Heroes, Demons & Villains RAW - chapter (11)
10삼류 악당의 여행(1)
오랫동안 일을 하면 가끔은 외근을 맡게 되기 마련이다.
좀 멀리까지 출장을 나올 때도 있고, 직장에 따라서는 출장지가 좀 험난할 수도 있다.
그런 의미에서, 악당은 출장에 익숙할 수밖에 없는 직업이었다.
보물이 숨겨진 고대의 유적이든.
영웅의 싹이 자라는 외딴 시골이든.
조직을 방해하는 이웃 나라의 왕궁이든.
세계 정복의 야욕을 위해서라면, 대륙 끝까지 조직원을 파견하는 것이 악의 조직이니까.
그래, 알고는 있다. 알지만 말이지…. 그렇다고 진짜 대륙 끝으로 보내는 건 뭔데?
짜증스럽게 사방에 가득한 나무.
살이 익어 버릴 듯 짱짱한 햇빛.
숨만 쉬어도 불쾌감이 쌓이는 습기.
거기에 엉망진창으로 지어진 집들까지.
하나부터 열까지 도통 마음에 드는 게 없는 마을의 풍경을 보며, 나는 내심 이를 갈았다.
“거기 손님, 이 꼬치 하나 어떻다?”
나를 만만하게 봤는지 화로에서 굽던 꼬치를 내미는 남부인.
놈에게 나는 차가운 목소리로 대답했다.
“사양하지.”
“사양할 것 없다. 공짜다. 맛이라도 봐라.”
환하게 웃으며 계속 꼬치를 권유하는 놈의 까무잡잡한 얼굴을 쏘아보길 잠시.
나는 결국 꼬치를 받아 들었다.
그리고 그대로 손을 내뻗었다.
“잘 생각했다. 이거, 대단한 별미… 쿠엑?!”
말하다가 목에 꼬치가 틀어박힌 탓인지.
돼지 멱따는 듯한 비명을 지르며 데굴데굴 바닥을 구르길 잠시, 겨우 몸을 일으킨 놈은 이마에 핏대를 세우며 버럭 고함을 내질렀다.
“무, 무슨 짓이다!?”
“그건 내가 묻고 싶군.”
나는 눈빛을 날카롭게 바꿨다.
그리고 바닥에 떨어진 뱀 꼬치를 짓밟으며, 가능한 차가운 목소리로 말했다.
“흰색 무늬 뱀 같은 독사를 준 의도가 뭐지?”
“이거, 우리 전통 요리다. 독사지만 괜찮다! 제국인 손님도, 맛있게 먹었다!”
얼씨구, 퍽이나 그러시겠지.
놈이 주워섬긴 변명을 나는 내심 비아냥거렸다.
하긴 거짓말은 아니다. 흰색 무늬 뱀이 먹을 수 있는 것도, 남부의 전통 요리인 것도 사실이니까.
이 새끼가 딱 한 가지, 가장 중요한 사실을 말하지 않았다는 걸 제외하면 말이다.
“잠꽃차도 같이 말인가?”
“……!”
화로 옆에 반쯤 숨기듯 놓여 있는 잠꽃차의 찻주전자를 보며 나는 코웃음을 쳤다.
흰색 무늬 뱀은 누가 뭐라고 해도 독사. 남부 밀림에서는 식용으로 쓰인다지만, 이걸 먹을 때는 반드시 잠꽃차도 같이 마셔야만 한다.
아니면 따로 독 내성 훈련이라도 받았던가.
왜냐고?
안 그러면 온몸이 마비되거든.
물론 이건 남부에서나 상식일 뿐, 제국에서는 약술사도 잘 모르는 지식이다.
그래서 남부에는 가끔 이런 새끼가 있다.
멋모르는 제국인이 오면 독사 꼬치를 주고 경련이 일어난 제국인이 급하게 해독제를 찾으면, 그때야 잠꽃차를 꺼내는 놈들이.
“이걸 먹었다는 제국인 손님이, 잠꽃차를 얼마에 사 먹었는지 궁금하군.”
자신의 수법이 들켜서인지 얼굴이 푸르딩딩해지는 놈.
쯧쯧, 표정 관리 하고는.
죄를 짓다 걸려도 모른 척 시치미 떼는 건 악당의 기본 소양이거늘.
“미, 미안하다. 내가 잘못했다.”
잘못을 했으면 대가를 치러야지.
구체적으로는 돈이라든가, 변상금이라든가, 사죄비라든가. 응?
머릿속으로는 그렇게 외치면서도 겉으로는 냉정한 태도를 유지했다.
만약 개인적인 일로 온 것이라면 숙련된 악당의 66가지 협박술을 총동원해서 불알 두 쪽만 빼고 탈탈 털어 냈겠지만, 유감스럽게 오늘은 조직의 업무차 출장 온바.
여기서 괜히 잔돈 몇 푼 뜯어내려다가, 괜히 주변의 이목을 끌어모으는 건 좋지 않았다.
“먹잇감은 잘 고르도록.”
크흐, 아깝다.
보는 눈만 없었어도 여비는 뽑는 건데.
뭐, 그래도 이 마을에서 날 얕보는 놈은 없어졌겠지.
좀 전까지만 해도 호시탐탐 빈틈을 노리던 주변의 시선이 확 줄어든 것을 느끼며 나는 내심 코웃음을 쳤다.
누군가는 이 마을을 평화롭다 할지 모른다.
경비병은커녕 바쁨이나 긴장감도 없이 곳곳에 걸터앉아 노래를 흥얼거리며 소일거리를 하는 주민들의 모습은 느긋해 보이니까.
하지만 그건 멋모르는 소리.
만약 내가 놈의 사기에 당했다면 저 느긋한 주민들은 피 냄새를 맡은 피라냐처럼 내게 달려들었을 것이다.
그것이 바로 남부 밀림.
약육강식의 법칙에 따라 굴러가며 빈틈을 보이면 같은 인간도 뜯어먹을, 오직 사냥감과 사냥꾼밖에는 존재하지 않는 사납고 잔혹한 야성의 땅이었으니까.
좀 전의 뱀 사기도 여기서는 장난 수준.
진짜 무서운 놈들은 아예 독도 안 뺀 뱀을 먹여서 독살하고 짐을 몽땅 털어 버리기도 한다.
일부러 과격하게 나선 것도 그래서였다.
여기서 만만하게 보이면 끝장이니까.
그래도 내 무력시위가 먹힌 탓인지.
쓸데없는 시선이 다 떨어져 나간 덕분에 나는 한결 여유롭게 마을을 돌아다닐 수 있었다.
그렇다고 일이 편해진 건 아니었지만.
“…여기도 아니군.”
빌어먹을, 접선 한 번 하기 더럽게 힘드네.
마을 입구에 새겨진 흠집을 쫓아 나뭇가지에 끼어 있는 천을 찾아내 그걸 단서로 또 이 마을 어딘가에 있을 접선책을 찾아 헤매며, 나는 내심 욕지거리를 내뱉었다.
어쩔 수 없는 일이긴 하다.
보안은 악의 조직의 생명줄인바.
쓸데없는 정보 유출을 막으려면 이중 삼중으로 접선에 주의하는 건 기본이다.
그래 봤자 영웅들은 접선하는 걸 ‘우연히’ 보고, 악의 조직까지 찾아낸다는 게 함정이지만.
그 덕분에 괜히 머리를 쥐어짜 가며 마을을 은밀하게 돌아다니던 중이었다.
내 머리 위에 뭔가 묵직한 것이 툭 떨어진 것은.
“……?”
응? 이건 또 뭐야?
비라도 오려나?
그런데 빗방울치고는 좀 무거운 느낌이….
샤악!!
끄허으아갸갹!?!?!
머리를 털어 내려고 손을 뻗은 순간, 날카로운 잇소리가 허공을 울리며 손등을 파고든 짜릿한 통증.
그것에 기겁하며 반사적으로 손을 털어 낸 나는 내 손에 대롱대롱 매달려 있는, 하얀 몸뚱어리에 무늬를 가진 뱀을 보고 아예 경악했다.
흰색 무늬 뱀?!
이런 X발?!?!
경악은 길었지만, 판단은 순간이었다.
번개처럼 검을 뽑아 독사의 목을 베어 내고, 아직도 손에 매달린 머리통을 뜯어낸 뒤, 급히 품에서 꺼낸 해독제를 삼키기까지.
나는 모든 동작을 한순간에 마쳤다.
숙련된 악당이기에 가능한 신속한 대처!
문제는 해독제가 아무리 빨리 퍼진다 한들, 혈관에 스며든 독보다 빠를 수는 없다는 것이다.
그 결과, 나는 채 세 호흡이 지나기도 전에 바닥에 널브러져 경련을 일으키는 신세가 되었다.
사실 이것도 운이 좋은 편이었다.
구워 먹어도 중독되는 게 흰색 무늬 뱀이다.
그런데 살아 있는 놈에게 물리면?
보통은 채 숨 몇 번 쉬기도 전에 뒈진다.
남부 밀림에 흰색 무늬 뱀을 요리해 먹는 풍습이 있는 건 결코 맛있어서가 아니다.
워낙 이 독사에 죽는 사람이 많다 보니 그 내성을 키우려고 생긴 풍습이지!
혹시 몰라 해독제를 준비해 둬서 다행이지.
해독제를 먹는 게 조금만 늦었다면 오늘 세상 하직했을지도 몰랐다.
악당을 가호하는 아흔아홉 악마시여….
너희들 진짜 일 좀 해라, 이 게으름뱅이 새끼들아!
“후우….”
그렇게 악마들에게 저주를 퍼부어 대며 뱀독이 퍼졌다 해독제에 씻겨 내려가길 반복하고 몸이 뜨거워졌다 차가워졌다 하길 잠시.
겨우 해독이 끝났는지 마비 증상이 풀린 나는 식은땀을 뻘뻘 흘리며 몸을 일으켰다.
그리고 독사가 떨어진 나뭇가지 위쪽, 커다란 나무 위에 지어져 있는 집의 활짝 열린 창문을 보며 이를 갈았다.
이 빌어먹을 것들이! 독사를 못 먹이니까 아예 던져 버리다니, 이런 수법은 또 언제 개발한 거야?
어떤 새끼든 잡히기만 해 봐라, 내가 그냥 콱!
그 참신한 수법에 원한을 불사르면서도, 나는 급히 자리에서 도망쳤다.
이건 아예 작정하고 날 노려서 꾸민 일. 적이 누구고 몇 명이나 되는지 모르는 이상 일단은 튀고 보는 게 상책이었다.
아직 몸이 저린 지금으로서는 더더욱 말이다.
몸이 멀쩡했어도 추궁은 힘들었을 것이다.
이곳은 남부 밀림.
독사 따위는 널리고 널린 곳이다.
내가 당장 쳐들어가서 따진다 해도 나뭇가지에서 떨어진 거라고 둘러대면 완벽한 변명이 돼 버린단 말이지.
전설적인 악의 조직, ‘드래곤 헌터’의 용의 무덤과도 비견될 만한 완벽한 수법.
누가 꾸민지는 몰라도 머리 하나는 잘 굴리는 놈이었다.
하지만 숙련된 악당은 결코 원한을 잊지 않는 법!
지금은 이렇게 물러나지만, 어떤 새끼든 걸리면 오늘 일을 죽도록 후회하게 해 줄 것이다.
그때까지 두고 봐라아아아!
* * *
“…….”
조금 불행한 사고가 있기는 했지만 어쨌든 악착같이 마을을 뒤진 끝에, 나는 접선책의 밀서를 찾아낼 수 있었다.
하지만 막상 확인한 지령은 내게 할 말을 잃게 했다.
[남부 밀림의 마지막 마을에서 표적과 접촉해서, 주어진 임무를 수행하라]뭐? 남부 밀림 안쪽에 들어가?
거기서 임무를 수행하라고?
그것도 있을지도 모를 그 표적을 상대로?
…차라리 나보고 드라고니아에 가서 보물을 찾아오라고 해라, 이 새끼들아.
나는 머리를 싸매고 싶어졌다.
똑같은 남부 밀림이라고는 해도 초입에 불과한 이곳과 안쪽은 차원이 다르다.
그런데 이 멀리 출장을 보낸 것도 부족해서 아예 그 생지옥에 들어가라고 하다니, 저절로 욕지거리가 나올 수밖에 없는 일이었다.
그렇다고 지령을 거부할 수도 없다.
악의 조직의 규율은 지엄한 법.
마음대로 명령을 거부하는 조직원 따위, 내가 간부라도 바로 처형해버릴 것이다.
뭐, 금색이나 은색으로 반짝이는 걸 좀 챙겨 주면 대신 좀 더 쉬운 임무로 바꿔 줄 수는 있겠지만.
유감스럽게도 나는 조직에서 아직 신입인바.
먹여 둔 뇌물…이 아니라 인맥도 없는 만큼, 융통성을 부탁할 방법도 없었다.
…젠장, 할 수밖에 없나.
마지못해 결론을 내린 나는 고민에 잠겼다.
남부 밀림 안쪽에 들어가려면 준비할 게 많다.
가방 단위의 해독제는 기본, 벌레와 맹수에 대한 대책이나 밀림에 적합한 무장 등등, 준비에만 며칠은 허비해야 할 정도다.
하지만 그중 가장 먼저 준비해야 하는, 가장 중요한 준비물은 따로 있었다.
“길잡이부터 구해야겠군.”
빌어먹을.
여기 길잡이들 몸값은 장난이 아닌데.
그렇다고 길잡이 없이 들어가기에는 위험하고, 조직에서 경비로 처리해 줄 리도 없다.
꼼짝없이 내 돈으로 처리해야 하나?
어디 싼값에 후려칠 수 있는 길잡이가 있으면 좋겠지만…. 끄으응.
돈주머니의 무게와 안전을 저울질하며, 일단 눈에 띈 꼬마에게 말을 걸었다.
몸값을 깎든 말든 길잡이부터 구해야 할 수 있는 일이었으니까.
“마지막 마을로 갈 길잡이?”
“그래.”
“저기 가 봐. 비싸지만, 그럭저럭 쓸 수 있는 길잡이 있어.”
…아니, 난 실력은 좀 떨어지더라도 가성비 좋은 길잡이를 원하는데.
“아, 참고로 난 안 돼. 선약 있어.”
자기가 이 마을 최고의 길잡이라도 되는 듯 묘하게 잘난 체하는 꼬마의 말을 흘려들으며 나는 마을 한복판의 모닥불로 다가갔다.
그곳에는 몇몇 놈들이 옹기종기 모여 노래를 흥얼거리며 술판을 벌이고 있었다.
“이곳에 길잡이가 있다고 들었다.”
“그럼, 있다. 돈만 내면 어디든 안내해 준….”
“…….”
“딸꾹.”
마치 기다렸다는 듯.
환하게 웃으며 뒤를 돌아봤다가 내 얼굴을 보자마자 대번에 쩌저적 굳어 버린, 어째 묘하게 낯익은 얼굴의 남부인을 보며 나는 차가운 미소를 지었다.
“돈만 내면 어디든 안내해 준다고 했나?”
“어, 음, 그, 그게 말이다.”
“마침 잘됐군.”
나는 은화 하나를 손가락으로 튕겼다.
그리고 엉겁결에 날아든 은화를 받아 든, 낮에 날 상대로 뱀 꼬치를 팔아 치우려 했던 놈에게 냉담하게 말했다.
“목적지는 마지막 마을이다.”
“마, 마지막 마을 말이다?”
“문제라도 있나?”
“그…!”
어이가 없다는 듯 놈이 입을 열려던 순간, 나는 일부러 스산한 살기를 일으키며 자연히 검 손잡이에 한 손을 올렸다.
더 지껄이면 베어 버리겠다는 듯 말이다.
아주 눈치가 없진 않은지 놈은 잽싸게 입을 다물었다.
그리고 도움을 구하듯, 모닥불에 둘러 앉아있던 친구들을 돌아보았다.
하지만 밀림의 법칙은 비정한 법.
언제 같이 웃고 떠들어 댔냐는 듯, 다른 남부인들은 일제히 놈을 외면했다.
그렇게 의지할 데를 잃은 놈은 결국 어깨를 축 늘어트리며 마지못해 대답했다.
“…아니, 없다.”
아싸, 돈 굳었다!
본래라면 은화 몇 닢은 내야 했을 것을.
돈을 뭉텅이로 아낀 것에 쾌재를 부르면서도 나는 겉으로는 결코 내색하지 않았다.
단지 칼날처럼 냉정하게 잘라 말하며, 울상을 지은 놈으로부터 등을 돌렸을 뿐.
“이틀 뒤에 출발할 테니, 그때까지 준비를 마쳐 두도록.”
초장부터 이렇게 운이 좋으니 이번 일은 아무래도 쉽게 풀리겠어. 후후후.