Hero, What's logout? RAW novel - chapter (98)
98화 : 그러니까 그게 아니라
악식왕이 자리를 떠나고 난 뒤, 끝까지 손을 흔들던 아인은 찝찝한 얼굴로 머리를 긁적이는 닉에게 다가왔다.
“용사님, 그런데 아까 악식왕 님이 뭐라고 말씀하셨어요?”
닉은 대수롭지 않게 이야기하려다가 문득 주위를 한 번 살폈다. 시원털털한 성격의 악식왕이 그렇게 조심스럽게 말했다는 것은 이유가 있을 것이다.
가령 프로토게노이 길드원이 이미 이 주변에 있을지도 몰랐다. 아니, 오히려 없는 것이 이상할 정도였다. 북쪽에서 무언가가 일어나리라는 조짐은 다수의 NPC들에게 이미 거론되고 있었으니, 그런 정보를 사전에 입수하지 못했을 리가 없으니까.
딱히 이쪽을 주시하는 시선은 없었지만 조심해서 나쁠 것은 없었다. 닉은 시선을 조금 낮춰 악식왕이 그랬던 것처럼 목소리를 깔고 속삭였다.
“우라노스라는 녀석이 이쪽으로 올 테니까 조심하라고….”
“그분에게 잘못한 거라도 있으세요?”
“있겠지, 라고 단정하는 표정부터 짓지 마. 잘못한 적 없어.”
“그러면 왜 그렇게 조심스럽게 말하는데요?”
“자기들이 뻘짓해서 피해 본 걸 나 때문이라고 생각하고 있어.”
특히 오시하는 눈의 자멸 당시에 알 수 없는 방법을 사용해서 닉 모하지의 파티가 막타를 쳤다는 사실은 반쯤 기정사실화되어 있었다. 그것이 자멸 중이라는 사실을 알고 있는 것은 닉의 일행밖에 없었으니까.
다행이라면 다행스럽게도, 곳곳에서 횡포를 부리기 시작하는 프로토게노이를 싫어하는 이들이 공헌도별 보상 생각하면 오히려 너희가 숟가락을 얹은 것이 아니냐며 알아서 나서 준 덕분에 사태는 커지지 않았다.
거기에서 핀트가 어긋나 대형 길드와 중소 길드들의 싸움으로까지 이어져 아직까지 댓글란이 난장판인 걸 생각하면 웃음은 나지 않았지만 거기서부터는 닉이 신경 쓸 바가 아니었다.
“일단 나는 모습을 좀 가리고 다니는 게 좋을 것 같아. 옷 같은 걸 새로 살까 봐.”
“안 그래도 무기 사실 때 됐으니까요.”
“응. 진짜로 바꿀 때가 됐어.”
비싼 무기로 바꾸면서 같이 오를 수리비를 생각하면 눈물이 날 지경이었지만 어쩔 수가 없었다. 몬스터의 수준이 오르면 스탯으로 밀어붙이는 것도 한계가 있는 데다, 자칫하면 한 방에 검이 부러지고 사태가 악화될 수도 있었으니.
“너희는 뭐 살 것 있어? 보온을 위한 옷 같은 거라든지.”
“그다지 없는 것 같아요. 모습이 돌아가면 라칼은 털 때문에 안 추워하고, 이후프나 사하바티도 추위에는 강해 보이는 것 같았거든요. 에르는 말할 것도 없고.”
사하바티의 나뭇가지가 냉해를 입지는 않을까 걱정됐지만 애초에 출신이 이 주변이다 보니 별다른 조치는 필요 없었던 모양이다. 닉은 턱을 매만지다가 고개를 끄덕이곤 먼저 가 보라는 듯 손을 흔들었다.
“그럼 나 혼자 이것저것 둘러보고 있을게. 무기나 옷 같은 것 좀 둘러볼게. 너희들은 주변 구경하고 있거나 주변 소문 좀 알아 와 줄래?”
“저랑 용사님이랑 같이 갈까요?”
“절대로 싫어.”
“힝.”
에스텔에서 같이 쇼핑을 할 무렵 하루 종일 돌아다니다가 결국 첫 번째 가게에서 봤던 옷을 산 이후로, 닉은 다른 건 몰라도 절대로 아인과 같이 옷을 사진 않겠다고 마음먹었다.
“오래 안 걸릴 거야. 어차피 너희는 눈에 띄니까 금방 찾겠다만, 내가 오래 안 보이면 정령 하나 붙여 둬.”
“네! 앗 그러면 저희 같이 옷 사러 갈까요? 시간이 얼마나 남았는지는 모르겠지만, 인간 모습일 때 입혀 두고 싶은 것들이 있어요.”
아인은 신난 모습으로 사하바티와 라칼의 손을 잡고 근처의 가게로 향했다. 분명히 오래 걸릴 것이라는 확신이 들어, 닉은 꽤 느긋하게 둘러보아도 괜찮겠다는 생각을 했다.
“방어구 팔아요! 냉기 공격 저항 들어 있어서 쓰일 곳 많아요.”
“불 속성 내재된 무기 ㅍㅍㅍㅍㅍㅍ 선제 네고X 즉입가능만.”
사냥이나 레이드를 위해 모인 플레이어들이 북적이는 만큼 파는 것들은 대부분 무기나 방어구가 주류를 이루고 있었다. 하지만 냉기 저항이 약간만 높아도 값이 천정부지로 뛰는가 하면 물과 얼음에 상성이라 알려져 있는 불 속성 무기는 부르는 게 값일 지경이었다.
“시작 마을 노타나 영지에서 시작했습니다! 주변 지도랑 던전, 냉기 엘레멘탈 잘 나오는 몬스터 등등 이런저런 정보 같은 거 제가 아는 선에서 다 알려 드려요.”
또한 노타나 영지가 본래 그렇게 유명하거나 유동 인구가 많지 않은 곳이다 보니 주변 던전이나 몬스터에 대해서도 알려진 것이 별로 없었다.
헌터 길드를 통해 입수하자니 값이 만만치 않은 것도 사실이라, 돈이 없는 이들은 현지인들의 어설픈 정보라도 사들이는 수밖에 없었다.
물론 이런 정보 판매상이 파는 정보가 정말인지 아닌지를 확인할 방도가 없었다. 돈은 받고 입을 씻어 달아나면 그만이니까. 그 때문에 누가 들어도 혹하는 말로 사람들을 끌어모은 뒤 가짜 정보를 팔아먹는 이들도 존재했다.
“닉 모하지 파티에게서 입수한 최신 정보! 닉 모하지의 정령이 북쪽으로 오라고 한 이유?! 당신은 이 말을 듣고 미친 듯 온몸에 전율이 돋게 됩니다! 오시하는 눈 관련 정보도 있어요!”
“…….”
가령 저런 이들.
자신은 누군가에게 정보를 준 적이 없으며, 그것은 아인도 마찬가지다. 애초에 이쪽도 아는 것이 없는데 넘기거나 팔아먹을 것이 뭐가 있겠는가.
다만 꽤 자극적인 언사였는지 주변에 몰려드는 이들이 몇몇 있었다. 닉은 무시하고 가려고 했지만, 무언가를 듣고 나오는 사람들마다 놀라거나 벙찐 표정으로 나오니 궁금해서 견딜 수가 없었다.
‘이상한 소리 하고 다니는 건 아니겠지…? 이건 확인이야, 확인.’
닉은 캐시샵에 들어가 값싼 컬러렌즈 하나를 사고 머리를 묶어 올렸다. 거기에 예전에 아인과 함께 골랐던 고풍스러운 옷을 입고 나니 그것만으로 꽤 분위기가 달라져 있었다.
닉은 그 상태로 정보상에게 조심스레 다가가 눈치를 보며 물어보았다.
“닉 모하지 관련 정보 있어요?”
“아, 물론이죠. 직접 알아낸 것도 있고 신빙성 있는 이들에게 얻은 것도 있답니다.”
“어떻게 알아냈어요? 파티도 안 맺고 NPC하고만 다닌다는데.”
“그것까지 알려 줄 순 없죠. 저희의 영업 비밀인데.”
‘영업 비밀 같은 소리 하고 있네.’
닉은 그대로 주먹을 쥘 뻔했으나, 가까스로 참아 낸 뒤 순진한 얼굴로 고개를 끄덕였다.
“그러면 저도 살게요.”
“하급, 중급, 고급 정보 있어요. 맞춰서 가격 주시면 바로 알려 드립니다.”
이쯤 되니 어이가 없어 웃음이 나올 지경이었다. 어차피 돈을 많이 쓰는 편도 아니니, 닉은 큰마음을 먹고 고급 정보를 사기로 했다.
돈을 받은 정보상은 만족스레 고개를 끄덕이더니, 인근의 뒷골목으로 들어가 근처에 소리가 새어 나가지 않게 만드는 결계 마법을 친 후 닉에게 속삭였다.
“닉 모하지는 카오스 고위층의 자식이라는 소문이에요.”
“…진짜 뭔 개소리를.”
“네?”
“아, 아뇨. 순간 너무 황당하고 갑작스럽고 그래서 호호호…! 더 말씀해 주시겠어요?”
“모든 것들이 그들에게 너무 유리하게만 흘러가요. 그리고 한 번도 실패를 하지 않아요. 처음엔 용사 사명 때문인가 싶었지만, 같은 사명을 가진 이들에게 물어봐도 그렇게까지 좋은 사명이 아니에요. 오히려 좀 똥캐에 가깝죠.”
“맞아요, 제기랄…. 제가 바로 하고 싶은 말이에요.”
“네?”
“아, 아뇨. 저도 그 말에 동감하고 있었어요.”
정보상은 갑작스레 얼굴이 자꾸만 바뀌는 닉을 보며 고개를 갸웃하다가 말을 이었다.
“주변에 데리고 다니는 NPC나 본인 스탯을 생각해도 상식적으로는 클리어가 불가능한 상황들이 많았어요. 심지어 닉이 데리고 다니는 정령이 휩쓴 곳은, 프로그램적으로 뭔가가 건드려진 흔적도 있다고 해요.”
“…….”
“충격적이죠? 저도 처음에 듣고 놀랐어요. 아무리 생각해도 뭔가 이상한데 핵을 쓴 징후가 없다면, 게임 쪽에서 편의를 봐주고 있다는 생각밖에는….”
이후로도 정보상은 무어라 계속 말을 했지만, 닉은 입을 다물고 눈만 몇 번 깜빡였다. 그의 말은 더 들리지 않았다.
지금까지 계속해서 외면하고 신경 쓰지 않으려고 계속해서 노력하는 것이 있다.
아인은 오류 데이터이다.
그렇다면 시스템적으로 오류를 일으키거나, 바이러스를 옮길 가능성도 있다. 설사 자신이 의도하지 않았더라도 단지 존재하는 것만으로 게임에 피해가 갈 수도 있었다. 이렇게 세밀하고 체계적인 게임일수록 어디 하나가 어긋나면 걷잡을 수 없이 파장이 커질 수도 있으니까.
‘생각해 보면 오시하는 눈을 어떻게 상대했는지 제대로 말해 주지도 않았고.’
자신이 유일한 플레이어였기에 상당수의 공헌을 챙겨가긴 했지만, 마지막 타격은 분명 아인으로 되어 있었다. 오시하는 눈을 상대할 때는 일대일이라는 상황밖에는 주어지질 않으니 분명히 뭔가 방법을 사용하긴 했을 것이다.
‘직접 물어봐야 하나? 그런데 저번에 물어볼 때도 대충 애매하게 넘어가던데. 에르한테 부탁해서 거짓말을 하는지 안 하는지 확인하면서….’
점점 생각이 복잡해지는 닉의 앞에서 정보상은 계속해서 말을 이었다.
“그래서 닉은 오시하는 눈을 이용해서 프로토게노이를 완전 전복시킬 계획을 꾸미고 있다는 결론입니다. 그래서 중상위권 길드는 은근히 닉을 추종하면서 불리한 언론도 실드를 쳐주고 있는 경우가 많아요. 대단하지 않나요?”
“정말로미안하지만앞에무슨말을했는지다시말해줄수있나요.”
정신을 차리고 보니 랭킹 1위 길드를 무너뜨릴 레지스탕스의 수괴가 되어 있었다.
모조리 가짜 정보이긴 하지만 만에 하나 정말로 그런 소문이 돌아 있다면 보통 큰일이 아니다. 자칫하면 프로토게노이와 정면으로 맞붙게 되고, 얼굴을 내놓고는 대륙 어디에서도 평범하게 돌아다니는 것은 불가능해진다.
“앞이요? 오시하는 눈을 시스템적으로 조종해서 프로토게노이를 박살 낸 후 일부러 자신이 막타를 치게 만드는….”
“아우, 무슨…. 그냥 자멸하고 있던 거에 그놈들이 달려든 건데….”
“자멸이요? 전 그런 정보는 못 들었는데. 어디서 얻은 정보죠?”
그 말에 닉은 움찔하고 시선을 돌렸다.
“아, 그… 그냥 헌터 측에 아는 사람이 있어서….”
“헌터에 아는 사람이 있는데 굳이 저한테까지 오신 건가요?”
“하, 하하. 그냥 이런 길거리에서 나도는 소문이 더 신빙성 있을 때가 있으니까요? 나를 어떻게 생각하는지 더 확실하게 알 수 있기도 하고….”
정보상은 어색하게 미소 짓는 닉과 마주 웃으며 고개를 끄덕였다. 이내 닉이 시선을 굴리며 빠져나가려고 하자, 그는 눈을 가늘게 뜨며 되물었다.
“‘나를’ 어떻게 생각하는지, 라고요?”
“아 젠장.”
닉이 혀를 차며 슬슬 도주하기 쉬운 옷으로 바꿔 입으려는 찰나, 정보상은 뒤꿈치를 몇 번 바닥에 찍으며 신호를 주었다.
“찾았다. 잡아.”
“미친, 함정이었잖아! 사람 살려!!!”
하지만 닉의 외침은 소리가 새어 나가지 않게 하는 결계에 막혔다. 뒷골목에서 일어나는 일은 누구도 보지 못했다. 멀리 떨어져 있던 아인만이 잠깐 뒤를 바라보는가 싶더니, 이내 다섯 번째 옷가게로 일행들을 이끌고 들어갔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