Heroes, Demons & Villains RAW - chapter (1)
목 차
1장. 일류 검사의 고행 (1)
2장. 삼류 악당의 고행 (1)
3장. 일류 검사의 고행 (2)
4장. 삼류 악당의 고행 (2)
5장. 일류 검사의 고행 (3)
6장. 삼류 악당의 고행 (3)
7장. 일류 검사의 고행 (4)
8장. 삼류 악당의 고행 (4)
9장. 일류 검사의 여행 (1)
10장. 삼류 악당의 여행 (1)
11장. 일류 검사의 여행 (2)
12장. 삼류 악당의 여행 (2)
13장. 일류 검사의 여행 (3)
14장. 삼류 악당의 여행 (3)
15장. 일류 검사의 여행 (4)
16장. 삼류 악당의 여행 (4)
17장. 마왕의 은퇴 (1)
18장. 악당의 은퇴 (1)
19장. 마왕의 은퇴 (2)
1일류 검사의 고행(1)
세상은 늘 분란으로 가득하며.
분란은 죽음과 영광을 낳는다.
물론 아무리 찬란한 영광도.
드높고 위대한 명예도.
언젠가는 사라진다.
그래도 영광을 찾는 이는 있다.
비록 그들의 적은 강대하고도 교활하지만, 무한한 정의감과 신의 축복이 함께하는 그들은 온갖 고난을 넘어 적을 물리치고 승리한다.
그렇게 패배하고 사라진 적들은 악의 조직이라는 악명만이 남고.
반대로 승리한 그들은 영웅이라 불리며 부귀공명을 얻는다.
이것은 악의 조직 ‘데스 쉐도우’.
그 어둠에서 시작된 이야기.
전설이지만.
그 누구도 알지 못하는.
‘데스 쉐도우’에서 훈련생 7호라 불리는, 한 어린 검사의 비사였다.
* * *
“7호. 너는 제5훈련관에 배속된다.”
“…예.”
나는 실망했다.
검술을 중점으로 하는 제1훈련관을 원했기 때문이다.
그래도 항의는 하지 않았다.
데스 쉐도우 같은 암살 조직이 한낱 훈련생의 항의를 받아들일 리 없으니까.
실망한 것은 나만이 아니었다.
이곳에 배속된 모두가 마찬가지였다.
생존 훈련 중점의 5훈련관은 훈련이 가장 고되면서도 쓸모없어서만은 아니었다.
이곳의 책임자가 5교관이었기 때문이다.
딱딱한 태도와 칼날 같은 눈.
거기에 데스 쉐도우에서도 가장 냉정한 성격 때문에, 얼음 악마로 불리는 사내.
5교관은 그 눈빛만큼이나 싸늘하게 말했다.
“23호. 앞으로 나와라.”
“예!”
23호는 곧장 앞으로 걸어 나갔다.
딱딱하게 굳어진 몸만 봐도, 23호가 얼마나 긴장하고 있는지 알 수 있다.
“나를 공격해 봐라.”
“…예!”
당황하면서도 23호는 검을 뽑았다.
23호의 실력은 훈련생 중 중위권.
그래도 그림자 베기 18식을 모두 습득한 만큼, 자세는 상당히 깔끔한 편이었다.
반면 5교관의 검을 든 모습은 헐렁했다.
하지만 그 날카로운 기세는, 그것을 틈이 아닌 여유로 보이도록 했다.
그 모습을 보던 중.
나는 문뜩 깨달았다.
5교관의 검을 보는 건 처음이라는 것을.
과연 5교관의 검술은 얼마나 뛰어날까?
분명 1교관만큼은 못할 것이다.
2교관보다 낫다고도 생각되지 않는다.
그래도 저 정도 기세라면, 3교관이나 4교관보다는 낫지 않을까?
내가 그렇게 5교관의 실력을 추정할 때.
결국 위압감을 견디지 못한 23호가 검을 휘둘렀다.
카강!
“악!”
그야말로 찰나.
일격만으로 23호는 검을 놓쳤다.
깔끔한 대련이었지만, 나는 불만을 느꼈다.
예상보다 5교관의 검이 둔했기 때문이다.
5교관의 실력이 다른 교관들에 비해 떨어지기 때문일까?
아니면…?
“멍청한 놈.”
차갑다 못해 오싹한 5교관의 음성에 나는 움찔했다.
검술과 별개로, 그 싸늘한 위압감은 결코 무시할 수 없었기 때문이다.
“네 실수가 뭔지 말해 봐라.”
“…검을 놓친 것, 그리고… 비, 비명을 지른 것입니다.”
“이 얼간이보다 제대로 된 놈은 없나?”
5교관은 23호의 대답을 깨끗이 무시하고, 차가운 눈으로 우리를 훑어보았다.
다른 훈련생은 모두 시선을 피했다.
하지만 나는 반대로 오기를 느꼈다.
아무리 상대가 교관이라도 여기서 시선을 피하는 것은 자존심이 상했다.
“검을 휘두른 것. 그리고 포기한 것입니다.”
5교관의 차가운 눈이 나를 향했다.
보는 것만으로도 얼어 죽을 듯한 눈빛.
그러나 이미 마음을 굳힌 나는 똑바로 그 시선을 마주했다.
“이유는?”
“필살의 자신이 없으면 검을 뽑지 말아야 하고, 목이 붙어 있다면 끝까지 목숨을 노려야 합니다.”
“아주 바보는 아니군. 하지만 틀렸다.”
나는 납득할 수 없었다.
내 대답은 완벽하진 않아도, 정답으로는 충분했으니까.
그 순간.
교관이 내게 검을 휘둘러왔다.
짚단도 베지 못할 만큼 느릿느릿한 검.
하지만 그 검의 궤도를 알아본 나는 곧장 검을 뽑아, 교관을 향해 마주 휘둘렀다.
23호의 검을 그대로 따라 하는 그.
방금 교관의 검을 따라 하는 나.
속도만 다를 뿐, 좀 전과 똑같은 전개다.
그렇다면 당연히 결과도 같아야 할 텐데,
끼긱!
옅은 불안감과 함께 엇갈린 두 궤적.
그 끝에 남은 것은 내 목에 바짝 닿아있는 교관의 검과… 내 검이 그의 어깨에 남긴 검상이었다.
어깨가 베였음에도 미동도 없는 차가운 눈.
“알겠나?”
나는 입술을 질끈 깨물었다.
이 싸움은, 나의 명백한 패배다.
5교관이 손을 멈추지 않았다면, 그의 검은 내 목을 꿰뚫었을 테니까.
“설명해 봐라. 만약 못 하겠다면….”
싸늘한 음성에 나는 오싹해졌다.
5교관은 빈말 따위는 모른다.
무엇보다 이 예리한 살기가, 흐려진 뒷말을 대신하고 있었다.
하지만 내게는 살기보다 패배가 괴로웠다.
피할 수 있는 것을 일부러 맞아줬을 만큼, 그와 나 사이에 명백한 실력 차가 있다는 사실이 나의 수치심을 더 크게 부풀렸다.
“살을 주고, 뼈를 깎기 위해….”
“틀렸다.”
목덜미에 따끔한 통증이 느껴진다.
그 뒤를 잇는 것은, 살갗을 타고 또르르 흘러내리는 핏방울의 감촉.
나는 애써 동요를 가라앉혔다.
지금은 두려움을 느낄 때가 아니다.
한시라도 빨리 정답을 찾아야 할 때지.
그러나 내가 미처 답을 찾아내기도 전에, 그의 차가운 음성이 내 귀를 파고들었다.
“너희들이 배운 ‘그림자 베기’는 일격 필살에 있어서는 대륙에서 세 손가락 안에 드는 검술이다. 그렇기에 이격 따윈 필요도 없을뿐더러, 할 수도 없지.”
순간, 나는 깨달았다.
5교관이 원하던 정답을.
그리고 내가 그림자 베기에서 찾아 헤매던 해답을.
“오직 일격뿐… 이격도, 방어도 없다는 말씀입니까?”
“그래. 그림자 베기에서 한 번의 실패는 곧 죽음. 그렇기에 필살의 자신이 없어서는 펼쳐서는 안 되고, 필살에 실패했다면… 살아 있는 것 자체가 용납되지 않는다.”
그렇다.
그림자 베기에는 아예 방어를 위한 검식이 없다.
자신의 생존조차 도외시한 채, 상대의 죽음만을 쫓는 것이 그림자 베기.
하지만 나는 이격을 염두에 두었다.
그렇기에 교관보다 검이 늦었고.
발악으로 같이 죽는 무모한 수를 펼쳤음에도 패배한 것이다.
“바보보단 좀 낫군. 하지만… 마지막에 검을 튼 건 정말 멍청한 짓이었다.”
“…….”
눈치챘나?
아니, 당연히 그럴 것이다.
마지막에 순간, 검에 힘을 빼지 않았다면 교관의 어깨가 날아갔으리라는 사실을.
그것을 못 한 것도 내 패인이라는 것을 말이다.
“그림자 베기는 필살 검. 아무리 연습이라도, 실패를 자처하는 멍청이는 필요 없다.”
“…명심하겠습니다.”
나는 5교관의 실력을 뼈저리게 자각했다.
이것이 대련이 아닌 실전이었다면?
분명 어깨를 베기도 전에 교관의 검에 제압당하거나, 목이 날아갔을 것이다.
이 사내에게는 그만한 실력이 있었다.
“지금부터 훈련장 20바퀴 주행 후, 그림자 베기를 1식부터 18식까지 각각 100회씩 실시한다. 다 끝마치기 전까지는 휴식 따윈 꿈도 꾸지 마라.”
싸늘한 음성으로 훈련생들에게 외친 그는 나와 23호에게 차가운 시선을 향했다.
“23호. 7호. 너희들은 10바퀴, 50회씩 추가다. 못 하겠다는 소리는 하지 않겠지?”
“예!”
패배로 인한 분통함을 느끼며.
나는 주저 없이 답했다.
이 넓은 훈련장을 수십 바퀴나 돌고, 진검을 수천 번이나 휘두르는 것은 어릴 때부터 단련해온 나로서도 결코 쉬운 일이 아니다.
하지만 이곳에서 교관의 명은 지엄하다.
무엇보다 어깨의 부상을 입고도 미동도 없는 5교관의 차가운 눈은 항의는커녕 불만조차 품을 수 없게 만들고 있었다.
그래. 나는 그를 너무 과소평가했다.
그렇기에 5교관에게 간단히 패배했고.
하지만 그 덕분에, 나는 찾던 실마리를 얻을 수 있었다.
그리고 앞으로 그에게 얻을 수 있는 것은 더 많을 것이다.
훈련장을 달리는 나의 마음속에서, 5훈련관에 대한 실망과 아쉬움은 이미 깨끗하게 사라져 있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