Hero, What's logout? RAW novel - chapter (9)
9화 : 모험의 시작!
“이것도 가져가라.”
“이걸 어떻게 들어요.”
부길드장은 거의 제 몸뚱어리 만한 짐을 바닥에 내려놓았다.
안에 든 건 죄다 먹을거리였으며, 두 명이 먹는다면 한 달은 풍족하게 지낼 수 있을 만한 양이었다.
문제는 정작 짐의 주인이 아인이 들 수 없을 정도라는 것이었다. 하지만 부길드장은 더 물러설 생각이 없어 보였다.
“고작 일주일 치 식량이다.”
이런저런 실랑이 끝에, 결국 용사가 가지고 있는 인벤토리라는 매직 아이템에 음식을 넣기로 했다.
“이거 그냥 평범한 가방처럼 보이는데 뭐든 쑥쑥 들어가네요. 용사님은 정말 신기한 거 가지고 계신 것 같아요.”
“이 정도야 뭐. 우리들은 인벤토리가 없는 게 이상한 거야.”
“다행히 짐 문제는 덜겠네요…. 그럼 준비되셨나요? 여관에서 뭐 놓고 오셨다든지 하는 건 아니죠?”
“난 여기 온지 얼마 안 됐는걸. 오히려 너한테 물어봐야지.”
“저도 없어요!”
“있을 텐데?”
마지막 목소리는 뒤에서 났다.
그곳엔 벽에 기대 비릿하게 웃는 길드장이 있었다.
아인의 얼굴과 등에서 식은땀이 나기 시작했다. 저렇게 웃으면 언제나 끝이 좋질 않았다.
“인어와 드래곤의 이중생활이었나? 그 책.”
“그거 돌려줬는데요! 아니, 그전에 어떻게 아신 거예요!”
“서랍에 남아있던데?”
“뭐지? 후속권인가? 용사님 저 잠깐 갔다 올게요.”
잔뜩 당황한 아인의 모습에 길드장은 장난기 넘치는 얼굴로 히죽히죽 웃다가 가까이 오라고 손짓했다.
“농담이었고. 작별인사 빼먹었잖아. 다시 만날 수 있을지 없을지도 모르는데.”
“…아우 진짜.”
아인은 한숨을 푹푹 내쉬었다. 그냥 처음부터 이랬으면 될 걸 놀려야 했는지. 어떻게 보면 그는 부길드장보다 감정에 솔직하질 못했다.
“….”
이윽고 아인은 길드장과 부길드장을 한 번씩 번갈아 보았다.
아무리 시골구석이라지만, 용병 길드의 장을 맡고 있다는 것은 그만한 실력을 갖추고 있음을 방증했다. 특히나 이 두 사람은.
왕국 소속 용병이기도 한 두 사람은, 스스로의 뛰어난 실력으로 인해 그만큼 어렵고 막중한 의뢰를 떠맡는 경우도 있었다.
개중 재앙급의 마수를 퇴치하는 국가급 의뢰 중엔 목숨을 잃는 경우가 결코 드물지 않았다. 최근 그런 일이 더 많이 생기는 추세이기도 했다.
그런 사실을 아는 아인이다보니, 어쩌면 이게 마지막이 아닐까 하는 불안한 마음이 싹텄다.
“…꼭 마지막 인사인 것처럼….”
서글픈 얼굴로 자신들을 바라보는 아인의 모습에 퍽 귀엽다는 듯 그들이 웃으며 아인을 껴안았다.
“어이구 울보야. 촌놈 둘 불러서 뭘 하겠냐. 배나 긁다가 다시 만날 테니 걱정 마. 인사나 하고 빨리 가라.”
“강요하니까 싫어요. 그냥 미련 남기고 갈래요.”
“가트, 얘 인사도 안 하고 간다는 꼬라지좀 봐. 기껏 핏덩어리 주워 키워놨더니….”
“만난 당시부터 지금의 우리보다 나이가 많았다.”
“넌 이 자식아 분위기 파악을 좀.”
투닥거리는 둘의 모습에 아인은 작게 웃더니, 결국 끝까지 인사는 하지 않고 용사가 있는 쪽으로 달려갔다.
“많이 기다리셨죠! 죄송해요.”
“괜찮아. 감동적이었어. 트레일러 영상은 끝까지 보는 편이라. 아 잠깐!”
닉은 말을 하다 말고 갑자기 아인의 얼굴을 감싸고 진지한 눈으로 쳐다보았다.
“지금 아련하게 눈물 글썽이며 갑자기 마지막에 고개 돌리고 인사하지 마.”
“네?”
“돌이킬 수 없는 사망 플래그다. 겜창은 느낄 수 있는 전형적인 스토리라인이지. 그 행동을 취하는 순간, 길드장과 부길드장은 ‘이제 마음 편하게 갈 수 있겠군.’이라고 말한 뒤 얼마 후 이곳은 불바다가 될 거야. 원래 커다란 재앙은 촌구석에서부터 시작돼.”
알 수 없는 단어들이 뒤섞인, 불길할 정도로 세심한 문장들.
그것은 마치 종말의 사제가 광기에 홀려 내뱉는 신탁처럼 느껴지기도 했다.
“아, 알겠어요.”
“좋아… 이대로 아무렇지 않게 가면 되는 거야.”
아인은 딱딱하게 굳은 몸을 억지로 움직여 걸음을 옮겼다.
조그마한 소리도 쉽게 들리는 짧고 뾰족한 귀에, 자신을 축복하는 부길드장의 목소리가 고스란히 전해졌다.
어느 정도 걸은 뒤, 길드가 거의 보이지 않을 거리에서 아인은 발을 멈췄다.
“이… 이 정도면 될까요?”
“하늘에서 반투명하게 길드장이나 부길드장의 모습이 보이진 않지?”
“…그렇 …죠?”
“다행이네. 이제 됐어.”
여행을 시작한 지 한 시간도 되지 않았는데 아인은 모든 진이 빠진 기분이라 바닥에 풀썩 주저앉았다.
“이제 두 분은 안전한 걸까요? 용사님. 저… 해냈어요!”
“너 진짜 마음 약하구나.”
“그 두 분이 그만큼 소중한 분들이라서요… 중요한 신탁을 내려주셔서 감사해요.”
“신탁?”
“네! 예언을 해 주셨잖아요.”
닉의 얼굴이 복잡해졌다. 장난삼아 어린아이에게서 가져간 과자가, 사실 그 아이의 유일한 끼니였다는 것을 깨닫기라도 한 것처럼.
“그거 반쯤 농… 음 그래. 하지만 함부로 쓸 수 있는 건 아니니까 부탁하진 마.”
“네!”
평소에 워낙 심드렁하고 가벼운 모습을 보여서 그렇지, 운명을 뒤흔들 수 있는 힘은 함부로 가지는 것이 아닐 것이다. 아인은 그렇게 생각하며 자신을 위해 힘을 써준 닉에게 한 번 더 감동을 받았다.
닉은 다소 멋쩍은 미소를 짓더니, 고개를 들어 하늘을 보았다.
“그리고 굳이 신탁이라 한다면… 내가 아니라 나보다 높은 애들이 하지.”
“네?!”
최후의 최후까지 존재하는 불멸의 상징. 어떤 가능성도 일으킬 수 있는 카오스는 신적 존재 사이에서도 가장 높은 축에 속했다.
그보다도 더 윗 단계가 있다니, 아인으로서는 상상이 되질 않았다.
“그… 그게 누군가요?”
“GM이랑 개발자.”
“GM? 개발자?”
“응. 까놓고 말해서 그중 한명이라도 퇴사할 마음먹고 난리치면 이 세계를 좀 날려먹거나 엉망으로 만들 수도 있으니까.”
‘그중 한 명’이라니. 그렇게나 세계를 좌지우지할 수 있는 존재가 여럿이란 소리일까. 위에는 위에가 있다는 것을 실감하며 아인은 질린 표정을 지었다.
그리고 퇴사라는 것은 타락으로 빠지는 유혹과 같은 것 같다고 마음속으로 메모하며, 그들이 그 유혹에 빠지기 않기를 진심으로 빌었다.
고대의 전설 중, 악마의 유혹에 이기지 못해 추락한 고위 천사가 한 나라를 파괴한 일화는 심심찮게 나오는 기록이다.
“GM이란 것. 왠지 약칭인 것 같은데요.”
“응. 맞아. 무슨 약칭이냐면….”
“그랜드 마스터일까요?”
“음….”
아인이 알고 있는, G로 시작하는 강인한 단어는 무척 많았다. 기가, 그랜드, 제너럴…
“호, 혹시 제노사이드는 아니겠지요?!”
“그건 아냐 걱정 마. 내가 괜히 말했네.”
닉은 더 이상 말을 꺼내지 않았다. ‘세상엔 알 필요가 없는 것도 있다.’라면서.
아인도 괜히 파헤쳤다가 너무 많은 것을 안 죄로 천벌을 받지 않을까 겁이 나긴 했지만, 언젠가는 알고 싶다는 생각도 들었다.
그러면 이 세상의 많은 것을 바꿀 수 있지 않을까 하고.
“언젠가 GM이나 개발자와 싸우는 날도 올까요?”
그 말에 닉이 무슨 소리냐는 듯 거세게 고개를 저으며 대답했다.
“안 돼. 그러면 난 영정이야. 캡슐 아이피 밴먹는다고. 아니 아이피뿐만 아니라 내 홍채 정보까지 밴먹으면 평생 추방이야.”
일단은 굉장히 무서워진다는 것 같아 아인은 열심히 고개를 끄덕였다.
“어쨌든 타락하지 않는 한, 먼저 현현해서 말썽을 일으키진 않는다는 거죠? 그러면 용사님이 현 세상에서 가장 고귀한 존재 중 하나라는 건 변하지 않네요.”
“…고귀하다니까 갑자기 몸이 근질거리는데.”
“익숙해지세요. 이제 용사잖아요.”
“똥망캐….”
“이젠 어투로 무슨 뜻인지 대충 알 수 있거든요? 자 용사님, 빨리 누군가를 지켜주러 가요!”
“자 잠깐만 나 이제 슬슬 줌 싸강들으러 갈 시간이야. 나부터 지켜야 한다고!”
***
길드를 떠난 닉과 아인은 점점 그 모습이 작아지더니 이내 시야에서 사라졌고, 길드장과 부길드장은 그제야 대화를 시작했다.
“막상 보내니 걱정되네.”
“알아서 잘 하겠지. 우리는 우리 일을 할 차례다.”
“그래… 언제까지 오라고 했더라?”
“일주일 남았다.”
“쯧. 슬라우한테 대행은 부탁했으니 우리도 바로 출발하자. 촌구석은 다 좋은데 불려갈 때가 번거로워서 문제야.”
귀찮음이 잔뜩 배어있는 투. 하지만 그 안엔 일말의 긴장도 섞여 있었다.
길드장 페리스는 주머니를 뒤적여 꼬깃꼬깃해진 종이 한 장을 펼쳐 들었다.
그곳엔, 멸망한 제국의 유적에서 군단 규모의 데스 나이트가 출몰했다는 내용이 간략하게 적혀있었다.
때문에 자신들을 고용하겠으며, 수도의 왕성으로 오라는 일방적인 의뢰서. 그리고 맨 아래에 새겨진 국왕의 인장.
즉, 나라의 의뢰였다.
“말년엔 시골에서 죽치다 가고 싶었는데 살다살다 이런 날이 오네.”
“오픈베타의 영향일 거다. 대륙 각지에서 불온한 움직임은 물론, 봉인돼 있던 마수들이 깨어나고 있어.”
“신탁에서 뭐라 그랬더라. 사명 퀘스트? 메인 시나리오? 잘 모르겠지만 다 죽이면 된다는 거겠지.”
“틀린 말은 아니군.”
“…마음 같아선 아인 옆에 있는 그 PC도 죽여버리고 싶었어. 다시 살아나겠지만.”
서슬 퍼런 그 말에 가트가 피식 웃으며 대꾸했다.
“아마 PC들의 잘못은 아니다. 그리고 마수들뿐만 아니라 대륙 각지에 생겨난 일들을 없애려면 그들의 힘이 반드시 필요해.”
“우리는 이제 퇴물이란 거냐.”
S급 용병, 자색의 핏줄 페리스.
A+급 용병, 관철자 가트.
한때 대륙을 휩쓴 ‘사교 헤르도아’의 절멸에 주도적인 역할을 한 살아있는 전설들이다.
지금도 당장 현역으로 뛸 수 있는 쟁쟁한 실력. 허나 언젠가 몸이 녹슬고 쇠할 것은 당연한 일이다.
목숨이 하나 뿐이기에 함부로 도박을 할 수 없었고, 가지고 있는 재능이 한정됐기에 더 이상 강해지지 않는 시점이 오고 만다.
하지만 카오스의 조각들은 죽지 않기에 어떤 도박도 행할 수 있고, 한계를 모를 정도로 끝없이 성장한다.
신경 쓰지 않으려 해도 시기와 질투가 이는 것은 어쩔 수 없었다.
“세대교체는 언젠가 이루어질 거다.”
“쉽게 내어주진 않을 거야.”
“그건 나도 동감이다만.”
철컹. 길드의 구석에 세워져 있던 배틀액스가 가트의 한 손에 들려진다.
새까만 흑도를 어깨에 걸친 페리스는, 종이를 다시 주머니에 구겨 넣고 마구간이 있는 곳으로 걸음을 돌렸다.
“작별인사, 끝까지 못 들었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