Hero, What's logout? RAW novel - chapter (69)
69화 : 에르는 애완동물이 아니에요!
“어라…?”
닉은 순간적으로 혼란에 빠졌다.
현재 카오스에서 펫은 딱 한 개체밖에 가지지 못하고, 그마저도 기준치 이상으로 강해질 수 없도록 한계를 정해 놓았다.
자신의 실력은 제쳐 두고 오로지 강한 펫들을 이용해 아무런 위험 없이 게임을 플레이하는 것을 방지하기 위해서였다.
하지만 닉은 그런 것에는 딱히 관심이 없었을뿐더러, 그렇게 강하지 않은 펫들이 가격까지 만만치 않았기 때문에 아예 살 생각을 접어 두고 있었다.
그런데 시스템은 닉이 펫을 가지고 있다고 말하는 중이었다.
‘술 마시고 홧김에 질렀나?’
주사가 곱지 않은 탓에 가능성이 있다는 게 더 무서웠다. 닉은 침을 꿀꺽 삼키고, 지금껏 한 번도 열어 보지 않았던 펫 단축키를 눌렀다.
이후 떠오른 알림창에는 가지고 있는 펫에 대한 이미지와 정보가 적혀 있었다. 그리고 의외로 닉도 알고 있는 모습이었다.
[이름: 에르]바로 옆에서 무표정하게 아인을 바라보고 있는 희대의 개사기 정령. 에르였다.
“이게 뭐야?”
닉은 자신의 머리 주변으로 수십 개의 물음표가 떠오르는 느낌을 받았다. 하지만 닉이 저도 모르게 중얼거린 것이 펫에 대한 이야기인 줄은 모른 채, 데이드완은 닉이 쥐고 있는 연초록 돌에 대해 설명했다.
“정령석이랍니다. 하지만 정령의 힘이 깃들어 있는 평범한 돌이 아니라, 아직 태어나지 않은 바람의 정령이 들어 있어요. 처음 보는 이를 잘 따를지도 모르겠네요.”
“아… 아, 네! 되게 신기하네요. 그런데 이것보다는 다른 게 더 필요한 것 같아서. 이, 이걸로 고를게요!”
닉은 당황한 나머지 앞에 있는 장신구 중 하나를 아무렇게나 집어 들었고, 데이드완은 만족스럽게 고개를 끄덕였다.
“가져가셔도 됩니다. 다음에도 의뢰를 수행해 주시면, 제가 가능한 선에서 최대한 도움을 드리도록 하겠습니다. 도움을 요청드려도 될까요?”
“그, 그럼요. 어차피 연계 퀘스트니 끝까지 할 생각이었고….”
“조금 어려울지도 몰라요.”
“네네, 아무거나 할게요. 뭐든 말씀하세요.”
“감사합니다. 그러면 오시하는 눈에게 흡수되어 가는 이프리트를 구해 주셨으면 합니다.”
“네네… 네? 누구요?”
다른 곳에 생각이 팔려 있어 아무렇게나 대답하던 닉은 예상치 못한 말에 한 번 더 되물었다. 그리고 이것은 다른 일행들도 놀랄 만한 일이었는지, 심드렁하게 앉아 있던 라칼도 자리에서 일어나 있었고 사하바티와 이후프는 내내 유지하던 웃음이 가라앉았다.
아인의 스승마저 그 말은 예상하지 못했는지, ‘제정신이냐?’라고 중얼거리다가 데이드완과 눈을 마주친 후 한숨을 쉬고 다시 서류로 눈을 돌렸다.
“이프리트가 보이지 않는 이유가 그것 때문이었군요.”
불의 정령왕 이프리트는 불의 속성 정령술에 대한 대미지를 99% 감소시킬 수 있는 아티팩트를 줄 수 있었다.
끔찍한 격통과 높은 온도를 자랑하는 오시하는 눈의 화염 역시 정령술로 만들어진 것이기 때문에 대미지 절감은 그대로 적용될 것이다. 지금까지 막강한 화력으로 인해 전진하지 못하던 공격대들에게 커다란 도움이 될 터였다.
심지어 이프리트가 오만불손한 성격이라고는 알려져 있지만, 세상의 적이자 자연을 파괴하는 재앙을 그대로 둘 수는 없기에 어떤 방식으로든 도움을 주는 것이 당연했다.
하지만 재앙이 부활한 이후 이프리트는 어디에도 모습을 드러내지 않았다. 이 때문에 헤르도아에게 물들었다느니 힘을 비축하는 중이라느니 등등 온갖 가설이 떠돌았지만 무엇 하나 확신할 수가 없었다.
“아직까지는 자신의 의식을 유지하고 있을 겁니다. 자연 친화력이 강한 여러분이니 가까이 다가가면 잠시나마 정신을 차릴 수도 있을 거예요. 이프리트를 구할 수만 있다면, 이후로는 한층 편해질 겁니다.”
“말은 쉽지…. 어쨌든 알았어요. 오시눈이랑 이프리트 걔들은 어디 있는데요?”
“오시하는 눈의 영역은 남쪽으로 가다 보면 바로 알 수 있을 겁니다. 근처 영지에 있는 텔레포트 시설로 옮겨 드릴게요. 그쪽에 등록된 인원을 부를 테니 잠시만 기다려 주세요.”
데이드완은 그 말을 하고 방을 나섰다. 닉과 에르를 제외한 모두가 걱정스러운 눈초리로 이프리트를 구하는 방법에 대해 강구하고 있을 때, 닉은 머리를 벅벅 긁더니 에르에게 다가갔다.
“에르 잠깐만 시간 내 줘.”
“응. 기다려 봐.”
“뭘 기다려?”
“시간 정지 술식은 좀 복잡해서.”
“아니아니, 진짜로 시간을 달라는 게 아니야! 그냥 이야기 들어달라는 거였어!”
“알았어. 말해.”
무언가 엄청난 마법이 일어나려는 것을 간신히 막은 닉은 숨을 고른 후 긴 침음을 흘렸다. 이걸 어떻게 설명해야 할지 도통 감이 오지 않았다.
‘네가 내 펫이 되었다고 직설적으로 말하면 최악이겠지.’
시스템이니 뭐니 해도 알아들을 리도 없을뿐더러, 자신을 싫어하고 있었다면 관계가 더욱 악화될 뿐이었다. 닉은 에르처럼 남의 감정이나 마음을 읽는 능력이 없었기 때문에 저를 어떻게 생각하고 있을지 알 리가 없었다.
‘조금 돌려서 말을 해 봐야겠다. 애초에 그 개념을 모르고 있을 것 같은데. 애완동물이라고 하면 알아들으려나?’
문장을 고르고 골라 적절한 질문을 완성시키고 있을 즈음, 주변에 에르가 없다는 것을 알게 된 아인은 닉이 있는 쪽으로 다가왔다.
“에르한테 할 말 있으세요?”
“으악! 깜짝이야! 아우, 말 좀 하고 와라.”
“바로 옆에 있는걸요, 뭐. 에르가 뭐 잘못한 건 아니죠?”
“아냐. 잘못한 건 없고, 그냥 알아둬야 할 거라고 할까. 질문할 게 있어서.”
“뭔데요? 옆에서 들을래요.”
지금까지 닉과 에르의 관계는 그다지 나쁘지도 좋지도 않았다. 닉이 에르에게 무언가를 부탁하면 별말 없이 도와주고, 에르가 상황 파악이 힘들거나 자신이 익숙하지 못한 것에 대해서 가끔 닉에게도 물어보는 정도.
처음엔 지엠이 와서 삭제하느니 마느니 하는 말도 있었지만, 최근에 와서는 거의 신경 쓰지 않게 된 모양이었다.
그렇게 적당한 거리감과 관계성만을 유지하던 둘이 무언가 가까워지는 계기라도 왔나 싶어, 아인은 내심 흐뭇하고 두근거리는 마음으로 소파에 앉아 닉이 말을 꺼내길 기다렸다.
에르는 언제나 그랬듯 무심한 표정으로 상대를 보았고, 한참을 고민하던 닉은 결정했다는 듯 고개를 끄덕이더니 입을 열었다.
“누군가의 애완동물이 된다는 거에 대해 어떻게 생각해? 라든지.”
“응?”
“으아아아아아악!!!”
내내 무표정하던 에르조차 잠시 표정이 무너져 의문을 표할 정도였고, 아인은 질문을 듣자마자 비명을 지르며 펄쩍 뛰어 에르를 감쌌다. (에르의 키가 더 커서 남이 보면 아인이 감싸지는 모양새가 되어 버렸지만.)
“지금 애한테 뭘 물어보시는 거예요!!”
“아니, 들어 봐. 잠깐만! 진정해 봐! 이상하게 들릴진 몰라도 꼭 물어봐야 했던 거야!”
하지만 그 말은 오히려 부작용을 낳았고, 아인은 불신을 넘어 혐오감에 가까운 눈으로 닉을 뚫어져라 쳐다보았다.
“저질! 변태! 추잡한 욕망! 지금까지 에르를 그런 눈으로 봤던 거죠!”
“미친놈아 다 듣잖아! 그런 적 없어!”
“그럼 왜 물어보시는데요!”
“아니, 이게…. 돌아 버리겠다. 어쨌든 이렇게 되었습니다, 라고밖에 설명할 길이 없네. 시스템상으로 에르가 내 펫이 됐어. 나도 갑자기 이래서 당황스럽다고.”
시스템이라는 말에 아인은 조금 경계를 풀었다. 프로그램이니 시스템이니 하는 것들은 당최 예상치 못한 결과를 불가항력이랍시고 가져오곤 한다. 하지만 경계심을 잔뜩 머금은 녹색 눈은 아직도 의심을 완전히 풀진 않았다.
“적어도 반려동물이라고 해 주세요.”
“점점 이상하게 고착되어 가는데 그냥 펫이라고 하면 안 될까.”
여전히 명칭을 가지고 둘이 입씨름을 하고 있을 무렵, 두 팔로 감싸져 이리저리 흔들리던 에르는 무언가를 골똘히 생각하다가 아인과 닉을 번갈아 보았다.
“그런데 애완동물, 반려동물, 펫 이게 뭐야?”
“응?”
“어….”
그 말에 아인과 닉은 동시에 고민하고, 동시에 답했다.
“소중한 존재?”
“똥오줌 치우고 밥 먹이고 산책시키고….”
“아, 진짜 아까부터 뭐라고 하시는 거예요!”
“미안! 반사적으로 튀어나왔어! 그러니까… 아인이 말한 거랑 비슷해. 내 곁에 있어 주면서 서로 간 없어선 안 될 관계가 되는 느낌이지.”
에르는 한 번 고개를 끄덕이더니, 아예 아인 쪽으로 고개를 돌렸다.
“닉을 싫어하진 않지만. 그 설명이라면 아인이 가까울지도.”
닉은 그 모습을 보며 팔짱을 낀 뒤 떨떠름하게 고개를 끄덕였다.
“응. 나도 그렇게 생각은 하는데… 설명하려니 미치겠다. 그냥 모른 채로 있는 게 나았을걸. 그러니까… 우린… 필연적이고 피할 수 없는 만남이 되어 버린 거야.”
“집착 심해, 닉.”
“에르 너한테 그런 소리 들으니까 진짜 타격 심하다.”
아인은 자신에게 착 달라붙은 집착 정령을 쓰다듬다가 닉을 보았다.
“아무튼 시스템상이라면 어쩔 수 없죠. 에르가 뭐 해야 할 거라도 더 있어요?”
“소환 제한 시간이 있는 것도 아니라서. 지내던 것처럼 하면 되긴 해.”
“그러면 됐어요. 그나저나 뜬금없이 왜 펫이 되었다는 거람. 에르는 그런 게 아닌데.”
투덜거리는 아인을 보며 닉은 ‘그러게나 말이다.’라고 말하면서도 내심 집히는 구석이 없잖아 있어 애매하게 입꼬리를 올렸다. 그때를 회상하면 단서가 잡히긴 했다.
‘제안할 게 있어요.’
-먼저 그런 전화를 거시는 게 흥미롭네요. 무엇인가요?-
‘에르에 대한 삭제는 하지 않기로 했죠. 그런데 제 플레이어 경험을 돌이켜 보면, 삭제만 안 하고 다른 쪽으로 조치를 취할 수는 있다는 걸로 들어서요.’
-결국 오버스펙인 건 사실이니까요. 제한도 없이 마음대로 돌아다닐 수 있는 정령왕급 개체라니. 그건 김유리 님도 인정하시라 봅니다. 일단 어떻게 할지 결정 난 사항은 없어요.-
‘알아요. 그래서 말씀드리는 거예요. 근데 겉모습은 최대한 유지시켜 주면 안 될까요? 갑자기 에고 소드 이런 걸로 만들지 마시고.’
-그렇게 말씀하시는 이유는?-
‘그냥. 지금이 익숙하고. 편하고. 많이 바뀌기라도 하면 기분이 별로일 것 같거든요. 멀쩡하던 애가 갑자기 바뀌면, 패치니 뭐니 잘 알아들을 리도 없는 주변 NPC들이 원래 모습을 찾아주겠다고 의미 없는 여행을 시작할지도 몰라서요.’
-…하하. 알겠습니다. 주시하고 있는 분들이 시간 낭비를 하면 저희로서도 안타깝죠. 그러면 저희 측에서 적당히 손을 대 보도록 할게요. 멋대로 설정을 변경하다가 또 오류가 날 수 있으니 조금 안정적인 방법으로요. 김유리 님에 대한 선물이에요.-
그때 말한 선물이라는 표현이 자신의 펫으로 준다는 뜻일 터였다. 점검 보상으로 이전에 없던 펫 관련 용품이 나온 것도, 펫을 가지게 되어서 항목이 추가됐을 가능성이 높았다.
처음에는 단순히 스펙을 전체적으로 너프시킨 것인 줄 알았는데, 수치를 직접 건드리기보단 아예 펫으로 만들어서 태생 능력의 한계치를 정해 둔 모양이었다.
‘그나마 다행이라고 해야 할까….’
의사소통에도, 같이 다니는 데에도 문제는 없다. 오히려 자신이 점검 보상으로 받아 둔 펫 전용 아이템을 사용할 수도 있으니 어떻게 보면 더 나을지도 모른다.
닉이 최대한 긍정적으로 행복회로를 돌릴 즈음, 밖으로 나갔던 데이드완이 준비가 끝났다며 일행들을 밖으로 불렀다.
“예전에 오셨을 때 텔레포트 등록은 해 놓으셨나요?”
“아뇨, 제기랄…!”
“드, 등록 안 하신 게 그렇게 화날 일인가요.”
그것 때문에 마라에게 끌려다니며 온갖 고생을 했던 것이 떠올라 닉이 이를 갈고 있자, 아인은 어색하게 웃으며 고개를 저었다.
“그냥 관련한 사건이 하나 있어서요. 그나저나 저희가 갈 곳은 어디인가요?”
“라폴라. 현재 오시하는 눈과 가장 가깝게 닿아 있는 왕국의 영지입니다. 지금 이 순간에도 재앙의 영지가 조금씩 넓어져서 육안으로 확인 가능한 정도예요.”
그 말은 시간이 지나면 그 영지가 통째로 먹힐 수도 있다는 뜻이었다. 아니, 이미 많은 영지가 염화 속으로 사라졌을 수도 있었다.
아인이 입술을 꾹 깨문 뒤 작별의 인사를 건네려는데, 라칼이 앞으로 나서 데이드완을 보았다.
“혹시 오시하는 눈과 마주했을 때에 행동 요령이라도 있나?”
“아. 좋은 질문이십니다. 어쩌면 공격을 덜 세게 받거나, 그의 환심을 살 방법이 있거든요.”
“그런 방법이 있었나? 왜 진작에 말하지 않았지?”
“그게 말을 들어도 쉽게 될 수 있는 게 아니라서요. 아무튼 말씀을 드리자면….”
데이드완은 한 번 흠흠 하는 소리를 내고 숨을 고르더니, 난처함과 걱정이 어린 얼굴로 일행들을 둘러보았다.
“그 무엇보다 오만해지는 것입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