Hero, What's logout? RAW novel - chapter (90)
90화 : 북쪽으로
“오시하는 눈이요?!”
“엄밀히 따지면 그렇긴 하죠. 물론 정말 일부분이긴 해서 이 자체로 위험하다거나 그런 느낌은 아니에요.”
“그런데 왜 그렇게 큰일처럼 말씀하신 거예요….”
“헤르도아가 오시하는 눈을 사도나 성인처럼 추앙하고 있다는 건 알고 계시죠?”
“네. 그런데요?”
길드원은 아인의 대답에 생긋 웃고는, 직접 아인의 손안에 불꽃을 쥐여 주었다.
“비유를 하자면. 아인은 지금 사도의 손가락을 가지고 다니는… 걸어 다니는 신성 모독자 같은 거예요.”
“…….”
“부관참시에 고인 모독에 신성 모독이라는 트리플 크라운.”
“호칭까지 붙여 주지 않으셔도 돼요!!”
[임시 호칭 ‘헤르도아의 신성 모독자’를 획득합니다.]‘필요 없어!!’
“그런 의미에서 저희 헌터 길드 측에 팔아 주실 생각 없으신가요? 안전은 물론 돈까지 덤으로 얻는답니다.”
아인이 머리를 감싸 쥐는 사이 길드원이 자연스럽게 영업을 시작하자, 라칼이 아인의 어깨를 툭툭 두드리고는 고개를 저었다.
“그걸 가지고 있으면 저쪽에서 알아서 와 준다는 것 아니냐?”
“그건 그렇… 죠?”
“오시하는 눈의 영역에 있으면서 헤르도아와 관련한 정보는 거의 얻질 못했어. 여유로운 것도 아닌 이상 오히려 고마운 일이지. 넘기지 마. 분명 어딘가 쓸 곳이 있을 거다.”
“…그렇죠. 고마워요, 라칼.”
“인사는 필요 없어. 그나저나 내 이름은 대체 언제 안 거야?”
‘진심으로 들키지 않았다고 생각한 건가.’
확실히 어쩌다 보니 라칼을 부를 때 이름을 직접 호명한 적은 없긴 한데. 아인은 ‘어쩌다 보니~’ 하며 어물쩡 넘어가고, 라칼은 다음에 꼭 자신의 이름을 외칠 만한 상황에서 다시금 제대로 알려 주겠다며 구시렁거렸다.
“또 다른 건 없나?”
“딱히요. 오시하는 눈에게서 나온 아이템도 그게 끝이고. 직행 통로로 가느라 깨는 과정에서 별달리 몬스터를 만난 것도 아니라서.”
“그럼 일단 에스텔로 돌아갈까? 무료 감정 해 주셔서 감사해요.”
무슨 꿍꿍이가 있는지 모르니 오래 머무를 생각은 없지만, 일단 무료 감정 해 준 것만은 감사해야 하니까. 닉은 고개를 꾸벅이며 인사하고, 탕은 괜찮다는 듯 손사래를 쳤다.
“다음에 또 만나길 바라요. 짧긴 했지만 같이 있어서 즐거웠어요. 헌터 길드는 대륙의 어떤 곳이든 존재하니까 필요하면 즉각 말해요!”
“그건 그거대로 또 무섭긴 한데.”
닉 일행은 그대로 텔레포트 시설로 향했다. 그들이 완전히 시야에서 사라지자, 탕은 흔들던 손을 멈추고 길드원 따로 불러 뒤쪽으로 향했다.
“오시하는 눈이 있다는 거, 진짜야?”
“거짓말을 할 필요는 없잖아요? 왜요?”
“재앙을 잡아내고 얻은 아이템이 꼴랑 그거 하나면 좀 이상하지 않아? 헤르도아에게 어그로를 끌 수 있는 아이템이라니.”
“아무래도 생긴 게 불꽃이니까. 무기나 장신구 같은 장비는 기대할 수가 없죠.”
카오스가 유저들에게 욕을 먹고 있는 것 중 하나는, 골드를 제외하면 반드시 그 몬스터가 ‘떨어트릴 법한’ 것만을 루팅 아이템으로 내놓는다는 것이다.
가령 곰을 쓰러트렸더니 희귀한 명검이 나온다. 같은 식이 불가능하다는 것이다. 곰을 잡으면 골드와 가죽, 고기, 이빨 중에서만 나온다.
그래서 갑옷이나 검을 획득하기 위해선 해당 장비를 착용하고 있는 몬스터를 잡아야만 했다. 아니면 철을 따로 모아 생산직에게 만들어 달라고 하거나.
전투직 위주로 굴러가는 것을 막고 생산직의 위상을 높이게 하기 위해서라지만, 특정 길드가 한 사냥터를 독점하기 시작하면 해당 관련 장비는 독과점이 시작되는 것이나 마찬가지다.
이 때문에 온갖 컴플레인이 달리고 가장 해결해야 하는 문제 중 하나로 손꼽히고 있었지만 카오스는 이를 고칠 생각을 하지 않았다.
아직 관련 패치가 이루어지지 않은 이상, 온몸이 초고온의 불꽃으로 이루어진 오시하는 눈에게서는 제대로 된 장비를 기대하는 것이 무리였다.
“하지만 그만큼 더 값어치 있는 아이템이겠지. 다른 효과가 있는게 틀림 없어.”
“…뭘 말씀하시고 싶은 거예요?”
길드원은 감정하던 다른 아이템을 주머니에 집어넣고 탕을 바라보았다. 탕은 아무 말 없이 눈을 마주치다가, 슬쩍 시선을 피하며 중얼거리듯 말했다.
“안에 있는 오시하는 눈. 그걸 끄집어내서 다시 본래의 모습으로 돌아가게 할 수 있어?”
그 말에 길드원은 한쪽 눈썹을 치켜올리더니 언성을 높였다.
“…탕 님 미쳤어요? 혹시 헤르도아 퀘스트 중이에요?”
“아냐. 진짜 아냐. 야, 그런 눈으로 보지 마.”
“의심을 안 할 수가 없잖아요.”
오시하는 눈이 없으면 다음 ‘재앙’은 막을 수 없다. 하지만 이 정보도 정규 류트로 얻은 것이 아닌 만큼 함부로 말하기가 힘들었다.
닉 모하지나 아인이 인상과는 다르게 엄청난 일들을 해내고 있는 것은 확실하지만, 마라처럼 무작정 그들이 무언가를 해결해 줄 거라고 믿고 있을 수만은 없었다.
“정말 필요한 일이야. 오시하는 눈, 빼낼 수 있어?”
길드원은 탕이 농담이 아니라는 것을 알고는 더욱 심각한 얼굴이 되었다. 결국 그녀는 길게 신음 소리를 내다가 인벤을 열어 몇 가지를 검색하고 다시 감정소로 돌아가 책 안에 있는 키워드를 살피더니, 책을 탁 소리 나게 덮으며 작은 목소리로 말했다.
“불가능하진 않아요.”
***
“텔레포트 비용도 정말 엄청 비싸네요.”
“그만큼 시간을 줄여 주니까 불평할 순 없어. 카오스에서 시간은 말 그대로 가장 값비싼 재화야. 느긋하게 배경 그래픽 감상하는 걸 좋아하는 사람이 아닌 이상 수요가 멈출 일은 없지.”
음지에서는 조금씩 작업장이 생겨나거나 따로 카오스를 하기 위한 캡슐방도 존재하는 이상 시간이 돈이라는 말은 비유적 의미가 아니게 되었다.
모험을 즐기기 위해 텔레포트 시설을 이용하지 않고 일부러 도보를 이용하는 사람들도 초기에는 상당히 많았다. 하지만 쓸데없이 고증을 잘해 놓은 산속에서는 벌레가 새까맣게 일고 야영 한번 하는 것조차 불편하기 짝이 없어 요즘에는 매니아층만 즐기는 사장된 콘텐츠가 되어 버렸다.
그나마 왕복 텔레포트 이용비를 에스텔 측에서 지불했기에 망정이지, 따로 값을 내려면 피눈물이 흘렀을 것이다.
텔레포트를 이용해 에스텔에 도착한 닉은, 텔레포트 시설을 나오며 뒤를 힐긋 쳐다보았다.
“다음에 가는 곳도 있으면 지원해 줬으면 좋겠는데….”
“그렇게 해 주시지 않을까요? 그나저나 용사님 검도 슬슬 바꿀 때가 됐어요.”
아인은 닉의 허리춤에 걸려 있는 너덜너덜한 검을 가리켰다.
극초기에 초보자용 스타터 팩을 깠을 때 얻었던 검이었다.
스탯도 준수하고 수리비도 싸며 절대로 파괴되지는 않기 때문에 지금까지 사용하고 있었지만, 지금의 닉이 착용할 수 있는 검들에 비교하면 수준이 많이 떨어지는 것이 사실이었다.
“그런가? 지금까지는 스탯빨로 밀어붙이긴 했는데.”
“스스로의 강함을 체감 못 하시는 것 같아요.”
“그야 싸워 온 놈들이 무식하게 강한 녀석들이라 그렇지.”
본인의 운동신경도 그리 좋지 못한 데다 유니크 장비를 가지고 있는 것이 아닌 닉이지만, 온갖 큰 사건들을 겪으며 쌓아 온 명성이 그 강함의 원천이 되었다.
심지어 이번에 오시하는 눈을 쓰러트린 결정적인 공로자 중 한 명으로 인정받으며, 명성이 뻥튀기가 된 만큼 스스로도 상당한 레벨링이 되었지만 동레벨에서는 손꼽힐 정도로 강자가 된 것이다.
“이제 진짜 용사에 가까워지고 있는 거예요. 무기도 바꾸고 점점 유명해지고….”
“아, 몰라. 그냥 응애예요, 응애. 무기가 장비류 중에서 제일 비싸. 귀찮은 일은 언제나 싫어. 이제 좀 편하게 돌아다니면서 서브 퀘스트나 하고 싶다고. 재앙도 다음 업데이트를 바로 시작하진 않을 테니 조금은 여유롭게….”
닉이 자신의 처지를 비관하며 투덜거리고 있던 중, 아인이 가지고 있던 수정에서 빛이 나기 시작했다.
예전에 실리본이 무슨 일이 있으면 연락하라고 준 것. 가트를 치료하는 마법은 어떤 것도 없다고 대답한 이후 마음이 상해 버린 아인이 한 번도 건들지 않은 것이다.
‘혹시 너무 연락이 없다며 뭐라고 할 생각인 걸까. 사실 내가 오류 데이터라는 것도 아는 NPC인데. 너무 막 해도 곤란하긴 해.’
그 이후 실리본의 존재를 완전히 잊고 있었던 아인은 압박감에 숨이 막히는 기분이었다.
“그건 뭐야?”
“실리본이요. 저한테 연락을 시도하는 것 같은데… 받을까요?”
“아, 불안해. 너무 불안해. 내가 아까 저 말 해서 플래그 꽂힌 것 같아.”
“에이, 설마 무슨 일이라도 있겠어요? 단순한 연락일 거예요.”
“완벽하게 꽂아 버렸어!!”
머리를 감싸 쥐고 주저앉은 닉을 뒤로하고, 아인은 머뭇거리다가 수정에 마나를 불어넣었다.
“여보세요…?”
아인이 조심스러운 목소리로 운을 띄우자, 수정에선 실리본의 목소리가 낮게 울렸다.
-아인이냐.
“네. 왜 부르셨어요?”
-이것저것 확인도 하고 얘기할 것도 있다. 우선 오시하는 눈이 너와 닉을 통해 퇴치되었다는 말을 들었다. 일단 그건 호재로군. 명성이 가라앉기 전까지 목숨은 보장된 셈이니.
아인은 그 말을 듣고 저도 모르게 안도의 숨을 뱉었다. 이전에 만났던 GM 역시 아인의 명성이나 영향력이 떨어질 때를 기다린다 했고, 이 영향력이란 것이 자신의 목숨을 연명시킨다는 것은 확실해 보였다.
-그렇다고 안심하기엔 이르다는 것도 알고 있겠지? 오픈베타 이후 영웅과 악당, 구원자와 재앙이 넘쳐 나는 세상인 지금은, 조금만 늦춰져도 새로운 전설이 나오고 기존에 있던 영웅담은 손쉽게 잊힌다.
“그러면 그걸 언제까지 해야 돼요?”
-영원불멸의 전설이 되거나, 이 세상이 너를 인정하기 전까지겠지.
“…….”
아인은 자신의 퀘스트창에 있는, 내용을 읽을 수도 없는 퀘스트 하나를 상기했다.
닉에게서 자신이 살아 있다는 것을 인정받아야 한다. 하지만 정면으로 가서 나는 살아 있다고 외쳐 봤자 먹히지도 않을뿐더러 자신도 원하지 않았다.
“영원불멸의 전설 쪽이 되어 볼까요.”
-불가능하진 않겠지.
거의 농담으로 한 말이었는데 담담한 반응이 나와 오히려 들은 쪽이 당황했다. 아인이 어버버거리는 사이 실리본은 한심한 사촌이라도 보듯 혀를 차더니 말을 이었다.
-그걸 위해선 끊임없이 움직여라. 북쪽의 노타나 영지로 가. 엘퀴네스가 주변 바다의 움직임이 이상하다고 한다. 머지않아 무슨 일이 벌어지는 게 분명해.
“노타나요? 좀 먼데…. 정령 관련이라면 데이드완 님도 알고 계실 수 있으니 우선 말씀드려 볼게요.”
-데이드완은 거기 없을 거다.
“네?”
-개인적인 용무가 있다며 어딘가로 가 버렸어. 연락도 끊겨 버렸고. 사람이 사람이니 안전상의 걱정은 되지 않는다만 한동안 에스텔로는 가지 않을 거다.
이야기를 들으며 아인은 불안한 느낌이 들었다. 갑작스레 사라져 버린 데이드완. 끊겨 버린 연락. 즉 에스텔에는 영주가 부재해 있다.
즉 그 말은.
“저희 노타나 영지에 텔레포트 시설 등록한 사람 없을 것 같은데요.”
-그래?
이윽고 실리본은 차가운 목소리로 불안한 목소리에 쐐기를 박았다.
-그럼 걸어가.