도 없다는 듯 서로를 빤히 쳐다보다가 한 번씩 말을 건넸다.
“와. 오랜만. 가능하면 지금 당장 베어 버리고 싶은데. 괜찮아?”
“누가 할 말을. 하지만 곧 유저들이 온다. 일만 처리하고 가야 해.”
“그러면 내가 아래로 내려간다.”
“지금 그걸 말이라고 하고 있나? 밑에 누가 있는지 알고 하는 소리지?”
척 봐도 사이가 나빠 보이는 기류와 주변을 감도는 살기에 누구도 말을 하지 못하고 있는데, 가까스로 에르가 숨을 고른 후 그들의 앞에 섰다.
“아래로 내려갈 수 있어?”
“누구…. 아. 너인가.”
“우린 내려갈 수 있지. 너는… 글쎄.”
둘 모두 에르를 아는 눈치였다. 하지만 에르는 그것에 의문스러워할 시간도 없이, 몇 발자국 더 가까이 다가갔다.
“부탁이야. 내려가게 해 줘. 아인이 저 밑에 있어.”
“저긴 NPC가 못 들어가게끔 설정해 놨어. 예전의 너였으면 몰라도, 지금은 완전히 이 세계에 동화된 상태야.”
“그런 거 필요 없어. 다시 비틀려도 좋아.”
“아니, 이쪽이 안 좋다니까….”
하얀 갑옷은 작게 한숨을 쉬더니, 주변을 느릿하게 훑었다. 그러고는 한 번 혀 차는 소리를 냈다. 검은 갑옷 역시 난감하다는 듯 긴 침음 소리를 흘렸다.
“벌써 오는데. 유저들 정보 취합이 대체 어떻게 돼먹은 거야. 예상보다 훨씬 빨라.”
“최대한 연관 없이 끝내야 해.”
“에리식톤은 나라도 시간이 조금 걸려. 여기서 시간끌어야 해”
하얀 갑옷은 순백의 검을 툭툭 건드리더니, 라칼 일행 쪽으로 고개를 돌렸다.
“내려가도록 도움을 주지. 너희가 필요하다. 응해 주겠나.”
자신들 모두가 덤벼도 상대도 안 될 만큼 까마득하게 강한 존재가 부탁을 한다는 점에서 기시감을 느끼며, 이후프가 고개를 끄덕였다.
“승낙하죠. 아래에 동료들이 있습니다. 저희가 뭘 하면 되겠습니까.”
“내려가서 아인에게 말해. 다시 모든 것을 돌려놓으라고. 그 말만 하면 알아서 해 줄 거다. 그사이에 그 녀석을 지켜다오. 아인이 실행하기까지 조금 시간이 걸릴지도 몰라.”
“다른 것은 없나요?”
“그 외에 별다른 건 없….”
바로 몸을 돌리던 하얀 갑옷은 말을 멈추더니 고개를 옆으로 돌려 이후프를 보았다.
“아인에게 네 잘못이 아니라고 덧붙여라.”
“알겠습니다.”
그사이에 검은 갑옷은 허공을 한참 휘적이더니, 이내 움직임을 멈추고 일행에게 다가왔다.
“지금은 내려가도 된다. 요구사항은 저 하얀 녀석과 비슷하다. 아. 전언은… 아인에게 그래도 잊지는 말라고 덧붙여 줬으면 좋겠군.”
“…알겠습니다.”
이후프는 ‘아인은 잘못한 거 없다.’라며 난리 치는 에르를 간신히 진정시키고, 사하바티에게 부탁해 모두를 감싼 뒤 그대로 통로 아래로 추락했다.
새까만 추락이 계속해서 이어졌지만 겁을 먹는 이들은 없었다. 더욱이 에르의 비행이 있었기에 그들은 땅바닥에 처박히지 않고 그대로 빠르게 이동할 수 있었다.
“아인의 기척이 가까워지고 있어.”
에르의 목소리에 기쁨이 묻어나며 가속이 붙었다. 몇몇 커브를 지나 거대한 공간에 도착하는 순간, 많은 것들의 시야에 들어왔다.
환하게 빛나는 구체 두 개와 세 명의 인영, 그 앞에 있는 언데드들.
그리고.
어비스 나이트의 검에 배가 꿰뚫리는 아인의 모습까지.
“아인…?”
“이런 제기랄. 모두 곧바로 전투에 돌입하게 준비해.”
“재회하자마자, 이럴 줄은.”
“에르. 정신 차리세요! 폭주하면 안 됩니다!”
하지만 이후프의 만류에도 불구하고, 에르는 이빨을 딱딱 부딪히더니 한 손에 거대한 불꽃 창을 만들어 어비스 나이트를 노려보았다.
“용서 못 해.”