Hero, What's logout? RAW novel - chapter (89)
89화 : 그러니까 이게 무슨 아이템인가요?
이프리트는 아직 원래대로 돌아가지 못한 정령들을 살피기 위해 돌아갔고, 이프리트의 말을 듣고 무언가를 계속해서 생각하던 탕은 이내 웃는 얼굴로 일행을 쳐다보았다.
“굉장히 생각이 많아지네요. 우선은 헌터 길드에 가서, 처음에 말했던 아이템들 한번 살펴볼까요?”
“여기에도 헌터 길드 지부가 있나요?”
“물론이죠. 임시 지부이긴 하지만, 조금이라도 정보 측에서 유용성이 있겠다 싶은 곳에는 무조건적으로 있어요. 전 대륙의 동향을 살피고 제보받아야 하니까요.”
“거짓말로 제보하는 사람이 있으면 어떡해요?”
“기본적으로 정령들이 일차적인 필터를 해 줘요. 하지만 그 사람은 진짜인 줄 아는데도 사실은 거짓인 사례도 있긴 하지만… 그런 경우에도 얻을 만한 정보는 있죠.”
아인이 이해가 가지 않는다는 얼굴로 눈을 깜빡이자, 탕은 사례를 생각하듯 침음을 흘리다가 가볍게 손가락을 튕겼다.
“가령 분명히 뭔가 있어야 할 것 같은 동굴로 정보원을 보냈는데 아무것도 없었다는 답변이 나오고 거짓말도 아니라면, 그 안에 기억 조작이 가능한 정도의 리치가 있다는 반례가 되죠. 물론 항상 맞는 건 아니지만, 이런저런 주변 근거들을 활용하면 꽤 잘 들어맞는 편이에요.”
“모험가는 똑똑해야 하는구나….”
“물론이죠. 그리고 열정도 있어야 하고요.”
아까 이프리트가 했던 말이 생각나는지 탕은 어색한 웃음소리를 내다가 마저 헌터 길드 지부로 향했다. 오시하는 눈의 영역을 벗어난 뒤 성으로 들어가 보니, 이전과는 상당히 다른 분위기였다.
심지어 처음 왔을 때는 죽은 눈으로 돌아다니며 눈도 마주치지 않던 주민들이 닉을 보자마자 환호성을 지르며 달려들었다.
“영웅이다! 영웅이 왔어!”
“오시하는 눈을 쓰러트린 분이야!”
“엄마 전 커서 닉 모하지가 될래요.”
“절 제자로 받아 주세요!”
어린아이 노인부터 남녀 할 것 없이 둘러싸인 닉은 정말 죽을 것 같다는 얼굴이었다. 명성이 올라갔으니 어느 정도 알아보는 사람이 있을 거라고는 생각됐지만, 이 정도일 줄은 몰랐다. 아인이 얼떨떨한 얼굴로 탕을 바라보자, 탕은 시원스레 웃음소리를 냈다.
“먼 곳도 아니고 바로 옆에서 영지가 망할 날만 기다리고 있었는데 이 정도는 당연하죠.”
“그런데 얼굴은 어떻게 바로 알아본 걸까요.”
“…시스템상?”
닉은 자신을 부하로 삼지 않으면 밟고 가라는 남자를 지근지근 밟고 지나오며 지친 듯 한숨을 내쉬었다.
“벌써 피곤해졌어. 내가 ‘인기인이란 힘들구나.’ 같은 대사를 할 줄이야.”
아인은 그러면서 즐기는 거 아니냐고 놀리려 했지만, 닉은 ‘지금부터 건드는 새끼는 다 죽여 버린다.’ 눈을 한 채 흉흉하게 지나갔기 때문에 가만히 있기로 했다. 다행스럽게도 장난감 칼을 들고 달려오는 아이에게는 피곤한 표정이나마 웃는 낯으로 대했기 때문에 별다른 일은 생기지 않았다.
“아가야, 커서 헌터 길드에 들어올 생각 없니?”
“으아아아아앙!!”
오히려 살갑고 부드럽게 대하는 탕을 보곤 울음을 터트리며 다른 곳으로 가 버렸다. 사람들의 퇴치 방법을 깨달은 닉은 조금 슬퍼져서 더욱 무시무시한 얼굴이 된 탕의 뒤로 숨어들었고 이후로는 함부로 다가오는 주민들이 적어졌다.
영지 안쪽으로 들어가니 얼마 지나지 않아 헌터 길드의 지부로 들어갈 수 있었다. 데스 나이트와 전쟁할 당시의 파벨 왕국에서 보았던 헌터 길드와는 규모 면에서 상당한 차이가 있긴 했지만 대략적인 구성은 비슷했다.
‘오시하는 눈’의 영역에서 보았던 다종다양한 몬스터와 직속 부하들에 대한 정보. 그 외에 다른 레이드를 유추할 수 있는 정보 등등. 물론 온갖 아이템에 대한 감정은 기본이었다.
“정보 주면 비싸게 받긴 하는데, 별로 생각은 없죠?”
“뭐가 좋은 정보이고 나쁜 정보인 줄도 몰라서.”
오시하는 눈을 퇴치한 방법은 물어봐도 얘기 안 하겠지. 애매모호한 투로 대답했던 아인을 힐긋 본 탕은 임시로 만들어 놓은 아이템 감정소 쪽으로 걸어갔다. 다소 피곤한 얼굴로 의뢰받은 아이템을 훑어보던 길드원은, 탕을 보자 반가운 얼굴로 손을 흔들었다.
“앗, 탕 님 안녕하세요!”
“레이드 끝나고 왔어요~ 별일 없었고요?”
“큰일은 없었는데. 그… 하프엘프 한 분이 찾아오시더니 탕 님 어디 있냐고 묻던데. 혹시 아는 분이세요? 닉네임은 안 알려주셨어요.”
“…….”
큰오빠다. 탕은 내적으로 폭포수 같은 식은땀을 흘리다가 세차게 고개를 저었다.
“잘 모르겠네요. 제가 나중에 따로 확인할게요. 지금은 이분들 아이템 무료 감정 해 주러 왔어요.”
“무료요? 아? 아! 아~ 그분들이구나! 반가워요!”
길드원은 미리 언질을 받았었는지 닉을 보더니 눈을 반짝였다. 아까 있었던 피곤한 일이 재차 이어지려나 싶어서 닉이 작게 한숨을 쉬는데, 길드원은 가까이 다가오더니 닉의 귓가에 대고 속삭였다.
“프로토게노이 새1끼들 엿 먹여서 줘서 고마워요.”
이내 길드원은 천사 같은 얼굴로 웃으며 물러나 ‘만나서 영광입니다!’ 하고 꾸벅 인사까지 했다. 닉은 자신이 뭘 들은 건가 싶어 얼떨떨하게 고개만 끄덕였다.
‘둘이 사이가 진짜 안 좋은가 보네. 프로토게노이가 뭐 이상한 짓 했나.’
한쪽만 듣고 판단할 수는 없는 데다 마라 때문에라도 헌터 길드의 이미지가 좋은 편은 아니었으나, 사냥터 선점에서 이미지가 나락으로 가 버린 프로토게노이였기에 동질감은 느낄 수 있었다. 무엇보다 지금까지 온갖 게임에서 솔로 플레이어로 활동하며 대형 길드들의 만행들에 이골이 난 닉이었다.
“원래는 고정 감정가에 등급에 따라 차등 수수료를 더해서 받긴 하는데, 이전에 말했다시피 무료로 해 드릴게요. 뭔가 감정받고 싶은 물건이 있으셨나 봐요?”
“아, 네. 예전에 보상으로 받았던 장신구가 있어서요. 다른 사람들도 있으면 한번 신청해 봐.”
닉은 에스텔에 있을 때 데이드완에게 받았던 장신구 하나를 꺼내 들었다. 애초에 퀘스트 보상에 없던 것인 데다 잡다한 아이템 사이에서 아무거나 가져왔기에 대단한 것은 아니겠지만, 그래도 사람이라는 것이 기대를 할 수밖에 없었다.
두근거리는 마음으로 길드원에게 장신구를 건네고 기다리던 차에, 길드원은 ‘앗’ 하고 놀란 듯 눈을 크게 뜨더니 닉을 쳐다보았다.
“이거 어디서 받으셨어요?”
“뭐, 뭔가 굉장한게 있나요?”
“아뇨. 그냥 능력치 약간 올라가는 아티팩트예요.”
“기대 주지 마!”
잔뜩 부풀어 있던 마음이 바람 빠진 풍선처럼 치이익 줄어들자, 길드원은 깔깔 웃더니 장신구를 닉에게 돌려주었다.
“그런데 광적일 정도로 세심하게 잘 만들었어요. 장신구로만 팔아도 꽤 비싸겠네요. 자세히 보면 가장자리에 문구도 새겨져 있어요.”
“문구요?”
“네. ‘모든 것은 자연으로 되돌아가야 한다.’라고.”
“엄청나게 자연친화적인 사람이네.”
데이드완이 직접 썼을 가능성도 있으려나. 어쨌든 능력치를 높여 준다니 나쁠 것은 없었다. 닉은 고맙다고 인사한 뒤 장신구를 제 상의 위쪽에 붙인 후 일행을 쳐다보았다.
“너희는?”
“아참. 저 그거 궁금해요. 사하바티가 가지고 있는 것.”
아인이 사하바티를 가리켰다. 별다른 무기도 없고 방어구 같은 아이템을 갖추지 않은 사하바티였기에 모두가 의외라고 생각하고 있는데, 사하바티는 뭔가 생각났다는 듯 작은 감탄사를 흘리더니 품을 뒤져 펜던트 하나를 꺼내 들었다.
본디 GM이 아인에게 ‘잘 써먹어라.’라고 말하며 주었던 아티팩트. 은색의 펜던트 모양을 하고 있는 그것은, 새것처럼 반짝였던 처음과는 달리 묘하게 낡고 해져 있었다.
오시하는 눈과 마주하기 전에 드라이어드였던 사하바티가 유달리 불안해 아인이 건네주었던 것이다. 혹시나 이상한 효과가 있진 않을지 걱정했는데, 무사한 것을 보면 아무튼 제대로 된 것을 넘겨주었던 모양이었다.
“그거 뭔가 효과가 있었나요?”
“응. 확실한 효과가 있었어.”
“무슨 상황이었는데요?”
“아주 대단한 상황이었지.”
“너무 애매하게 말씀하신다구요.”
아인의 투덜거림에 사하바티는 예의 그 부드러운 미소를 지었다. 하지만 무슨 효과가 있었는지는 결국 이야기해 주지 않았기에, 아인은 펜던트를 길드원에게 건넸다.
“그런데 그거 어디서 난 거야?”
“…아는 사람한테 받은 거예요.”
아인은 슬쩍 시선을 피하며 답했다. 가트나 페리스가 줬겠거니 하고 닉도 순순히 수긍하고 있는데, 탐지 마법을 이용해 감정을 하던 길드원의 얼굴이 애매해지더니 볼을 긁적였다.
“안에 마법이 내장되어 있어요. 두 번 쓸 수 있는 거고 이미 한 번 썼네요.”
“무슨 마법인데요?”
“그전에 하나 여쭈어볼 게…. 혹시 마법 효과 알고 있어요?”
“아뇨.”
“그러면 이거 준 분한테 나쁜 짓 했어요?”
“네? 아…, 아닐걸… 요?!”
“그게, 내장된 마법의 효과가. ‘진실로 원하는 것의 반대로 이루어진다.’거든요.”
“…….”
아인의 표정이 잠시 멍해졌다. 사하바티는 그 말을 듣고는 천천히 고개를 끄덕이며 ‘역시 그랬구나.’라고 중얼거렸다.
“잠깐만요. 반대요?!”
“네. 게다가 상당히 마법 등급도 높아서… 물론 어떻게 사용하느냐에 따라 유용하기도 하겠지만. 모르는 상태라면 한번 제대로 골탕 먹을 수도 있겠네요. 골탕 먹는 수준이 아닐지도.”
직접 손을 댈 수는 없으니까, 그 사람이 나를 죽이려고 했나? 아인은 얼굴을 험하게 찌푸리며 입을 벙긋거리다가, 닉이 머리를 꾹 누르자 간신히 진정했다.
“요, 용사님….”
“누가 줬어?”
“그냥. 이제 다신 안 볼 사람이에요.”
닉이 얼굴을 빤히 보다가 에르를 힐긋 쳐다보았다. 에르는 아인의 눈을 마주친 뒤 조용히 읊조렸다.
“거짓말.”
“…피해 안 가게 할게요. 그리고 제 쪽에서 만날 생각은 정말 없어요.”
“피해 안 오는 게 문제가 아니라 아예 널 저격해서 준 거잖아.”
“말하기 힘들어요. 나중에 기회 되면… 그때 할게요.”
아인은 최대한 GM에 대한 생각도 거두려고 하며 고개를 휘휘 저었다. 닉은 답답하다는 표정을 하고는 머리에서 손을 떼어 냈다.
“알았어. 대신 이상한 낌새 나오면 바로 말해.”
“네! 지금은 그런 것보다는 아이템 감정이나 해 주세요. 크투가를 잡고 나온 거예요.”
아인이 검은 조각과 여전히 붉게 달아올라 있는 작디작은 불꽃을 건네주자, 길드원은 처음 듣는 이름이라는 양 고개를 갸웃했다.
“크투가?”
“오시하는 눈의 진명이요!”
“진명도 알려 줬어요? 저희도 온갖 제보나 기록을 살펴봤는데도 한 번도 안 보이던 걸 말이에요? 완전 비밀 친구 다 됐네.”
길드원은 별생각 없이 말하고는 아이템을 감정하기 시작했지만, 아인은 움찔하고는 식은땀을 줄줄 흘렸다. 그러고 보니 오시하는 눈의 진명을 알고 있는 것은 자신뿐이었다. 괜히 이상한 소리를 했다가 캐묻기 시작하면 어떤 방법을 썼는지도 알게 될지도 몰랐다.
“어디 보자…. 검은 조각은 저도 잘 모르겠네요. 그냥 일반 재료템처럼 보이기도 하고. 그냥 특정 사명의 장비를 만드는 데 사용되는 걸지도. 나중에 아는 대장장이 있으면 물어보세요. 문제는 이 작은 불꽃인데.”
“문제… 인가요?”
“네. 문제라면 엄청 큰 문제죠?”
길드원은 침음을 길게 흘리더니, 불꽃과 아인을 한 번씩 가리켰다.
“이 안에 아직 살아 있어요, 오시하는 눈이요.”