Heroes, Demons & Villains RAW - chapter (10)
9일류 검사의 여행(1)
평온한 사막의 제현자는 말했다.
대륙에는 끝이 없으며, 단지 사람들이 자신이 볼 수 있는 한계를 끝이라 규정할 뿐이라고.
진리의 탑의 현자들이 남긴 모든 말처럼, 그 말에는 많은 진리가 숨겨져 있을 것이다.
“뱀 꼬치, 입니까?”
하지만 나는 생각했다.
제현자가 남긴 말은, 어쩌면 그냥 대륙의 광활함을 뜻하는 것이었을지도 모른다고.
“그렇다, 흰색 무늬 뱀. 짜릿짜릿한 독, 끝내주는 맛이다.”
커다란 나무를 빙 두르듯 집을 짓고 나뭇가지 사이사이로 다리를 얽어 놔 숲과 하나가 되어 있는 듯한, 기묘하지만 평화로운 마을.
그 한복판에서 자리를 깔아 놓고.
하얀 이가 드러나도록 씨익 웃으며 화로에 굽던 뱀 꼬치 하나를 쑥 내미는 남부인 특유의 갈색 피부의 사내의 말만 들어도, 그 사실을 새삼 체감할 수 있었다.
그냥 뱀이라면 모를까.
독사를, 그 독까지 조미료로 삼아 먹다니.
제국의 28 국토에 속하지 않은 남부. 그중에서도 대륙의 끝이라 불리는 남부 밀림의 초입이기에 볼 수 있는 독특한 요리였다.
하지만 나는 놀라지 않았다.
동전 몇 닢을 내밀었을 뿐.
으적.
“확실히, 독특한 맛이로군요.”
사내의 말이 단순한 허풍이 아니었는지.
뱀 꼬치는 꽤 맛있었다.
쫄깃쫄깃한 식감이나, 고소한 맛이나.
특히 씹을 때마다 느껴지는 톡 쏘는 듯한 감각은, 왜 굳이 독사를 파는지 이해될 정도였다.
“손님, 제국인 맞다……?”
내가 뱀 꼬치를 너무 담담히 먹어서인지 떨떠름한 얼굴로 묻는 갈색 피부의 사내.
“맞습니다만. 뭔가 문제라도 있습니까?”
“……아니, 없다.”
사내는 말로만 아니라 했을 뿐, 옆에 둔 찻주전자를 만지작거리면서도 눈으로는 계속 이상하다는 듯 나를 보았다.
그로서는 그럴 만도 했다.
남부인이라면 몰라도 독사를 태연하게 먹는 제국인은 드물 테니까.
“그렇게 신기해하실 것 없습니다. 여러 곳을 다니다 보니, 독특한 요리에 익숙해졌을 뿐입니다.”
“아, 그렇다?”
그제야 좀 알겠다는 듯, 사내는 고개를 주억거렸다.
하지만 그는 아마 모를 것이다.
내가 독사를 태연히 먹을 수 있는 이유를.
그것은 여행을 많이 다녀서가 아니라, 전에도 독사를 여러 번 먹어 봤기 때문이라는 것을.
맛을 즐기거나 배를 채우기 위해서가 아니라, 독에 익숙해지고 내성을 기르기 위해서라도, 독사는 여러 면에서 좋은 식재료였으니까.
대신 독을 버티지 못하면 죽지만, 그 과정을 넘어서면 웬만한 독사는 조금 독특한 고기일 뿐이었다.
그렇게 가볍게 뱀 꼬치를 다 먹은 내게, 사내는 흥미로운 얼굴로 물었다.
“손님, 장사꾼으로 안 보인다.”
“장사에는 소질이 없는 편입니다.”
“그런데 여기는 왜 왔다? 여행? 신기한 거 구경?”
“아니요.”
사내의 추측은 대개 맞을 것이다.
제국인이 이 남부 밀림까지 올 일은 거의 없다.
몇몇 희귀한 특산물을 사려는 상인이나, 희귀한 구경거리를 좋아하는 여행자가 대부분이지.
하지만 나는 보통 제국인과 사정이 달랐다.
그 차이점을 알려 주기 위해 나는 허리춤에 찬 검을 보여 주며, 나직이 말했다.
철컹.
“수행을 위해서입니다.”
* * *
여행을 오래 하면 많은 것에 익숙해지기 마련이다.
온갖 기괴한 음식에도.
여관이 없는 마을에도.
뱀이 기어 다니는 잠자리에도.
그런 의미에서, 나는 뱀의 목을 틀어쥐었다. 그리고 활짝 열린 창밖에 적당히 내던졌다.
이 정도면 그래도 무난한 편이다.
지난 3년간 곳곳을 돌아다녀 온 내게 숙소란 지붕이 있는 것만으로도 충분했으니까.
“…3년, 인가.”
‘데스 쉐도우’를 무너트린 후.
때로는 납치된 처녀를 구해 주고.
때로는 무투회에 가서 승리하고.
때로는 마술사와 승부를 겨루며 나는 거처를 두지 않고, 대륙을 돌아다녀 왔다.
공을 쌓아 가문의 명성을 떨치기 위해서였다.
혼란스러운 전란의 시대라면 모를까, 제국의 통치 아래 대륙이 안정된 지금 검가의 명성을 올릴 수 있는 방법은 드물었다.
물론 제국에 임관하는 방법도 있긴 했다.
라바일가는 제국의 백팔 검가 중 하나.
아무리 쇠락했을지언정, 황실기사단에 들어가는 것도 어렵지 않다.
그리고 그곳에서 내 검술을 증명한다면 10년 안에 황실기사단장이 될 자신도 있다.
어떤 의미에서는 그것이야말로 가문을 부흥시키는 가장 빠르고 정확한 길일 것이다.
그런데도 내가 대륙을 떠도는 이유는 하나.
스스로의 미숙함을 채우기 위해서였다.
나의 검은 겨우 형태만 잡혀 있을 뿐, 완성했다고 말하기에는 턱없이 부족했으니까.
물론 불완전하기는 해도 나의 검술은 일격 필살의 삼대 검류를 통합한 사상 초유의 것.
미친 폭풍의 광검자가 살아 돌아오지 않는 한, 누구도 나를 검으로 이기지는 못할 것이다.
하지만 나는 그것만으로 만족할 수 없었다.
자긍심을 가진 한 명의 검사로서.
무엇보다 ‘그’의 검을 물려받은 후계자로서.
내게는 이 검술을 완성해야 할 의무가 있었으니까.
“…….”
그에 대한 것을 떠올린 탓일까,
가슴의 한쪽이 욱신거리는 감각을 나는 자연스럽게 받아넘겼다.
3년 전, 그의 죽음을 확인한 뒤부터 이 통증은 내 일부가 되었으니까.
누가 그랬던가.
시간이야말로 최고의 약이며, 어떤 회한도 언젠가는 잊는 법이라고.
하지만 적어도 나는 거기에 속하지 않았다.
매일 잠이 들 때마다.
그리고 검을 쥘 때마다.
내 눈에는 그의 마지막 모습이.
내 손에는 그를 베었던 감촉이.
방금 겪은 것처럼 생생하게 떠오르며, 가슴의 욱신거림 또한 나아지기는커녕 갈수록 더 깊어지기만 했으니까.
그렇다고 그것을 잊길 원하느냐 묻는다면, 나는 아니라고 단호하게 대답할 수 있었다.
이것은 내가 마땅히 치러야 할 대가였기에.
그리고 이 욱신거림이 고통스러운 만큼, 더 선명하게 그를 떠올릴 수 있었기에….
“손님, 들어가도 된다?”
불쑥 고개를 들이민 갈색 피부의 사내.
낮에 내게 뱀 꼬치를 주고 그 인연으로 숙소를 빌려준 남부인 하르바는 내가 대답하기도 전에 들어왔다.
그리고 맨바닥에 걸터앉으며 히죽 웃었다.
“손님이 부탁한 길잡이, 구했다.”
“어려운 부탁을 들어주셔서 감사합니다.”
“별로 안 어렵다. 제국 은화 열 닢, 남부에서는 큰돈이다. 통 큰 손님, 길잡이들 좋아한다.”
그냥 하는 말은 아닐 것이다.
길잡이의 고용비는 보통 은화 한 닢.
좀 험난한 곳이라도 은화 세 닢은 넘지 않는다.
그런데도 내가 은화 열 닢을 제시한 이유는 당연히 돈이 넘쳐 나서가 아니었다.
“그래도 남부 밀림 안쪽에 들어가는 것은, 목숨을 걸어야 하는 일이라고 들었습니다만.”
내가 남부 밀림을 찾아온 이유, 그것은 이곳이 위험하기 때문이다.
남부 밀림은 악명 높은 험지.
살아 돌아오기 힘들기로 유명한 곳이다.
“그거, 제국인 이야기.”
그러나 그런 나의 생각을 하르바는 씨익 웃으며 부정했다.
“우린 남부인. 밀림, 무서워하지 않는다.”
“그렇습니까?”
“집이 무서운 사람도 있다?”
“하긴, 그렇군요.”
나는 납득했다.
아무리 험한 땅이라도 사람은 사는 법.
물 한 방울 찾아보기 힘든 사막도.
사시사철 혹한이 몰아치는 설원도,
그곳에 사는 이들에게는 두려운 오지가 아닌, 익숙한 고향이 되기 마련이기에.
어둠의 산이나 드라고니아처럼 아예 사람이 살지 않는 곳이라면 또 모르겠지만.
“밀림에서 진짜 무서워해야 하는 건, 샤하타다.”
“샤하타, 말씀입니까?”
“그렇다.”
좀 전까지 웃던 표정이 거짓인 것처럼 하르바는 갑자기 얼굴을 굳혔다.
그리고 누가 들을까 무섭다는 듯, 바싹 긴장해서 주변을 둘러보다가 낮은 목소리로 입을 열었다.
“샤하타. 밀림의 전설. 밤에 나타나, 한 마을의 사람들을 모조리 잡아먹는 괴물이다.”
“…그건, 요마의 이야기입니까?”
나는 조금 놀랐다.
한 마을을 통째로 먹어 치우다니.
그런 끔찍한 괴물은 요마뿐이다.
대륙을 돌아다녀 온 나로서도 남부 밀림에 요마가 있다는 이야기는 처음이었다.
“요마, 아니다. 샤하타는 샤하타다.”
다행히 하르바는 그런 내 추측을 부정했다.
하지만 그 대답을 들은 순간 내가 느낀 것은 안도감이 아니었다.
대신 찾아온 것은 일말의 아쉬움.
신화시대부터 존재해 온 요마와의 싸움이라면, 검술을 완성하는 데 큰 도움이 될 거라 생각했기에.
“샤하타를, 제국어로 말하면…. 귀신. 사람 먹는 귀신이다.”
“저는 귀신을 본 적이 없습니다만.”
결국 미신이었나.
샤하타를 이런 오지에 흔히 전해지는 지역 특유의 미신이라고 생각한 나는 쓴웃음을 머금었다.
“농담 아니다. 난, 샤하타를 봤다.”
“귀신을 보셨단 말씀입니까?”
“보기만 한 게 아니다.”
천천히 고개를 저으며 하르바는 상의를 풀어헤쳤다.
갑작스러운 그의 행동에 의아해했던 나는, 풀어진 옷깃 사이로 드러난 목가에서부터 가슴을 거쳐 배까지 이어진 끔찍한 흉터를 보고 얼굴을 굳혔다.
“나, 샤하타를 만났다. 이게, 증거다.”
“이게… 샤하타라는 귀신에게 입은 상처란 말입니까?”
“살아난 거, 운이 좋았다.”
그의 말을 나는 더는 무시할 수 없었다.
철저하게 급소만을 할퀴고 지나간, 살아남은 게 신기할 정도로 참혹한 흉터.
그것을 남긴 자의 잔인함 때문만은 아니었다.
이 흉터가, 검상이라는 것을 한눈에 알아봤기 때문이다.
시간이 지나 상처가 아문 탓인지 정확한 검흔까지는 읽어낼 수는 없었다.
하지만 이런 검상을 일격에 만들어 냈다는 것만으로도 상대의 수준은 충분히 짐작이 갔다.
…적어도 일류.
그리고 어쩌면, 그 이상.
‘데스 쉐도우’ 최고의 검사이던 1교관과도 비견될 수준.
“샤하타, 죽지 않는 귀신. 몇 번을 죽어도 되살아나는, 숲의 망령이다.”
떠올리는 것만으로도 무서운지, 창백한 얼굴로 부르르 몸을 떨며 하르바는 옷깃을 다시 여몄다.
그리고 진지한 얼굴로 나를 보았다.
“손님. 충고다. 샤하타를 만나면, 바로 도망쳐라. 만약 그러지 않으면….”
후욱.
창문을 통해 들어온 바람 때문일까.
등잔의 불꽃이 일렁이다 팍 꺼졌다.
빛이 사라진 방에서, 하얀 눈자위를 번뜩이며 하르바는 들릴 듯 말 듯 작은 목소리로 말했다.
“샤하타에게, 잡아먹힐 거다.”
“…충고, 감사합니다.”
* * *
결코 농담이라고 생각할 수 없는 섬뜩한 충고를 남기고 하르바가 나간 뒤에도 나는 굳이 등잔에 불을 붙이지 않았다.
단지 창밖으로 시선을 돌려 어둠에 잠긴 마을을 내다보며, 그에게 들은 이야기를 되새겨 봤을 뿐이다.
“죽지 않는 귀신, 인가.”
다시 생각해 봐도 얼토당토않은 이야기다.
하르바가 헛것을 봤다는 게 더 합리적이다.
극한의 상황에 환각을 보는 일쯤, ‘데스 쉐도우’의 훈련생들에게는 심심하면 일어나는 일이기도 했고.
하지만 단순한 헛것으로 치부할 수는 없다.
그의 몸에 남은 흉터는 분명 진짜였으니까.
그리고 진짜 귀신이 있든 없든 내 관심사는 아니었다.
중요한 것은 하나, 남부 밀림에 뛰어난 검사가 있다는 것뿐.
목숨 걸고 남부 밀림에 들어가야 할 이유로 그 정도면 충분하고도 남았다.
상대가 선한이든, 악한이든, 아니면 진짜 귀신이든.
검을 쓴다는 것은, 벨 수도 있다는 뜻.
그리고 검으로 벨 수 있는 존재라면 나는 신이라도 벨 자신이 있었다.
그것이 그가 내게 가르쳐 준 검이었으니까.
“정말 있으면 좋을 텐데.”
그렇기에 나는 바랐다.
하르바의 말이 진실이기를.
정말 귀신이라는 게 있다면.
그래서 죽은 자를 다시 만날 수 있다면.
내 모든 것을 다 버려서라도 단 한 번만이라도 다시 만나고 싶은 이가 있다.
하지만 그것이 이룰 수 없는 바람임을 알기에, 나는 그가 남긴 검을 쓰다듬으며 쓸쓸히 눈을 감았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